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smic Heavenly Demon 3077 RAW novel - Chapter (127)
우주천마 3077-126화(127/349)
20. 정,마,괴 Chivalry, Desperado, Apostate (5)
20. 정,마,괴 Chivalry, Desperado, Apostate (5) – 니가 왜 여기서 나와…?
“떠나신다고 들었어요.”
벽력자의 화마(火魔)가 네오 아티카를 덮치고 나흘 뒤, 목진은 청령문을 떠나기 위해 자신을 배웅하는 유스와 시안 앞에 서 있었다.
“그간 이야기도 얼마 나누지 못했는데, 너무 일찍 떠나시니 소녀는 너무 슬퍼요.”
그렁그렁. 당장에라도 눈물을 터트릴 것 같은 눈으로 목진을 올려다보는 유스. 목진은 그런 유스를 보며 차분하게 말했다.
“문 안이 혼란한 때 외인이 오래 머물면 좋지 않은 법일세. 모쪼록 혼란을 잘 수습하여 빠른 시일 내에 다시 청령문의 위명을 들을 수 있길 바라네.”
원래 문파 내부에 일이 생기면 객으로 있는 무인은 최선을 다해 그 문파를 돕거나, 그러기가 여의치 않다면 부담이 되지 않게 떠나주는 것이 강호의 도리다.
도움은 이르비스를 제압하고 벽력자를 주살한 시점에서 이미 충분히 주었으니, 이제는 적웅문을 합병하고 내부를 안정시킬 수 있도록 신속하고 깔끔하게 문파를 떠나주는 것이 목진 일행의 역할이었다.
아무리 목진이 좋다 해도 일단은 청령문의 문주이긴 한지, 유스는 눈가에 당장에라도 흐를 것 같은 눈물방울을 달고서도 끝끝내 떠나지 말라 붙잡는 말을 꺼내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 대신, 그녀는 강호의 법도에 따라 목진과 세령에게 깊이 포권하며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지난날 대협께서 본 문에 베풀어주신 진화지은(鎭火之恩), 청령문의 이름을 걸고 절대 잊지 않겠어요. 세······소협도 마찬가지고요.”
“갈 곳 없는 객을 먹여주고 재워주었으니 객이 주인의 위기에 그 은혜를 갚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해야 할 도리를 다하였을 뿐이니 담아둘 필요 없네.”
“그래요. 아저씨 말대로 밥값을 한 셈이니까 퉁치자고요. 나중에 또 저희가 신세질 수도 있고.”
세령은 평소와는 달리 가볍게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돈 나올 구석은 귀신같이 놓치지 않는 그녀로서는 상당히 이례적인 경우였다.
사실 다른 동네였다면 사례금으로 몇 푼이나마 뜯어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목진이 이미 분위기를 다 잡아놓은 마당인데다 나름 지인이라 할 수 있는 시안의 문파이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본관이 싹 다 불타버린 청령문에게 돈을 달라고 할 만큼 그녀의 양심이 박살나 있진 않았다.
“공사가 다망해 대협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한 게 이리도 슬플 줄은 몰랐······흑!”
울멍울멍한 눈으로 목진을 바라보던 유스가 기어코 눈물을 훔치며 목진의 품에 안겨들었다. 목진이 가볍게 헛기침을 하며 그녀의 등을 두드렸다.
“흠흠. 사람의 인연이란 만남이 있으면 헤어지고, 헤어짐이 있으면 다시 만나는 것이 아닌가. 연이 닿는다면 청령문을 재건하고 또 만날 일이 있겠지.”
“흐흑······하지만······.”
이쁜 여자가 안기니까 아주 좋단다. 서늘한 눈으로 목진을 흘겨보던 세령의 눈이 문득 목진의 품에 안겨있던 유스의 눈과 마주쳤다. 자신을 향해 뭔가를 말하고자 하는 듯 간절한 유스의 눈빛에 세령이 물었다.
“······왜 그러세요?”
“이쯤 되면 분위기를 봐서 살짝 빠져주는 타이밍 아닌가요?”
“아닌데요.”
응, 안돼. 단호한 세령의 거절에 유스의 눈초리가 조금 더 매서워졌지만 세령은 그 눈빛을 외면하며 옆에 서 있던 시안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야, 너희 어머님 또 그 병 발동하셨다. 얼른 진압해서 데려가라.”
