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smic Heavenly Demon 3077 RAW novel - Chapter (176)
우주천마 3077-175화(176/349)
27. 초감이계 Beyond the Sense (6)
27. 초감이계 Beyond the Sense (6) – 개풀 뜯어먹는 소리.
결과부터 말하자면, 해인은 죽지 않았다.
상상도 못할 빠르기로 날아든 목진의 주먹이 정확히 그의 명치 바로 앞에서 멈췄기 때문이었다.
역시. 목진이 미간을 좁히고 중얼거렸다.
그는 분명히 보았다. 어설프긴 해도 목진의 주먹이 움직이는 방향을 따라 움찔거리며 반응하는 해인의 몸을.
단순한 우연이겠거니 했는데 정말로 한 수 재능이 있었을 줄이야. 목진은 해인을 보며 물었다.
“보였느냐?”
“아, 으, 느, 네?”
뒤늦게 자신이 죽을 뻔 했다는 것을 깨닫고 숨이 턱 막힌 해인은 혼이 나간 것 같은 얼굴로 되물었다.
“방금의 주먹이 보였느냐고 묻는 것이다.”
보였냐고? 그 터무니없는 게? 장난해? 해인의 입술이 달싹였다. 하지만 차마 목구멍에서 목소리로 나오지는 않았다.
보였느냐 보이지 않았느냐를 묻는다면, 그래. 보이긴 했다. 다만 거기에 조금도 반응하지 못했다는 게 문제지.
게다가 그 주먹이 그리는 궤적 또한 이해가 가질 않는다.
해인은 저 자신이 천무지체를 타고난 영웅으로서 무공을 이해하는 데 있어 비범한 재능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간 암시장을 쏘다니며 본 무림인들의 무공을 보면 초식의 동작과 궤적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직감적으로 이해되었으니 딴에는 그리 생각할 법도 했다.
S랭크의 암림채주가 펼치는 초식조차 이해할 수 있다면 그게 천무지체가 아니고 뭐란 말인가.
하지만 눈앞의 청년이 펼친 무공은 달랐다.
보이긴 보이되, 그 움직임을 이해할 수 없다.
그가 알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
그것이 천무지체로도 닿을 수 없는 지고한 경지의 무공이라는 것이었다.
머리로는 도대체 저게 뭔가 싶으면서도, 그의 육감은 그것이 인세의 영역을 뛰어넘은 극한의 무(武) 그 자체라고 외친다.
해인은 본능적으로 눈앞의 존재가 그가 생각하던 고수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영역에 있거나, 혹은 그가 익힌 무공이 절세신공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그는 목진을 바라봤다. 목진의 새까만 눈이 그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어디서부터 오는지 모를 존재감이 그를 옥죄었다.
어쩌면 양쪽 다일수도. 해인은 간신히 고개를 끄덕였다. 절로 공손해지는 말투는 덤이었다.
“보, 보이긴 보였는데······요, 그런데 이해는 잘······.”
“호?”
해인의 말에 목진의 눈이 이채를 띠었다.
“그렇단 말이지······. 과연 나름의 재주는 있어서 무림고수 타령을 하긴 했나 보구나.”
“그게 무슨 말이신데요?”
무언가 의미심장한 말에 순자가 물었다. 묘한 불안감이 배인 목소리였다.
제 능력도 모르고 철없이 무림인이 되겠다고 설쳐대는 건달 하나 설득하면 그만인 간단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무언가 일이 요상하게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목진은 그녀의 물음에 다시 자리에 앉으며 대답했다.
“관안(貫眼)을 타고났다는 말이다.”
“관안이요······?”
“무공을 꿰뚫어보는 눈이다. 눈 자체는 범인보다 안력(眼力)이 뛰어난 것 외에 별다를 게 없으나, 거기에 적당한 오성(五性)이 받쳐준다면 남들보다 빠르게 무공에 대한 파훼법을 찾을 수 있지. 무인으로서는 썩 축복받았다 말할 수 있는 눈이니라.”
물론 제 오성이 닿지 못하는 수준의 무공 앞에선 의미가 없지만 말이다. 목진의 말에 순자의 얼굴이 조금 심각해졌다.
“······그 말씀은 저 사람이 무공에 재능이 있다는 말씀이신가요?”
“엄밀히 말하면 무공이라기보단 무인으로서의 재능이 있다고 할 수 있겠지.”
아 이러면 나가리인데. 순자가 미간을 꾹꾹 눌렀다. 무림인 하지 말라고 설득하러 와서는 되려 자신감만 북돋아 준 꼴이 아닌가.
그녀는 처음부터 눈앞의 건달 두목이 천하제일의 재능을 타고나건 말건 티끌만큼의 관심도 없었다. 단지 말로건 주먹으로건 적당히 설득해서 무선으로부터 목진의 검 값에 대한 할인을 받는 것만이 목적이었으니까.
그런데 이야기가 이렇게 흘러간다면 일단 힘으로 설득한다는 선택지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된다.
