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smic Heavenly Demon 3077 RAW novel - Chapter (182)
우주천마 3077-181화(182/349)
28. 검귀난입 Uninvited Challenger (4)
28. 검귀난입 Uninvited Challenger (4) – 용두사미
목진은 사내로부터 한 발짝 물러나 물끄러미 제 검을 내려다봤다.
‘······진지하게 임하라 하였나.’
저 스스로는 충분히 진지했다고 생각했거늘, 작금의 상황을 보니 꼭 그렇지만도 않은 모양이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검을 휘두른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이 전력을 다한 것이었냐고 묻는다면 글쎄.
그 일격은 최적이었으나, 최고는 아니었으니까.
전뇌공간이라는 환경 상 내공을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은 둘째치고, 목진 자신부터가 스스로의 힘을 조절하는데 그것을 어찌 전력의 일격이라고 할 수 있으랴.
그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검법(劍法)이란, 나아가 무공(武功)이란 저마다 추구하는 오의는 다를지언정 그 본질은 적은 힘으로 큰 힘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니.
극도의 효율을 추구하는 것이 무공의 본질일진대 상대를 쓰러트리는 가장 적절한 수를 취하는 것이 어찌 옳지 않겠는가.
그러나 지금, 눈앞의 상대가 쓰러지지 않았으니 잘못된 것은 상대의 역량을 가늠한 목진의 안목과 판단일 것이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용암처럼 들끓던 분노를 냉정히 가라앉힌 목진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여 수긍했다.
“그래. 네 말이 옳다.”
그는 진지하지 않았다.
만일 그가 진지하게 사내의 목숨을 끊으려 하였다면, 기로 상대의 역량을 가늠할 수 없는 이상 못해도 전력에 가까운 힘을 다해 출수했어야 했으니까.
생각해 보면, 이번과 같은 일이 처음인 것도 아니었다.
과거 제갈세가와의 일전에서도 상대의 역량을 확실히 가늠하지 않은 상태에서 손속을 조절했던 적이 있었지 않나. 물론 그때는 지금과는 달리 현대 무공의 발전을 짐작하지 못했기에 그랬던 것이지만 살수(殺手)를 펼쳤다는 사실은 지금과 다르지 않았다.
살의를 품고 살수를 펼친다면 반드시 상대의 명을 끊을 수 있는 힘을 품고 출수해야 하니 그와 같은 행동은 분명한 실책.
하지만 그는 당시에 그것이 잘못임을 깨닫지 못하였더랬다.
그러니 그는 진지하지 않았던 것이다.
목진은 이제야 그것을 깨달았고, 비로소 자신의 자세가 물렀음을 수긍했다.
이미 치솟았던 살심은 고요히 가라앉은 지 오래다. 목진은 검을 든 손목을 한 차례 풀며 사내를 향해 말했다.
“그럼 이제 조금 더 진심을 담아보마.”
“전력을 다하겠단 말은 하지 않으시는군.”
“그리 만드는 것은 네게 달린 일이니라. 그도 불만스럽더냐?”
아니. 그 정도가 딱 좋소. 사내가 검을 들어 목진을 겨누었다. 목진도 그를 향해 마주 검을 겨누었다.
상대가 전력을 다해야 할 상대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목진은 그의 말대로 조금은 더 진지하게 그를 바라보았다.
‘······움직임을 보니 범상한 무부의 실력은 아니로다.’
목진은 자신의 공격을 가로막았던 사내의 검을 떠올렸다.
군더더기 없이 효율적이고, 오차 없이 정확하며, 충분히 쾌속한 검.
단편적인 검의 기교만 놓고 보아도 원숙한 화경(化境) 이상의 경지다. 그 본 실력을 다 드러내지 않았을 것을 감안한다면 낮게 잡아도 서천검후 김연화와 동수를 이룰 정도의 수준일 터.
‘이 우주무림에 고수라 불릴만한 이들이 그리 많지는 않다 들었거늘.’
고수가 고수에게 이끌리는 것은 강호의 당연한 순리이긴 하다만 요즘 들어 부쩍 고수들을 자주 만나는 것 같다. 물론, 목진의 입장에선 기꺼우면 일이면 기꺼운 일이지 결코 불만스러운 일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비록 내공을 사용할 수 없기에 만전의 상태에서 벌이는 대결이라 할 수는 없으나, 검의 기교만을 논하는 것 또한 가치가 있는 법. 목진과 시선을 마주한 사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가겠소.”
“오거라.”
목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사내의 신형이 앞으로 쭉 늘어난다. 목진이 아는 것과는 다소 다른 부분이 보이나, 도움닫기는커녕 사전 동작 하나 없이 쾌속한 것을 보면 분명 이형환위(移形換位)의 요결이다.
“하!”
