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smic Heavenly Demon 3077 RAW novel - Chapter (137)
우주천마 3077-136화(137/349)
22. 천년지업 Double Millennium Karma (3)
22. 천년지업 Double Millennium Karma (3) – 야 거기 칼 부딪히는 소리 좀 안나게 하라!
– 거기 지나가시는 손님, 무림인이시죠?
– 그렇소만.
– 레트로한 깜장 무복이 잘 어울리시네. 얼굴이 잘 생기셔서 그런가? 모름지기 남자답게 생긴 미남이 진짜 미남이지. 아암.
– 흠흠. 고맙소. 헌데 무슨 일로 길 가는 객을 붙잡으시오?
– 하하. 재즈 들으면서 세월아 네월아 장사하던 중에 심심했는데, 거기 가시는 손님도 느긋하니 도시 관광이나 온 듯해서 말동무나 하려고 불렀지요. 기왕 온 김에 옷 좀 팔아주시면 더 좋고.
– 난 딱히 옷 살 생각은 없소마는?
– 엥? 그럼 그 무복은 뭐요? 패션에 관심 없으면 그런 스타일은 소화 못 하는데?
– 나는 원래 이런 옛······방식의 무복을 좋아한다오. 그리고 옷맵시는 아는 아이가 맞춰준 것이고.
– 햐, 다른 사람 분위기에 맞춰서 코디해 주기가 쉽지 않은데 그 지인 분 눈썰미가 좋나 보오? 업계 사람인가? 뭐 그러면 그냥 말동무나 해 주쇼.
– 옷 안 팔아줘도 상관없다면.
– 들리는 노래를 보면 알겠지만 이 동네 분위기가 좀 느긋하고 여유로운 편이오. 잠깐 쉬는 셈 치면 되지. 뮤즈 행성은 처음이신가?
– 그렇소. 데스메탈 시티에서 왔는데, 별로 마음에 들진 않더군. 너무 시끄러워.
– 흐흐. 거기도 꽤나 열정적인 친구들이지. 뭐 취향을 좀 타긴 하지만. 이 동네 음악은 어떻소?
– 마음에 드는군. 음악은 잘 몰라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지만 분위기가 좋더이다.
– 에이, 음악을 뭐 배우고 자시고 할 게 있소? 그냥 듣기 좋으면 그만이지. 어쨌든 마음에 든다니 이 동네 사람으로서 기분이 좋구만. 저쪽 스윙재즈 섹터나 비밥 섹터도 한번 가보시오. 좀 있다가 길거리 공연을 한다니까 볼거리가 많을 거요.
– 호오. 한번 가 보리다.
– ······근데 요즘 무림인들한테 무슨 일 있소? 얼마 전부터 무림인들이 유독 많이 보이던데.
– 글쎄. 축제 중이라니 당연히 무림인도 많이 오지 않겠소?
– 그런 거면 내가 이렇게 이야기를 안 꺼내지, 무리지어 다니는 무림인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보여서 묻는 거요. 암만 봐도 축제 구경하러 온 느낌은 아니던데.
– 뭐어, 나는 딱히 아는 거 없소. 아는 지인 따라 축제 구경을 온 거라서.
– 그렇소? 그래도 혹시 모르니 조심하시오. 우리 같은 일반인이야 무림인들 일에 엮일 일이 거의 없으니 남의 일일 뿐이지만, 손님은 같은 무림인 아뇨. 축제 구경 와서 운 나쁘게 무림인들 싸움에 말려들면 그것도 재난 아니겠소.
– 그건 그렇지. 좋은 정보 고맙소. 답례라고 하긴 뭣하지만, 옷들이나 좀 팔아주지.
– 오, 그러면 나야 좋지. 어떤 옷으로 드릴까? 요즘은 누아르 스타일 재즈 주간이라 하드보일드한 룩을 추천한다오.
– 나는 옷 맵시에 대한 건 잘 모르니, 주인장이 잘 어울릴만한 옷들로 추천해 주시구려. 가격은 신경 쓰지 말고.
– ······이야, 이거 오늘 귀인을 만났구먼. 좋소. 이 왕모가 업계 종사자의 자존심을 걸고 끝장나게 코디해 드리지. 절대 후회하지 않으실 거요.
목진은 어두운 네이비색 정장조끼와 긴 코트를 걸친 채 재즈 시티의 거리를 거닐었다. 가지런히 뒤로 묶어내린 머리 위로 쓴 중절모가 조금 어색한 듯 자꾸 매만지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도시의 분위기에 그대로 녹아든 듯한 모양새였다.
몇 천 크레딧 정도의 지출이 있긴 했지만 목진은 꽤나 만족스러운 기분이었다. 왕씨 성을 가진 옷가게 주인장의 코디가 썩 마음에 든 탓이었다. 돌아가고 나면 과소비를 했다고 순자에게 한 소리 듣긴 하겠지만, 원래 축제란 것은 돈을 써야 제맛이 아니겠는가.
