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smic Heavenly Demon 3077 RAW novel - Chapter (184)
우주천마 3077-183화(184/349)
28. 검귀난입 Uninvited Challenger (6)
28. 검귀난입 Uninvited Challenger (6) – 왜 나만 빼고 다 행복하지?
“아, 거의 다 잡았었는데.”
뾰로통한 얼굴의 순자가 툴툴거렸다. 평소 세령에 대한 것을 제외한 대부분의 일을 쿨하게 넘어가는 모습과는 달리 꽤나 못마땅한 기색이었다.
하긴 감히 하이퍼스펙 안드로이드가 있는 전뇌공간에 해킹을 시도한 겁대가리 없는 해커 놈의 본진을 탈탈 털어버리기 직전이었는데, 하필 그 타이밍에 시스템이 붕괴되어 놓쳐버렸으니 그런 반응이 나올 법도 했다.
물론, 그녀의 옆에서 소리 없는 절규를 내지르고 있는 알버트 쪽 보다는 나았지만.
“아······으아······아아아아······!”
알버트는 완전히 타버린 접속기 기판을 보고 마치 고전 미술 속 절규하는 사람의 모습처럼 양 손으로 얼굴을 부여잡으며 세상이 무너진 듯한 표정을 지었다.
목진의 머리에 연결되어 있던 나노봇들을 통해 현대 시스템으로 감당할 수 없는 미지의 데이터가 해일처럼 밀려들었으니, 연구용이 아닌 이상 아무리 고가형 부품이라고 해도 버텨낼 재간이 없는 게 당연하다.
거기에 접속기 부품은 물론 조정을 위해 연결한 컴퓨터 장비까지 덩달아 불타버린 것은 덤. 자재값이나 인건비야 다시 청구하면 그만이라지만, 그동안 들어간 노력이 싹 다 허사가 되었다는 사실은 작은 엔지니어를 절망시키기에 충분했다.
전뇌공간에서이긴 하지만, 성공적으로 심검(心劍)을 펼쳐 홀가분한 표정으로 접속기에서 일어난 목진은 절규하는 알버드를 보며 눈알을 도르륵 굴렸다.
‘음. 무언가 단단히 잘못된 것 같구나.’
그리고 아마도 그 잘못의 원인은 목진 자신에게 있으리라.
다른 건 몰라도 공인(工人)의 원한을 사면 좋을 것이 없다. 목진은 강호의 오랜 격언을 떠올렸다.
아무래도 당분간은 건드리지 않고 진정할 때까지 놔두는 게 좋을 것 같다. 목진은 절규하는 불행한 엔지니어의 눈치를 보며 뾰로통한 순자를 집어들고 재빨리 공방을 나왔다.
“······저 친구가 괜찮을지 모르겠군.”
“내일 쯤 되면 연락이 오겠죠. 추가 비용이 꽤 많이 들겠지만요.”
순자가 추가 비용이라는 단어에 조금 더 힘을 주었다.
불현 듯 불길함을 느낀 목진의 시선이 순자를 향했다. 그의 옆구리에 대롱대롱 매달린 순자는 고개를 들어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서슬 퍼런 순자의 시선에 목진이 참지 못하고 시선을 돌렸다.
“목진 님.”
“······왜 그러느냐?”
순자의 부름에 목진이 떨떠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순자가 물었다.
“마지막에 그거, 꼭 하실 필요 없던 거 아닌가요?”
순자는 분명히 보았다. 마지막에 검마는 싸울 의지를 보이지 않고 얌전히 로그아웃을 하려 했다는 것을.
그런 검마를 기어코 불러세워서 뭔가를 보여준답시고 시스템을 붕괴시킨 것이 누구던가.
무인의 본능인지 뭔지는 몰라도 안 해도 될 일을 기어코 해서 시스템을 붕괴시키고, 추가 비용을 초래하며, 거기에 순자의 역해킹 작업까지 헛수고로 돌려버린 장본인이 바로 목진이었다.
“으······으음······.”
