Cosmic Heavenly Demon 3077 RAW novel - Chapter (124)
우주천마 3077-123화(124/349)
20. 정,마,괴 Chivalry, Desperado, Apostate (2)
20. 정,마,괴 Chivalry, Desperado, Apostate (2) – 뉴트럴 → 카오틱
순자와 함께 여행을 떠나기 위한 물품들을 사 온 목진은 숙소로 돌아오자마자 보이는 광경에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이거 참 묘한 광경이구나.”
숙취 때문에 소파에 누워서 죽어가는 디마와 그 옆에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며 어울리지 않게 얌전한 자세로 앉아있는 세령. 그리고 조신하게 부엌의 식당에서 아테나에게 차를 대접하는 이르비스.
참으로 뭐라 설명하기 미묘한 그림이었다.
물론 양 손에 바리바리 장바구니를 든 채 솜사탕을 낼름거리고 있는 목진이 뭐라 할 광경은 아니었지만.
“······아마 저쪽도 목진 님을 보며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걸요?”
“크흠.”
목진 옆에서 고개를 빼꼼 내민 순자의 일침에 목진이 헛기침을 하며 솜사탕을 든 손을 슬그머니 내렸다.
“하루만에 다시 왔구려.”
“······현대 문물에 잘 적응하신 모습을 보니 뭐랄까, 제가 다 뿌듯하네요.”
“크흠흠······음?”
내가 누군지 알아보네? 뒤늦게 아테나의 태도가 변한 것을 깨달은 목진이 세령을 돌아봤다. 목진과 순자가 돌아와서 그런지 조금은 긴장이 풀린 세령이 반쯤 포기한 얼굴로 말했다.
“어떻게 알았는지는 모르지만 다 알고 왔더라고요. 얼떨결에 저기 곰아저씨한테도 들켜버렸고.”
곰아저씨라는 말에 차를 대접하는 이르비스를 돌아보니 바짝 굳은 채 도르륵 눈알을 굴리는 모습이 보였다. 자기가 싸운 상대가 그 유명한 참룡검제라는 걸 알고 어찌 행동해야 하는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한판 거하게 붙었을 때부터 최소 S급 이상의 고수라는 것은 예상하고 있었지만, 설마 서천검후를 제압하고 백룡대를 몰살시켰다는 그 참룡검제일 줄 누가 알았겠는가. 이르비스는 차마 목진을 똑바로 볼 자신이 없었다.
‘만약에 어제 생각 없이 건방지게 굴었다면······.’
하긴 그게 당연한 반응이긴 했다. 서천검후전에서 승리할 때까지만 해도 좀 신기한 내가기공 근본주의자 고수였지만, 백룡대 몰살사건 이후로 목진에 대한 인식은 반쯤 대마두에 가까웠으니. 아무렴 백룡대가 선빵을 쳤다지만 그렇다고 정파 상대로 몰살은 좀 피에 굶주린 마인 같지 않은가.
확실히 이르비스는 자신의 음공을 가뿐히 뚫은 고수에게도 호쾌하게 전력을 다하던 참된 호걸이긴 하지만, 그거야 감성과 낭만이 충만할 때 저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극히 이례적인 경우였다. 사람 못 죽여서 안달 난 대마두에게 그런 짓을 했다가는 깔끔하게 칼 맞아 죽을 거 죽여달라고 애원하다 죽는 게 정상적인 엔딩이지 않은가.
“쯧. 거 사내놈이 패기도 없이 별 것 아닌 허명에 부화뇌동하기는.”
물론, 그런 이르비스의 반응을 본 목진은 본인의 이미지가 어떤지 생각도 못한 채 혀를 찰 뿐이었지만.
저러다 알아서 적응하겠지. 이르비스의 반응을 대수롭지 않게 넘긴 목진이 아테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보아하니 나를 기다린 듯한데, 관원이 내게 무슨 일이오?”
“음. 좀 진지한 이야기인데 혹시 따로 이야기 가능할까요?”
중요한 이야기? 목진이 한쪽 눈썹을 치켜 올렸다. 과거 천마신교를 이끌 때도 잡다한 일은 수하들에게 일임했기에 일평생 관이랑 엮여본 적이 없는 목진으로서는 처음 겪는 상황이었다.
