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smic Heavenly Demon 3077 RAW novel - Chapter (156)
우주천마 3077-155화(156/349)
24. 마교습격 Diabolist‘s Castle Invasion (7)
24. 마교습격 Diabolist‘s Castle Invasion (7) – 버텨라
솔직히 말하자면, 그리 돈독한 부녀관계는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그야 하나뿐인 자식은 나 몰라라 하고 여자 후리는 데에만 관심을 가지던 아버지를 어떤 딸이 사랑하고 존경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고 천령상단의 상단주로서 유능했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자잘한 이득들은 볼 줄 알았으나 꼭 커다란 사고를 쳐서 그 이득들을 다 까먹었으니까.
사실상 샤르마 가문의 몇 안 남은 가신들은 라지가 아닌 유진에게 상단의 미래를 베팅하고 있는 게 현실이었다.
사고뭉치 상단주와 유능한 후계자.
라지 샤르마와 유진 샤르마의 관계는 딱 그 정도뿐인 관계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결코 그가 허무하게 죽어도 괜찮은 존재라는 의미는 아니었다.
“아······?”
유진 샤르마는 절명하여 스르륵 무너지는 부친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
적지인 마교에 압송된 뒤로 언제든 죽을 수 있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그녀가 생각했던 것은 이렇게 허무한 형태의 죽음은 아니었다.
“갑자기 이게 무슨 짓입니까!?”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종리택이 벌컥 일어섰다. 그의 얼굴에는 당혹스러움과 분노의 감정이 떠올라 있었다.
삼호의 서늘한 눈동자가 종리택을 향했다.
“사정이 바뀌었다. 지금부터 샤르마에 대한 ‘설득’은 내가 일임한다.”
“그런······분명 제게 맡겨주시기로 하지 않았······!?”
하지만 종리택은 그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어느 새인가 그의 목젖 아래에 일렁이고 있는 장강기검 때문이었다.
“사정이 바뀌었다고 했을 텐데.”
순간, 폭발적인 살기가 삼호로부터 흘러나왔다. 한쪽 팔이 부상당한 상태임에도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진심의 살의. 종리택의 입이 덜컥 굳었다.
“네놈에게 구구절절 설명할 시간은 없다. 입 닥치고 나가있도록. 불만이 있다면 일호에게 가서 따져라.”
철저하게 힘으로 밀어붙이는 삼호에게 압도된 종리택으로부터 손을 거둔 삼호가 성큼성큼 걸어 멍하니 제 부친의 시체를 보고 있는 유진에게 다가갔다. 더운 피로 젖은 그의 손이 우악스럽게 그녀의 목을 죄였다.
“컥!”
“네겐 불행한 일이지만, 조금 전 말했듯이 사정이 바뀌었다. 미리 말하자면 다소 강압적인 방향으로 협조를 구하게 될 텐데, 혹시 지금이라도 본교의 행사에 정식으로 협조할 생각이 있나?”
목이 죄여드는 고통 속에서, 유진은 제 아비의 원수를 노려보았다. 독기 가득한 눈과 얼음장처럼 차가운 눈이 허공에서 얽혔다.
삼호가 말했다.
“없나 보군.”
더 이상 협상의 여지는 없을 거다. 그의 입가에 소름끼치는 미소가 걸렸다.
“애새끼 치고는 제법 잘 버티는군. 딴에는 고대 가문의 후계자라 이건가.”
약 한 시간 뒤, 회의실을 나온 삼호가 덤덤한 목소리로 꺼낸 말은 그러했다.
그는 딱딱하게 굳은 얼굴을 한 채 대기하고 있던 종리택을 돌아보며 말했다.
“시체는 처리하고, 애새끼는 대충 씻겨서 내 집무실 옆의 방에 던져 놔라. 밀린 일을 처리하고 내일 아침부터 다시 작업을 시작할 테니.”
“······.”
“대답이 없군. 불만이라도 있나?”
삼호가 불쾌한 목소리로 물었다.
불만이야 차고도 넘친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라면 차라리 샤르마 부녀를 안전한 장소에 따로 억류해 두었다가 참룡검제의 습격을 막아낸 뒤에 천천히 회유를 하는 게 가장 상책이다. 어차피 부교주님이 32교구에 직접 행차하시려는 상황이 아닌가.
