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smic Heavenly Demon 3077 RAW novel - Chapter (175)
우주천마 3077-174화(175/349)
27. 초감이계 Beyond the Sense (5)
27. 초감이계 Beyond the Sense (5) – 누구냐! ······어서오세요.
공방을 나서 숙소로 돌아오는 길, 순자가 목진을 돌아봤다.
“듣고 계셨죠?”
그래. 목진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예 은밀한 이야기도 아니니만큼, 고수인 목진이 순자와 무선의 대화를 듣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썩 내키는 요구는 아니더구나.”
철없는 손자를 말리고 싶은 마음은 이해한다만, 어린아이도 아니고 자랄 만큼 자란 성인의 일이 아닌가. 아무리 철이 없다 한들, 저 스스로 무인의 일을 걷겠다 선택한 이의 앞길을 막아서는 일은 그리 마음에 드는 일이 아니었다.
그러다 객사한다 해도 결국 저 스스로의 선택이 아닌가. 그것이 본디 무림이란 곳의 순리였다.
그럴 줄 알았어요. 다소 부정적인 뉘앙스가 담긴 목진의 말에 순자가 어느 정도 예상했다는 듯 작게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곧바로 싫다며 거부하는 것보다는 나은 반응이다. 적어도 설득의 여지는 있다는 의미였으니까.
“그래도 저는 웬만하면, 목진 님이 협조해주셨으면 좋겠는데요.”
“안다. 잠시 불평을 했을 뿐일 따름이니.”
의외로, 목진은 순자의 말에 피식 웃으며 답했다.
내심 솔직한 심정을 밝히자면, 돈이 부족한 것도 아닌데 구태여 번거로운 일을 하면서까지 지출을 줄여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긴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못 할 일인가 하면, 그건 또 아니었다.
생각과는 조금 다른, 의외의 반응에 순자가 두 눈을 깜박였다.
“······그럼 하실 거에요?”
“그래. 네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겠지.”
그것을 위해서 네게 곳간 관리를 맡긴 것이 아니더냐. 목진이 어깨를 가볍게 으쓱였다.
스스로가 재물에 관심이 없는 만큼, 돈을 버는 일은 물론 쓰는 일에도 별 재주가 없다는 것은 목진 스스로도 잘 알고 있다.
그는 지금까지 그는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쓰는 것이 재물이라고 생각해 왔으니까. 과거 강호를 주유하던 무림인들 사이에선 딱히 이상할 것도 없는 사고방식이었다.
하지만 이 시대는 달랐다.
자본주의인지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강호넷에서 세상 공부를 하다보니 재물이 넉넉하지 않으면 삶의 질이 대단히 비참해진다지 않은가. 그 소림이 재물 때문에 방장을 팔아먹을 정도였으니 오죽하랴.
재물에 대한 일은 아는 것이 없으니 적어도 돈 문제에 있어서는 전문가인 순자의 의견에 따르는 것이 맞다. 목진은 그리 생각하고 있었다.
다른 이유를 떠나서, 방금 전 무선의 공방에서 본 검이 제법 마음에 들었기도 하고 말이다.
예스. 목진의 협조로 얻게 될 이득을 계산한 손자가 주먹을 꾹 쥐었다.
“그러면 일단 돌아가서 사전조사부터 해 둘게요.”
“원하는 대로 하거라. 시간은 넉넉히 있으니.”
그리도 좋은지. 조금 들뜬 듯한 순자의 목소리에 목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 잘 되었다고 해야 하나.’
기왕 이렇게 된 것, 무선의 손자라는 자를 제압할 때 느꼈던 묘한 감각의 정체를 확인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목진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앞서나가는 순자를 따라 걸어가며 골목의 저편을 바라봤다.
– 천무지체(天武之體)를 타고났으니 네게는 장차 무림고수가 될 운명이 보이는구나.
어릴 적 암시장에서 마주친 선풍도골(仙風道骨)의 은거기인이 해인에게 한 말이었다.
흔하디 흔한, 하지만 그렇기에 되려 기묘한 신뢰감이 가는 말.
그는 약이라도 했는지 살짝 맛이 간 눈동자로 해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 자, 이 단돈 팔백 크레딧짜리 여래신장 비급 데이터칩과 함께라면 너는 천하무적이 되어 세계평화를 지키고 악을 멸하는 절세고수가 될 거란다.
전설의 여래신장이 고작 팔백 크레딧이라니. 그걸 도대체 어떻게 참는다는 말인가.
그렇게 해인은 생에 첫 사기를 당했더랬다.
그러나 그는 무림고수에 대한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간혹 보이는 무림인들간의 싸움을 보면 의외로 할 만해 보였으니까.
초식의 구성과 움직임이 눈에 훤히 보이는데 저걸 왜 못 피한다는 말인가.
그걸 보며 해인은 생각했다.
– 내가 해도 저것보단 낫겠다.
라고.
······물론, 그런 생각과 달리 현실은 시궁창이었지만 말이다.
– 하······분명 보이긴 보이는데.
눈이 따라가면 뭐하는가, 몸이 거기에 따라줘야지.
