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smic Heavenly Demon 3077 RAW novel - Chapter (144)
우주천마 3077-143화(144/349)
23. 괄목상대 Unexpected Rising (2)
23. 괄목상대 Unexpected Rising (2) – 누구시드라?
이 시끄러운 도시에 다시 올 생각은 없었는데 또 오게 되다니. 귓가를 울리는 거친 드럼과 기타 소리에 목진이 인상을 찡그리며 툴툴거렸다.
“난 이 도시가 싫다.”
“저도 메탈은 별로 안 좋아해요.”
그의 옆에서 같이 걷던 순자가 동의한다는 듯 살짝 찡그린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왜 하필 여기로 온 게냐? 물건이야 다른 도시에서도 팔고 있다마는.”
“이 도시 물가가 좀 더 싸거든요. 다른 곳에선 안파는 조금 비합법적인 물건들도 여기서만 팔고요.”
거리상으로는 며칠 여유가 있다지만, 언제 어떻게 마교랑 마주칠지도 모르는데 미리 준비해서 나쁠 건 없다. 옛날처럼 중고 물품 하나 사는 것도 한참을 고민할 만큼 자금이 부족한 것도 아니고 말이다.
“에잉. 그냥 조금 비싸게 사지 그러느냐.”
“돈을 관리하는 사람이 그런 생각으로 자금을 운용하면 일 년도 못 가서 망해요. 목진 님이나 왕언니는 벌어오는 쪽이니까 별로 상관없지만, 저는 돈줄을 쥔 사람이니까 지출은 최소화 하는 게 기본적인 소양이죠.”
“끄응······꼭 내가 알던 누구처럼 이야기하는구나.”
돈 좀 쓰려면 말려죽일 기세로 잔소리를 퍼붓던 천마신교의 마뇌를 떠올리며 목진이 질린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순자는 마뇌처럼 꼬장꼬장하게 굴진 않는다는 점이 조금 더 낫긴 했다.
“그래도 일은 확실히 하잖아요. 그러니까 목진 님도 저한테 자산관리를 맡기신 거고.”
“내 알던 이랑 닮았으니 그 자만큼 잘 하리라 믿는 것이니라.”
“현명하신 선택이에요. 목진 님의 자산은 하루하루 불어나고 있는걸요.”
엄지를 치켜들며 자신만만하게 말하는 순자를 보며 목진이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야무진 녀석이로고. 하긴 그러니 세령이 그 애가 저리 멀쩡히 돌아다닐 수 있던 거겠지.”
목진의 칭잔에 순자가 미소를 지으며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목진 님이 뭘 좀 아시네요. 제가 외모가 이래서 사람들은 보통 반대로 알더라고요.”
“그걸 알면 한번 바꿔보지 그러느냐? 전에 축골공(縮骨功)마냥 어른의 몸으로 변할 수도 있다 들었던 거 같은데.”
목진으로서는 아직도 이해하기 힘든 소리였지만, 안드로이드라는 종족은 스스로의 외모를 아무렇지도 않게 바꿔 끼는 게 가능다고 했다. 하지만 목진의 말을 들은 순자는 팔을 쭉 뻗어 뽀얀 피부를 쓸어내리며 고개를 저었다.
“할 수는 있지만 별로 그러고 싶진 않네요. 이 몸이 훨씬 귀엽지 않아요?”
“뭐어, 보다 보면 깜찍하긴 하다마는.”
목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실제 어린아이와는 여러모로 다른 외모이기에 처음에는 꽤 이질감을 느끼긴 했지만, 일 년 가까이 함께하다 보니 적응이 된 것이다. 생각해 보면 반로환동하여 어린아이가 된 고수들과 엇비슷한 느낌도 드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면 목진 님이 외모를 가지고 칭찬을 하는 건 거의 처음 아니에요?”
이 영광의 순간을 왕언니가 들었어야 했는데. 순자가 빙글빙글 웃었다. 목진이 멋쩍은 듯 작게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돌렸다.
