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smic Heavenly Demon 3077 RAW novel - Chapter (164)
우주천마 3077-163화(164/349)
25. 지존독로 Lonely Road To Supreme (7)
25. 지존독로 Lonely Road To Supreme (7) – 천마의 자격
목진의 정체가 알려진 뒤, 직전까지만 해도 절대고수들이 서로를 향해 죽일 기세로 살초를 날려대던 분위기는 강제로 소강상태에 들어가게 되었다.
어쩔 수 없는 귀결이었다. 적대하던 상대들이 갑자기 아군을 상대로 시조님이라며 우르르 무릎을 꿇는 상황에서 다시 칼을 들 수도 없지 않은가.
심지어 그들 중 가장 큰 전력인 목진이 천마신교에서 그렇게 추앙하는 시조님이라지 않은가.
개중에서 특히나 그 입장이 난감한 것은 구파일방 출신인 용적산과 아수라 붓다였다.
‘허······이것 참 뭐라 할 수 없는 상황이군.’
‘아니 그냥 천마도 아니고 뭐? 마도천하의 천마? 부처님, 이 오묘한 인연의 실타래를 어찌 하오리까!’
그야 습격 전의 언행으로 정파 출신이 아닐 거라고는 예상하긴 했다마는, 해봐야 정사지간이나 온건 사파 계열의 고수로 생각했었으니까.
설마 그가 마도인인 것도 모자라 천마였다니.
그것도 그 유명한 마도천하의 천마라니.
아니, 마도인인 건 둘째치고서라도 아예 사문의 사서에 대놓고 먼 과거의 사조님들을 수십 단위로 죽였다고 분명하게 적혀있는데 그런 상대를 어찌 대해야 한다는 말인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또 마냥 적대할 수만도 없는 입장이었다.
사적인 친분은 잠시 제쳐두고서라도, 명분부터가 너무 부실했던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이천년이나 지났는데······.’
구파일방이 고대문파들 중에서도 특히나 역사와 전통으로 먹고사는 문파이긴 하다.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한 이삼백 년 전 일이면 모를까 이천년 전 일을 가지고 사문의 원수로 취급하는 건 명분치고는 너무 애매했다.
그리고 명분때문만이 아니라 현실적인 문제도 있었고 말이다.
‘지금 적대하면 나가리 되니까 침묵이 금이로다.’
지금까지 봐 온 목진의 성격을 보았을 때 설마 그런 일이 일어나겠냐마는, 만약 이 상황에서 마도인이랍시고 눈치 없이 칼을 겨눴다간 역으로 저쪽 편에 붙어버릴 가능성도 있었다.
일단 목진의 반응을 보고 생각하자. 암묵적인 합의를 이룬 습격팀의 고수들은 어쩐지 엉거주춤한 포지션을 잡은 채 목진과 천마신교 측의 반응을 살폈다.
얼마나 지났을까. 답답한 침묵을 깬 것은 목진의 깊은 한숨이었다.
“후우······.”
참으로 난처하기 그지없는 상황이었다.
내가기공조차 농담거리가 된 이 시대에 그를 아는 이는 더이상 존재치 않으리라 확신하고 있었거늘, 별안간 지금까지 아무 말 없던 밀교의 후예가 그의 정체를 알고 있을 줄이야.
목진은 유진을 바라보았다. 멍한 얼굴의 그녀는 저 자신이 무슨 말을 한 것인지조차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모양새였다.
그 그릇이 남다르다 한들 결국은 아직 여물지 못한 어린아이인가. 천기누설을 해버린 당사자가 저러하니 책임을 묻는 것도 우스운 꼴이다.
‘사고가 나도 하필 이런 상황에서 나다니, 설상가상이로다.’
문제는 하필이면 그것을 정파와 마도의 무인들이 있는 곳에서 대놓고 공표해버렸다는 것이다. 그야 부교주의 물음에 사실을 말함으로서 쐐기를 박은 것은 자신의 선택이긴 하다만, 이 상황에서 거짓으로 나는 그런 적이 없노라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목진은 한쪽 무릎을 꿇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있는 존을 보고, 고개를 돌려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정파의 고수들을 보았다. 그의 시선이 마지막으로 복잡한 눈을 하고 있는 세령에게 향했다.
‘어째 단단히 헛다리를 짚고 있는 듯한 눈초리로군.’
그러나 지금 중요한 건 세령의 오해를 풀어주는 것이 아니다. 당장은 지금 이 상태부터 해결해야 할 판이었으니까.
일단은 눈앞에 무릎을 꿇은 천마신교의 무인들부터 확실히 하는 것이 먼저다. 목진이 존을 향해 입을 열었다.