물론 이야기 정도야 못할 건 없다. 목진이 다른 이들을 돌아보자 그의 눈치를 보던 이르비스가 제일 먼저 숙취로 골골대는 디마를 들쳐 업었다.
“디마를 데리고 잠시 바람 좀 쐬고 오겠습니다.”
“······뭐 우리도 청령문주님한테 다녀올게요. 가는 김에 일도 좀 도와주지 뭐.”
“으, 저는 이제 막 돌아왔는데요.”
“이리 와, 내가 업어줄게.”
세령이 나가기 싫다는 티를 내는 순자를 억지로 안아들고 밖으로 나갔다. 어지간히 집행관과 한 공간에 있기가 싫은 모양이었다.
순식간에 비워진 집을 본 목진이 흠흠 헛기침을 하고는 식탁 앞에 아테나와 마주보고 앉아서 물었다.
“기감으로 벽 밖을 살피고 있으니 누군가가 몰래 엿들을 일은 없을 터. 무슨 일이기에 나를 찾아왔소?”
“음. 어디부터 말해야 할까.”
“겉치레는 좋아하지 않으니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는 편이 좋소만.”
“······좋아요. 저는 거래를 제안 드리러 왔어요.”
“거래······?”
관에서? 나한테? 목진이 대뜸 눈살을 찌푸렸다. 관이 무림인에게 거래를 하자니. 딱 봐도 무언가 구린 구석이 보이는 것이 자명하지 않은가. 곧바로 과거 시대에 만연하던 부패한 관리부터 떠올린 목진은 공대조차 그만두고 화가 난 기색을 굳이 숨기지 않으며 말했다.
“그대는 관원이라는 자가 관과 무림은 서로 침범하지 아니하는 것이 예부터 내려온 불문율임을 알지 못하는가? 사사로운 제안을 하려거든 썩 꺼지는 것이 좋을 것이다.”
무림인이 아니기에 살기를 담지는 않았지만, 고수의 분노 자체는 일반인의 것과는 차원이 다른 위압감을 자랑한다. 하지만 아테나는 그의 서슬 퍼런 분노를 마주하면서도 똑바로 그의 눈을 직시하며 대답했다.
“그걸 잘 알기 때문에 대협한테 온 거에요. 사사로운 제안도 아니고요.”
너무 앞뒤 자르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나. 아테나가 머리를 긁적였다. 생각해보니 일반인 입장에서는 몰라도 무림인의 입장에서 들으면 오해의 소지가 다분한 말이긴 했다.
“너무 본론부터 꺼내서 오해하신 것 같은데. 저는 제 개인적인 입장으로 대협에게 거래를 제안하는 게 아니에요. 무림교류부, 나아가 인류정부의 의지를 대변해서 온 거죠.”
“인류정부?”
인류정부라는 말에 목진이 미간을 좁혔다. 인류정부라면 조정을 말하는 게 아니던가. 관리가 감히 조정을 참칭했다가는 대역죄로 삼대가 목이 달아날 수 있으니만큼 얄팍한 거짓을 담아 입에 올릴 사안은 아니었다.
해봐야 개인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서 그런 말을 꺼냈다고 생각했건만. 아테나의 말을 들은 목진은 그제야 진정하고 분노를 가라앉혔다.
“이야기 계속 해도 괜찮아요?”
“일단은 들어보겠소.”
“방금 말씀드렸다시피, 이건 제 개인적인 제안이 아니라 무림교류부에서 참룡검제 이목진 대협에게 전하는 제안이에요.”
“음.”
“다만 사안이 사안인지라 제안을 드리기에 앞서 확인 차 몇 가지 질문을 드릴 건데, 원치 않으시면 굳이 대답을 하실 필요는 없어요. 대신 솔직하게만 말씀해주시면 돼요.”
지극히 공무원다운 영업용 미소를 지은 채 아테나가 물었다. 묘하게 께름직한 미소였다. 목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하지.”
“대협께선 현재 사천당가를 배신한 데 대한 책임을 묻는다는 명분으로 제갈세가, 나아가 다른 오대세가와 적대하고 계신 것이 확실하신가요?”
목진의 눈가가 꿈틀 움직였다.
