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smic Heavenly Demon 3077 RAW novel - Chapter (15)
우주천마 3077-14화(15/349)
3. 녹림추격전 Wormhole Chase (3)
3. 녹림추격전 Wormhole Chase (3) – 우리 중에 밀항자가 있어
그것은 기묘한 구슬이었다.
지금까지 그가 보아온 거대한 우주를 가둔 듯 별과 별구름이 들어있는 검은 구슬들.
“허어······.”
황궁에 있는 보물을 모두 가져온들, 전설 속 만옥야명주를 가져온들 과연 삼라만상을 담은 이 구슬들의 기이한 아름다움에 비할 수 있을까. 우주를 처음 보았을 때도 느꼈던, 불가사의한 삼라(森羅)의 아름다움에 눈을 빼앗긴 목진은 우주선 콕핏을 뚫고 나올 듯 착 달라붙어 있었다.
“저게 다 불안정 웜홀이라니 보기만 해도 소름이 돋네.”
물론 그것은 난생 처음 우주에 나온 고대인인 목진의 이야기였고, 지겹게 우주를 쏘다닌 세령 일행에게는 보기만 해도 등골이 쭈뼛 서는 지뢰밭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지만 말이다.
“일단 비교적 안정적인 내부 웜홀들을 몇 번 통과하면서 흔적을 지우고, 외부로 연결된 웜홀로 빠져나가면 돼.”
“방법은 아는데······그걸로 추격을 뿌리칠 수 있을까요?”
“전에도 세 번쯤 해본 적 있는데, 세 번 다 통했어. 쟤들도 의뢰받은 거니까 당장 포위망만 벗어나면 계속 따라오진 않을 거야.”
“······이 짓을 전에도 해 봤다고요? 그것도 세 번이나?”
순자가 경악이 서린 얼굴로 세령을 바라봤다. 아무리 바운티 헌터가 목숨 걸고 하는 짓이라지만 세 번은 좀 너무하지 않은가. 도대체 자신과 만나기 전까지는 어떤 삶을 살았던 건지. 순자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일단 방법은 알려줬으니까 웜홀 분석이랑 조종은 너한테 맡길게. 부탁한다 순자야.”
“최선을 다 할게요.”
세령의 말에 대답한 순자가 컨트롤 유닛에 손을 올려놓았다. 눈을 가만히 감은 채 탐지장치에서 들어오는 수많은 웜홀 데이터들을 읽어들이며 분석하는 순자. 모든 능력을 데이터 분석에 돌린 만큼 당분간은 외부의 자극에 반응조차 하지 않으리라.
“휴,”
세령은 한시름 놓은 표정으로 좌석에 주저앉았다. 자기 구역을 벗어나면서까지 추격을 이어올 수는 없으니, 이대로 외부 섹터로 빠져나가기만 하면 마교와 녹림의 추격은 어렵지 않게 뿌리칠 수 있으리라. 그리고 잠잠해질 때까지 이쪽 구역에 얼씬도 하지 않으면 끝이었다.
갑자기 들어온 외부 메시지 전송만 아니었다면, 분명 그랬을 터였다.
삑. 하는 소리와 함께 전면 콕핏 패널에 메시지가 떠오른다. 웜홀 데이터를 분석중인 순자를 제외한 전원의 시선이 한 곳에 모였다.
그리고, 누가 건드리지도 않았는데 메시지가 열렸다.
– 의혈곡에서 기다리고 있길 잘했군요.
그들을 보며 서늘한 미소를 머금고 있는, 검은 정장을 입고 안경을 쓴 날카로운 인상의 남자. 세령의 입에서 그의 이름이 흘러나왔다.
“······부월흑표 김성범.”
– 반갑습니다. 염화쾌검 세령 소저. 이렇게 만나는 것은 처음이군요. 되도록이면 이런 자리가 아니라 웃으면서 만나길 바랬는데 말이죠.
김성범은 나찰이라는 말 대신 염화쾌검이라는 별호로 세령을 칭하며 나름 젠틀한 모습으로 인사를 건넸다. 물론, 세령의 입장에서는 한층 재수없을 뿐이었지만 말이다.
“퍽이나.”
대놓고 치러 온 주제에 예의는. 세령이 한쪽 입꼬리만 끌어올리며 조소를 날렸다. 예상한 반응인 듯, 김성범은 그녀의 도발을 가볍게 흘러넘기며 입을 열었다.
– 설마 정말로 여기 올 줄은 몰랐습니다. 당신의 과거 이력을 찾아봤던 게 도움이 될 줄은 몰랐네요.