다른 건 몰라도 무공에 대해서만큼은 진지함을 고수하는 목진이 무공에 대한 재능을 가진 해인으로하여금 무인의 길을 포기하도록 강요할 리는 없지 않은가. 아무리 목진이 순자의 선택을 존중한다고는 해도 거기까지 선을 넘는 것은 목진에 대한 무례였다.
“저······정말이, 아니 정말입니까?”
반면 해인의 경우는 목진의 말에 구세주라도 만난 듯 환희에 젖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로서는 뭔가 대단해 보이는 고수가 직접 무공에 재능이 있다고 인증해 준 것이었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역시······나는 틀리지 않았어······! 나는 천무지체였던 거야!”
“······그건 또 무슨 개풀 뜯어먹는 소리냐?”
기쁨에 겨워 전날 얻어맞은 고통조차 잊은 채 벌떡 일어나 소리치는 해인을 보며 목진이 뜬금없다는 듯 미간을 치켜 올렸다.
해인은 흥분한 채 신나게 입을 열었다.
“방금 귀인께서 그랬잖아요! 나한테 재능이 있다고! 아, 역시 그때의 거지는 결코 사기꾼이 아니었어! 천무지체를 타고나 무림의 평화를 수호하고 악을 처단하는 영웅의 운명을 타고났다니······.”
저 혼자 감격에 겨워서 주먹을 불끈 쥐는 해인을 보며 목진이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 와중에 호칭이 귀인으로 변한 것 또한 어처구니가 없는 건 덤이었다.
“재능이 있다고 했지만 천무지체인지 뭐시긴지라고 한 적은 없다. 그리고 아무리 봐도 네놈은 사기를 당한 게 맞아 보이는구나.”
예? 예상과는 달리 심드렁하기 그지없는 목진의 말에 해인이 눈을 치켜떴다.
“그게 무슨 소리세요, 귀인!”
“어기서 주워들은 게 있는 사기꾼에게 속은 모양이다만, 천무지체라는 건 호사가들이 지어낸 헛소리에 불과하니 당연한 소리지.”
그가 살던 시대에도 있던 유명한 헛소문이었는데 설마 이천 년이나 지난 지금까지도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니. 묘한 곳에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단어에 목진이 끌끌거리며 혀를 찼다.
어떤 무공을 배우든 달이 차고 기울기 전에 대성할 수 있는 체질이라니. 무공이라곤 알지도 못하는 호사가들이 하는 소리가 현실과는 한참 거리가 있긴 하다마는, 아무리 그래도 정도라는 게 있지 않은가.
애당초 무공을 제대로 익혀본 사람이라면 천무지체니 뭐니 하는 헛소리에 놀아날 일이 없거늘. 목진이 손가락으로 해인을 가리키며 다시 입을 열었다.
“눈과 오성은 잘 타고나긴 했다. 만약 근골까지 잘 받쳐주었다면 나름 고수 소리는 들었을 수도 있겠지. 허나 네놈의 근골은 범인의 것에 불과하지 않느냐.”
눈과 머리가 좋으면 뭐 하는가. 결국 몸이 따라주질 않는데. 목진은 냉정하게 해인이라는 인물의 재능을 평가했다.
체질이나 의지, 환경 등 무공을 익힐 때 중요한 요소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두 가지.
날 때부터 타고난 육체인 근골(筋骨). 그리고 무공에 대한 직관과 사고, 이해 등을 통틀어 뜻하는 오성(悟性)이다.
둘 중 하나라고 부족하면 무공을 익히기 좋은 체질이라고 할 수 없는데, 해인의 경우는 오성은 준수한 편이지만 근골의 수준이 평균 이하인 게 문제였다.
사내인지 여인인지 알 수 없는 중성적인 체형에 골격이 무공에 적합한 편도 아니고, 그렇다고 용력(勇力)을 타고난 것도 아니지 않은가.
“무공에 있어 무(武)는 싸우는 법이니 이는 곧 근골을 말하며 공(功)은 공부를 말함이니 곧 오성이라 할 수 있느니라. 헌데 내 살펴보니 네 근골이 무공을 익히지 못할 정도는 아닐지언정 무공을 익힘에 있어 좋다고는 할 수가 없어 보이는구나. 네 말마따나 천무지체니 뭐니 하는 건 당연히 아니고.”
“그런건 내공이 있으면 얼마든지······!”
“쯧쯧.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내공이 만능인 줄 아느냐? 네가 몸을 단련하고 너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무공을 익힐 것이라면야 상관없으나, 고수가 되고자 하기엔 좋은 여건이 아니라는 말이거늘.”
목진이 한심하다는 듯 다시 혀를 찼다.
물론 근골의 부족함은 노력과 내공으로 어느 정도 보완이 가능하고, 일정 경지를 넘어서 환골탈태를 겪게 되면 무공을 익히기 적합한 신체로 바뀌며 해결되긴 한다.