“······다른 곳은 몰라도, 제갈세가와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이 맞소. 헌데 그 당사자 앞에서, 다른 이도 아니고 당가의 비사(悲事)를 손수 행한 조정이 그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경우에 맞는 소리요?”
어찌 보면 어처구니가 없는 소리였다. 그 배후에 제갈세가를 위시한 오대세가들이 있었다지만, 어쨌거나 사천당문 본성에 대한 행성폭격을 직접 실행한 것은 인류정부이지 않은가.
하지만 적어도 그 건에 대해서만큼은, 아테나가 대변하는 인류정부 측도 절대로 물러설 수 없는 입장이었다.
“다른 세가들의 밀고와는 별개로, 사천당가의 멸문은 정당한 처벌이었어요. 만약 강경하게 대응하지 않고 어중간하게 처벌했다면 우주무림 전역의 대문파들이 몰래 군용무기에 손을 댔겠죠. 그러면 그 다음은 뭐겠어요?”
역모군. 목진이 낮게 중얼거렸다.
확실히, 감정적인 부분을 제외하고 제삼자의 입장에서 보면 사천당가에 대한 인류정부의 행성폭격은 정당한 법의 집행이라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나 역모에 연루되면 그 동네의 애어른 할 것 없이 모조리 잡아 죽이는 시대상을 살아가던 목진의 입장에선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처사였고 말이다.
“음······. 알겠소. 내가 과하게 반응했군. 계속하시오.”
“그럼 계속해서 확인 차 질문 드릴게요. 대협께서는 인류정부에 대해서도 같은 이유로 적대하실 의사가 있으신가요?”
“딱히.”
목진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대도 어느 정도는 짐작하고 있겠지만, 당문비사의 책임을 받아내고자 하는 것은 엄밀히 말하면 내가 아닌 당씨의 적법한 후계인 당세령의 의지요. 그 아이도 그대의 말처럼 당문의 멸문이 불가피한 일이었음을 이해하고 있으니, 조정에서 먼저 칼을 들이대지 않는 이상 그 아이나 내가 굳이 조정과 척을 질 일은 없을 것이오.”
“······당세령의 의지라고요. 그러면 제갈세가 쪽도?”
“그것은 별개요. 처음이라면 모를까, 지금의 제갈세가는 내게도 은원이 있을 터이니. 물론 감히 내게 칼을 들이댄 만큼 나도 그들을 가벼이 놓아둘 생각이 없고.”
“아아.”
대강 무슨 의미인지 알겠다는 듯 아테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양반이었구나.’
사파나 마교 쪽에서 자주 보이는 인간상이다. 한번 칼을 겨눈다 싶으면 상대를 최소 재기불능으로 만들어야 직성이 풀리는 타입. 적으로 돌리면 꽤나 골치가 아픈 타입이다.
어쩐지 끝까지 집요하게 벽력자 숨통을 끊는다 했지. 목진에 대한 평가를 조금 조정한 아테나가 다시 물었다.
“그러면 제갈세가가 멸문 혹은 그에 준하는 피해를 입을 때까지 앞으로 계속 적대를 풀지 않으실 건가요?”
“······흠. 그것 또한 생각해본 바 있는 이야기로군. 본래라면 멸문시키는 것이 마땅하겠으나, 이번은 그 은원의 뿌리가 내게 있지 않으니 제갈씨가 더 도발하지 않는 이상은 세령이의 뜻을 존중하여 적당한 선에서 손을 거두는 것이 옳다 생각하오.”
‘그 와중에 멸문시키지 못한다고는 안하네.’
오대세가가 동네 중소 문파도 아니건만, 어마어마한 자신감을 보이는 목진의 말에 아테나가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하긴 백룡대를 혼자 몰살시킬 수준이라면 저만한 자신감을 내보이는 것도 이해가 가긴 했다.
“제갈세가와 적대하긴 하지만 세가 전체를 풍비박산 내고자 하는 건 아니고, 인류정부에도 딱히 유감이 없다. 대체로는 그 당씨 아가씨의 노선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음음. 다행이네요. 아주 좋아요.”
“그럼 이제 그 제안이라는 걸 말해보시오. 제갈세가를 언급하는 것을 보니 그 치들과 연관이 있는 일인 듯 싶은데.”