뭐라고 변명을 해야 할 텐데. 서슬퍼런 순자의 눈초리에 목진의 머리가 맹렬히 돌아갔다. 하지만 천상 무인인 목진으로선 이런 상황에서 빠져나갈 타개책을 떠올리는 것은 지난하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결국, 순자가 보내는 무언의 압박을 견디지 못한 목진이 고른 변명은 이러했다.
“······나는 그리될지 몰랐느니라.”
무책임하기 그지없는 변명이었지만, 달리 보면 솔직한 변명이기도 했다.
목진은 정말로 심검을 썼다고 전뇌공간이 붕괴하고 접속기가 불타버리는 참사가 일어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으니까.
“······하아.”
순자가 푸욱 한숨을 내쉬었다. 목진의 변명이 쓸데없이 설득력 있기 때문이었다. 하기사 목진에게 전뇌공간의 데이터 대역폭이니 시스템 캐퍼시티 오버플로우니 하는 소리를 해 봐야 알아들을 리가 없지 않은가.
그냥 불운한 사고가 터졌을 뿐이다. 순자는 그냥 그렇게 생각하기로 마음먹었다.
누군들 해인과의 대련 중간에 검마라는 놈이 난입할 줄 알았으며, 목진이 이상한 기술로 전뇌공간을 붕괴시킬 줄 알았겠는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대로 손을 놓고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놓아버릴 수는 없는 법.
일단 건질 수 있는 거라도 건지고 보자. 순자가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일단 그 무선 님의 손자 건부터 해결하고 봐요. 마무리가 조금 애매하긴 했지만, 어쨌든 내기는 이겼으니까요.”
“엄밀히 말하자면 마지막은 완승이라 보기엔 조금 애매하······.”
“이겼다고요.”
그, 그래. 목진은 냉랭한 순자의 말에 냉큼 수긍하는 쪽을 선택했다. 그야 순자의 분노와 동네 건달 해인의 운명을 비교하다면 당연히 전자 쪽이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일단 암림채 쪽에 가서 레오나 체주한테 확인서를 받고, 그대로 무선 님의 손자한테 가서 확답을 받은 다음에 무선 님한테 보고를 하는 식으로 진행하면 되겠네요.”
그러니까 먼저 숙소 쪽으로 가 보죠. 순자의 말에 목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숙소에 도착한 목진을 맞이한 것은 레오나와 성범이 자리를 비웠다는 암림채 호위병의 대답 뿐이었다.
“갑자기 어디로 갔다는 말이냐?”
방금까지 전뇌공간에 접속해 있었으면서 자신들이 오는 사이에 자리를 비우다니. 무언가 급한 일이 터지기라도 한 걸까. 목진의 물음에 암림채의 호위병이 머리를 긁적였다.
“저희도 정확히 하달받은 내용은 없습니다만······언뜻 듣기론 해인이라는 사람을 찾아간다고 들었습니다.”
해인? 목진과 순자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서로를 돌아봤다.
“허억?!”
“대장!”
접속기를 벗어던지고 벌떡 일어선 해인을 보며 부하들이 그를 불렀다. 그들의 눈에는 패거리의 명운을 걸고 고수를 상대로 혈혈단신으로 쳐들어간 대장을 향한 무한한 존경심이 깃들어 있었다.
물론 현실은 쳐들어갔다기 보다는 멱살을 잡혀서 끌려간 쪽에 가깝긴 했지만, 패거리에게는 아무튼 그들의 대장이 최고였다.
오죽하면 해인이 전뇌공간에 접속하는 동안 패거리들이 다 같이 모여 대장의 승리를 기원하며 기도를 하고 있었겠는가.
전뇌공간으로부터 접속을 해제한 해인을 보고 패거리의 부하들이 그에게 다가오며 물었다.
“어떻게 됐어?”
“이겼어?”
“어땠는데?”
조용. 해인의 진지하기 그지없는 목소리에 부하들의 입이 다물어졌다. 그들의 시선이 굳게 다물어져 있는 해인의 입으로 향했다.