당사자가 직접 교섭에 나선다면 얼마든지 합의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만에 하나라도 일이 틀어져 협상이 결렬된다고 해도 최고 결정권자인 부교주의 선택에 따라 얼마든지 유연한 대처가 가능하고 말이다.
아무리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고는 해도, 엄연한 중립세력인 천령상단의 상단주를 임의로 처형하고 그 후계자를 고문한다는 것은 절대로 유익한 선택지가 아니었다.
당장 부교주에게 충성심을 어필할 수야 있겠다마는, 그 뒤처리를 어떻게 한다는 말인가. 이미 귀살대로 유진이 조직한 반 마교연합을 습격한 시점에서 천마신교가 감당해야 할 부담은 결코 적지 않은 상황이었다.
“······아닙니다.”
하지만 종리택은 그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어차피 삼호는 그의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을 거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나름 이성적으로 판단이 가능하다고 생각한 일호조차도 이성적으로는 그의 말이 옳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번 일을 강행한 마당에, 제 성과 챙기기에 급급한 삼호가 그의 말을 귀담아 들을 리가.
흥. 삼호가 종리택을 보며 콧방귀를 뀌었다.
“시간도 얼마 없는데 뒷감당을 우려해서 회유 따위를 하려고 했던 것부터가 문제였던 거다. 그따위로 무르게 일처리를 하니 32교구가 아직도 하위권에 머무르는 거지.”
조롱하는 말을 남기고는 자신의 집무실로 향하는 삼호의 뒷모습을 보며, 종리택이 불끈 주먹을 쥐었다.
‘지가 뭘 안다고······.’
하지만 일개 소규모 교구의 교구장인데다 무공실력도 부족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종리택은 이제는 익숙해진 무력감을 느끼며 회의식 안으로 들어갔다.
한 시간 가까이 고문이 자행된 장소치고는, 처음 그가 방을 나섰을 때와 크게 바뀌지 않은 모습. 라지 샤르마의 시체로부터 흘러나온 피웅덩이를 제외하면, 딱히 폭력적인 고문의 흔적 따위는 없었다.
하지만 철혈삼호 특유의 고문법을 아는 종리택은 그럼에도 굳은 얼굴을 풀지 않았다. 그의 시선이 의자에 쓰러지듯이 기대 있는 유진에게 향했다. 그의 눈가가 와락 찌푸려졌다.
“······쯧.”
고작 두 시간의 고문만으로 혼이 나간 듯 초췌해진 얼굴과 눈물과 콧물, 침으로 범벅이 된 얼굴. 소변조차 지린 채 고통스럽게 경련하고 있는 팔다리. 어딜 봐도 정상적인 상태가 아닌 모습이었다.
뇌심곡의 방계로부터 기술을 이전받은 삼호가 즐겨 사용하는 고문수단은 바로 통각신경의 조작. 후 불기만 해도 전신에서 불타는 듯한 작열통을 느끼게 만드는 것이다.
흔히 CRPS라고 불리는, 복합부위 통증 증후군을 일시적으로 부여하는 방식인 삼호 고유의 고문법은 천마신교 내에서도 정식 채택될 경우 인류정부로부터 금지명령이 떨어지는 것을 우려해 사용하지 않을 정도로 악랄한 고문법이었다.
고작 몇 분조차 참아내기 힘들다던, 무협지 속에나 나오는 전설 속 분근착골이 이러할까. 연구결과에 따르면 사지가 잘리는 고통이나 출산의 고통을 아득히 뛰어넘는 고통이라고 들었더랬다.
종리택은 자신이 들어왔음에도 반응을 보이지 않는 유진을 안쓰럽게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변명 같이 들리겠지만, 이런 건 천마신교의 방식이 아니야.”
부하를 시켜 처리해도 되는 일이지만, 종리택은 구태여 부하를 호출하는 대신 직접 팔을 뻗어 힘없이 늘어진 유진을 들쳐 업었다. 그의 옷이 지저분하게 더럽혀지고 있음에도 그는 개의치 않는 모양이었다.
적어도 그는 이 처참한 현실을 외면해서는 안 되었으니까.
그건 무림의 일에 휘말려 신세를 망치게 될 불쌍한 소녀에 대한 동정임과 동시에, 그것을 주도한 책임자로서 보이는 나름의 사죄였다.
