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smic Heavenly Demon 3077 RAW novel - Chapter (148)
우주천마 3077-147화(148/349)
23. 괄목상대 Unexpected Rising (6)
23. 괄목상대 Unexpected Rising (6) – 폭풍속으로
제 2차 무림혁명이라 불리우는 내공 드라이브의 시대가 도래한 뒤로 무림은 수많은 발전들을 이룩해 왔다.
하지만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음이 당연한 이치.
내공 드라이브의 발전과 함께 시대의 흐름을 따라잡지 못하고 자연스럽게 몰락한 이들도 적지 않았으니, 그중 가장 대표적인 이들이라 하면 바로 살수(殺手)들이었다.
스카우터 하나면 간단하게 내공 드라이브의 존재 여부를 가늠할 수 있으니 제아무리 사람들 사이에 녹아들고 싶어도 어떻게든 티가 날 수밖에 없는 시대. 전통적인 살수집단들은 그와 같은 근본적인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하나둘 역사 속으로 사라지거나 일반적인 무림문파로 그 정체성을 바꾸었더랬다.
하지만 개중에서도 나름의 길을 찾아 살수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한 채 살아남은 집단들이 존재했으니, 무림은 그들을 두고 무림사대살문(武林四代殺門)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위장과 기만, 은신을 통해 가장 전통적인 살수의 모습을 한 혈사인(血蛇忍).
직접 암살대상에게 당당하게 비무를 걸어 살행을 행하는 멸살객(滅殺客).
암살대상의 정신을 해킹하여 의식을 휘저어버리는 몽마객잔(夢魔客棧).
그리고 끝없는 군중의 파도 속에서 비수를 꽂는 살막(殺幕).
“전체 요원 집합. 작전 개시다.”
살막주 듀크 고르고의 말과 함께 분위기가 일변한다.
단순히 골목만이 아니라, 도시 전체의 분위기가.
“······흠?”
가장 먼저 반응한 건 초월적인 범위의 기감을 가진 목진이었다.
데스메탈 시티 전역에서 느껴지는 파도와 같은 움직임. 그들 중 무인의 기척을 가진 이는 소수에 불과했지만, 일반인이나 안드로이드로 이루어진 군세의 숫자는 수천을 가뿐히 넘어서고 있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물량전. 그리고 목진은, 이미 이와 유사한 것을 겪어본 적이 있었다.
“이건······그 노괴와 비슷하군.”
철시귀옹(鐵屍鬼翁) 리첼 아카몬드.
백만의 강시대군을 거느린 사혈곡의 네크로맨서를 떠올린 그의 눈살이 와락 찌푸려졌다.
그의 옆에 서 있던 순자가 작게 덧붙였다.
“저쪽 말대로, 물량전은 살막의 전매특허에요. 소모전으로 시간을 끌겠다는 속셈이에요.”
살막에서 행하는 살행은 흔히 암살 하면 떠올리는 이미지와는 백팔십도 다르다.
본디 암살(暗殺)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암(暗)보다는 살(殺).
은밀성이고 나발이고, 일단 어떻게든 타겟을 죽이면 그만이라는 사살에 입각해 발전한 살막의 살행은 여타 다른 살수조직과는 그 규모부터가 달랐다.
그들의 작전영역은 작게는 하나의 시설에서부터 도시 전체, 크게는 작은 소행성 전역까지 아우를 정도로 광대하기 그지없었으니까.
그리고 살막의 작전영역이라는 것은 곧, 그 영역 안에 있는 모든 이들이 문자 그대로 살막의 통제를 따르는 이들이라는 의미였다.
– 숲 속에 숨을 수 없다면 아예 숲 전체를 우리 입맛에 맞게 개조하면 그만이 아닐까?
무대에서 노래를 하는 밴드와 공연을 즐기는 관객, 각종 상점의 상인들을 포함해 길거리를 거니는 모든 사람들까지 살막의 요원들이다. 목진과 순자가 이 데스메탈 시티에 들어온 순간부터, 이미 도시 내의 모든 인구는 하나둘 살막의 요원들로 교체되고 있었던 것이다.
살막 요원들의 정체는 빚쟁이, 현상범, 흉악 전과자 등 우주 전역에서 수급해 온 값싼 인력들.
그들을 최소한의 커리큘럼으로 훈련시킨 뒤, 값싼 외장형 내공 드라이브와 단순한 저가형 무공을 들려주고 타겟을 향해 끝없이 때려 넣는 것이 바로 살막의 주력 전술인 물량전의 요지였다.
물론 단순히 압도적인 물량의 파도이 살막의 전부인 것은 아니다. 살막에게 있어 일반 요원들은 단순히 눈가림을 위한 연막. 진정한 살수들은 바로 그들 중에 숨어있는 정예살수들이다.