“하아······. 헤어지기 전이니 그냥 어머님 하고 싶으신 대로 두면 안 될까요. 포옹 정도에 그렇게 날을 세우실 것까진······.”
“그러다 너 동생 생긴다?”
그건 나쁘지 않을지도. 곰곰이 생각하다 중얼거리는 시안의 말에 세령의 눈이 땡그랗게 변했다.
“진심으로 하는 소리는 아니지? 진짜 용인족들 취향에 뭔가 있나?”
“흠흠. 농담이에요. 그리고 언제쯤 존대를 할 건가요. 이 새끼야.”
“······너한테 욕 가르쳐준다고 한 그 멍청이한테 가서 돈 다시 뜯어와라.”
애를 아주 맹구로 만들어 놨어. 세령이 시안의 팔을 툭 치며 능글맞게 웃었다.
“그리고 다섯 살 차이 가지고 무슨 존대야. 우리가 그렇게 예의 차리는 사이는 아니잖냐. 편하게 가자고. 편하게.”
“다섯 살 차이면 강산도 절반은 바뀌는 시절이에요. 내가 먹은 밥이 니가 먹은 밥보다 오천 그릇은 더 돼요.”
“그래 밥 많이 먹어서 좋겠다. 그래서 몸무게는 많이 늘었고?”
“또 맞고 싶어요? 키 차이가 있는데.”
“맞는다고? 내가?”
시안의 말에 세령이 가소롭다는 듯 피식 웃었다. 보는 이로 하여금 대단히 열 받게 만드는 표정이었다.
“선복취걸한테 쥐어터진 연약한 아가씨 말이라 잘 안들리는데 다시 말해줄래? 아, 참고로 난 선복취걸 이겼다?”
“익······! 운 좋게 한번 이겼다고 유세 떨지 마세요. 그리고 저는 협공을 받아서······!”
“어어. 명문사파 청령문의 소문주가 혓바닥이 길다? 넌 졌고, 난 이겼고. 오케이? 너랑 나랑은 완전히 상하관계에 있어요.”
“으극······나와요. 가기 전에 한판 붙자고요.”
“으응? 내가 왜? 나한테 도전하려면 저기 선복취걸부터 이기고 와야지. 원래 고수한테 도전할 때는 그 밑에부터 차근차근 이기고 와야 하는 거야.”
“당신 정말로······!”
“에휴.”
건수 하나 잡았다고 신나게 시안에게 깐족대고 있는 세령. 옆에 있던 순자는 그런 세령을 한심함이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며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저러다 들으면 어쩌려고.”
목진이 말하길 세령이 선복취걸을 이긴 건 분명한 사실이니 칭찬받아 마땅하지만, 천운이 닿아서 이겼을 뿐 그 실력 자체는 아직 부족하다고 했다. 그리고 그건 세령 스스로도 마지못해 인정한 사실이었고 말이다. 적어도 저런 식으로 당당하게 떠벌리고 다닐만한 소리는 아니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디마와 이르비스는 상처를 회복한 적웅문주와 작별을 나누는 중이라 세령의 한심한 작태를 보지 못했다는 점일까.
순자는 저 옆에서 대화를 나누는 세 사람을 돌아봤다. 아무래도 적웅문 입장에서는 가볍게 넘기기 힘든 재난인 만큼 비교적 가벼운 느낌인 이쪽과 달리 세 사람의 분위기는 조금 가라앉은 느낌이었다.
“적웅문 일은 유감입입니다.”
“······자업자득이죠. 당장의 욕심에 눈이 멀어서 폭탄인지도 모르고 덜컥 들여온 것이니.”
이르비스의 말에 초췌한 얼굴의 마리아가 힘없이 대답했다. 하루아침에 그렇게 소중히 꾸려가던 적웅문이 불타버려서 그런지, 내상이 회복되었음에도 파리한 얼굴이 당장에라도 무너질 것 같은 모습이었다.
꼭 그녀의 책임만은 아닐 텐데. 이르비스는 반쯤 폐인이 된 마리아를 보면서 씁쓸함을 느꼈다. 문파를 위해 한 일이 되려 문파를 망하게 했으니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당연하겠지만, 이번 사태는 솔직히 운이 나빴던 게 더 컸으니까.