“도망간다. 지금 당장.”
“에엥? 왜?”
“혹시 진 거야?”
해인의 말에 패거리가 술렁였다. 그야 질 수도 있다고는 생각했지만, 그걸 미리 대비할 정도의 수준이었으면 애초에 흑도 지망생 나부랭이가 되지도 않았을 이들. 아무런 근거 없이 해인이 이길 거라고 행복회로를 돌리던 패거리로서는 사실상 내기에서 졌다고 말하는 듯한 해인의 말에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불쌍한 부하들에게 친절하고 자세하게 사정을 설명할 여유 따위는 없다. 해인은 굳이 차분하게 그들을 진정시키는 대신, 거대한 핵폭탄을 터트리는 쪽을 선택했다.
“그 고수, 그냥 고수가 아니라 참룡검제였다고! 당장 짐 싸!”
“어······?”
해읜의 폭탄발언에 패거리들 사이로 침묵이 내려앉았다.
‘지금 우리가 무슨 소릴 들은거지?’
‘참룡검제?’
‘제갈세가 개털었다는 참룡검제?’
‘수틀리면 수백 명 정도는 입가심으로 몰살시킨다는 그 참룡검제?’
그제야 패거리들은 그들의 대장, 해인의 얼굴에서 창백하게 핏기가 가셔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리고 잠시 뒤, 그들 모두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해인은 그들을 돌아보며 또렷한 목소리로 다시 명령했다.
“그러니까, 당장 짐 싸라고.”
“그렇겐 안 돼지.”
별안간 웬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생소하면서도 어쩐지 낯이 익은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의 정체를 깨달은 해인과 그를 따라 전뇌공간에 들어갔던 부하가 움찔 몸을 떨었다.
콰드득 하는 파열음과 함께 아지트의 문짝을 뚫고 다섯 개의 손가락이 모습을 드러냈다. 패거리의 시선이 문짝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들이 목격한 것은-.
끼이이이-.
녹색 장발을 길게 기른 여인의 손이 금속으로 만들어진 문짝을 말 그대로 찢어버리는 초현실적인 광경이었다.
히익. 여인의 얼굴을 알아본 패거리들의 얼굴이 공포로 얼어붙었다. 이곳 암림성에서 나고 자란 이라면 모르는 이가 없는 얼굴이기 때문이었다.
냉정히 따지면 참룡검제 이목진과 비할 바는 아니긴 하지만, 워낙 딴 세상의 존재라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는 목진과는 달리 암림채주 레오나는 이곳 무림의 실질적인 지배자이기에 더욱 그 존재감이 피부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흑표채주 김성범을 대동한 채, 등장만으로 좌중을 얼어붙게 만든 레오나의 눈이 번뜩였다. 암사자의 것과 같은 그녀의 황금색 눈동자가 해인을 향했다.
찾았다. 작게 중얼거린 레오나가 부하들을 향해 말했다.
“미안하지만, 너희들 두목은 나랑 선약이 있거든.”
조사할 게 좀 있어서 말이지. 레오나의 의미심장한 말에 부하들의 시선이 해인을 향해서 돌아갔다. 이미 해인의 얼굴은 거의 검게 죽어가고 있었다.
그들의 귓가에 레오나의 음산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러니까,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여기 얌전히 앉아서 기다리고 있는 게 너희들의 신상에 이로울 거다.”
내 말 무슨 뜻인지 알아듣지 못한 사람은 얌전히 거수. 레오나가 말했다.
당연히 손을 드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좋아.”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은 레오나가 해인을 향해 이리 오라는 듯 손가락을 까딱였다.
해인은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와 같은 표정으로 그녀에게 걸어갔다. 가까이 다가온 해인의 귓가에 레오나가 작게 속삭였다.
“너는 나랑 이야기를 좀 해야겠다.”
내가 물어볼 게 좀 많거든.
그리고 그렇게, 패거리의 영원한 대장 해인은 두 녹림채주에게 연행되다시피 사라지고 말았다.
“······뭐가 어쨌다고?”
