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smic Heavenly Demon 3077 RAW novel - Chapter (190)
우주천마 3077-189화(190/349)
29. 마후합작 Ultimate Group Project (6)
29. 마후합작 Ultimate Group Project (6) – 이심전심
어쩌면. 이라고 생각은 했었다.
죽음조차 극복하였노라 큰소리치던 사파의 노괴, 철시귀옹 리첼 아카몬드를 처단한 것이 전설 속에나 존재하는 심검(心劍)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든 생각이었다.
그러나 용적산은 그 가능성을 섣불리 긍정하지 않았다.
이목진이라는 사내의 경지가 낮을 것이라 폄하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단지, 생사경이라는 경지의 존재에 의문을 품었던 것뿐이다.
– 이 이상 오를 곳이 과연 존재하긴 하는가?
언제부터인가 심중에 뿌리내린 매화나무 옆에 피어오르던 하나의 의문이었다.
흔히 화경의 경지에 들어설 때, 혹은 현경의 경지에 들어설 때 벽을 깬다라는 표현을 하곤 한다.
자신이 있는 영역과 그 위에 있는 영역 사이를 막고 있는 거대하고 두터운 벽. 그것을 깨야만 다음의 경지로 나아갈 수 있기에 그렇게 표현하는 것이다.
그러나 용적산은 현경의 벽을 깬 뒤로 백 년이 넘는 세월 동안 벽을 만나지 못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심연 속, 오로지 검이 가리키는 길만을 쫓아 반평생 외길만을 걸었는데도 말이다.
처음에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이전의 벽을 찾고 그것을 깨기까지 수십 년의 시간이 필요했으니, 다음의 벽을 만날 때까지 백 년이 걸리지 않을 이유는 또 무엇인가.
그러나 길고 긴 세월동안 검을 휘두르고 마음을 닦은 화산의 용조차 세월의 무게를 성히 견뎌낼 수는 없음이니. 한 세기를 지나도록 시작의 마음을 고이 간직하는 것은 지난한 일이었다.
용적산은 비로소 깨달았다.
자신보다 앞서 이 경지에 오른 무림의 오랜 선배들이 어째서 이곳을 가리켜 등봉조극(登峰造極)의 경지라 하였는지를.
봉우리를 올라 그 정상에 다다르면 더 이상 오를 곳을 찾지 못함이 당연하지 않은가.
등봉조극이라 함은 정점에 오른 자만이 얻을 수 있는 깨달음임과 동시에, 길을 찾아 방황하는 이들이 내뱉는 한탄이었던 것이다.
허나 그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지금까지 걸어온 그의 길을 부정할 수 없음이 첫째였고, 발걸음을 멈춘다 한들 다른 길이 보이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었다.
주변을 둘러보아 더 높은 봉우리가 보이지 않으니 남은 것은 푸른 하늘만이 남았다.
하여 용은 막연한 승천(昇天)을 꿈꾸며 기꺼이 기약 없는 여정에 몸을 맡겼더랬다.
그리고 그러던 중 그는 한 사내가 펼치는 검을 보았다.
그가 마음속에 품은 한 자루의 검은 벨 수 없는 것을 너무나도 쉽게 베었다.
용적산은 생각했다.
어쩌면 저것이야말로 그가 애타게 찾던 다음의 봉우리일지도 모른다고.
한편으론 달리 생각했다.
어쩌면 자신이 올라온 봉우리의 어딘가에 있던 것을 지나쳤는지도 모른다고.
받아들이기 쉬운 것은 당연히 후자였다. 확신할 수 없는 등불에 의지해 보이지 않는 봉우리를 찾아 올라가는 것보다는, 찬찬히 주변을 돌아보는 것이 조금 더 납득할 만하지 않겠는가.
자신이 올라온 경지를 되돌아보면, 어쩌면 새로운 실마리를 잡을 수 있지 않을까. 내심 그런 기대가 들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는 틀렸다.
눈앞에 선 사내의 대답이 그리 말하고 있었다.
삶과 죽음을 논하는 곳.
이르길 생사지경(生死之境).
목진은 이미 보이지조차 않는 벽을 깨고 상상 속의 영역이라 치부하던 곳에 발을 딛고 서 있었던 것이다.
“허······.”
작은, 그러나 한없이 깊은 탄식이 그의 입술을 비집고 흘러나왔다. 그것은 제 무지에 대한 비판이었고, 여전히 보이지 않는 벽에 대한 막막함이었으며, 검은 심연 속을 비추는 한 줄기 이정표를 향한 환희였다.
“······그러면 시······아니, 선배님께서는 세 번째 벽을 깨셨다는 말씀이신가요?”