“······여자 뒷조사 하는 남자는 인기 없는데.”
– 나쁜 남자도 꽤나 수요가 있지요.
“어쩐 일로 바쁘신 몸인 채주까지 직접 납셨나. 영업 때문에 온 거라기엔 너무 거창하지 않아? 식구들 다 끌고 올 정도로 내가 부자는 아닌데 말이야.”
– 영업이라. 그렇게 나오시깁니까?
김성범이 피식 웃었다. 완전히 승기를 잡았다고 확신한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여유에서 나오는 반응이었다.
두 사람은 지금의 대화를 통해 확신했다. 이것은 결코 평범한 녹림의 영업행위가 아니다. 라고.
먼저 포문을 연 것은 김성범이었다.
– 좋습니다. 우린 태생이 도적이라 복잡한 건 싫어하죠. 단도직입적으로 용건부터 전해드리겠습니다. 소저께서 숨겨주고 있는 아이, 그 아이만 넘겨주신다면 소저는 털끝 하나 건드리지 않고 보내드리죠.
김성범의 말에 세령의 눈썹이 미세하게 꿈틀거렸다. 예상을 완전히 벗어난 반응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갑자기 당황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다. 세령은 여전히 여유로운 모습을 유지한 채 능청스럽게 어깨를 으쓱였다.
“아이? 우리로서는 금시초문이야. 아무래도 뭔가 착각한 것 같은데, 천하의 흑표채도 일처리가 꼬일 때가 있나보네?”
하지만 김성범은 세령의 말에 원하는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 대신, 한층 차갑게 표정을 굳힌 채 서늘한 안광을 빛내며 패널 너머의 그녀를 노려볼 뿐이었다.
– 소저, 저희 뿌리가 산적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바보는 아닙니다. 설마 아무런 증거도 없이 무림의 동도를 핍박하겠습니까?
단순한 어림짐작이 아니라 확신이다. 세령은 더 이상 오리발을 내밀어 봐야 의미가 없다는 것을 직감했다. 더 이상 모르쇠로 일관했다간 상대를 자극할 뿐일리라.
일단은 시간부터 벌자. 세령은 감정을 얼굴에 들어내지 않으려 애쓰며 입을 열었다.
“생각할 시간을 줘.”
– ······5분 드리겠습니다.
김성범의 말과 함께 화상 패널이 꺼졌다.
조졌다. 세령이 좌석에 털썩 주저앉으며 넋이 나간 얼굴로 중얼거렸다. 아직 상황 파악이 안 된 로버트가 황급히 세령에게 물었다.
“누님,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죠? 아이라뇨?”
“나도 도저히 감이 안 잡힌다. 정황상 아마 그 천령상단의 소단주라는 애가 우리 우주선에 숨어든 것 같은데······이게 말이 돼? 우주선에 우리 말고 누군가가 숨어들었다면 순자한테 들키지 않을 리가 없는데.”
직접 우주선에 접속해서 조종하는 동안 우주선 내부는 완전히 순자의 통제 아래 놓인다. 그런데 여태까지 알아채지 못했다고?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때, 잠자코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목진이 입을 열었다.
“흐음······. 내 짚이는 구석이 하나 있다마는.”
“뭐?!”
세령과 로버트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세령이 성큼성큼 목진에게 다가섰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짚이는 부분이라니. 설마 우리 몰래 외부인을 우주선에 들여온 거야? 정신 나갔어요?! 지금 자기가······.”
“진정하거라. 내 설명을 할 테니.”
목진이 가볍게 손을 들어 세령의 입을 다물게 했다. 목진이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처음 우주선에 돌아왔을 때부터, 기감에 묘한 것이 걸렸느니라.”
“아마 그게 그 소단주라는 아이겠군요. 그런데 대협, 어째서 미리 말씀해주시지 않았습니까?”
역시, 고대의 절대고수답게 목진은 이미 침입자의 존재에 대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어째서 그 존재를 자신들에게 알리지 않았을까? 로버트의 물음에 목진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게 사람의 기척이었다면 말하지 않아도 응당 너희에게 알렸겠지. 다만 그 기색이 사람의 것이라기엔 너무 희미하고 보잘것 없어서 너희가 말한 과학기술인지 뭔지일 거라 생각했었느니라.”
