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smic Heavenly Demon 3077 RAW novel - Chapter (177)
우주천마 3077-176화(177/349)
27. 초감이계 Beyond the Sense (7)
27. 초감이계 Beyond the Sense (7) – 청호객잔
“······일이 그렇게 된 것이었군요.”
목진과 마주한 채 차를 한 잔 마시던 성범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레오나를 통해 목진과 순자가 동네 양아치 아지트 하나를 급습했다는 소식을 듣고 어리둥절한 느낌이었는데, 일이 그렇게 돌아갔을 줄이야.
“저희에게 언질을 주셨다면 도움을 드릴 수 있었을 것입니다만.”
자신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목진과 좋은 관계를 맺고 싶어 하는 레오나라면 지금 쓰는 삼중합금 검만은 못해도 꽤 준수한 검 정도는 충분히 선물해 줄 의향이 있을 테니까.
하지만 목진은 한 차례 고개를 가로저었다.
“되었다. 내가 쓸 검을 사는데 어찌 너희들에게 손을 벌리겠느냐. 가진 돈이 부족한 것도 아니고, 조금 아끼려고 품을 파는 것조차 남의 손을 빌리려 들면 도적놈 심보나 다름없지.”
“그······그렇군요.”
도적놈 중의 도적놈이라 할 수 있는 녹림채의 채주인 성범이 떨떠름하게 맞장구를 쳤다.
‘그리고 순자 양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만.’
성범은 할 말이 많지만 하지 않겠다는, 이래저래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는 순자를 보며 떠오른 생각을 애써 목구멍 깊숙이 집어넣었다.
목진은 차를 한 모금 마신 뒤에 담담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뭐, 그러니 너무 신경 쓸 필요는 없느니라. 어차피 우린 보름 동안 이곳에 머물며 시간을 지내야 하는 처지가 아니냐? 그동안 심심하지 않을 소일거리라 생각하면 될 일이다.”
“소일거리치곤 일이 좀 묘하게 돌아가고 있긴 하지만요.”
순자가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돈을 좀 절약해 보겠다는 자신의 제안에 목진이 협조해주는 것은 분명 고마운 일이긴 하지만, 어째선지 모르게 일이 점점 복잡하게 꼬이고 있으니 자신이 괜한 짓을 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 정도였다.
목진이 손바닥으로 그런 순자의 머리 위를 가볍게 토닥였다.
“걱정도 팔자로구나. 내가 내기에 질 것 같더냐?”
“목진 님한테 불리하잖아요.”
“무슨 내기를 하셨길래······?”
대련이요. 성범의 물음에 순자가 다시 한숨을 포옥 내쉬며 대답했다.
“내공과 상승무공의 사용을 제약한 채 대련을 해서, 목진 님의 옷깃에 닿는다면 저쪽의 승리. 닿지 못한다면 목진 님이 승리한다는 룰이죠.”
“고전적이군요.”
힘을 제약한 채 대련상대를 하고, 간단한 목표를 설정해서 그걸 달성하면 승리. 먼 원시무림 시대부터 실력의 격차가 큰 고수가 하수를 계도할 때 자주 사용하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불리하다는 것은 무슨 말입니까? 아무리 봐도 대협께서 불리할 이유는 없어 보입니다만.”
옷깃만 스쳐도 승리라고는 하지만, 까마득하다는 말로도 형용할 수 없는 압도적인 실력차를 생각하면 되려 목진 쪽의 승리확률이 훨씬 높을 것이다.
당장 성범 자신만 해도 조건이 다르긴 했지만, 끝끝내 목진의 옷깃 하나를 건들지 못하지 않았던가. 적어도 지금까지 들은 바에 의하면 목진이 유리하면 유리했지 절대로 불리한 조건은 아니었다.
하지만 순자는 성범의 말에 좌우로 고개를 흔들었다.
“그쪽에서 그냥 대련이 아니라 가상공간에서의 대련을 조건으로 걸었거든요.”
“그게 무슨 문제······아.”
고개를 갸웃하던 성범이 금세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내츄럴이라 정상적인 방법으로 전뇌공간에 접속할 수 없는 목진인 만큼 가상공간에 익숙하지 못할 테니까.
