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smic Heavenly Demon 3077 RAW novel - Chapter (171)
우주천마 3077-170화(171/349)
27. 초감이계 Beyond the Sense (1)
27. 초감이계 Beyond the Sense (1) – 행성은잠술
북부 우주에 위치한 DMT-12 섹터에는 삼위일체(Trinity)라는 특이한 별명을 가진 천체가 있다.
절묘한 삼각을 이루며 뭉쳐 있는 세 개의 대형 행성계를 주축으로 한 성계 그룹.
순자를 대동한 목진이 전뇌공간 접속기 제작을 의뢰하기 위해 찾아온 곳은 바로 그 삼각형의 중앙에 있는 작고 어두운 소형 행성계인 암림성계(暗林星界)였다.
“흠······. 지나온 곳들과 달리 이곳은 유독 분위기가 어둑어둑하구나.”
작은 청색왜성을 가운데 두고 공전하는 두 개의 작은 행성들을 보며, 목진이 중얼거렸다.
밝고 번화했으며, 여러 인공천체들이 자리를 잡고 있는 세 대령 행성계들과 대비되는 어둡고 황량한 성계. 목진의 설명을 들은 순자가 우주선 접속기에 손을 얹은 채 사탕을 핥으며 대답했다.
“환경부터가 사람 살기 좋은 동네는 아니니까요. 위치는 참 좋긴 한데, 사람 살 만한 곳은 별로 없다더라고요.”
“행성들이 칙칙해보이는 것이 과연 그런 것 같긴 하구나. 그 기술자라는 자는 이런 곳에 홀로 살고 있다는 말이냐?”
“음······곧 알게 되실 거에요.”
사실 보이는 것처럼 휑한 동네는 아니거든요. 순자가 살짝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의미 모를 말에 목진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리고 목진이 그녀의 말뜻을 이해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 삑.
“음?”
별안간 패널 위로 떠오르는 알림. 그간 나찰즈의 우수전을 타며 그것이 항구에서나 쓰는 근거리 통신이라는 것을 알아챈 목진이 고개를 갸웃했다.
근거리 통신을 걸 정도면 적어도 우주선의 콕핏에서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일 것인데, 정작 눈앞에 보이는 것은 자신들뿐인 휑한 우주가 아닌가.
하지만 목진의 의문에도 불구하고 순자는 전혀 당황하는 기색 없이 통신을 수락했다.
– 정지. 정지. 잠시 검문 있겠습니다.
통신으로 모습을 드러낸 건 단정한 정장 상의와 후줄근한 츄리닝을 걸친 기묘한 차림새의 여성. 피곤이 뚝뚝 떨어지는 얼굴을 한 여성은 친절하고 공손하지만, 어쩐지 기계적이고 사무적인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 원활한 입장 절차를 위해, 신원과 소개자를 밝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항행등록코드 NA-CHAL-2. 낭인사업자명 나찰즈의 순자에요. 기공방 성계 공방명 직념공방의 마이스터 파비올라 정의 소개로 왔어요.”
– ······확인했습니다. 암림성계에는 처음이시네요. 입장신고서는 작성하셨나요?
“네.”
– 잠시 대기해주세요. 조회해 보겠습니다······확인했습니다. 동행자 신원 보호 신청이 되어있네요.
여성의 얼굴이 한층 꾸덕하게 구겨졌다. 매우 피곤하다는 기색이 패널 화면 너머로도 느껴지는 것 같았다. 초췌한 표정과 기계적인 미소가 공존하는 기괴한 표정으로 여성이 다시 입을 열었다.
– ······신원 보호 신청은 절차가 복잡한 관계로 특정 조건을 만족하셔야 신청이 가능하기에 미리 확인 절차에 들어가겠습니다. 혹시 동행자분께서 무림공적이시거나 백만 크레딧 이상의 현상금 보유자, 혹은 기타 을(乙) 타입 이상의 블랙리스트에 등재되셨나요?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목진이 눈을 꿈벅였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있는 것 같기는 한데, 어째 괴이한 느낌의 대화로고.’
우주선을 타고 온 것은 자신과 순자 뿐이니 동행자라면 자신을 말하는 것이리라.
그런데 갑자기 무림공적이니 현상금이니 하는 건 왜 묻는다는 말인가. 더군다나 말하는 기색을 보니 무림공적이라고 딱히 거부하는 기색인 것도 아닌 것 같으니 그 또한 괴이한 점이었다.
여성의 말에 순자가 태연한 얼굴로 대답했다.
“아뇨.”
– 죄송하지만 해당되는 사항이 없으시면 신청이 불가능하신데요.
“신청조건 마지막 항목에는 자의적인 판단으로 신청이 가능하다고 나와있지 않나요?”
순자의 말에 여성의 얼굴이 다시 꾸깃 구겨졌다. 작게 한숨을 쉰 여성이 포기했다는 듯 고개를 푹 떨구었다.
– ······알겠습니다. 우주선을 대리운행 모드로 놓고 대기해 주세요. 암림성계에 방문하신 것을 환영합니다.