“고개를 들거라.”
존이 고개를 들었다. 목진의 모습을 담은 그의 눈은 경외와 동경, 그리고 기이한 열망으로 일렁이고 있었다.
“아직 더 하기를 원하느냐?”
아닙니다. 존이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기적에 기적을 더하여 본교의 시조님과 이리 만나게 되었는데, 먼 후예가 감히 사욕 따위를 시조님보다 우선하오리까.”
“하면 천령상단의 소단주는 놓아주겠느냐.”
“천마신교는 샤르마의 후예를 더는 쫓지 않을 것입니다.”
존이 확답했다. 다만 그것은 단순히 그의 사적인 판단은 아니었다.
어차피 전세가 기울 만큼 기울어 이 이상 발악하는 것이 의미가 없는 상황. 마도천하의 천마를 영접한 초유의 사태를 빌어 깔끔하게 물러날 수 있다면 천마신교로서도 더할 나위 없는 명분이었으니 말이다
“좋구나.”
목진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판세를 꿰뚫고 있던 목진이었기 때문에, 그는 천마신교에게도 자존심을 지키고 물러날 수 있도록 소소한 배려를 해줌으로서 자신을 존숭하는 먼 후예들에게 가벼운 보답을 한 셈이었다.
이제 주변을 물리고 조용히 대화를 하면 되겠지. 목진이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 전에 마무리 지어야 할 일이 남아있다.
그는 다시금 존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천마의 이름을 원한다 하였었지.”
“······예. 시조님.”
한참을 침묵하던 존이 마침내 목진의 말을 긍정했다.
마도천하를 이룩한, 가장 위대했던 천마의 면전에서 그 자리를 노린다고 말하는 것은 도무지 쉽지 않았다. 이백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오직 하나의 꿈을 쫓을 수 있도록 이끌어준 마음속 우상을 향해 도전하는 것과 같았으니까.
하지만 그는 그의 야망을 부정하지 않았다. 아니, 부정할 수 없었다.
천마(天魔)가 되고 싶다.
오로지 그 야망만이 무인 존 로갈의 전부였으니까.
훌륭하다. 목진의 입꼬리가 휘어졌다.
그는 눈앞의 사내가 천마 이목진을 우상과도 같이 깊이 흠모함을 느꼈다. 그리고 그가 품고 있는 오랜 집념도.
그렇기에 그는 천마가 되기 위해 자신의 우상에게조차 서슴없이 도전하리라 말하는 먼 후예의 태도가 참으로 기꺼울 수밖에 없었다.
‘만인지상의 이름을 거머쥐려면 그 정도는 되어야 자격이 있지.’
때문에, 그는 존 로갈이라는 사내의 의지에 찬사를 보내며 기꺼이 그에게 면죄부를 내어주기로 했다.
목진이 입을 열었다. 존이, 일행들이, 나아가 천마신교의 무인들이 모두 들을 수 있을 만큼 또렷한 목소리로.
“천마신교를 이끌었던 자로서, 내가 먼 미래의 후예들에게 남겨줄 수 있는 말은 하나뿐이다.”
그는 주변을 한 차례 둘러본 뒤, 다시금 존과 눈을 맞추며 말했다.
“나는 천마 이목진의 이름을 과거 속에 두고 왔다. 지금 너희의 앞에 있는 것은 그저 무인 이목진일 뿐이니, 너희는 누구든 천마의 이름에 도전하기를 망설일 필요가 없음이라.”
“······!”
존의 눈이 거세게 흔들렸다. 목진의 말에 담긴 속뜻을 바로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천마 이목진이라는 이름을 과거 속에 두고 왔다고 선언했다는 것은 곧, 천마신교의 시조로서의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겠다는 의미였으니까.
도대체 무슨 이유 때문에. 존은 혼란스러움을 숨기지 않고 목진을 향해 물었다.
“시조님······시조님께선 천마의 이름을 버리려 하십니까?”
버리는 것이 아니다. 목진은 존의 말을 부정하듯 가만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미 내가 천마임을 천하를 제패하여 증명하였는데 굳이 이 시대에 다시 그것을 증명할 필요가 있을까.”
“하면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까.”
“나는 천마이되 과거의 천마이니, 너희가 천마의 이름을 얻고자 하거든 구태여 내게 도전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그는 이미 이 시대에 깨어났을 때부터 천마 이목진이 아닌 무인 이목진으로서 살아가기로 마음먹는데, 이제 와서 굳이 천마신교의 시조라는 이름에 목을 매며 천마신교에 혼란을 줄 필요가 있을까.