물론 해인이 그 사실을 알고 한 말은 아닐 것이다.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반사신경과 무공에 대한 오성을 타고났다고 하니, 아마도 자신의 재능을 극대화하고 근골 문제와 같은 단점을 최대한 숨길 수 있는 조건을 건 것이리라.
“그런데 해인이라는 사람의 재능이 그 정도로 뛰어납니까?”
성범이 목진을 돌아보며 물었다.
일반적인 측정 시스템으로 잡아낼 수 없는 재능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라면, 녹림에서 거두어 요긴하게 쓸 수도 있지 않겠는가.
일반 무인들과는 달리 특별한 개별관리가 필요하긴 하겠다만, 그 참룡검제 이목진이 인정하는 재능이라면 그 정도 귀찮음 쯤은 충분히 감내할 가치가 있었다.
하지만 목진은 그런 성범의 생각과는 달리 비교적 회의적인 입장이었다.
“흐음. 눈과 오성은 제법 뛰어난 편이긴 하더구나. 허나 근골은 무인으로서 가져야 할 기본중의 기본. 범용한 수준의 근골로는 도달할 수 있는 한계가 명확하니 그리 기대할 가치는 없느니라.”
“육체적인 부분이 문제라는 겁니까?”
“그런 셈이지. 물론 타고난 제 근골의 한계를 넘어서는 경우도 드물게 있긴 하니 절대라고는 말할 수는 없겠다마는, 대부분의 무인들은 제 한계에 도달하지도 못하니 그 치가 제 한계를 극복하는 일은 만분지 일에 불과할 것이니라.”
“음······그건 아쉽군요.”
성범이 목진의 말에 고개를 주억거리며 답했다. 하지만 대답과는 달리, 그의 얼굴은 전혀 실망한 기색이 아니었다.
목진의 입장에서야 당연히 근골이 모자란 시점에서 무인으로서 대성하기 글렀다는 결론이 나올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31세기가 아닌가.
모자란 오성은 보조두뇌로 커버하고, 허약한 체질은 약물로 치료하며, 부족한 내공은 내공 드라이브로 대신하는 31세기 말이다.
그리고 지금은 목진이 미처 알지 못하는, 사람의 신체를 강화하는 방법은 넘치고 넘치는 시대이고 말이다.
“그래도 한번 확인해보고는 싶으니, 대련할 때 저희가 참관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시면 좋겠군요.”
‘마음 같아선 바로 영입시켜보고 싶긴 하지만, 일단 대협과의 대련을 보고 한번 포텐셜을 가늠해보는 게 좋겠어.’
제대로 가능성을 보이기만 한다면 레오나에게 천거해서 암림채 소속으로 키우거나, 혹은 자신이 직접 흑표채로 데려가도 된다.
절대고수, 그것도 참룡검제 이목진의 움직임에 반응했다는 재능은 그만한 투자를 할 만한 가치가 있었다.
“뭐······그리 하거라.”
뭐 대단한 일이라고 참관까지 하는지. 목진은 다만 별 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리고 나흘 뒤, 목진과 순자는 접속기의 프로토타입이 완성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알버트 공방에 다시 방문했다.
“이게 프로토타입입니다. 안정성 테스트는 마쳤으니 한번 사용해 보시죠.”
“바로 사용할 수 있나요?”
“물론이죠. 다만 전뇌공간에 접속해도 감각기관 인풋이 안 먹히거나 움직임이 생각보다 느리게 움직일 수 있습니다. 의식 싱크로가 안 맞을 수도 있고요. 오늘은 전뇌공간에 접속한 채로 그런 버그들을 하나씩 디버깅하는 작업을 할 겁니다.”
“저게 대관절 무슨 소리더냐?”
목진이 아무것도 몰라요 하는 표정으로 순자를 돌아봤다. 순자는 알버트의 공학적 감수성 넘치는 말을 목진이 알아듣기 쉽도록 잘 풀어 설명해 주었다.