라이디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녀의 심정도 용적산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천마신교 내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고수였으나, 한없이 긴 세월 동안 현경의 영역을 헤멘 것은 그녀 또한 마찬가지였기 때문이었다.
목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입에서도 나직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선배께서 연배에 맞지 않는 막대한 내공을 가지신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습니까.”
그럴 걸세. 목진이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내공이란 본디 호흡으로 말미암아 세상의 생기(生氣)나 사기(死氣)를 몸에 축기하는 것. 삶과 죽음의 이(理)를 논하는데 한낱 기(氣)에 얽매일 따름이겠는가.”
목진의 대답에 모두가 침묵을 지켰다.
기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것. 그 말에 담긴 속뜻이 단순히 막대한 내공을 쌓았다는 의미가 아니라 내공의 제약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읽었기 때문이었다.
단전에 내공을 쌓아 그것을 사용하는 것이 아닌, 세상으로부터 직접 내공을 끌어다 쓴다는 것.
그것은 즉, 무한(無限)의 내공을 뜻하는 것이었다.
“······.”
연화와 용적산은 그제야 어째서 목진이 내공 드라이브에 대하여 그리도 부정적인 입장을 고수했는지를 깨달았다.
생사지경에 이르게 되면 어차피 내공의 제약을 벗어나게 되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빠르고 효율적인 성장을 위해 내공 드라이브라는 이물(異物)을 신체에 이식하는 현대의 무림을 받아들일 수 없었으리라.
지금까지 쌓아온 무림인으로서의 상식을 송두리째 부숴버리는 파격적인 진실. 거대한 충격으로부터 생겨난 심마(心魔)가 그들의 정신을 차츰 갉아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순간, 목진의 입으로부터 나온 단호한 목소리가 그들의 정신을 일깨웠다.
“갈(喝)!”
깊고 무겁고 너른, 그리고 또렷한 일갈이 그들의 정신을 좀먹는 심마를 일순간에 휩쓸어 치워버렸다.
“너희가 말하던 이 시대의 무림이 고작 그 정도에 불과하였느냐!”
엄한 꾸짖음을 담은 눈으로 용적산을, 그리고 김연화를 하나하나 마주보며 목진이 말을 이었다.
“지난날 너희는 내게 말했지 않았느냐. 내 길이 옳을지언정 너희의 길이 틀리진 않다 말하는 것을 내 똑똑히 들었거늘 어찌 그리 나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냐. 그리도 자신만만하게 말하더니 그 말들이 한낱 허세에 불과한 것이었더냐?”
처음 봉인에서 깨어나 31세기의 무림을 마주했을 때, 목진은 내공 드라이브를 단지 알량한 편법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이미 한 단계 위의 경지에 이른 사람으로서, 이들이 추구하는 길이 결코 옳지 않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그는 다르다.
세령 일행과 함께하며 겪은 그간의 경험들. 그것들이 그에게 다른 각도에서 세상을 보는 새로운 눈을 뜨게 해 주었으니까.
이제 그는 보다 다양한 시선으로 세상을 관조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넓어진 시야는, 그가 저도 모르게 품고 있던 편협함을 되돌아보게 만들었다.
‘나는 아직 삼라(森羅)의 진리를 깨닫지 못하였거늘.’
아마도 고금을 통틀어 가장 높은 경지에 발을 디뎠을 자신조차 이 무한한 우주(宇宙)의 편린 하나를 간신히 맛보았을 뿐인데, 어찌 오만하게 무를 추구하는 길이 하나뿐이라 단언할 수 있겠으랴.
때문에 목진은 자신들의 길도 틀리지 않았다 항변하는 후배들을 부정하는 대신 유예를 주기로 했다.
비록 여전히 그 길이 옳지 않다 생각하나, 최소한 그들이 외치는 가능성만큼은 부정하지 않기로 마음을 바꾼 것이다.
지금까지도 내가기공을 택하는 길이 옳다는 사상은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내공 드라이브에게도 나름의 길이 있음을 알게 된 이상, 서로가 옳다 생각하는 길을 향해 나아가면 될 일이었다.
그런데 기껏 유예를 주려고 했더니 이 무슨 추태란 말인가.
그러니 고작 말 한마디에 흔들리며 심마에 잠식되는 모습을 보며, 목진이 그들을 꾸짖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너희의 입으로 직접 내뱉은 말이 가벼이 내칠 수 있는 말이었더냐. 목진의 말에 스스로의 추태를 깨달은 이들이 부끄러운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나는 너희에게 유예를 주었다. 그러니 증명하거라.”
너희들이, 이 시대의 무림이 틀리지 않았음을.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울림이, 순간이나마 흔들렸던 이들의 마음을 다잡았다.