어지간한 고수라고 할지라도 언제까지나 끝없이 밀려오는 요원들 사이에서 찔러오는 정예살수의 암습을 피할 수는 없는 일.
살막이 압도적인 의뢰단가에도 불구하고 나름의 입지를 다질 수 있었던 데에는 현저하게 높은 암살 성공률이라는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단, 이번과 같은 경우는 그들의 본업이 아닌 물량전이라는 특성 때문에 고용된 것이었지만 말이다.
이십 분. 듀크가 목진을 바라보며 말했다.
“딱 이십 분만 저희와 어울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혹시 몰라 미리 말씀드리자면, 돔끼리 이어지는 하이퍼루프 트레인은 이미 저희가 다 손을 써 둔 상태이고요. 만에 하나라도 저희의 포위를 뚫고 그 통로를 이용하시려 한다면 저희 요원이 폭파를 하게 될 겁니다.”
이곳과 항구도시의 물리적인 거리는 그리 멀지 않지만, 각 도시를 잇는 교통수단은 하이퍼루프 트레인이 유일하다. 그리고 살막은 이미 철저하게 도시를 빠져나갈 수단들을 모두 장악한 뒤였다.
수천이 넘는 살수들이 자신을 향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목진은 태연자약한 태도로 듀크를 향해 물었다.
“그런 것은 왜 말해주는 것이냐?”
“이왕이면 그쪽으로 가지 말아주십사 하는 입장에서 말씀드리는 겁니다. 방법이 없다면야 폭파를 하긴 하겠지만, 그랬다가는 뒷감당이 여간 귀찮은 게 아니거든요.”
만약 정말로 폭파를 한다면 행성 행정부에 막대한 배상금을 지불할 수밖에 없다. 물론 그중 8할은 마교에서 부담하기로 계약서에 적혀있긴 하지만, 작정하고 살행을 하는 것도 아닌데 굳이 욕먹을 짓은 피하는 게 최선 아니겠는가.
듀크가 목진을 향해 조심스럽게 제안을 건넸다.
“뭐, 대협께서 기어코 갈 길을 가셔야 한다면 저희도 최선을 다해 막겠습니다마는, 기왕이면 좋게 좋게 서로 힘 빼지 말고 그냥 딱 이십 분만 있다가 가시면 안 되겠습니까? 그 뒤에는 방해 않고 그냥 길을 열어드리겠습니다.”
“······진짜 싸우기 싫으신가보네요.”
진심이 가득 담긴 듀크의 제안에 순자가 황당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듀크가 당당하게 가슴을 폈다.
“네. 싸우기 싫습니다. 안 싸울 수 있으면 안 싸우는 게 제일 좋지요.”
평화주의 살수라니. 이 무슨 해괴한 조합이란 말인가. 목진이 혀를 찼다.
“그러면 애초에 이 일을 받지 말았어야지.”
“저희도 먹고는 살아야지요. 평화가 참 좋긴 한데, 그거랑은 별개로 저희 같은 살수들은 일거리가 태부족이거든요. 그래서, 어떠십니까?”
어림없는 소리. 목진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일 없느니라. 너희는 너희 역할이나 잘 하거라. 나는 가야겠으니.”
“아 이게 안 통하네.”
딴에는 진심으로 건넨 제안이었다는 듯, 듀크가 입맛을 다셨다.
“다 모였느냐?”
가볍게 주변을 돌아본 목진이 물었다. 그들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사방의 골목과 건물들 위에는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빼곡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듀크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손을 높이 들어올렸다.
“자 들어가자-.”
퍼억. 듀크의 손이 내려감과 동시에 그의 머리가 터져나갔다. 초살(秒殺)이었다.
무공을 익힐 수 없는 소모성 꼭두각시 드로이드이니 당연한 결과였다. 물론, 살막주 본인이 그 자리에 있더라도 다른 결과가 나왔을 가능성은 별로 없었겠지만 말이다.
– 와아아아아!
하지만 살막주 듀크의 드로이드가 터져나가건 말건, 그의 신호가 떨어지기 무섭게 수천의 살막 요원들이 함성을 지르며 저마다의 무기를 뽑아들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오직 공격신호 뿐. 특수한 약물을 복용하여 두려움조차 사라진 그들은 말 그대로 고기방패로서 불나방과도 같이 목진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철시귀옹 때와는 달리, 저마다의 의식을 가지고 있는 이상 명령을 내리는 머리 하나를 없앤다고 해서 그들을 무력화시킬 수는 없다. 요원들이 자신의 의지로 달려드는 것을 확인한 목진이 가볍게 혀를 찼다.
“쯧. 순자야, 이리 오거라.”
목진은 순자에게 손짓했다. 무인이라고 부르기조차 민망한 날파리에 불과한 이들이지만, 무공을 익히지 않은 안드로이드인 순자에게는 그마저도 위험했기 때문이다.