반 평생을 그 치열한 무림에서 살아남은 목진이다. 한때 그의 목을 노리는 자객만 백이 넘었거늘, 고작 주변의 기척을 감지하는 것쯤은 숨을 쉬듯 자연스럽게 행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감지한 기색이 사람의 것이 아니라면 굳이 경계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간의 학습으로 잘 모르는 것은 그저 미래의 특이한 기술일 거라고 넘겨짚는 버릇이 생긴 목진이었기에 따로 세령에게 이야기를 꺼낼 만큼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 것이다.
세령과 로버트는 할 말을 잃고 입을 다물었다. 황당하기 그지없는 이야기였지만, 한편으로는 납득이 갈 수밖에 없는 이야기였다.
“끄으으응.”
세령이 앓는 소리를 냈다.
여기서 괜히 책임을 추궁해 봐야 이 상황을 극복하는 데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금 중요한 건 책임소재가 아니라 당장 눈앞에 닥친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하는가. 였으니까.
벌써 시간은 김성범이 말한 5분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마음같아선 우주선에 숨어든 쥐새끼부터 잡아 족치고 싶었지만, 부족한 시간이 발목을 잡았다.
“차라리 상황을 설명하고 그 소단주라는 애를 넘기면 어떨까요? 소단주를 넘기면 그대로 보내준다고 하는데.”
안 돼. 세령은 로버트의 말에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자세한 사정은 몰라도, 마교에서 비밀리에 추진하는 일이야. 그 내막에 연관됐는데 재들이 잘도 우리를 보내주겠다?”
“아······.”
“이 일에 엮인 이상, 우린 이미 빠져나갈 기회를 잃어버린 거야.”
운이 좋아도 강제연금이고, 운이 나쁘면 살인멸구(殺人滅口)다. 암담한 상황에 로버트가 넋 나간 얼굴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하지만 세령은 포기하지 않았다. 고작 이런 자리에서 삶을 체념하기엔 그녀는 아직 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이 있었으니까.
“방법이 없네.”
이렇게 된 이상 세령 일행은 무슨 수를 써서도 마교와 녹림의 추격을 뿌리쳐야만 했다.
세령은 흘긋 순자를 바라봤다. 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도 모른 채 웜홀 데이터 분석에 몰두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아직 시간은 조금 더 걸리는 모양이었다. 세령이 가볍게 혀를 찼다. 결국 할 수 있는 건 하나뿐이었다.
“쯧. 내가 어떻게든 시간을 버는 수밖에.”
– 결정은 내리셨습니까?
마침 시간이 다 되었는지, 세령이 마음을 잡기 무섭게 패널에 화상통신이 뜨며 김성곤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여전히 재수 없도록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결정? 당연히 내렸지.”
세령이 답했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는, 확신에 찬 얼굴이었다.
그녀는 가만히, 상대를 향해 길쭉하니 잘 빠진 중지를 들어올렸다.
“내 대답은 이거야.”
뻔뻔하리만치 당당한 태도. 김성범은 이미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당황하지도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 협상 결렬이군요. 행운을 빌죠.
세령은 대답 대신 패널을 조작해 통신을 종료했다. 이젠 더 이상 물러설 곳도 없었다. 이미 우주선의 주위로 녹림의 우주선들이 하나둘씩 포위망을 좁혀오고 있었다.
그녀는 조종석에 앉아서 수동 조종 모드를 실행시켰다. 익숙한 인터페이스가 그녀를 반겼다.
“순자랑 만나고 난 뒤로는 처음인가? 거기 두 사람. 벨트 매요. 지금부터 꽤 흔들릴 지도 모르니까.”
“그래. 내 너를 믿으니 잘 해 보거라.”
“누님만 믿겠습니다.”
목진과 로버트가 각자의 자리에 앉았다. 이제부터는 오로지 세령의 손에 일행의 운명이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세령은 급발진 버튼에 손가락을 올린 채 중얼거렸다.
“어디, 따라올 수 있으면 따라와 보라고.”
나도 나름 우주선 조종은 자신 있거든?
사나운, 하지만 그 이상으로 상쾌한 미소가 세령의 입가에 맺혔다.
정보)
세령은 순자와 만나기 전부터 의혈곡에 자주 드나들었다.
목진은 우주선에 숨어든 소단주를 감지했지만, 사람의 것처럼 느껴지지 않았기에 그냥 신경을 껐었다.
녹림에서 5분이 아니라 10분의 시간을 줫다면 숨어든 소단주는 빈사상태로 녹림에 보내졌을 것이다.
녹림은 처음부터 세령 일행을 고이 보내줄 생각이 없었다.
순자와 만나기 전까지 바운티 헌터 일을 홀로 해 온 세령의 우주선 조종실력은 굉장히 뛰어난 편에 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