외부인이기에 자세한 내막은 듣지 못했지만, 이번 사태에서 벽력자의 이상행동에 무림교류부가 관련되어 있다는 것 정도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이르비스는 마리아를 향해 그리 말하려다가, 이내 그녀에겐 어떤 말을 해도 위로가 되지 못할 것임을 깨닫고 입을 다물었다.
“작전이 성공하지 못했으니 계약했던 대로 잔금의 절반을 받겠다요. 잔금 납입은 업계 표준기한만 지켜서 넣어주면 되고. 우리 쪽에 귀책사유는 없다는 건 동의하지요?”
칼 같이 정산 이야기를 꺼내는 디마의 말에 이르비스가 그녀의 어깨를 툭 건드렸지만, 디마는 되려 가만히 입 다물고 있으라는 눈빛을 보냈다.
사파의 무인에게 이런 걸로 어설픈 동정을 보이면 모욕일 뿐. 그보다는 프로답게 대처하는 것이 그녀를 위한 태도다. 디마의 말에 마리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좋다요(Хорошо). 그럼 무운을 빈다요.”
더 잡고 있어봐야 할 이야기도 없고, 일 이야기가 끝났으니 이제 볼 일은 끝이다. 디마는 이르비스를 이끌고 자리를 벗어났다. 마침 목진에게 질척하게 들러붙어있던 유스를 간신히 떼어낸 세령 일행도 우주선에 오르려던 참이었다.
마지막으로 챙길 짐을 점검하던 이르비스의 옆에 서있던 디마가 장하다는 듯 까치발로 손을 뻗어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 쓰러져 있는 동안 용케 쟤들이랑 거래할 생각을 했네. 참 잘 했다요.”
“운이 좋았소. 다행히 서로 간에 목적이 일치했거든.”
“거암도 성계로 가자고 했지요? 그때 말한 거기냐요? 곽가장이라던.”
“그렇소. 나도 다친 곳은 없지만 당분간 좀 쉴 때가 됐고, 디마 그대도 이번에 머리를 다쳤으니 푹 쉬면서 요양을 하는 게 좋을 것 같소.”
“맞는 말이야. 아직도 골이 울린다요.”
이르비스의 말에 디마가 세령의 무릎에 직격당한 관자놀이를 슬슬 문질렀다. 살수가 오고가진 않은 만큼 치명타는 아니지만, 머리 쪽의 부상은 언제 어떤 방식으로 문제가 생길지 모르니만큼 당분간은 푹 쉬면서 상태를 두고 볼 필요가 있었다.
그때, 관자놀이를 문지르던 디마는 문득 이르비스가 주섬주섬 챙기는 짐의 양이 그녀가 아는 것보다 확 줄어들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의 눈이 가늘어졌다.
“근데 너 설표들 다 어디갔냐요?”
“부서졌소.”
“······전부?”
“전부.”
디마의 입이 벌어졌다. 그녀는 이르비스의 사조사표가 얼마나 비싼 물건인지 잘 알고 있었다. 실패하긴 했어도 제법 짭짤한 편이라 할 수 있는 이번 일의 보수를 모조리 쏟아 부어도 설표 네 마리 중 두 마리 정도나 간신히 고칠 수 있는 수준이었으니까.
“야 그러면 너 완전 적자잖아요! 손해 메꾸려면 반 년 동안 새빠지게 일해야 할 텐데?!”
“뭐······통장과 가슴이 좀 아프지만 어쩔 수 없지.”
그 참룡검제 상대로 멀쩡히 살아남았는데 돈 몇 푼 깨진 게 전부면 오히려 운이 좋은 거 아니겠소. 이르비스가 어깨를 으쓱였다.
디마의 몸이 딱 굳었다.
“누구?”
“참룡검제 이목진 대협 말이오. 그대가 좀 전에 막 일어났어서 따로 말할 시간이 없었소만.”
끼기긱 하는 소리와 함께 디마의 고개가 열심히 우주선에 짐을 싣고 있는 목진에게로 돌아갔다.
“······진짜? 제갈세가 백룡대로 정육점 오픈한 그 참룡검제?”
“그렇소.”
일단 알려진 만큼 잔혹한 분은 아닌 듯 싶소마는. 이르비스가 덧붙였다.