순식간에 목진의 앞으로 다가온 사내가 작은 기합성과 함께 비스듬히 검을 베어내린다. 조금 전 검을 맞댔을 때 서로의 간극을 파악했기에 그의 출수에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서로의 영역을 장악하는 단계를 건너뛴 과감한 맹공세(猛攻勢). 온전히 영역을 장악한 뒤 정직하게 공수를 주고받는 정도(正道)의 검과는 거리가 멀다.
오로지 찌르고 베는 검의 본질만을 추구하는, 날것 그대로의 검세다. 사내의 검을 보는 목진의 눈이 냉정하게 그 안에 담긴 오의를 좇는다.
‘일선제공(一線制空).’
좌상(左上)의 공간을 점하고 베어 들어오는 검이 보인다. 하나의 선으로 들어오는 공격이 면을 넘어 공간을 제압하고 들어오니, 한평생 검을 연마한 이들도 닿지 못하는 기교가 전뇌공간 속 사내의 손에서 자유자재로 펼쳐지고 있었다.
목진은 자신의 판단이 옳았음을 확인했다.
그러나 사내의 검을 맞이하는 자신 또한 검을 논함에 있어서는 천하에 감히 비견할 이가 없던 자이니, 마찬가지로 제공(制空)의 묘리를 담은 목진의 검 또한 그 날카로운 끝을 찔러 들어갔다.
그리고 두 사람의 검이 부딪힌 순간, 쩌엉 하고 무쇠가 갈라지는 듯한 파열음과 함께 두 사람의 검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
손아귀를 찢어버릴 듯한 반탄력을 그대로 받아내고 있을진대, 튕겨나가는 검 사이로 서로를 바라보는 두 사내의 눈은 고요하기 그지없다.
검을 부딪히기도 전에 그 수로 결착이 나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으니 뒤는 다음의 수를 따라 움직일 뿐.
목진의 검이 물리법칙을 무시하듯 직각으로 꺾이고, 사내의 검은 보는 이를 홀리게끔 만드는 기묘한 곡선을 그리며 방향을 바꾼다.
격돌로 인한 충격을 반대로 뒤집으니 반탄여반(反綻如反)이요. 위아래로 움직이는 힘의 결을 좌우로 움직이도록 바꾸니 직도환평(直道換平)이며, 난잡하나 치밀하게 계산된 길을 따라 힘의 방향을 비트니 난곡배력(亂曲培力)이라.
접병선묘(接兵旋描). 허심은축(虛心隱軸). 긍박중괴(兢拍中壞). 엽밀척곤(葉密斥棍). 다시금 맞붙는 두 검의 부딪힘 사이에 검수(劍手)라면 전율을 금치 못할 상승의 묘리들이 셀 수도 없이 얽혀든다.
맞붙는 검이 싣고 있는 힘이 범상치 않음을 느낀 목진이 냉철하게 사내의 역량을 가늠한다.
‘신력(神力)을 타고났는가.’
기교는 자신 쪽이 한 수 위. 그러나 힘은 사내 쪽이 위다. 타고난 근골에 환골탈태까지 거친 자신의 힘을 상회할 정도라면 필경 날 때부터 괴력을 타고난 것일 터.
그러나 고작 그 정도 차이로 판도를 뒤집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몇 번이고 사내의 검과 부딪히던 목진의 검이 지금까지와는 판이하게 다른 검로를 따라 사내의 허벅지를 노리고 파고들었다.
“흡!”
여지껏 펼치던 검과는 결이 다른 움직임에 사내의 붉은 눈이 빛을 더한다. 목진이 펼치는 검이 무엇인지 단번에 꿰뚫어 보았기 때문이다.
투로제형(鬪路製形). 싸우는 중에 검형을 짓는다는 말뜻과 같이 고작 한 합에 불과한 공수교환으로 자신의 검을 파악하고, 조금의 더딤도 없이 그에 특화된 검을 만들어 펼쳐내는 공상 속의 기예(技藝).
범인(凡人)은 이해조차 할 수 없을, 무공을 익힌 이라면 누구든 불가능하리라 입을 모아 말할 가공의 경지가 눈앞에 있는 절대고수의 손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사람의 몸으로 저 경지를 손에 넣기 위해 도달한 무공에 대한 이해는 얼마나 깊고 아득할 것이며, 머릿속에 그려지는 검로를 한치의 오차 없이 그려내는 검은 얼마나 완벽에 가까운 것인가.
사내는 순수하게 눈앞의 검객이 이룩한 성취에 감탄을 금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놀람과 감탄은 잠시일 뿐. 사내는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검을 비틀어 짓쳐드는 목진의 검을 막아냈다.
다소의 실은 있을지언정 그 상황에서 펼칠 수 있는 최선의 수다. 마치 철저하게 이성적인 계산을 통해 도출한 듯 미혹 하나 보이지 않는 움직임이었다.