그의 귓가에 희미한 목소리가 들렸다.
“······착한 경찰, 나쁜 경찰인가요.”
종리택의 몸이 멈칫했다. 그는 그녀를 돌아보지 않고 작게 말했다.
“정신을 잃지 않았다니 놀랍군.”
“협박은 괜찮고 고문은 아니라니······. 마교의 방식은 좀처럼 종잡을 수가 없네요.”
유진이 비꼬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 나쁜 놈이면 끝까지 나쁜 놈일 것이지 저 어중간한 태도는 또 뭐란 말인가.
“우린 정파가 아니니까. 협박해보고 안 통하면 죽이는 게 천마신교 방식이야.”
“당신은 죽이지 않고 설득하려고 했잖아요.”
확실히, 당근과 채찍을 능수능란하게 다루며 자신과 부친을 홀리던 그 말솜씨를 보면 며칠 안에 그의 설득에 넘어갔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오죽하면 보물고 내의 특급 비술은 절대로 세상에 다시 반출할 수 없는 것이 샤르마의 법이라며 완고하게 거절하던 라지 샤르마마저 종리택의 제안에 혹하는 모습을 보였겠는가.
흠. 종리택이 가볍게 콧바람을 불었다.
“안 죽이고 원만하게 해결하는 게 가장 깔끔하니까 그랬던 것이지. 필요하면 얼마든지 칼을 잡을 각오는 되어 있어.”
굳이 더 좋은 길을 놔두고 천마신교 감수성에 젖을 필요는 없다. 그리고 그는 그 길을 취할 수 있다. 종리택은 스스로의 능력에 대해 확신이 있었다.
그의 말을 들은 유진이 피식 웃었다.
“······당신은 별로 마교랑 어울리지 않네요.”
“나도 알아.”
종리택이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원래부터 천마신교의 출신이라 선택지가 없긴 했지만, 무공에 대한 재능 대신 내정의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 그에게 천마신교는 그리 잘 맞는 문파는 아니었다.
유진을 업은 채 조심스럽게 복도를 걸어 샤워장에 도착한 종리택이 간이 벤치에 그녀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네 아비의 시신은 잘 수습해 줄 테니 네 일만 신경 써라.”
“······호의는 감사드리지만, 수습해주신다 해도 과연 그때까지 살아있을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유진이 힘없이 웃었다. 전신이 불타는 듯한 신경의 작열통은 나름 대가 센 그녀조차도 도저히 버티지 못할 만큼 고통스러웠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죽지 않는다면, 아마도 그녀의 정신이 먼저 버티지 못하고 무너지리라.
종리택은 가만히 그런 그녀를 바라보더니, 문득 입을 열었다.
“······충고 하나 해 주지.”
나흘 뒤에 부교주님이 오신다. 그러니 그때까지만 어떻게든 버텨. 종리택이 유진의 귓가에 속삭였다.
“······왜죠?”
“협조를 이유로 부교주님을 설득하면 네 목숨 정도는 붙여줄 수 있으니까. 늦더라도 부친의 상 정도는 지켜야 할 것 아니냐.”
물론 그런 감성적인 이유에서 나온 제안인 것만은 아니었다. 그녀를 고문한 삼호한테 성과를 몰아주느니 기왕이면 자신과 손잡고 살릴 수 있는 이득이라도 건지라는 말을 돌려 말한 것이었으니까.
그리고 유진은 그러한 속뜻을 짐작하지 못할 정도로 어리석지는 않았다. 절망으로 물들어있던 그녀의 눈이 희미한 빛을 되찾았다.
“······긍정적으로 고려해 보죠.”
이대로 끝날 수는 없다. 분명한 의지가 깃든 그녀의 눈을 보고 희미하게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은 종리택이 몸을 돌려 샤워장 밖으로 나섰다.
샤워장의 입구에서 잠시 발걸음을 멈춘 종리택은 그녀를 돌아보지 않고 사무적인 어조로 말했다.
“몸을 씻는 것을 돕도록 부하를 보내지. 사흘 동안 잘 버틸 수 있기를 응원하마.”
고마워요. 유진이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녀는 힘이 들어가지 않는 손에 억지로 힘을 주어 주먹을 쥐며 다짐했다.
반드시 버텨낼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