저 안에 들어가서 누우시면 됩니다. 알버트가 사람 하나가 들어갈 것 같은 기계 캡슐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직 외장 파츠들이 다 조립되지 않아 휑한 데다 장치 여기저기엔 여러 가지 케이블들이 붙어있어 여러모로 디스토피아적인 느낌이 드는 캡슐.
뭔가 거부감이 느껴질 법도 하건만, 디스토피아가 뭔지도 모르는 목진은 단순히 그냥 쇳덩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순순히 접속기에 들어가 누웠다.
“이러면 되오?”
“네. 이제 머리 쪽으로 나노봇들이 움직여서 패치가 될 텐데요, 호신강기 같은 건 거두어 주셔야 합니다.”
“으음. 노력해 보지.”
알버트의 말에 목진이 뭔가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나노봇이 눈에 보이지 않는 먼지 알갱이 같은 것들이라는 건 안다. 당장 그가 상대한 적들 중에서도 나노봇을 사용한 이들이 있긴 했으니까.
다만 문제는 호신강기를 거둔 채 인체의 가장 중요한 급소 중 하나라 할 수 있는 머리를 무방비하게 노출시켜야 한다는 쪽이었다.
무인으로서 언제나 급습을 대비하는 목진의 입장에서는 쉬이 받아들이기 힘든 요구.
그러나 목진은 불평 한 마디 없이 꺼림직함을 억누르고 은연중에 펼치고 있던 피부 위의 호신강기를 거두었다. 전뇌공간에 접속하기 위해서라면 그 정도의 꺼림직함 쯤은 충분히 감내할 수 있었으니까.
그만큼 목진은 지난날 직념공방의 마이스터 파비올라가 만들었다던 고대무협 감수성에 목말라 있었다.
그 외에도 목진에게 이런저런 주의사항 등을 열심히 설명한 알버트가 목진이 누운 캡슐의 덮개를 덮었다.
“좋습니다. 그러면 프로토타입 접속 테스트를 시작하겠습니다.”
접속 시작. 알버트는 그렇게 말하며 패널 위에 떠오른 실행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목진의 시야가 암전했다.
‘헛······!’
또렷하게 의식을 차리고 있음에도 아득해져가는 시야. 마치 끝도 없는 무저갱 속으로 떨어져 내리는 듯한 느낌에 목진의 몸이 움찔 떨렸다.
마치 어딘가 보이지 않는 곳으로 혼이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솔직히 말하자면, 조금 섬뜩함마저 느껴지는 감각이었다.
하지만 그런 감각을 느끼면서도 목진은 두려움 대신 감탄에 먼저 젖었다.
‘이런 체험을 하게 될 줄이야.’
그것은 그가 알지 못하던 또 다른 미지의 감각이었다. 깊은 명상에 빠질 때와는 다른 감각.
고요함과 평온함 대신 아득함과 변화무쌍함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기대한 적 없던 새로운 감각에 목진의 의식은 작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가 눈을 떴을 때.
그는 어쩐지 그리운 향취가 물씬 풍기는 객잔의 앞에 서 있었다.
“허······.”
피부에서 느껴지는 묘한 감촉에 목진이 자신의 옷차림을 내려다봤다. 이제는 기억도 가물가물한, 고전무협 식의 검은색 무복이었다. 질감이 조금 어색한 느낌이 들긴 했지만, 그래도 과거 그가 입곤 했던 무복의 느낌은 그대로였다.
“······이것이 정녕 환영에 불과하다는 말인가.”
목진이 진심으로 감탄을 담아 중얼거렸다. 모든 것들이 현실처럼 느껴지는데, 어떻게 이것이 한낱 가짜일 뿐이라는 말인가.
목진은 홀린 듯이 객잔에 다가갔다. 세로로 된 커다란 현판이 보였다.
청호객잔(靑湖客棧).
힘 있는 서체로 새겨진 이름을 멍하니 바라보던 목진이 한 손을 들어 현판을 쓸어내렸다. 오랜 비바람으로 연마된 나무의 감촉이 느껴졌다.
목진은 객잔의 문에 손을 얹었다. 그 안의 광경이 어떠할지, 그는 보지 않았음에도 알 수 있었다.
목진은 힘을 주어 객잔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리운 유년기가 고대인 이목진을 반겨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