‘조금의 동요도 보이지 않는군.’
예측하지 못한 공격을 받았음에도 심상(心狀)에 일말의 파문조차 보이지 않는 극도의 부동심(不動心). 그 검기만큼이나 심공의 공부 또한 모자람이 없는 모습이다.
하지만 사내의 무위는 단지 목진의 일격을 막아서는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이건?!’
자신의 검을 막아낸 뒤 이어지는 사내의 검격을 본 목진의 눈이 이번에야말로 경악의 감정을 품는다.
직전 자신이 자신있게 펼쳤던 투로제형의 기예. 그것이 상대의 검에서도 펼쳐지고 있었으니까.
목진의 검을 분석하고, 찰나의 시간동안 그것에 우세를 점하는 검법을 창조하여 능숙이 휘두른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눈앞의 사내가 휘두르는 검에 담긴 오의는 일평생 목진이 봐 온 그 어떤 고수도 도달하지 못한, 오직 그만이 닿은 경지였으니까.
그러나 눈앞의 사내는 태연히 같은 검을 펼침으로서 그런 목진의 생각을 정면에서 뒤집고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검을 휘두르는 기교를 보았을 때 사내가 닿을 수 있는 경지가 아니거늘, 그는 어찌 저리도 당연히 그와 동일한 검을 펼칠 수 있다는 것인지.
허나 그 의문을 궁리할 여유 따위는 없다. 당장 사내의 검이 목진의 상박을 노리고 파고드는 중이 아니던가.
목진은 의문을 잠시 접어두고 사내의 검을 흘려냈다. 지금은 해일처럼 몰려드는 검을 막아내는 데에 집중해야 할 때였다.
짧디 짧은 시간 동안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공수교환이 빼곡이 이어진다. 때로는 정직하게 한 수씩 주고받고, 때로는 흐름에서 벗어나 가열차게 몰아친다.
언뜻 보면 용과 호랑이의 싸움과 같이 우열을 가릴 수 없는 치열한 접전이었다.
하지만 검을 나누는 두 사람은 분명하게 느끼고 있었다.
얼핏 동수를 이룬다 생각하던 균형이 조금씩 한쪽으로 기울어지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균형은 분명히, 목진에게 불리한 쪽으로 기울어지고 있었다.
‘다른 수를 내어야 하는가.’
마음 같아선 정면에서 압도하고 싶다. 하지만 그의 냉정한 판단은 이대로 접전을 이어가 봐야 승산은 희박하다 말하고 있었다.
조금 무리를 하더라도 이대로 정면 승부를 이어갈 것인가, 아니면 이기기 위해 다른 수를 궁리할 것인가.
목진의 내적 갈등이 점차 깊어지던 때였다.
“하!”
별안간 지금과는 다른 커다란 움직임으로 목진의 검을 걷어내는 사내의 검. 그 안에 담긴 힘은 크지만 지금과 같은 팽팽한 접전 속에서는 악수(惡手)중의 악수다.
‘갑자기 왜?’
사내의 뜬금없는 실책에 의문을 떠올리면서도 목진의 검은 철저하게 제 역할을 다해 움직였다.
섬뜩한 소리와 함께 사내의 왼쪽 옆구리가 깊게 베인다. 사내는 비명조차 지르지 않고 옆구리를 감싼 채 목진으로부터 멀리 거리를 벌렸다.
목진이 인상을 찌푸렸다.
어째서인지 모르게, 사내로부터 더 이상 전의가 느껴지지 않았다.
용두사미(龍頭蛇尾)라는 말이 이리도 어울리는 상황이 있을까. 그 목진을 몰아세울 정도로 치열하기 그지없는 접전에 비해 초라하고 덧없는 끝마무리가 아닐 수 없었다.
당연히 그를 겪은 목진의 기분이 좋을 리가 없다. 잘 가다가 기분을 잡친 목진이 불쾌감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짓이냐?”
하지만 사내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다만 목진이 아닌 그의 뒤를 조용히 응시할 뿐이었다.
목진의 얼굴이 한층 더 구겨졌다. 자신의 뒤에 있는 것은 관전을 위해 따라온 순자밖에 없는데 그쪽은 또 왜 본다는 말인가.
목진은 그제야 그의 등 뒤에서 들려오는 순자의 외침을 들을 수 있었다.
“전뇌공간 관리자 권한 탈취에 성공했어요!”
그녀의 목소리 뒤를 이어, 침묵을 지키던 사내가 입을 열었다.
“내가 졌소.”
그리고 그것은, 도저히 묵과하고 넘어갈 수 없는 말이었다.
“······네놈이 감히.”
목진의 목소리에 노기(怒氣)가 짙게 배어들었다.
“나를 능멸하려 드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