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smic Heavenly Demon 3077 RAW novel - Chapter (135)
우주천마 3077-134화(135/349)
22. 천년지업 Double Millennium Karma (1)
22. 천년지업 Double Millennium Karma (1) – 어허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이…!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길쭉하고 투명한 술병 하나가 하늘로 솟구친다. 디마는 허탈한 표정으로 땅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나는 술병을 바라봤다.
그녀의 목에는 검 한 자루가 날카로운 예기를 뿜으며 겨누어져 있었다.
디마가 중얼거렸다.
“······인생 시발.”
두 번째 패배였다. 그리고 첫 번째 완패였다.
디마는 허탈함과 부러움이 가득한 눈으로 제 목에 검을 겨누고 있는 세령을 바라봤다.
“나도 어디 가서 꿀리는 재능은 아닌데, 이건 너무하지 않냐요. 언니는 진짜 더러운 재능충이다요.”
처음에는 그녀가 만전의 상태도 아니었거니와, 세령이 무슨 소년만화마냥 갑자기 대오각성한 탓에 졌다고 변명이라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은 아니었다. 물론 목숨 걸고 생사결을 한다면야면 또 어떻게 될지 모르긴 하지만, 적어도 비무라는 레벨에서는 변명조차 할 수 없는 그녀의 패배인 것이다.
‘이 정도면 검강만 안 썼지 S랭크라고 해도 믿겠네.’
분명 그녀가 알기로 염화나찰 세령은 C+급, 잘 쳐 줘야 B-급의 무인이다. 그런데 고작 일 년도 되지 않은 사이에 A+랭크 수준으로 성장한다는 건 좀 너무하지 않은가.
이게 재능의 차이인 걸까. 디마는 입맛이 썼다. 아무리 용병으로 살면서 돈을 버는 걸 우선하긴 했지만, 무공수련 자체를 게을리 한 것은 아니었는데도 이렇게 빨리 따라잡힐 줄이야.
“뭐······. 선생님이 잘 가르쳐줘서 그렇죠.”
근 몇 개월 동안 대련을 이어온 끝에 마침내 승리를 거둔 세령이 답지 않게 겸양을 떨었다.
사실 딱히 틀린 말은 아니긴 했다. 그녀에게 무공을 지도해주고 있는 건 다른 이도 아닌 그 참룡검제 이목진이었으니까. 그만한 절대고수가 작정하고 무공을 지도해주는 데 실력이 늘지 않으면 그거대로 문제이리라.
하지만 디마는 세령의 말에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듯 고개를 가만히 가로저었다.
“물론 이 대협이 대단한 건 맞지만, 선생님이 아무리 잘 가르쳐도 학생이 그걸 받아먹을 능력이 안 되면 의미 없다요.”
사실 세령만큼은 못 되더라도, 디마도 나름대로 기연을 얻긴 했다. 요즘 들어 유독 심심하다며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는 게 일상인 아수라 붓다에게 술값 대신으로 무공의 지도를 받고 있었으니까.
– 시주도 구경만 하지 말고 이 기회에 소승한테 몇 수 배워보겠소? 저 철없는 꼰대들도 선생질 하는데 갓-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소승이 어찌 가만있을 수 있으리오.
– 저 일단 사파인데 괜찮냐요?
– 껄껄! 다 같은 번뇌 속에 사는 중생들이거늘, 같은 중생끼리 정도니 사도니 그게 뭐 중요하오? 자고로 비인부전(非人不傳)에 유교무류(有敎無類)라, 마음이 사람답기만 하면 가르침을 전하는 데 못할 건 또 뭐란 말이오? 이것도 다 부처님이 점지해주신 인연인 것이오!
– 그, 언뜻 듣기론 명문정파의 원로시라고 들었는데······사문에서 무공 거두려고 추적대 파견하는 거 아니냐요?
– 걱정 마시오. 내가 다 막아 주리다. 거 막말로 사문의 무공을 전수하는 것도 아닌데, 자본주의에 지들 사조를 팔아먹는 숭산의 자본주의 쑤까블럇놈들이 뭔 낯으로 시주에게 대거리를 하겠소. 아 꼬우면 지들도 미니스커트 입고 빵댕이 흔들어본 다음에 따지던가!
어째 문장 하나마다 걸고 넘어져야 할 것 같은 부분이 한두개가 아니긴 했지만, 디마는 냉큼 아수라 붓다의 제안을 수락했더랬다. 그깟 뒷감당이 무서워 기연을 포기할 거였다면 애초에 용병낭인이 되지도 않았을 테니까.
“하아. 언니만 아니면 밉다고 질투라도 했을 텐데.”
술이나 퍼먹어야지. 디마가 나직이 한숨을 내쉬며 다른 손에 있는 술병을 꼴깍였다. 아무리 그래도 염화나찰 팬클럽인 불꽃나찰단의 일원으로써 언니를 질투할 수는 없지 않은가.