통신을 끄려는지 손을 뻗는 여성. 그때, 순자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그쪽 카메라 각도 틀어졌어요.”
– 네? ······아 이런 씨바-.
통신 종료와 함께 송출화면을 확인하고 욕설을 내뱉는 여성의 목소리가 끊어졌다. 그러자 팔짱을 낀 채 잠자코 있던 목진이 가볍게 미간을 찡그리며 말했다.
“일이 어찌 돌아가는 것인지 잘은 모르겠다만, 안내원으로 보이는 여인의 태도가 참으로 불량하구나.”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하루에 수백 명이 넘는 사람들을 상대하는 사람들이거든요.”
그리고 녹림도 소속에 친절함을 기대하는 것도 좀 무리한 기대잖아요? 순자의 말에 목진이 눈썹을 치켜 올렸다.
“녹림?”
“네. 보세요.”
순자가 콕핏을 가리켰다.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온 행성이 콕핏 너머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목진은 순자의 손을 따라 행성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행성 위에 나타나는 작은 불빛. 그리고 점차 그 불빛이 사방으로 번져나가기 시작하는 모습을.
“······저건?”
우주궤도까지 올라온 수십 개 이상의 스테이션과 연결된 궤도 엘리베이터들을 거느린 도시행성.
그리고 그 주변을 벌떼처럼 가득 메우고 있는 우주선들.
문명의 불빛 따위는 조금도 보이지 않는 작고 초라한 행성은 그저 위장일 뿐. 눈앞에 드러난 진정한 암림성계의 모습에 목진의 입이 절로 벌어졌다.
“이게 도대체 무슨 조화란 말이냐?”
“가시광선 차단으로 외부에서 보이지 않게 위장한 거에요. 무림인 식으로 설명하면 일종의 은잠술(隱潛術) 같은 느낌?”
“천하를 다 담을 수 있다니, 무슨 놈의 은잠술이······.”
“과학의 힘이죠.”
“또 그놈의 과학이란 놈이냐?”
목진이 혀를 내둘렀다. 나름 심심할 때면 틈틈이 과학이란 학문에 대해서도 공부를 해보고 있지만, 그의 입장에선 워낙 파격적이기 그지없는 공부인지라 아직도 놀랄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순자가 콕핏 너머의 도시행성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게 암림성계의 본모습이에요. 서쪽 우주의 토투가만큼의 규모는 아니지만, 녹림채에서 직접 관리하는 동네로 북부 우주에선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대형 암시장이죠.”
“녹림이면 산적 놈들을 말하는 게 아니냐?”
“토투가도 그렇잖아요. 보통 암시장은 흑도의 전유물 같은 느낌이니까요. 세 대형 행성계의 지하경제를 잇는 일종의 허브 같은 거죠.”
“허어. 딱 봐도 보통 번화한 행성이 아니건만, 저런 곳을 관리하다니 산적놈들이 과연 출세하긴 한 모양이구나.”
어쩐지 그 도끼쟁이가 돈이 많아 보이더라니. 과거 잠시 놀아준 적이 있던, 서천검후의 아들인 부월흑표 김성범을 떠올린 목진이 저도 모르게 감탄했다.
이 시대의 경제관념에 대한 감각이 아직 부족한 목진이긴 하지만, 행성 하나의 경제적 규모는 그가 아는 중원 따위와는 비교를 불허한다는 것 정도는 안다. 저만큼 발전된 행성을 품을 정도라면 도대체 얼마나 거대한 자금을 움직인다는 말인가.
하지만 그의 말에 순자가 덧붙인 말은 한층 더 충격적이었다.
“출세요······? 음, 녹림채 경제구조에서 암림성계가 차지하는 규모는 5퍼센트······그러니까 오 푼 정도밖에 안 되는데요.”
“닷 푼······?!”
저만한 규모가 고작 닷 푼이라고? 기어코 목진이 소리를 높였다. 고대인인 그의 상식으로는 차마 가늠조차 할 수 없는 거대한 규모의 경제에 머리가 어질거릴 정도였다.
“뭐, 괜히 천마신교랑 같이 무림에서 경제력으로는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곳이 아니니까요.”
“허어······.”
당연하다는 듯한 순자의 말에 목진이 연신 감탄인지 탄식인지 모를 소리를 흘렸다. 그가 아는 녹림도는 개방 거지들과 다를 바 없이 땟국물 줄줄 흐르는 모습으로 튀어나와서 나름 무공 좀 배웠다 하는 무림인들에게 나가떨어지는 떨거지들이었으니까.
잠시 뒤, 눈앞에 보이는 광경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목진이 다시 순자를 돌아봤다.
“헌데 아까 그 신원 보호라는 건 왜 신청한 것이냐? 이 인식방해장치가 있으면 만사형통일 터인데.”
이제는 어느 정도 익숙해진, 얼굴 위로 흐르는 기의 흐름을 느끼며 목진이 물었다.