목진은 재즈풍 컨셉으로 꾸민 거리를 구경하며 느긋하게 걸어 다녔다. 길거리 음식이 핫도그라는 놈 밖에 없다는 것이 아쉽긴 하지만, 도시의 분위기 자체는 꽤나 마음에 들기에 거닐 맛이 나는 동네였다.
“음?”
하드보일드함이 한껏 느껴지는 옷차림에 어울리지 않게 핫도그 속에서 소시지만 낼름 빼먹던 목진이 문득 고개를 돌렸다. 그의 시선은 건물들 사이로 나 있는, 어둑한 골목길 안쪽을 향하고 있었다.
무기가 부딪히는 날카로운 소음, 내공이 스며든 기합성, 그리고 누군가의 비명. 그의 초인적인 감각이 도시를 가득 채운 재즈 소리에 묻혀있던 작디작은 소리를 잡아낸 것이다.
“무림인들 사이에 무슨 일이 있기는 있나 보군.”
목진은 대수롭지 않게 중얼거리며 케찹과 머스타드로 범벅이 된 소시지를 우물거렸다. 어둠 속에서 칼부림이 나건 어쨌건 자신과는 딱히 관계없는 이야기이기 때문이었다.
재즈 시티를 구경하느라 딱히 무료하지도 않은데 굳이 동네 싸움판에 구경을 갈 이유가 있을까. 목진은 가볍게 혀를 차며 발걸음을 돌렸다.
니들은 싸워라, 나는 도시 구경이나 하련다. 목진은 어둠 속에서 벌어지는 싸움을 가볍게 외면하며 반대쪽 구역으로 향했다. 저러다가 한쪽이 이기면 자연스럽게 조용해질 테니 잠깐만 자리르 피하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그건 목진의 희망사항일 뿐이었다.
“······아니, 이놈들은 도대체 결판을 낼 생각이 있기는 한 게야?”
목진이 입에 문 막대사탕을 신경질적으로 아그작거리며 인상을 구겼다. 왜인지 모르게 그가 움직이는 곳마다 싸우는 소리가 끊이지 않고 따라오기 때문이었다.
일반인, 아니 무림인들이라 할지라도 듣지 못할 만큼 작은 소리에 불과한데다 도시 전역에 깔린 음악소리 때문에 더욱 알아채기가 어렵다. 하지만 초인적인 감각을 보유한 목진에게는 잘 들리는 음악소리 사이로 들리는 소음이 여간 거슬리는 게 아니었다.
들리는 소음의 패턴이 일정한 것을 보니 계속 같은 무리끼리 싸우고 있는 듯싶은데, 그로부터 추론하자면 한쪽 무리를 다른 무리가 추격하고 있는 형세다. 문제는 도망치는 무리의 실력이 제법인지, 도무지 결판이 날 낌새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지만.
공교로운 일이지만, 어째 도망치는 무리의 동선이 자꾸 그와 겹치고 있었다. 이쯤 되면 목진도 마냥 남의 일이라며 외면하기가 짜증이 날 수밖에 없었다. 이래서야 느긋하게 도시 관광을 할 수가 없지 않은가.
결국 참다못한 목진은 결국 이 관광예의라곤 눈곱만치도 없는 놈들의 일에 끼어들기로 마음을 먹었다.
‘어떤 놈들인지 그 낯짝이라도 한번 봐야겠다.’
가서 공평하게 양쪽을 다 쥐어 패 놓는다면 조용히 관광을 즐길 수 있겠지. 목진은 우드득 소리가 나게 손마디를 풀며 건물들 사이의 어둑한 골목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컥!?”
단전에 깊이 틀어박힌 검에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호위무사가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운 나쁘게 내공 드라이브의 핵을 꿰뚫렸는지, 그의 검에 서려있던 검기가 허공 중으로 흩어졌다.
“······후. 겨우 잡았네.”
눈동자에서 빛이 사라지며 힘없이 주저앉는 호위무사로부터 검을 뽑아낸 검은 옷의 여인이 이마에 흐르는 피를 훔치며 중얼거렸다.
“대원들의 피해가 막심합니다. 부대주. 절반이 넘게 죽었어요. 당분간은 새 대원을 받고 재정비를 해야 할 겁니다.”
그녀의 옆에 서 있던 적랑대원 하나가 깊게 베인 어깨에 금창약 스프레이를 뿌리며 말했다. 리더급을 제외하면 B급에서 C급 수준에 불과한 적랑대가 A급에 달하는 호위무사들 여럿을 상대했으니 이만한 타격을 입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대원의 말에 부대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상대가 상대니 어쩔 수 없는 일이지. 돌아가면 교구장님께 재정비를 위한 복구예산을 많이 탈 수 있도록 잘 말해볼게.”
“······이제 와서 말하는 거지만, 너무 무리한 거 아닙니까? 대주님께서도 폐관수련 때문에 부재중이신데.”