요 몇 개월 동안 아수라 붓다의 지도를 받으며 디마는 피부로 실감하고 있었다. 확실히 무공에 있어서 재능의 벽이란 놈은 말처럼 쉽게 극복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자신은 알기 쉽게 풀어서 설명하는 아수라 붓다의 지도도 간신히 따라가는 판인데, 세령은 알아듣기 힘든 선문답 같은 목진의 지도를 아득바득 따라가며 제 것으로 소화시키고 있지 않은가.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화끈한 보드카의 감각을 느끼며 주섬주섬 검을 검집에 집어넣는 세령을 보던 디마가 문득 떠올랐다는 듯 물었다.
“근데 이 대협은 어디 갔냐요? 아침에 이르비스가 이 대협이랑 어디 간다고 들었던 거 같은데.”
“아. 거암도 성계 외곽에 있는 행성에 무슨 음악 축제 한다고 구경 간다더라.”
시끄러운 거 별로 안 좋아하는 사람인데 용케 그런 델 가단 말이야. 세령이 어깨를 으쓱이며 덧붙였다. 뭐 가끔 거하게 헛다리를 짚을 때도 있긴 하지만, 요즘 문물에 나름대로 적응하고 있는 모습이 썩 잘 지내는 것 같긴 했다.
“흐응. 그렇구나. 근데 아까 그 초식. 평소 쓰던 담식원검(膽食怨劍)의 초식이랑 묘하게 다르던데 혹시 이 대협이 알려준 거냐요?”
“오, 디마 씨 그걸 어떻게 알았어요? 원래 초식은 너무 살을 내주고 뼈를 깎는다는 사상이 강하다면서 아저씨가 살짝 손 봐 줬는데.”
역시 그랬구나. 디마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복수귀의 검법답게 육참골단(肉斬骨斷)의 사상이 뿌리 깊게 파고든 세령의 검법은 생사결이 아닌 친선비무에서는 그 기세를 줄이느라 유달리 그 위력이 줄어드는 편인데, 이번에 선보인 새 초식은 특유의 날카로움을 거의 죽이지 않으면서 살기만 억누른 느낌이 강했던 것이다.
“남의 무공을 즉석에서 분석하고 개량하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이었나?”
“글쎄요. 절대고수 쯤 되면 가능한 거 아닐까요?”
“그럴 수도 있겠다요. 근데 이 대협, 언니한테 너무 지극정성인 거 아니냐요?”
엥? 별안간 쑥 들어온 디마의 말에 세령이 고개를 갸웃했다.
“듣기론 일행으로 만난 지 일 년도 안 됐다면서. 그런데 단순히 강호선배가 인연 있는 후배를 도와주는 것치고는 좀 과한 것 같다요.”
“그건······.”
은원관계가 있어서. 라고 대답하려던 세령이 입을 닫았다. 생각해 보니 그녀의 말이 또 틀린 말 같지는 않기 때문이었다.
디마가 미처 알지 못해서 그렇지, 사실 목진이 세령한테 해준 것은 생각보다 많다. 당장 그 제갈세가와 철천지원수관계가 된 것도 따지고 들면 그녀 때문이 아니던가. 아무리 은원을 갚느니 어쩌느니 해도 저울이 지나치게 기울어져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었다.
‘그러고 보면 아저씨가 굳이 나 같은 잔챙이한테 붙어 있을 필요는 없지 않나?’
예전에야 세상 물정을 모르니 인연이 된 김에 같이 다녔다 쳐도, 목진도 이제 슬슬 현대 사회에 적응해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은원을 제외하면 딱히 나찰즈와 함께 할 이유도 없을 텐데, 왜 목진은 굳이 무공선생 노릇까지 하면서 그녀를 돕는다는 말인가.
사실 은원이란 명목도 좀 애매하긴 하다. 사천당가의 은원을 갚으려면 굳이 그녀를 도울 필요 없이 당장 제갈세가와 대립하는 빙백련에 투신하는 쪽이 더 현실적이니 말이다.
이게 파비올라가 말했던 고대무협 감수성 뭐 그런 건가? 세령이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물론 이유는 따로 있었다. 목진이 세령을 적극적으로 돕는 데에는 사천당문의 재건과 그로 인한 내가기공의 부흥이라는 목적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정작 제안을 건넨 순자조차 목진의 답을 듣지 못한 마당에 아예 그쪽으로 생각할 겨를도 없는 세령이 뭘 알겠는가. 그녀로서는 마냥 목진의 호의를 받는 것이 영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혹시 이 대협이 언니한테 그······다른 뜻이 있는 거 아닌가 싶은데.”
“······그 아저씨가? 나한테요?”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냐는 듯 세령이 황당한 얼굴로 디마를 돌아봤다. 하지만 디마는 의외로 꽤 진지한 표정이었다.
“내가 이 대협하곤 별로 말을 못 섞어봐서 꼭 그렇다고는 못하겠는데, 그래도 무림에 가끔 그런 일이 터지긴 하잖냐요. 왜 저번에도 흑립철녀(黑笠鐵女)가 무공 지도과외 열었다가 개인교습반 애들을 죄다 미소년으로 채워가지고 논란된 적도 있고.”