이럴 때는 작은 몸이 편리하군. 다가온 순자를 가볍게 안아든 목진은 그렇게 생각하며 주변을 돌아보았다.
하나같이 붉게 물든 눈으로 미친개처럼 그를 향해 달려드는 요원들 사이로 제법 심상찮은 기세를 보이는 이들이 숨어있는 것이 느껴지긴 했다. 하지만 그래봐야 하수인 것은 매한가지.
이런 잔챙이들, 그것도 살수를 상대로는 손을 섞기조차 아깝다. 목진이 가볍게 한쪽 발을 들었다.
일반 무인도 아니고 살수 나부랭이라면 어차피 죽음을 각오했을 터. 살수에게 자비를 내리는 것만큼 쓸데없는 짓은 없다. 목진의 발에 막대한 내공이 모여들었다.
그것을 본 몇몇 정예살수들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미친. 무슨 기를 저렇게 무지막지하게······.’
숨길 생각조차 보이지 않는 막대한 기의 집약. 두려움이 거세된 요원들마저 순간적으로 흠칫 몸을 떨 정도로 어마어마한 양이었다.
자칫하면 이거 한 방으로 다 날아간다. 정예살수들은 호신의의 출력을 최대한으로 높이고 저마다의 방법으로 방어를 굳혔다.
하지만 그들은 알지 못했다.
지금 목진이 선보이는 것은, 지난날 단 한 번의 발구름으로 비무선을 반파시키고 팔척투귀 엘레나를 빈사상태로 만들었던 바로 그 수였으니까.
비록 그때와는 달리 한 곳에 집중시키는 것이 아니기에 그 위력은 줄어들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감히 그들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은 절대로 아니었다.
“차라리 고수를 데려왔다면 시간이라도 끌었을 것을.”
어디 한번 재주껏 살 길을 찾아보거라. 목진은 그리 말하며 바닥에 발을 굴렀다.
꾸웅. 하고 사람의 발이 대지를 굴렀다고는 생각할 수 없는 거대한 굉음이 동심원을 그리며 도시 전체를 울렸다.
그리고 그 직후, 목진이 있는 곳을 중심으로 반경 백여 미터가 땅이고 건물이고 할 것 없이 모조리 뒤집어졌다.
하물며 단단하게 다져진 땅과 건물조차 모래성처럼 부서지거늘, 연약한 인간의 육체로 어찌 감히 그 충격을 버틸 수 있으랴.
“-!?”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거대한 충격파에 노출된 일반요원들의 몸이 그대로 산산조각나며 돌무더기 위에 흩뿌려지고, 극소수를 제외한 정예살수들조차 전신에서 피를 뿜어대며 힘없이 튕겨나간다.
“쯧.”
마치 대지진이 직격한 것과 같은 참혹한 광경. 생각보다 잔인한 모습에 살짝 인상을 찌푸린 목진이 안아든 순자의 눈을 가렸다. 사방이 사람이었던 고깃조각과 핏물로 물들어 버리는 광경은 그 모습을 만들어낸 그가 보기에도 그리 유쾌한 광경은 아니었다.
초토화된 지역 저 너머를 바라보며 목진이 중얼거렸다.
“시간을 끌겠다는 게 이런 의미인가.”
단 한 번의 발구름으로 수백의 살막 요원들을 장사지낸 목진이지만, 아직 저 멀리서 그를 향해 구름처럼 몰려오는 이들의 수는 그 몇십 배가 넘는다.
말 그대로 고기방패가 되어서라도 시간을 끌겠다는 의지. 저 멀리서 달려오는 살막의 요원들을 보고 미간을 좁힌 채 잠시 생각하던 목진이 그의 품에 안겨있는 순자를 향해 물었다.
“순자야. 네 숨을 참는다면 얼마나 참을 수 있느냐?”
“네? 안드로이드는 숨 쉴 필요 없는데요. 그런데 갑자기 그건 왜 물어보세요?”
“아까 그자가 말하지 않았느냐, 도시 간 이동을 통제하였다고.”
“그렇죠. 아마 비상용 탈출선에도 수작을 부려뒀을······어, 설마?”
아니겠지? 순자는 불현 듯 머리를 강타한 생각에 저도 모르게 목진을 보고, 도시를 덮고 있는 돔을 보았다.
도시 밖에서는 시속 수백 킬로미터를 가볍게 넘어가는 거대한 유독성 태풍이 불어 닥치고 있었다. 데스메탈 시티라는 이름에 걸맞게, 하루가 멀다하고 생성되는 제멋대로인 유독성 폭풍은 이곳의 명물 중의 하나였다.
순자의 눈이 거세게 흔들렸다.
목진이 태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항구도시까지 그리 멀지는 않으니, 거 그냥 뛰어가면 그만이지 않겠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