“크흠. 얼른 살 거나 사서 돌아가자. 사람들도 기다리고, 이 시끌시끌한 도시는 빨리 좀 벗어나고 싶구나.”
“어머. 지금 부끄러워하시는 거에요?”
“어허. 어른을 놀리는 거 아니다.”
“저도 어른이거든요? 이제 곧 여섯 살이 되긴 하지만.”
“허 참. 매번 느끼지만, 그 안드로이드라는 족속들은 참으로 괴이한 이들이구나. 여섯 먹은 아이가 어른이라니. 세상이 어찌 이리 요지경인지.”
혀를 내두르는 목진의 말에 순자가 쓴웃음을 지었다. 자연스럽게 튀어나오는 안드로이드 차별발언 때문이었다. 물론 당사자는 차별발언이라는 자각도 없겠지만.
그래도 일단 안드로이드를 사람의 일종으로 인정하는 걸 보면, 그가 20세기 전의 고대인치고는 충분히 개방적인 사고관을 가지고 있긴 하지 않은가.
사실 엄밀히 말하면 그의 사고관이 개방적이라고 하기보다는 워낙 충격적인 문물을 많이 겪었기 때문에 상식관이 붕괴한 쪽에 가까웠지만, 어쨌건 결과적으로는 이 시대에 잘 적응하게 되었으니 썩 긍정적인 변화라고 할 수 있었다.
이런저런 보급품들을 짊어진 채 순자가 흥정하는 모습을 구경하던 목진이 문득 궁금해졌다는 듯 일회용 호신의를 반값에 후려쳐 온 그녀를 향해 물었다.
“헌데 너와 세령이는 어쩌다가 만나게 된 것이냐? 네 나이가 아직 다섯 살에 불과한데, 옆에서 보고 있자니 너희 둘은 마치 수십 년을 함께 한 친자매 같더구나.”
“으응······여자들의 비밀인데, 알고 싶으세요?”
목진의 물음에 장난기가 돈 순자가 슬쩍 도발적인 미소를 지으며 그를 흘겨봤다. 물론, 목진에게 통할 리는 만무했지만.
“말하고 싶지 않으면 그리 해도 좋느니라.”
“농담이에요. 그냥 받아주셔도 좋았을 텐데.”
“삶에 어떤 사정이 있을 줄 알고 내 가벼이 농을 받겠느냐?”
“이런 데서는 깐깐하시다니까. 뭐, 사실 엄청 심각하고 어둡고 뭐 그런 과거는 아니에요.”
너무 길게 말하면 지루하니까 간단하게 핵심만 요약해드릴게요? 순자가 과거를 떠올리는지 도시 위를 뒤덮고 있는 돔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저기 남쪽 우주에 소규모 불법 연구소가 있었는데, 저는 거기서 미등록 안드로이드로 태어났어요. 레어 스펙이라도 나오면 다행인 낙후된 시설인데 무슨 우연의 산물인지 오버스펙으로 태어났죠.”
“오버스펙?”
“정규규격을 넘어서는 안드로이드를 오버스펙이라고 불러요. 정부가 직접 관리하는 안드로이드 제조기관에서도 일 년에 하나 나올까 말까 한 정도랄까요.”
“흠. 귀한 몸으로 태어났다는 말이로구나.”
“그런 셈이죠? 뭐, 실제로는 딱히 귀한 대접은 못 받았지만요. 열악한 환경에서 오버스펙이 나타났는데 연구원들 눈이 안 돌아가겠어요? 양산화를 해보겠다고 한동안 제 인공두뇌를 이리저리 주물럭대다가, 나중에는 해부를 하려고 하더라고요.”
“······분명 조금 전에 심각하고 어두운 이야기는 아니라 하지 않았더냐?”
목진이 거북한 얼굴로 물었다. 불법시설에서 돌연변이로 태어나 실험동물이 되었다가 해부를 당할 뻔 했다는 게 도대체 어딜 봐서 가볍고 밝은 이야기라는 말인가.