한때 천마신교를 이끌었던 시조로서, 후예들을 위해 분명히 못박아야만 했던 일이었다. 적어도 목진의 생각에는 그러했다.
그는 끝없는 강함과 무(武)의 끝에 도달하고자 천마가 되었던 것이지, 천마신교의 마도천하를 위해 천마가 된 것이 아니었으니까.
“그러니 망설이지 말라는 의미다. 나 이목진이 그대가 천마의 이름에 도전할 자격이 있음을 인정했으니까.”
“아······!”
존은 자신을 올곧이 바라보며 말하는 목진의 목소리 하나하나가 제 심장에 새겨지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
그가 가장 듣고 싶었던, 갈망해 마지않던 말.
과거, 천마대전(天魔大戰)에서 전대 천마에게 패하여 천마의 이름에 도전할 자격을 잃은 뒤 그는 단 한 번도 그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단 한 번의 기회를 잡지 못하여 영영 그 자격을 상실한 것이다.
때문에 그는 전대 천마가 사망한 뒤, 천마신교의 교주가 되었다.
천마가 될 자격이 없다면, 하다못해 천마신교의 지존이 되리라.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강자존(强者尊)의 율법을 따르는 피라미드의 정점에 서리라.
결코 이룰 수 없는 꿈을 갈망하며, 그는 그렇게 스스로를 위안했다.
그런데 지금.
혼신의 힘을 다한 사투 끝에 그의 가장 위대한 우상이 그를 인정하고 있었다.
너에겐 자격이 있다고. 만인지상(萬人之上)에 도전할 자격이 있다고.
이백 년의 망집이 울컥 그의 눈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그의 우상을 향해 물었다.
“······천마대전에서 패하고, 천마신공도 익히지 못하였습니다. 헌데 시조께서는 제게 자격이 있다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그건 단지, 그의 자격을 재차 확인하고 싶었을 뿐인 물음이었다.
하지만 그는 알지 못했다.
그의 말을 들은 천마였던 사내가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었는지.
갈(喝)! 목진의 고함이 별안간 그의 전신을 뒤흔들었다.
목진은 그의 지척까지 다가와, 그의 멱살을 꽉 붙잡은 채 부리부리한 눈으로 말했다.
“이 어리석은 후학아! 그런 허례허식에 사로잡혀 지금껏 제 스스로를 가두고 살았더냐!”
목진은 화가 났다.
눈앞에 있는, 천마신교의 부교주라는 작자가 꺼내는 말들이 너무나 얼척이 없기 때문이었다.
무지렁이도 알 수 있는 가장 간단한 법칙만이 지배하는 천마신교에 누가 그딴 법을 만들었다는 말인가.
“천마대전 같은 건 처음부터 없었다! 천마신교의 법칙은 오직 강자존 뿐! 그딴 행사 따위가 네가 천마임을 증명하느냐? 천마임을 증명하는 것은 오로지 강함 뿐이거늘!”
목진은 혼란스러움을 담은 존의 눈을 똑바로 노려보며 속사포처럼 말을 이었다.
“그리고 천마신공이라? 어디 근본 없는 무공을 가져와서 천마신공의 이름을 붙이면 다인 줄 아느냐? 네가 천마가 되면 곧 네 무공이 천마신공이란 말이다!”
애초부터 천마신공 따위는 존재한 적이 없었다. 천마가 쓰는 무공을 부르는 말이 곧 천마신공인데, 도대체 언제부터 천마신공이라는 이름의 무공을 써야 천마로 인정받는다는 말인가.
참으로 통탄스러운 일이다. 목진이 존을 향해 으르렁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천마가 어째서 천마인 줄 아느냐? 가장 강하기 때문에 천마인 것이다. 끊임없이 도전받으면서도 압도적인 힘으로 십만교도 위에 군림하는 것이 천마라는 말이다.”
그것은 존의 생각을 그대로 관통하는 말이었다.
존이 물었다.
“그것이······천마의 자격이오?”
그래. 목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목진은 존의 멱살을 잡은 손을 놓고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그가 말했다.
“강해져라. 그리고 올라가라. 네게 굴복하지 않는 놈들은 모조리 쓰러트리며 끊임없이 위로 올라가라.”
지존이 될 자, 홀로 고독한 길을 올라야 하느니.
그리 말하는 목진의 눈은, 한때 십만 천마신교 위에 군림하던 마도지존의 위치에 걸맞은 눈을 하고 있었다.
“오르고 올라 더 이상 네 위에 선 자가 없거든, 너는 비로소 네가 천마임을 알게 되리라.”
그리고 위대한 시조의 선명한 목소리는, 노쇠한 사내의 영혼에 그 무엇보다도 깊게 파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