해인은 생각했다. 좋은 무공과 내공 드라이브가 받쳐주기만 한다면, 분명 자신의 재능이 폭발해서 절세고수가 될 수 있을거라고.
그리고 그걸 위해선 돈이 필요했다.
“젠장. 그 할망구, 돈도 많은데 구두쇠처럼 굴기는······. 나중에 더 크게 갚는다니까.”
“대장, 괜찮아?”
장장 하루 만에 기절에서 깨어난 뒤, 종일 끙끙거리며 누워있는 해인을 보며 부하들이 걱정스레 물었다. 해인이 명치를 부여잡고 낮은 신음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더럽게 아프긴 한데 버틸만은 해. 내가 잔챙이라서 봐준거겠지.”
“검도 안 뽑고 애들 정리하는 데 일 분도 안 걸렸어. 엄청 고수인가봐.”
“무선 할머니네 공방이 유명하잖아. 거기 올 정도면 고수들이겠지.”
그냥 고수 수준이 아니더라. 해인이 중얼거렸다.
“안 보였어. 아니, 어렴풋이 보이긴 했는데 암만 봐도 피할 길이 안 보이더라고.”
“······정말?”
“암림채주가 펼치는 초식도 잘만 보였는데, 이런 경우는 난생 처음이네.”
“······우리 그런 사람한테 덤빈 거야?”
간접적으로 암림채주보다 상위의 고수라고 말하는 해인의 말에 부하들의 얼굴이 해쓱해졌다. 원체 겁 없이 날뛰는 건달패라지만 그건 상대가 고수인지 아닌지 모를 때 이야기지, 대놓고 자신들을 몰살시킬 수 있는 고수한테 들이받는 건 자살행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으니까.
살았으니까 됐지. 해인이 손을 내저었다.
“어차피 한번 지나가고 말 자연재해 같은 거야. 운이 좀 나빴던 거라고. 다시 볼 일은 없을 테니까 잊어버려.”
어차피 흑도 밑바닥에서 운 나쁘게 고수한테 걸려 얻어터지는 일은 일상다반사다. 막말로 죽은 사람도 없으니 다 잘 된 일이 아닌가.
중요한 건 자신들을 때려눕힌 지나가던 고수가 아니라 무선에게 돈을 뜯, 아니 빌려오는 거다.
판돈이 커야 더 큰 돈을 따듯, 돈을 빌려서라도 쓸 만한 내공 드라이브와 무공을 익혀야 더 큰 돈을 벌 기회가 생길 게 아닌가.
다른 놈들처럼 내공 드라이브를 맞출 돈이 없어 노예계약이나 마찬가지인 형태로 사채를 쓰는 건 최후의 수단이다.
내일쯤 몸만 좀 추스르고 다시 할망구한테 가보자. 해인이 그렇게 말하던 와중이었다.
“······저기.”
달칵 아지트의 문을 연 채 빼꼼히 고개를 내미는 부하 한 명. 모두의 시선이 보초를 서고 있던 부하에게 향했다.
“뭐야?”
부하의 표정이 심상치 않은 것을 본 해인이 미간을 좁혔다. 그러고 보니 얼굴은 창백하기 그지없고, 이마에서는 식은땀이 줄줄 흐르고 있지 않은가.
부하가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게······대장을 찾아오신 분들이 계신데요.”
“나를?”
해인이 의아한 얼굴로 자신을 가리켰다.
“누가?”
하지만 그 물음에 대해 대답한 것은 부하가 아닌 다른 이의 목소리였다.
“누구긴요. 자원봉사 와 주신 고급 인생 플래너님들이죠.”
왠지 모르게 낯익은 소녀의 목소리와 함께 쾅하고 문이 열렸다. 해인과 부하들이 화들짝 놀라며 열린 문 안쪽을 들여다봤다.
그리고 그들은 보았다.
작은 금발의 안드로이드 소녀와 함께 조금 전까지 이야기하고 있던 무시무시한 고수가 두 눈을 부리부리하게 뜨고 서 있는 모습을.
“히끅······?!”
순자는 몰라도 목진의 얼굴을 알아본 부하들의 얼굴이 푸르죽죽해졌다. 해인의 두 눈이 풍랑 속의 조각배처럼 마구 흔들렸다.
해인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어떻게, 아니 그것보다 여긴 왜······?”
“두고 보자고 하셔서 찾아왔는데요?”
호쾌하게 문을 걷어찬 장본인인 순자가 팔짱을 낀 채 당당하게 말했다.
– 누구냐?
해인의 시선이 순간적으로 부하들에게 향했다. 다들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 와중에 유독 기절하기 일보 직전인 얼굴의 부하 두어 명이 보였다.
저놈들이구나. 해인의 얼굴에 낭패가 서렸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너무나 억울했다. 단지 의례적인 도주 멘트일 뿐인데 진짜로 아지트까지 쳐들어오는 건 너무하지 않은가.
“······아니 그렇다고 진짜 오는 건.”
“거기 대장 분? 이름이 해인 씨 맞죠?”