하지만 같은 실력과 내공이면 근골이 뛰어난 이가 유리할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환골탈태를 하는 것은 사실상 현실성이 없는 망상에 가까운 게 현실이다.
목진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순자가 재빨리 목진의 말 뒤로 끼어들었다.
“그러고보니 해인 씨는 내공 드라이브 적합도가 평균치 밑이라는 이유로 암림채 입문시험에서 탈락했다고 들었는데요.”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에 해인의 말문이 막혔다. 다른 건 몰라도, 내공 드라이브 적합도가 평균 이하라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기 때문이었다.
당장 스무살이 넘었는데도 아무 문파에도 입문하지 못한 이유에는 해인 자신이 중소문파에 들어가는 것을 거부한 탓도 있지만 그놈의 내공 드라이브 적합도가 부족해서가 아니던가.
“무인의 길을 걷지 말라고는 말하지 않겠다. 허나 네 근골이 무공을 익히기에 부족함이 있음을 분명히 알라는 것이다.”
냉정하게까지 들리는 목진의 말에 해인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자신의 재능을 알아주었기에 귀인이라 생각했건만, 결국은 할망구와 같은 소리를 하려고 온 것이 아닌가.
“당신네들이 아무리 그렇게 말해도 나는 무림고수가 될 거야! 내가 그렇게 만들 거니까! 당신이 그랬잖아, 나한테 재능이 있다고!”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귀인이었던 호칭이 다시 당신으로 격하되었다. 그러나 목진은 그저 담담한 눈으로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기개는 제법 칭찬할 만 하구나.”
분명히 그리 말하긴 했지. 그렇게 말한 목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헌데, 천하에 네놈 만한 재능이 어디 한둘인 줄 알더냐?”
그러나, 그 뒤를 이은 그의 목소리는 흥분한 해인조차 움찔 몸을 떨 정도로 차갑기 그지없었다.
“고작 관안을 타고나고 오성이 뛰어난 정도로 무공을 쌓는 일이 만만하게 보인다면, 어차피 거기까지 이르지도 못하고 객사할 팔자일 터이니 그 전에 의지를 꺾는 것도 자비가 될 수 있겠지.”
어디, 지금 이 자리에서 사지를 분질러 버리면 그 때도 방금 같은 소리를 지껄일 수 있겠느냐? 음산한 목소리로 쏘아붙이는 목진의 눈에서 검은 귀화가 피어올랐다.
전신을 옥죄는 지독한 살기. 해인의 몸이 제 의지와는 달리 덜덜 떨리며 등이 축축이 젖어왔다.
“으······흐······으······.”
제 의지와는 달리 눈물이 흘러나오고, 차갑기 그지없는 오한이 온 몸을 뒤덮는다. 압도적인 존재를 마주했을 때 느끼는 두려움이 그의 발끝을 갉아먹었다.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어 가쁘게 헐떡이는 그의 귓가에 목진의 목소리가 들렸다.
“포기하거라. 그리하면 편해질 것이다.”
더없이 음산하지만, 그 이상으로 달콤한 목소리였다.
하지만 해인은 지독한 공포에 휩싸이면서도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는 천무지체였고, 무림고수가 될 몸이었으며, 끝내는 영웅이 될 그릇이었으니까.
“절······대.”
그는 울먹이는 눈으로 눈앞의 두려움을 노려보며 간신히 입을 열었다.
“그래······. 힘으로는 꺾이지 않겠다는 말이로군.”
그의 대답을 들은 목진은 기세를 거두었다. 어느새 그의 얼굴에는 제법 감탄했다는 듯한 표정이 자리잡고 있었다.
일반인이기에 기를 싣지는 않았으나, 어지간히 무공을 익힌 무인이라도 금세 마음을 부러트릴 정도로 진득한 살기를 내보냈는데도 버텨낼 줄이야.
한낱 시정잡배인 줄 알았더니 이 정도의 기개를 품고 있다니. 비록 어리석음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지라도 그 기개는 범상한 것이 아니었다.
사내인지 여인인지는 아직 조금 헷갈리긴 하지만, 어쨌건 대장부다운 그 의지를 존중해 한 번의 기회 정도는 주어도 괜찮겠지.
“좋다. 내 너의 기개를 높이 사 기회 정도는 내려주마.”
내기를 하나 하지. 식은땀에 푹 젖은 채 헐떡이는 해인을 보며 목진이 말했다.
“내기······?”
“네가 이긴다면 네게 제법 쓸만한 무공과 내공 드라이브를 구해주도록 하지.”
“······무슨?!”
목진의 말에 해인의 눈이 찢어질 듯 크게 뜨였다. 그것이야말로 지금의 그가 가장 원해마지 않던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좋은 리턴이 있다면 그만큼의 리스크도 함께하는 것이 당연한 이치.
허나 내가 이긴다면. 목진이 말을 이었다.
그의 표정에는 감정이 보이지 않았다.
“너는 무공에 대한 미련을 접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