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smic Heavenly Demon 3077 RAW novel - Chapter (136)
우주천마 3077-135화(136/349)
22. 천년지업 Double Millennium Karma (2)
22. 천년지업 Double Millennium Karma (2) – 취향입니다. 존중해 주시죠?
거암도 성계 외곽에 있는 작은 행성인 M2705-KB-24, 통칭 ‘뮤즈’ 행성은 특유의 척박한 환경으로 사람이 살기가 썩 좋은 행성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경관 자체는 아름답지만 지각에서 흘러나오는 유독성 대기 때문에 테라포밍 불가 판정을 받은 E등급 행성.
하지만 그것이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라는 의미는 아니었다. 도시를 뒤덮는 거대한 돔 모양을 한 밀폐된 구조물 속에서 살아가는 패러테라포밍 기술이 있었으니까.
초라한 E급 행성일 뿐인 뮤즈에서 가능성을 보고 개척을 강행한 행성 행정부는 뮤즈 행성 특유의 아름다운 경관을 두고 관광 특화 행성으로 개발했더랬다.
그렇게 남다른 선견지명으로 뮤즈 행성을 개발한 행정부에서 새로운 미래 먹거리로 개발한 것이 바로 행성 전역에 자리하고 있는 돔 시티들을 수많은 음악 장르의 특성에 따라 특화시킨 현재의 뮤즈 행성이었다.
그리고 목진은 이르비스의 손에 이끌려 그런 소규모 돔 시티들 중 하나, 데스메탈 시티에 들어와 있었다.
“귀가 아프구나.”
내가 생각했던 건 이게 아니거늘. 쿵쾅거리는 드럼과 베이스 소리 사이에서 목진이 얼굴을 찡그리며 투덜거렸다. 예상치 못한 반응이라는 듯 신나게 손을 들고 휘젓던 이르비스가 목진의 말에 두 눈을 꿈벅였다.
“데스메탈은 별로요?”
“노래 이름은 뭔지 모르겠으나 저게 뭣이냐. 꽝꽝 시끄럽기만 하구나.”
좋아할 줄 알았는데. 이르비스는 차마 백룡대를 혼자 때려잡은 절대고수에게 취향이니 존중해달라고 말할 수는 없었기에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며 그를 이끌고 비교적 조용한 라운지 안으로 들어갔다.
“지난번에 초원뢰곡을 연주할 땐 좋아하지 않으셨소?”
“그거랑 이거랑은 다르지 않느냐? 노래가 노래다워야지.”
“흠. 포크 메탈은 괜찮은데 데스메탈은 싫다라. 알겠소.”
이르비스가 솥뚜껑 같은 손에 어울리지 않는 조그만 노란병아리 수첩에 메모했다. 목진은 저 멀리 무대에서 번쩍이는 조명 사이로 보이는 밴드를 보며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혀를 찼다.
“저 봐라. 뭐 잘못 먹은 흑도 불량배 마냥 껄렁거리며 괴성이나 질러대지 않느냐. 화장은 또 요괴처럼 괴이쩍게 했는고?”
말하는 걸 보니 그냥 데스메탈 특유의 룩이 마음에 안 든 것 같기도 하고. 이르비스가 머리를 긁적였다.
“뭐 차림새야 취향의 영역이니 싫을 수도 있다고는 생각하오만.”
“음공을 익힌 이들이 가장 많이 연주하는 곡이라 하지 않았느냐.”
“데스메탈은 음공 중에서도 실전성이 높기로 유명한 무공이라오.”
음악계에서는 여전히 메이저보다는 마이너 장르에 가깝긴 하지만, 적어도 음공을 쓰는 무림에서 데스메탈은 절대적인 메이저 장르다. 노래를 딱 듣기만 해도 패도적인 기세가 뿜어져나오지 않는가.
비트가 많으면 많을수록 섬세함은 조금 떨어져도 그만큼 많은 공격을 가할 수 있다. 그러니 유독 음공 중에서는 템포가 빠르고 몰아치는 느낌이 강한 메탈류의 음악이 선호도가 높은 건 당연한 현상이었다.
목진도 이르비스의 말이 이해가 가긴 했다. 당장 지난번에 이르비스가 저음탄주곡을 연주할 때와 초원뢰곡을 연주할 때의 차이는 명확했으니.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였다.
“유독 쿵쾅거리는 소리를 보니 그럴 것 같기는 하다마는. 굳이 저렇게 꾹꾹 우겨서 탄주(彈奏)할 필요가 있느냐?”
내 음공을 잘 알지는 못한다마는, 어쨌든 음율이란 건 있어야 할 것 아니냐? 목진의 말에 이르비스가 할 말이 많지만 하지 않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긴 이천년 전 고대인인데다 음악과는 거리가 먼 목진에게 데스메탈의 음악성을 이해시키기는 지난한 일인지도 몰랐다.