적랑대원의 말에 부대주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지난번의 실패를 만회하려면 우리가 처리해야 돼. 이번에도 귀살대 놈들한테 선수를 뺏겼다가는 적랑대의 입지가 뭐가 되겠어?”
“그야 그렇긴 하지만······.”
“본단의 지인한테 듣기론, 이번에 본단에서 오신 높으신 분은 성과를 중요시한다고 했어. 이만큼 성과를 올렸으면 우리한테도 지원이 좀 많이 들어오겠지.”
그러니까 저 꼬맹이를 잘 잡아두라고. 부대주가 다른 적랑대원에게 제압당한 채 이쪽을 노려보는 소녀, 유진 샤르마를 바라보았다.
“오랫만에 보는데, 우리 얼굴 기억하려나? 천령상단 소단주 님.”
“······어떻게 이곳까지 쫓아온 거죠?”
“우릴 너무 만만히 본 거 아니야? 이래 뵈도 천마신교의 일원인데.”
물론 안 알려줄 거지만. 조롱하는 듯한 부대주의 말에 유진이 이를 갈며 노려봤다. 부대주는 독기가 가득한 그녀의 시선을 덤덤히 마주보았다. 제아무리 독기를 품고 노려본다 한들 그래봐야 어린애. 사람의 목숨조차 가볍게 앗아가는 마도의 무인에게는 코웃음이 나올 수준에 불과했다.
“그 사나운 눈빛도 교구로 압송되면 사라질 테니까 그리워지겠는걸. 미리 충고하자면, 교구로 가서는 반항심을 좀 죽이고 순순히 협조하는 게 좋을 거야.”
“하. 차라리 죽이시죠.”
부대주의 말에 유진이 어림도 없다는 듯 중지를 세웠다. 하지만 당당한 태도와는 달리 그들로부터 빠져나갈 방법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그녀의 마음 속은 시커멓게 타들어가고 있었다.
서천검후의 호위를 받아 마교 32교구의 손이 닿지 않는 북부까지 도망친 이후, 천령상단과 샤르마 가문의 이름아래 나름의 세력을 규합한 것까지는 나쁘지 않았다. 아직 나름의 명성은 남아있는 샤르마 가문의 인맥을 이용해 컨소시엄을 설립하고, 32교구와 적대하는 중소문파들에게 경제적 지원을 대가로 무인들을 파견받으며, 여러 낭인용병들과 장기 계약을 체결할 수 있었으니까.
이만하면 32교구와 정면대결까지는 못할지언정 직접적인 무력도발은 억제할 수 있으리라. 유진은 그렇게 생각했었다.
적어도 귀살대가 들이닥치기 전까지는.
지금은 그 명성이 조금 바래긴 했지만, 귀살대는 한때 천마신교 32교구의 주력부대로서 근방 성계에 이름을 날렸던 전투대다. 숫적 열세와 공격자라는 불리한 입장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피해조차 감수하며 맹렬히 돌파해오는 귀살대에게 유진이 규합한 어정쩡한 세력은 순식간에 와해될 수밖에 없었다.
소수의 호위들과 함께 간신히 이곳 뮤즈 행성까지 도망쳤음에도 얼마 지나지 않아 발각된 상황. 유진은 마교도들이 어떻게 자신의 위치를 파악한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호위무사들에 대한 사전조사는 확실히 했는데.’
지난날 32교구에 잡혔을 때 제 가슴 속에 천리추종파 캡슐이 심어졌음은 꿈에도 알지 못하는 유진이기에 이리도 빨리 마교에서 자신을 추격해올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부대주는 여전히 복수심이 가득한 눈으로 그녀를 노려보는 유진을 보며 가볍게 혀를 찼다.
“저래서야 얌전히 협조하기는 글렀네. 뭐 자기가 고생하고 싶다는 데 어쩌겠어. 다시 말하지만, 반항하지 마라? 본단에서 나온 높으신 분은 너 같은 태도를 아주 싫어하시거든.”
“······.”
천마신교 본단이라는 말에 유진의 얼굴에 절망이 내려앉았다. 여전히 그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단순한 교구 차원의 일이 아니라 천마신교의 본단에서 샤르마 가문을 노리고 있다는 말은 절망적이기 그지없는 이야기이기 때문이었다.
제아무리 세력을 만든다 한들 32교구 하나도 감당하지 못하는 마당에 어떻게 감히 마교의 본단과 대적할 수 있겠는가.
애초부터 불가능했던 싸움이다. 짓누르는 절망과 울분에 유진의 눈가가 젖어들었다.
일 년여에 가까운 기나긴 추격도 오늘부로 마지막이다. 적랑대도, 유진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순간이었다.
어쩐지 낯설지 않은 목소리가 어두운 골목 저편으로부터 들려온 것은.
“사람의 인연이란 놈이 기묘하기도 하지.”
설마하니 여기서 아는 얼굴을 보게 될 줄은 몰랐구나. 긴 코트를 입고 중절모를 쓴 사내, 목진이 골목의 그림자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