솔직히 무섭지 않다면 거짓말이겠다만, 적어도 요 이틀 동안이 그가 본 목진이라는 인물은 소문처럼 피에 미친 대마두는 아니었다.
이르비스의 말에 디마가 유령을 보는 듯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너 왜 살아있냐요.”
이르비스는 말없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가 그녀와 같은 입장이었어도 똑같이 물어볼 것 같았다.
“염화쾌검 언니! 나 언니 팬이다요!”
“아 그래요······.”
거암도 성계로 가는 길. 자신의 정체를 알자마자 눈을 반짝이며 부담스럽게 다가오는 디마의 모습에 세령이 곤혹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당장 며칠 전까지만 해도 서로 욕을 박으며 죽어라 주먹을 휘두르던 상대가 아니던가. 그런데 갑자기 그녀의 팬이라니. 솔직히 좀 당황스러웠다.
물론 호감을 표시해주는 게 싫지는 않다마는, 아무리 그래도 서로 주먹질하면서 좀 껄끄러움이 남아있는 관계가 아니던가. 디마가 그녀보다 명백한 고수이기도 했고 말이다.
“근데 저보다 연상······아니세요······?”
무엇보다 자기보다 일곱 살이나 연상인데 언니라니. 입 밖으로 내면 보드카 병으로 후드려 맞을지도 모르지만, 일단은 앞자리 숫자부터가 다르지 않은가.
아무리 겉보기로는 키가 큰 그녀가 디마보다 언니로 보인다지만, 그래도 찬물이 위아래가 있는데. 네오 아티카를 떠나기 전 시안에게 하던 말 따위는 머릿속에서 완전히 지워버린 세령은 도저히 감당하기 힘든 부담스러움을 참지 못하고 최대한 조심스럽게 그녀의 오류를 지적했다.
하지만 그에 대한 디마의 답은 참으로 쌈박했다.
“멋있으면 언니다요.”
“아, 네······.”
나보다 쎈 양반이니 강하게 나갈 수도 없고. 간만에 발동된 자동분노조절에 세령이 떨떠름한 기색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탁자에 앉아 두 사람의 코미디를 구경하던 순자가 문득 옆에 앉은 이르비스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괜찮으세요? 간단히 찾아보니 곽가장은 정파 성향의 가문이라고 하던데. 두 분은 일단 사파 쪽 무인이시잖아요.”
이르비스가 걱정 말라는 듯 빙긋 웃었다.
“괜찮소. 곽 형은 진영 때문에 색안경을 끼고 보는 분이 아니시니.”
그는 장담할 수 있었다. 진영에 상관없이 호걸과 사귐을 좋아하는 호탕한 인품을 가진 장주는 그의 인맥 중 손꼽히게 존경할 만한 인물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런 이르비스조차도 미처 예상하지 못한 것이 있었으니.
사람의 인연이라는 것은 때로는 전혀 연이 없을 것 같은 곳에도 우연을 따라 모여들 수 있다는 것이었다.
“사부님? 언니?”
“······화린이 네가 어찌 여기에?”
화산파의 제자이자 이 시대에 목진이 가르침을 내려준 첫 제자인 화린. 간만에 보는 얼굴에 반가움과 함께 의아한 표정을 드러내는 목진의 물음에 화린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했다.
“여긴 저희 집인데요.”
허어. 조금도 예상치 못한 만남에 목진이 얼떨떨함을 숨기지 못하고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고 보면 화린의 성도 이곳 곽가장과 같은 곽씨였더랬다.
하지만 그가 놀랄 일은 그녀가 전부가 아니었다.
곽가장에 도착하자마자 마주한 얼굴들도 하나같이 낯익은 얼굴들이었으니까.
“선배님. 간만에 뵙습니다.”
“적산. 자네도 있었군?”
“허허. 화린이에게 화산의 검을 가르치는 겸 해서 북부에 휴양을 나온 참입니다.”
화산파의 전 장문인, 만화검존 용적산.
그리고.
“시주! 이렇게 또 보는 걸 보니 우리의 인연이 참 깊소이다그려! 어서 이리 오시오! 부처의 이름으로 건배!”
천하의 천마 이목진조차도 껄끄러워하는 슈퍼 하이텐션의 소림승. 아수라 붓다가 곽가장에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세령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좋은 놈, 나쁜 놈, 괴상한 놈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