“자기만의 순수한 하렘을 만들겠다던 그거요? 하긴 이백 살 가까이 먹고 진지하게 그런 계획을 세웠던 건 좀 주책이긴 하죠.”
“남 일이 아닐 수도 있다요. 언니야도 우리 업계가 어떤지 잘 알잖아요. 이 살벌한 바닥에서 대가 없는 선의가 어디 있냐요?”
디마의 말이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다. 살벌하기 그지없는 무림에서 대가 없는 선의가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뒷배라곤 쥐뿔도 가진 게 없는 그녀에게 얻어낼 거라곤 몸밖에 없긴 했다.
으음. 아무리 그래도 그 양반이 그럴 양반은 아닌데. 디마의 충고에 세령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당장 무공을 지도하면서 찰싹 붙는 일도 적잖이 있는데 목진에게 음흉한 뭔가를 느낀 적이라곤 단 한순간도 없었으니까.
사실 굳이 그녀가 느끼는 목진의 이미지를 표현하자면, 엄격하고 근엄한 훈장님 같은 느낌이랄까. 암만 생각해도 그런 쪽의 목적이 있다고는 상상이 가지 않았다.
단, 어쨌든 목진이 그녀에게 주는 선의가 과하다는 건 사실이다. 세령은 조만간 목진과 대화를 한번 해봐야겠다고 생각하며 어깨를 으쓱였다.
“뭐······일단 고민은 해 볼게요. 암만 봐도 아저씨가 음흉한 생각을 한 것 같진 않지만.”
“뭣이?! 그 새끼가 그런 음모를 숨기고 있었단 말인가!”
아 깜짝이야. 세령과 디마가 화들짝 놀라며 별안간 불쑥 튀어나온 아수라 붓다를 돌아봤다. 아수라 붓다는 바이저에 ‘변태척결!’이라는 단어를 시뻘건 색으로 깜박거리며 으르렁거렸다.
“이거 알고 보니 참룡검제가 아니라 페도검제였군! 내 살계를 여는 한이 있더라도 이 천인공노할 중생을 레테 강 곁으로 끌고 가리다! 이 파렴치한 이가 놈아! 내 미륵의 철퇴로 네놈의 뚝배기를 으깨어 버릴 테다!”
“아니 좀, 헛소리 좀 그만 하고 진정해 봐요! 그런 거 아니라니까!”
세령이 속터진다는 얼굴로 아수라 붓다의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절대고수고 나발이고, 이 양반 하는 짓을 보다보면 뒤통수를 안 때릴 수가 없었기에 이미 수차례 벌어졌던 광경이기도 했다.
“가서 아저씨한테 이상한 소리 하기만 해 봐요. 진짜 그때는 소림이고 나발이고 나랑 생사결 뜨는 거야.”
“흠흠. 소승은 소림과는 관계 없소.”
소림이라는 말에 아수라 붓다가 이성을 되찾았다. 설정 상 아수라 붓다는 소림과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어쨌든 그랬다.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정신 사납게 좀 하지 마요. 그리고 내 나이 스물셋인데 뭔 놈의 페도야.”
“이천 살 넘게 처먹어 놓고 스무 살짜리를 탐하면 그게 페도 아니오?”
“그 양반 앞에서 그 소리 하면 칼 맞을 걸요. 콜드슬립 기간은 나이로 안치잖아요.”
어 잠깐. 그럼 이 대협 나이는 몇 살이냐요? 문득 튀어나온 디마의 말에 세령과 아수라 붓다가 입을 다물었다.
생각해 보니 목진의 말투부터 하도 노땅 같은데다 절대고수이기 때문에 막연히 용적산이나 아수라 붓다와 엇비슷한 연배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실제로 그의 나이를 물어보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기억을 더듬던 세령이 두 번째 폭탄을 투하했다.
“그러고 보니 사십대인가 오십대 쯤이라고 들었는데······. 확실한 건 서천검후보다 연하였어요.”
“엑.”
서천검후보다 연하라고? 두 사람이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세령을 돌아봤다. 가만히 셈을 해 본 디마가 두 눈을 깜박였다.
“그 나이에 절대고수면······어, 의외로 스무살 차이 정도면 허용범위 아니냐요? 세고, 돈 많고, 적당히 잘 생긴데다 그만큼 젊어 보이면 사십대 정도도 나쁘지 않은데?”
“아니 지금 그게 문제요?! 지금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새파란 중생이 강호선배랍시고 거들먹거리는데?!”
아수라 붓다의 포커스는 조금 다른 쪽이었다. 세령은 제 멋대로 계산기를 두드리는 디마를 무시하고 아수라 붓다의 말을 정정했다.
“엄밀히 따지면 강호 선배는 맞죠.”
“아니 아무리 그래도 장유유서가 있지!”
“아 그럼 댁이 주먹으로 그 좋은 장유유서 쟁취하시던가.”
그리고 아수라 붓다가 마침내 입을 다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