뭐, 오대세가에 뒤통수 맞은 다음 인류정부한테 가문이 몰살당하고 우주무림에 내던져진 것보다는 비교적 라이트하지 않나요? 순자가 가볍게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다행히 해부당하기 전에 행성정부의 의뢰를 받고 연구소를 발견한 왕언니가 싹 다 때려잡고 구해줬거든요. 그렇게 둘이 의자매를 맺고 일행이 되었다. 이정도면 그래도 해피엔딩이죠.”
“뭐 결과가 좋고 당사자가 괜찮다니 다행이다만······.”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주억거리면서도, 목진은 순자라는 인물에게 순수하게 감탄했다.
‘겉보기와 달리 강한 심지를 가진 아이로다.’
암울한 과거를 억지로 떨쳐내려는 게 아니라, 정말로 크게 개의치 않는 모습. 어쩌면 세령이라는 버팀목이 있었기에 과거에 매몰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인지도 몰랐다.
필요한 물건들을 사고 일행이 기다리고 있을 항구도시로 돌아가는 길, 목진의 옆을 걸어가던 순자가 잊고 있었다는 듯 목진에게 말했다.
“아, 그러고 보니 감사가 늦었네요.”
“응? 뭐가 말이냐?”
“사천당문 재건 이야기요. 조금 늦었지만, 제안을 수락해 주셔서 감사드려요.”
“딱히 네가 감사할 건 없다. 마침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줄 수 있기에 이해가 들어맞은 것이 아니더냐.”
목진은 일부러 딱 잘라 대답했다. 인정을 따져서 내린 선택이 아니라 오랫동안 고심한 끝에 결정한 것이니만큼 굳이 그녀에게 감사 인사를 받을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비즈니스에서조차 사람간의 관계가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데, 이런 큰 일을 어떻게 딱딱 계산만으로 이루어질 수 있겠는가. 순자가 옅은 미소를 지었다.
“솔직히 내세울 건 명분밖에 없는 저희에게 목진 님 같은 절대고수가 함께해 주시는 거니까요. 아무런 감사도 드리지 않는 건 도의상으로도 맞지 않죠.”
“쯧. 그러니까 사적인 정에 이끌린 것이 아니래도.”
혀를 차는 목진의 말에도 순자는 대답 없이 웃기만 했다. 그런 모습이 마뜩찮다는 듯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가던 목진의 발걸음이 별안간 우뚝 멈췄다.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린 순자가 목진을 향해 물었다.
“······목진 님? 무슨 일이세요?”
목진은 그녀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다만 가지고 있던 보급품들을 바닥에 내려놓고 어두운 골목 저편을 응시했다.
차분하지만 날카롭게 반전한 목진의 분위기. 그제야 무언가 심상찮다는 것을 깨달은 순자가 목진의 뒤로 한 발자국 물러섰다.
가만히 골목 쪽을 바라보던 목진이 입을 열었다.
“나오거라.”
그러자 골목 저 편에서 굵은 사내의 목소리가 화답했다.
“그러지.”
그림자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거구의 사내. 어쩐지 모르게 낯이 익은 듯한 얼굴에 목진의 눈이 가늘어졌다.
“오랜만이오. 이 무명소졸(無名小卒)을 기억하실지는 모르겠소만.”
“······흐음.”
“마교 32교구의 적랑대 대주인 첩혈광랑(喋血狂狼) 산전무악이에요. 저희랑 처음 만났을 때 화일객잔에서 목진 님이 쓰러트렸던.”
기억을 하지 못하는 목진이 눈살을 찌푸리자 긴장한 모습의 순자가 옆에서 작게 속삭였다. 천마신교가 예상보다 한참 앞서 움직였다는 사실에 그녀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목진의 반응에 묘하게 실망한 듯한 산전무악이 헛웃음을 지었다.
“흐, 혹시나 하긴 했지만 역시 기억하지 못하시는군. 허나 이 몸의 무공이 초라했을 뿐이니 그쪽이 미안하실 것은 없소.”