뭐가 맘에 드는지 만족스런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아테나의 모습에 목진이 퉁명스레 내뱉었다. 대관절 무슨 제안을 하려 하기에 이리 까탈스럽게 군다는 말인가.
목진의 말에 아테나가 지금까지 이상으로 진지하기 그지없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리고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온 제안이라는 것은, 현대 무림의 정세에 그리 밝지 않은 목진으로선 도무지 그 의도를 이해할 수 없는 소리였다.
“저희 무림교류부는, 참룡검제 이목진 대협이 제갈세가의 심부에 적절한 타격을 입혀주길 바라고 있습니다.”
작가의 말
.<아래 정보)들은 굳이 읽지 않아도 스토리 진행에 지장이 없는 잡다한 설정놀음입니다. 흐름이 끊기는 것을 원하지 않으신다면 읽지 않으셔도 무방합니다.>
.정보) 목진은 의외로 순자와 함께 쇼핑을 나가는 것을 좋아한다. 쇼핑 자체는 그리 좋아하는 편이 아니지만, AI알고리즘을 풀가동해 지역 맛집이나 길거리 맛집을 찾아다니는 순자를 따라다니면 맛있는 걸 많이 얻어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쇼핑을 따라다니면서 신기한 문물들을 보는 것도 즐거운데, 남의 돈으로 배부르게 먹어 두 배로 맛있고, 입가심으로 솜사탕도 사주기 때문에 목진으로서는 순자를 따라가지 않을 이유가 없다.
정보) 순자는 어디서든 안전하게 지켜주는 것은 물론 무거운 짐들을 목진이 대신 들어주기 때문에 목진이 쇼핑에 따라오는 것을 꽤나 기꺼워한다. 매번 돌아다니며 맛있는 것을 사주는 건 반 정도는 짐을 들어주는 데 대한 고마움의 표시다
정보) 세령은 쇼핑을 매우 지겨워하는데다 맛집탐방을 하느니 그냥 벽곡 칼로리바를 먹는 걸 선호하기 때문에 순자가 일행으로 데려가길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목진이 온 뒤로는 세령과 순자와 목진 모두가 행복하다.
정보) 목진이 이르비스를 소개할 때 곰 닮은 놈이라고 소개한 탓에, 세령과 순자는 이르비스를 곰아저씨라고 부른다. 이르비스는 곰이라고 부르는 건 차라리 이해라도 하지만, 아직 스물여섯에 아저씨라는 단어가 웬 말이냐고 반발중이다. 덧붙여, 디마는 이르비스보다 연상이다.
정보) 우주강호에서 동안우공과 화염용사 시절의 목진은 ‘좀 특이하지만 대단한 고수’라는 이미지였다면, 참룡검제의 별호를 얻고난 뒤의 목진은 ‘한번 건들면 오대세가고 뭐고 몰살당하는 피에 미친 대마두’의 이미지에 가깝게 변했다. 다행히 백룡대에 대한 정당방위가 참작되었기에 실제로 마두로 지정되진 않았다.
정보) 이르비스는 목진이 참룡검제라는 말을 듣고 세 번이나 부정했다. 공포에 떨던 이르비스가 목진에게 적응한 것은 며칠이 지난 뒤였다.
정보) 다행히 디마는 아직 혼수상태다.
정보) 세령은 순자를 업은 채 유스와 시안에게 가서 열심히 업무를 도왔다. 두 모녀는 매우 기뻐하며 진한 커피를 내밀었다.
정보) 목진이 살던 시대에 목진은 주변으로부터 관리들이 부패했다는 이야기를 워낙 들어서 편견이 좀 있다. 대충 21세기 사람이 정치인을 보는 시각과 비슷하다.
정보) 목진은 지난날 아테나를 만난 이후로 나름 인류정부에 대해 공부하긴 했으나, 고대인 물이 덜 빠져서 과거의 조정과 같은 개념으로 이해하고 있다. 거기에 사천당가의 멸문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 오해가 굳어져버리고 말았다.
정보) 아테나가 목진의 분노에 두려움을 품지 않은 것은 애초에 태어나길 유전자조작을 통해 겁대가리가 없이 태어났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