“암림성계는 기본적으로 무림공적이나 현상범도 자유롭게 받거든요. 괜히 하급자들 선에서 정보가 새가지고 분란이 일어나느니 차라리 암림성계를 관리하는 채주에게 미리 신고해서 불상사를 피하는 거죠.”
암림성계는 아예 대놓고 장사판을 연 토투가와는 달리 엄연한 지하경제의 허브이기 때문에 등록되지 않은 이를 보면 문답무용으로 체포할 정도로 출입인원을 철저하게 관리하는 곳이다.
다만 아무리 문파 내 교육을 잘 한다고 해도 규모가 거대한데다 근본이 흑도 조직인 만큼 부하들 관리가 잘 되지 않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 신원 보호 신청을 하지 않고 정보가 새게 되면 주요 고객층인 무림공적이나 현상범들을 노리는 이들이 몰려들어 트리니티 전체가 난장판이 될 게 뻔하므로 이러한 제도를 마련한 것이다.
“그렇군. 하긴 암시장에서 신분을 감추는 것은 기본적인 사항이긴 하지.”
목진은 대강 알아듣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과거에 한번 가본 적 있던 흑시(黑市)도 대충 비슷한 제도가 있던 것 같았다.
“아마 지금쯤이면 암림채주 쪽으로 저희 정보가 전달 됐을 걸요. 괜찮으려나 몰라.”
“무얼. 전뇌공간 접속기를 만들러 온 것뿐이지 않느냐.”
글쎄요. 저쪽은 그렇게 생각 안 할 것 같은데요. 순자가 말했다.
“그 유명한 참룡검제가 왔으니, 아무리 암림채주라도 긴장 좀 하지 않겠어요?”
“앙? 누구라고 했냐?!”
부채주의 보고를 들은 암녹색 장발의 여인, 암림채주 레오나 아나야가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다.
보고를 올린 부채주가 저도 믿기지 않는다는 듯 다시 보고를 읽으며 떠듬떠듬 말했다.
“그······참룡검제람다. 백룡대 죄다 잡아죽인 그 양반이요.”
“······진짜냐? 사칭 아니고?”
“일행으로 알려진 낭인업체 나찰즈의 안드로이드와 함께 있는 게 확인됐슴다. 본인일 가능성이 구십구 퍼센트 이상임다.”
아니 그런 거물이 여기에 왜 왔는데. 레오나의 동공이 마구 흔들렸다.
암림성계를 관리하는 입장에서, 절대고수의 등장은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반가운 일이 아니다.
치안 좋은 다른 동네랑 달리, 여긴 흑도의 암시장이니까.
아무리 암림채 쪽에서 주요 지역들을 관리한다곤 하지만, 온갖 정신 나간 또라이들이 미쳐 날뛰며 하루가 멀다하고 사건사고가 터지는 동네라는 말이다.
그야 조용히 넘어가면 더할 나위 없는 경우겠지만, 어쩌다 어떤 지지리도 운 없는 얼간이가 절대고수한테 시비를 걸어서 골목 하나가 초토화되는 최악의 시나리오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소리.
문제는, 참룡검제같은 거물은 암림채 수준에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절대로 아니라는 점이었다.
백룡대를 몰살시킨 그 참룡검제라면 골목 하나가 아니라 구획 전체가 날아가는 상황까지 상정해야 할지도 모른다. 레오네의 목덜미에 서늘한 한기가 내려앉았다.
‘따로 양해를 구하고 호위대라도 붙여야 하나?’
레오나의 머리에 가장 떠오른 생각이었다. 어찌 되었든 문제가 터질 빌미를 주지 않으면 그만이지 않은가.
전대 암림채주에게 물려받은 매뉴얼에도 절대고수가 뜨면 무조건 호위대 붙여서 문제 안 터지게 하라는 내용이 있었고 말이다.
그러나 그 방법에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다.
‘하필이면 왜 이런 타이밍에······.’
레오나의 눈이 흘긋 그녀의 앞에 앉아있는 손님을 향했다.
그녀가 알기로, 분명 눈앞의 손님은 참룡검제 이목진과 적대관계에 있었으니까.
설마 곧바로 참룡검제와 싸우겠다고 벌떡 일어서진 않겠지만, 참룡검제에게 호위대를 붙이며 손님의 기분이 상하게 만들고 싶진 않았다.
절대고수조차 우선순위에서 밀릴 정도로, 이 손님은 그녀에게 정말로 중요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는 레오나.
그때, 그녀의 눈앞에 앉아있던 손님이 입을 열었다.
“······이 대협께서 여기에 오셨다고?”
어라? 레오나가 색이 다른 두 눈을 깜박였다. 손님이 보이는 반응이 어째 그녀의 예상보다는 영 달랐기 때문이었다.
적에게 향하는 적의는커녕, 손님의 목소리에선 되려 약간의 친근함마저 느껴지는 듯 했다.
“이것 참 우연이군. 이 대협께 인사를 드리러 가보려 하는데 같이 가겠나? 아나야 채주.”
어쩐지 들뜬 목소리로 손님, 흑표채주 김성범이 그녀에게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