“······이제 기억이 나는구나. 제법 실력을 키워 왔더냐?”
뒤늦게 산전무악을 기억해낸 목진이 물었다. 기억이 조금 가물거리긴 했지만, 확실히 예전에 비해 제법 성장을 한 듯 보였기 때문이었다.
산전무악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그대에게 패배한 뒤로 절치부심하여 약간의 성과를 얻었지. 물론 아직도 그대의 일검(一劍)조차 받아낼 수 있으리라 장담할 수는 없겠지만 말이오.”
“말하는 것을 보아하니 패배의 설욕을 위해 온 것은 아닌 듯 싶구나. 하면 무슨 일로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냐?”
“숨겨봐야 별 의미는 없으니 솔직히 말씀드리겠소. 이미 파견된 별동대가 천령상단의 소단주를 확보하는 동안 그대의 발을 묶는 것이 공식적인 나의 역할이오.”
“허어. 목적을 밝히는 데에 시원스럽기 그지없구나.”
목진이 고개를 삐딱히 기울였다. 산전무악이 천마신교 32교구의 소속이라는 것을 들었을 때 이미 바깥의 상황을 짐작하긴 했지만, 이렇게 노골적으로 나올 줄이야.
“목진 님, 도시 밖으로의 통신이 완전히 막혔어요.”
순자가 초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보아하니 산전무악이 말한 대로 그들을 분리시킨 채 세령 일행을 습격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목진은 전혀 당황하지 않고 차분하게 그녀의 머리를 토닥이며 말했다.
“걱정하지 말거라. 세령이 그 아이의 성취로는 호락호락 당하진 않을 터이니.”
아무리 마교 본단이라고 하더라도, 그가 도착할 때까지 쉽사리 그녀를 제압할 수는 없으리라. 목진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목진은 장담할 수 있었다. 근본 없는 무공과 허약한 내공 드라이브로 빌빌거리던 과거의 당세령과 지금의 당세령은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모르긴 몰라도 최소 중견문파의 문주 급은 되어야 그녀를 제압하는 것이 가능하리라.
그동안 세령의 무공을 직접 지도해 온 만큼, 그 누구보다도 그녀의 무공실력에 대해서 정확히 꿰뚫고 있는 이가 바로 그였으니까.
“하지만······.”
“그 아이의 실력이면 내가 하나하나 돕지 않아도 제 앞가림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겠지. 거기에 이르비스도 있고, 마침 보험도 들어두지 않았더냐.”
여전히 걱정스러움을 지우지 못한 순자였지만, 차분하기 그지없는 목진의 말에 그나마 조금 안심한 표정을 지었다. 목진의 말마따나, 그들에겐 더없이 든든한 보험이 있었으니까.
순자를 안심시킨 목진이 다시 산전무악을 돌아봤다. 산전무악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
“일행의 실력에 자신이 있으신가 보오.”
“물론이니라. 헌데 너는 나를 막아설 자신이 있느냐? 어찌 패거리도 없이 홀로 내 앞에 섰는고?”
“동료가 있다고 유의미한 차이가 있소?”
“있겠느냐?”
목진이 피식 웃자 산전무악도 따라 웃었다.
그 홀로 참룡검제를 막아설 수 있냐고? 그럴 리 없지 않은가.
어차피 참룡검제와 천령상단의 소단주가 멀어진 시점에서 그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은 없게 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기껏해야 시간이나 조금 끄는 것 정도?
하면 이제 사적인 목적을 좀 우선해도 괜찮을 것이다.
적랑대주 산전무악이 아닌, 첩혈광랑 산전무악이 보고 있는 것은 처음부터 오로지 하나뿐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목진을 보며 그의 솔직한 속내를 드러낼 수 있었다.
“천마신교고 임무고 엿이나 먹으라 하시오.”
피를 뒤집어쓴 늑대와 같이 사납게 웃으며 그가 말했다.
“나는 그대에게 무(武)를 물으러 왔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