목진이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기울였다. 그의 옆에서 황당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은 순자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의 앞에는 싱글벙글한 얼굴의 레오나와 만족스러운 얼굴의 김성범, 그리고 안절부절하는 얼굴의 해인이 앉아있었다.
“이 친구, 저희가 키우기로 했습니다.”
해인의 어깨에 손을 턱 올리며 말하는 레오나의 폭탄선언에 목진이 두 눈을 꿈벅였다. 그녀의 손이 올라오자 움찔거리며 몸을 떠는 해인의 반응은 덤이었다.
“아니, 왜······?”
“대협께선 아마 모르고 계셨겠지만, 이 친구가 마지막에 쓴 무공이 제 무공이거든요. 좀 어설프긴 하지만 잘 베꼈던데요.”
“······뭣이?”
이런 천하의 미친놈을 봤나. 목진이 경악이 담긴 눈으로 해인을 돌아봤다.
훔친 무공의 주인, 그것도 까마득한 고수이자 거대세력의 수장의 앞에서 그 무공을 어설프게 펼쳤다는 소리가 아닌가.
만약 고대인의 무림이었다면 그 즉시 포를 떠서 젓갈을 담그는 것도 모자라, 아예 무공 비급을 숨겼을 수도 있다며 주변 친지들을 싹 다 몰살시켜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자살을 간절히 원하는 행동이다.
헌데 저 치는 어떻게 살아있으며, 또 왜 이 치는 싱글벙글 웃고 있는다는 말인가.
이것이 31세기 무림의 가치관이란 말인가. 혼란하기 그지없는 목진의 표정을 보고 레오나가 말을 이었다.
“서로 깊은 이야기를 나눠보니까, 이 친구가 그래도 가능성이 조금 보이더라고요. 안 그래도 제 무공을 전수시킬 팀을 만드는 중이었는데, 한 번 기회를 줘 보기로 했죠.”
“하지만 근골이 저런데······.”
“근골과 내공 드라이브 적합도는 기술로 어느 정도 커버할 수 있습니다. 대협. 돈은 좀 들지만요.”
그게 된다고? 성범의 말에 목진의 눈이 퉁방울만하게 커졌다. 목진에겐 근골의 타고남을 일부나마 극복할 수 있다는 사실이 더욱 충격적이었다.
“아주 모르는 사이도 아니니, 일단은 한번 기회를 줘서 키워볼 생각이에요. 대협께는 많은 신세를 졌으니 감사드릴 뿐입니다.”
레오나가 목진을 향해 꾸벅 고개를 숙였다. 목진으로서는 얼떨떨하기 그지없는 감사였다.
저쪽은 다들 행복해 보이는데 어째 돌아가는 게 이해가 가질 않는다. 목진은 적잖이 혼란스러웠다.
그때 목진의 옆에서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던 순자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러면 저 사람은 녹림채 소속으로 무림인 데뷔를 하게 된다는 말씀이신가요······?”
해인의 운명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이야기이지만, 무선과의 거래가 파토나는 건 상관있는 문제다. 특히 순자에게는 더욱 그랬다.
그런 그녀의 마음을 알아챘음인가. 성범이 편안한 미소와 함께 입을 열었다.
“아. 대략적인 사정은 들었습니다. 무선 님께는 저희가 잘 이야기해드릴 예정이니 순자 씨는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이번 일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암림채 쪽에서 이 대협의 검에 대한 대금을 모두 지불할 테니까요.”
“앗······아아······.”
순자의 눈에서 광채가 뿜어져 나왔다.
지금 그녀의 눈에는 성범과 레오나의 머리 위에 오색찬란한 광휘가 보이고 있었다.
녹림은 쓸만한 인재를 얻고, 해인은 염원하던 무림인의 길이 열리고, 순자는 돈이 굳었고.
모두가 행복한 해피엔딩이었다.
“······뭐가 어찌 돌아가는지 원.”
다만 어리둥절한 고대인 한 사람만큼은 유일하게 이 행복한 해피엔딩에 공감하지 못했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