“내 보기에는 지난번에 네가 연주했던 초원뢰곡이 더욱 음공 답더마는.”
“뭐······익힌 음공의 수준이 높다면 초원뢰곡과 같은 곡이 더 강하다 듣긴 했소마는, 내 실력이 그에 미치지 못하는 걸 어쩌겠소.”
당장 실전에 써먹을 수 있는 곡부터 익혀야지. 이르비스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와 같은 용병낭인에게는 아무래도 잠재성보다는 당장 써먹을 수 있는 실전성이 더 중요했다.
흐음. 영 마뜩찮다는 듯 팔짱을 낀 목진이 잠시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생각해 보면 전에도 내가 가까이 갈 때까지 연주만 했었지. 네 무공은 상대가 근접했을 때는 대처법이 없느냐?”
“설표들이 있지 않소.”
댁이 다 박살냈지만. 이르비스는 차마 그 말을 입 밖으로 내뱉을 수 없었다. 어쩐지 눈시울이 시큰거리는 것도 같았다. 그나마 이번주 내로 새로 제작한 설표들이 도착한다는 것이 유일한 위안이었다.
“아니 그것 말고, 너는 직접 싸우지 않는 것이냐고 묻는 말이다.”
“나 말이요? 아니 내가 싸우면 연주는 누가 하오?”
“거 콤퓨타라는 놈이 어느 정도 연주도 하는 거 아니냐.”
콕 찝어 믹싱을 가리키는 말에 이르비스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뭐 아주 불가능한 건 또 아니긴 한데······.”
지금 나보고 무기도 없이 무림인이랑 근접전을 하라는 거요? 이르비스가 말도 안된다는 듯이 손사래를 쳤다. 그런 이르비스를 본 목진이 쌍심지를 켰다.
“갈! 네놈은 무림인이 아니더냐? 악공이든 뭐든 무공을 쓰면 다 무림인이거늘, 어찌 약해빠진 소리를 늘어놓는 것이냐. 내가 살던 시대에는 악공이라도 가까이 붙으면 퉁소에 강기를 씌워서 휘둘렀느니라!”
“아니 퉁소에 강기를 씌울 정도면 그게 어딜 봐서 악공이오? 퉁소 불 줄 아는 무림고수지!”
“시끄럽다. 너는 무림인이라는 놈이 싸울 줄을 모르면 부끄러운 줄을 알아야지, 나처럼 음공을 파훼해서 뚫고 들어오는 상대가 있으면 어쩌려고 그리 태평하게 말하느냐!”
“아니 그걸 댁이 말하시냐고······!”
기어코 이르비스가 뒷목을 잡았다. 음공을 뚫고 오는 상대를 요격하기 위해 네 마리의 설표를 호신위로 두고 있는 건데, 그 설표들까지 모조리 박살낸 목진이 저리 말하니 열이 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저 꼬장꼬장한 절대고수한테 개길 수는 없지 않은가. 이르비스는 강약약강이라는 낭인정신에 매우 충실한 사파인이었다.
잠시 심호흡을 하며 흥분을 가라앉힌 이르비스가 말했다.
“······사실 최후의 수단이 있긴 하오. 모든 저지선이 뚫렸을 때 가지고 있는 악기를 무기 대용으로 사용하는 무공이지.”
“그럴 줄 알았다. 아무리 음공을 익혔어도 제 몸 하나는 지킬 수 있어야 하는 법이지. 그런데 내 네가 그런 무공을 쓰는 걸 못 본 것 같다만?”
기억을 더듬어 본 목진이 고개를 갸웃했다. 설표 네 마리를 박살낸 뒤에 이르비스가 별다른 저항 없이 제압당한 것을 떠올렸던 것이다.
물론 이르비스에겐 합리적인 이유가 있었다.
“대협의 무공이 워낙 대단해서 꺼내봐야 의미가 없었소. 말 그대로 최후의 수단인 만큼 직접 무공을 익힌 무인에 비할 바는 아니지.”
그리고 대원천후가 얼마나 비싼, 아니 섬세한 악기인데 그걸 마구잡이로 휘두른다는 말인가. 이르비스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았다.
다행히 목진은 이르비스의 변명 아닌 변명을 나름대로 납득 한 모양인지 고개를 끄덕였다.
“흠. 하긴 생사결을 하는 것도 아니었으니 굳이 애매한 패를 내보일 수는 없었겠지. 인정하마. 그 판단은 나쁘지 않았다.”
“······알아주니 고맙다 해야 하는 건지 원.”
“헌데 그런 무공을 구명절초(求命絶招)로만 쓰느냐? 전에 주정뱅이의 대련 상대를 할 때를 보니 네 몸 쓰는 솜씨도 제법인 것 같더마는.”