그리고 그렇게 굳어진 마음은, 이전에 비할 바 없는 견고함을 품게 되었다.
“······선배께 부끄러운 모습을 보였습니다.”
잠시의 침묵 이후, 가장 먼저 용적산이 목진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그는 고개를 숙인 자세 그대로 포권지례를 올렸다.
“이 미진한 후배들을 일깨워주심에 감사드립니다.”
“감사드립니다.”
용적산을 따라, 다른 이들도 하나둘 포권을 하며 목진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그제야 비로소, 목진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걸렸다.
단순한 나이를 떠나 무림의 선배로서, 그리고 가장 높은 곳에 발을 디딘 선구자로서의 미소였다.
“좋구나.”
하면 이제 본래의 일로 돌아가지 않겠는고. 목진이 제 허리춤에 찬 검을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모두가 옅은 미소를 띤 채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지금 얻은 깨달음을 정리하는 일은 나중에 해도 늦지 않는다. 지금은 눈앞에 들이닥친 즐거운 비무를 우선할 때였다.
굳이 시작의 신호를 올릴 필요는 없었다.
이미 그들의 마음은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으므로.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동시에 기수식을 취했고,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흠!”
목진의 검이 횡의 궤적을 그렸다. 쾌속하고 단순한, 그리고 그렇기에 가장 두려운 검이었다.
그 검을 막을 이는 누구일까. 양 손에 용과 호랑이를 휘감은 연화일까, 아니면 눈처럼 새하얀 번개를 손에 두른 라이디일까.
그러나 목진의 검을 막아선 것은, 지금껏 보지 못한 두껍고 거대한 대검이었다.
“윽!”
평범한 장검과 보기만 해도 기가 질리는 클레이모어. 길게 생각할 것도 없이 예상되는 결과와는 달리, 신음을 흘린 것은 북악검후 다라 쪽이었다.
단순한 횡베기에 파워풀한 강검(强劍)을 장기로 삼는 그녀조차 밀릴 정도로 거대한 힘이 담겨있을 줄이야. 검을 맞대기 전부터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음에도 그녀의 눈동자에는 저도 모르게 경악과 불신의 감정이 피어올랐다.
다만 그녀가 제 역할을 다 하지 못했는가를 묻는다면, 결코 그렇지는 않았다.
비록 단 일합으로도 역량의 차이가 드러났을지언정, 그녀의 검은 분명히 목진의 검을 받아냈으니까.
그리고 그 틈을 파고드는 것은 다른 이의 몫이었다.
“하아!”
새하얀 번개불꽃를 머금고 쏘아지는 라이디의 빛살 같은 손아귀. 그녀의 손에 담긴 섬뜩한 뇌기가 목진의 가슴을 노리고 파고들었다.
그러나 그녀의 공세는 제 목적을 이룰 수 없었다.
다라의 눈이 채 쫓지 못할 정도로 빠른 소뢰수(素雷手)를 막아선 것은 묵빛 번개를 휘감은 목진의 묵뢰장(墨雷掌).
백과 흑의 부딪힘은 곧 태극이니, 필연적으로 강한 반발력이 두 사람의 손을 벗어나 사방에 흩뿌려지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크?!”
흑백의 번개가 뒤섞인 순간 두 눈을 멀게 만들 잔광이 사방을 물들인다.
보는 이의 정신을 아득하게 만들 속도로 검고 희게 점멸하는 세상 속에서 가장 먼저 움직인 것은 용의 눈을 지닌 용적산.
매화나무의 가지처럼 기이한 궤적을 그리며 찔러오는 그의 검이 변화에 변화를 거듭했다.
꽃잎처럼 붉은 선이 라이디의 어깨를 꿰뚫기 직전, 그 앞을 막아서는 것은 또 다른 이의 검이었다.
한 손에는 용을 품고, 한 손에는 호랑이를 품은 용호검기. 연화의 쌍검이 수많은 변초(變招) 속 단 하나의 핵심을 아가리처럼 꽉 붙들었다.
이제 남은 것은 단 한 명.
– 우라!
어지러이 얽힌 초식들 사이에 난 작은 틈새를 아수라 붓다의 정권이 올곧게 지나갔다.
그 궤적의 끝이 노리는 것은 막 다라의 검을 쳐낸 목진의 팔꿈치. 그러나 목진은 단지 팔을 한 번 비트는 것으로 아수라 붓다의 정권을 가볍게 흘려냈다.
절대고수 여섯이 각자 한 번의 공수를 펼친 일합(一合).
다음의 공수를 생각하며 그들은 동시에 서로의 눈을 마주보았다.
그리고 그들은 같은 생각을 떠올렸다.
이것이야말로 무(武)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