해인의 말을 끊고 순자가 그를 향해 손가락을 가리켰다. 해인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순자가 대뜸 다른 부하들을 향해 손짓했다.
“좋아요. 할 이야기가 있으니까 저분 빼고 다들 나가주세요.”
해인과 부하들의 입장에선 어안이 벙벙한 소리가 아닐 수 없었다. 다짜고짜 쳐들어오는 것까지야 그렇다 치더라도, 제 부하인 양 축객령을 내리는 건 또 뭐 하자는 경우란 말인가?
“갑자기 무슨······!”
“자기가 대장인 줄 아나······.”
부하들의 눈빛에 반항심이 깃들었다. 흑도의 자존심이 있지, 저런 꼬맹이의 명령에 네 알겠습니다 하고 굴복하는 꼴사나운 모습을 보일 수는 없었다.
그때 순자의 뒤에 서 있던 목진이 입을 열었다.
“번거롭게 만들지 말거라.”
목진의 주먹에 거무스름한 기가 서렸다.
그리고 그 정도면 그들이 굴복하기에 충분한 자격이 있었다.
“네네. 그럼요.”
“말씀들 나누세요.”
“혹시 차 필요하신가요?”
강기도 아니거늘. 순식간에 태세가 바뀐 부하들의 모습에 목진이 어처구니없다는 얼굴로 그들을 바라봤다. 순자는 흑도의 특성상 이런 반응이 당연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러려니 하는 표정이었다.
물론, 개중에서도 나름의 충성심이라는 게 있는 이들도 있긴 했다.
“부상 중이신 대장님을 위험에 노출시킬 수는 없어요.”
순자는 심드렁한 눈으로 끝까지 해인의 옆에 남은 부하들의 결연한 눈빛을 받아냈다.
그녀가 툭 내뱉었다.
“여러분이 있으면 뭐가 달라져요?”
“그건······.”
순간적으로 부하들이 입을 다물었다. 고수 앞에서 그들 같은 잔챙이는 숫자의 많고 적음이 의미가 없었으니까.
해인이 작게 한숨을 쉬었다. 도저히 반박할 수가 없는 무자비한 진실의 폭력에 부하들이 마구 폭행당하는 꼴을 보고만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됐으니까 나가 봐. 보니까 대화를 하러 온 거 같은데.”
“어머. 수틀리면 몇 대 쥐어박을 수는 있는데요.”
허락도 받았고. 아지트를 나가는 부하들에게 길을 비켜주며 넌지시 흘리는 순자의 말에 해인이 인상을 썼다.
“······할망구가 보냈구만.”
“뭐, 비슷한 거죠.”
순자가 어깨를 으쓱였다. 해인이 혀를 차고는 탁자 건너편의 소파를 향해 손짓했다.
“저기 앉으쇼. 내가 아직 몸이 다 안 나아서 일어나진 못하니까 양해해 주시고.”
“처음 봤을 때랑은 좀 다른 분위기네요?”
목진과 함께 소파에 앉으며 순자가 의외라는 듯 말했다.
사실 해인을 처음 봤을 때 떠올린 감상은 애들 만화에서도 멸종한 지 오래인 삼류 악당 그 자체였다. 진지하게 상대할 기분조차 들지 않을 정도로 형편없는 그런 존재 말이다. 순자가 유독 파격적인 언행을 보인 데에는 그런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그는 초조한 모습을 숨기지는 못할지언정 나름 패거리를 이끄는 리더의 모습을 조금이나마 보여주고 있지 않나.
그녀의 물음에 해인이 무어라 말해야 할지 생각하는 듯 잠시 눈을 돌리다가 대답했다.
“······장차 무림고수가 될 사람은 배짱이 두둑해야 하는 법 아니겠수?”
“아······네······.”
어쩌면 처음의 인상이 그리 틀리지는 않은 건지도. 순자가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그래서, 할망구가 뭐래요? 돈 주겠다는 소리는 아닐 테고.”
“아시겠지만, 무선 님은 그쪽이 무림에서 발을 빼기를 원하세요.”
아, 역시 그 쪽이었구만. 순자의 직설적인 말에 해인이 지긋지긋하다는 듯 머리를 벅벅 긁었다. 이미 비슷한 일을 몇 번이고 겪어온 듯한 모습이었다.
“그 얘기면 일 없수. 댁이 얼마나 고수던지 설득당할 생각은 솜털만큼도 없으니까, 시간 낭비 그만하고 돌아가쇼.”
타협의 여지라곤 조금도 보이지 않는 완강한 거절.
하지만 순자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진정한 설득에 있어서는 이제 시작일 뿐이니까.
“왜······.”
“그 전에.”
막 순자가 해인에게 질문을 하려던 순간, 잠자코 있던 목진이 그녀의 말을 자르고 대화에 끼어들었다. 두 사람의 시선이 목진에게로 향했다.
속을 알 수 없는 깊은 눈으로 가만히 해인을 바라보며, 목진이 말을 이었다.
“먼저 확인해볼 게 있느니라.”
그리고 해인은 볼 수 있었다.
그의 주먹이 불가해한 궤적을 그리며 번개처럼 그의 명치에 틀어박히는 광경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