원거리전을 선호하는 음공을 익힌 이르비스이지만, 음공의 고수는 근접전이 약할 거라는 편견과는 달리 그의 무공에 대한 감각은 상당한 편이었다. 목진이 보기에 굳이 음공을 택하지 않았더라도 나름 성취를 이루었을 것이라 판단했을 정도로 말이다.
“······그렇소? 크흠.”
여태껏 타박만 하던 목진이 별안간 칭찬하는 모습을 보이자 이르비스가 머쓱한지 뒷목을 긁적였다.
“그런데 음공은 상대와 멀리 떨어져야 유리한 무공이지 않소. 근접전을 하겠다며 내가 거리를 좁혀서야 본말전도 아니오?”
“쯧쯧, 지척에서 내공이 가득 담긴 금을 튕기는 모습을 못 봤으니 저리 미련한 소리를 하는 것이지.”
무릇 음공이 최대의 위력을 발휘하는 건 원거리가 아니라 가장 근접했을 때이거늘. 목진의 말에 이르비스가 납득하기 어렵다는 듯 고개를 기울였다.
“애초에 상대가 오지 않으면 가까이 갈 수도 없는데······.”
목진은 더 말해달라는 듯 험상궂은 눈으로 자신을 힐끔거리는 이르비스의 머리를 콱 쥐어박았다.
“어이쿠 나죽네!”
“이제 보니 이놈이 받아먹을 줄만 알지 제가 알아서 생각할 줄은 모르는구나. 내가 네놈 사부더냐? 이쯤 여지를 주었으면 네가 알아서 생각해 보거라.”
“아니, 기껏 말을 꺼냈으면 힌트라도 좀 주시오! 맨날 나보고 미련하다고 구박하면서!”
저 저 약관도 넘은 장정이 떼쓰는 꼴을 보게. 목진이 한심하다는 듯 이르비스를 쳐다보더니 선심 쓴다는 듯 한 단어를 입에 담았다.
“설표.”
“그걸 타고 다니란 말이오?”
······어, 생각해보니 나쁘지 않은데? 이르비스가 솔깃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까지 설표들을 호신위로만 사용했지, 직접 타고 움직이며 적극적으로 전투를 하려는 생각은 한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딱히 실전에 활용하기 어려운 것도 아니다. 음공 연주만으로도 버거운 하수 때에 비해. 지금은 설표를 움직이며 여유롭게 음공을 연주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메카 설표를 타고 초원뢰곡을 연주하는 건 대단히 멋지지 않겠는가.
이르비스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목진은 알아서 잘 궁리해 보라는 듯 이르비스를 놔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음? 어디 가시오?”
“저 시끄러운 음악을 듣느니 차라리 다른 도시로 가 보련다.”
“그럼 나도······.”
“일 없다. 하이퍼루프 열차 타는 법은 아까 충분히 배웠으니 혼자 가도 된다.”
목진은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이르비스를 향해 됐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무공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데 굳이 끌고다니며 방해하는 것도 뭣하거니와, 이르비스는 저 시끄러운 데스메탈인지 뭔지가 좋다지 않은가.
그런 목진을 향해 이르비스가 미심쩍은 목소리로 되물었다
“괜찮겠소?”
“내가 애더냐?”
목진이 두 눈을 부라렸다. 이르비스가 황급히 양 손을 내저었다.
“아니 꼭 그렇다는 건 아니고······.”
– 목진 님은 잠시 눈을 떼면 사라지는 일이 종종 있으니까 이르비스 님이 잃어버리지 않도록 신경 써 주세요. 통신을 걸어도 잘 안 받으셔서 찾기가 힘들거든요. 아, 그렇다고 미아방송을 하면 자존심 상해 하시니까 찾기 힘들어도 그렇게 하시지는 말고요. 만약에 삐지시거나 하면 손에 솜사탕이나 맛있는 특산물 쥐여드리면 괜찮아요.
사실, 순자가 몰래 알려줬던 이목진 가이드 매뉴얼을 생각하면 애가 맞는 것 같긴 했다. 물론 이르비스는 감히 목진의 앞에서 그런 티를 낼 만큼 어리석지 않았다.
“어디로 가시려고?”
“글쎄. 인연 따라 발길 닿는 곳으로 가면 되겠지. 여기처럼 시끄러운 곳만 아니면 좋겠구나. 좀 조용한 음악을 트는 도시는 없느냐?”
“조용한 음악이라.”
생각해 보면 데스메탈 시티와 연결된 옆 도시가 그런 음악이었지. 미리 다운받아 두었던 뮤즈 행성의 지도를 떠올리며 이르비스가 하이퍼루프 터미널을 향해 손가락을 들었다.
“그러면 재즈 시티로 가 보는 건 어떻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