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smic Heavenly Demon 3077 RAW novel - Chapter (193)
우주천마 3077-192화(193/349)
30. 선전포고 Declaration of Vengeance (1)
30. 선전포고 Declaration of Vengeance (1) – 그 날이 오면
“슬슬 때가 된 듯 싶구나.”
사방에 떨어져 있는 무수한 비도들을 돌아본 목진이 가볍게 검을 털어내며 입을 열었다. 그의 앞에서 검을 늘어트린 채 지친 얼굴로 서 있던 세령이 번쩍 고개를 들었다.
“정말요?”
“그래. 네 성취가 제법 올랐으니, 이제는 실전을 통해 쌓은 무공을 깎고 다듬는 과정을 거칠 때도 되었지.”
목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현대 무림인들의 수준을 완전히 파악하진 못했지만, 적어도 화경의 벽에 닿지 못한 동년배의 무인들 중에선 그녀와 오십 합 이상을 겨룰 수 있는 이가 없으리라는 것이 그의 판단이었다.
세령이 목진으로부터 새로운 사천당가의 무공을 사사한 뒤로 반 년. 하루의 대부분을 무공 수련과 목진의 지도를 받으며 현대 무림인 평균을 아득히 상회할 정도로 강도 높은 강행군을 이어온 세령의 실력은 놀라울 정도로 일취월장해 있었다.
“보거라.”
목진이 가볍게 팔을 들어올리자 그의 소매 중간 즈음이 한 뼘 정도 갈라져 있는 모습이 보였다. 세령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두 눈을 깜박였다.
“······제가 한 거에요?”
“그럼 네가 했지 누가 했겠느냐.”
무인이라는 놈이 제 칼이 뭘 베는지도 모르고 있다니. 정신을 어디 두고 다니는 게야? 목진이 쯧쯧거리며 혀를 찼다.
하지만 세령은 목진의 핀잔에도 믿을 수 없다는 듯 갈라진 목진의 소매를 뚫어져라 바라봤다.
목진이 화경의 초입 정도 수준으로 손대중을 해주긴 했지만, 그럼에도 지금껏 단 한 번도 닿을 수 없던 영역이었다.
마치 바닥 없는 심연에 검을 휘두르는 듯한 무력감을 느끼면서도 이를 악물고 검을 휘두르길 반 년. 드디어 처음으로 성과다운 성과를 낸 것이다.
자신이 해낸 일이 믿기지 않는 듯 멍한 표정을 짓는 세령을 보며 목진이 피식 웃었다.
“마지막의 검은 제법 날카로웠다. 그 감각을 잊지 말고 잘 기억해야 할 것이다.”
아주 제법이란 말이지. 목진이 세령을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현재 섬뢰사독검식과 진연십삼투에 대한 세령의 성취는 대략 오 성 정도. 그만한 성취를 이루는 데 에 못해도 삼 년은 걸릴 거라고 생각했건만, 열심히 굴리니 고작 반 년 만에 오 성의 성취를 이룰 줄이야. 확실히 세령이 기재(奇才)는 기재인 모양이었다.
물론 지난 반 년 동안 작은 기연이라 할 수 있는 계기들이 있었긴 했다. 하지만 그걸 감안한다고 쳐도 대단히 빠른 성취속도인 점에는 이견이 없었다.
목진의 말에 세령이 가볍게 웃으며 너스레를 떨었다.
“뭐, 반 년 동안 죽어라 수련에 때려박는 강행군을 했는데 이 정도는 해야죠.”
“쯧쯧. 이게 무슨 강행군이라고.”
목진이 못마땅하다는 둣 가볍게 혀를 찼다. 세령 딴에야 스스로 뿌듯하게 느낄 정도로 수련에 매진한 것이지만, 하루의 대부분을 무공 수련에 할애하는 것이 당연한 시대를 살아가던 목진의 기준으로 봤을 땐 그냥 남들보다 약간 더 열심히 수련한 수준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목진의 말에 세령의 입이 삐죽 튀어나왔다.
“아저씨 때는 초식 외우는 데만도 한세월 걸렸다면서요. 그때랑 지금이랑은 다르죠. 이 정도면 엄청 열심히 한 거라구요.”
“어허. 조금 성취를 얻었다고 그새 기고만장해진 것이냐? 나 때처럼 굴려주랴?”
“아니 그건 좀.”
목진의 말에 세령이 한 걸음 뒤로 물러나며 질색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동안 목진에게 받은 수련도 죽을 맛이었는데 여기서 더? 농담으로도 받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목진이 다시 혀를 찼다.
“에잉. 저리 패기가 없어서야.”
“여기서 더 빡세게 수련하면 잠 잘 시간도 부족하거든요? 저도 인생을 살아아죠.”
“그 입담은 십 성 짜리로다.”
하여간 말만 잘해선. 절레절레 고개를 내젓던 목진이 주섬주섬 바닥에서 비도들을 집어드는 세령을 보며 탐탁찮은 얼굴로 투덜거렸다.
“헌데 그걸 꼭 붙여야 쓰겠느냐?”
“네? 뭘요?”
“그거 말이다 그거. 연산장치라고 했던가?”
아 이거요? 세령이 포니테일로 묶어올린 머리끈에 단 밴드를 매만졌다. 단순한 장식이 아닌, 고급 보조 연산장치가 달린 엄연한 장비였다.
“자고로 무공을 쓰는 것은 무인의 의지로 행해야 하거늘, 어찌 생각을 한낱 기물에 맡긴다는 말이냐.”
그간 용적산이나 김연화, 제갈무준 등 보조 연산장치를 활용하는 고수들을 꾸준히 접해 오면서 그것 또한 현대 무공의 한 갈래라는 것을 받아들였기에 강경한 입장을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고대 무림을 살아가던 무림인으로서 거부감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지 않은가. 목진의 말에 세령이 어깨를 으쓱였다.
“어쩔 수 없잖아요. 전투 중에 수백 개 단위의 비도를 하나하나 컨트롤하는 건 부담이 너무 크니까. 그것까지 신경쓰면서 검을 휘두를 여유는 없다구요.”
“비도의 수를 줄이면 되지 않느냐?”
“아까 펼친 초식 이름이 만천뇌우(滿天雷雨)거든요? 명색이 만천화우를 계승한 무공인데 비도 열몇 개 던지는 건 좀 웃기다고 생각 안 해요?”
“아니 그러면 이름을······.”
“언제는 무공에 근본이 있어야 한다면서요. 만천화우만큼 유명한 당가 무공이 어디 있다고.”
세령의 말에 목진이 입을 다물었다. 하긴 그렇게 말하면 할 말이 없기는 했다.
마지막에 목진의 소매에 칼집을 낸 초식은 일단 세령이 만들어낸 오리지널 초식이었으니까. 차라리 초식의 수준이 조악하면 모르겠는데, 그가 보기에도 꽤 강맹한 초식이었으니 그의 고집을 밀어붙일 수만도 없는 노릇이었다.
물론 엄밀히 따지면 세령이 만들었다고 해봐야 섬뢰사독검식과 진연십삼투의 초식을 합친 것에 불과했고, 그마저도 목진과 용적산이 대부분의 작업을 보조해준 초식이긴 했지만 말이다.
다만 세령은 자기가 생각한 초식이니까 자기가 만든 초식이라고 우겨대곤 했다.
“다른 건 몰라도 만천화우는 챙겨야죠. 천 년쯤 전인가? 개방이랑 상표권 문제로 소송까지 걸렸던 걸 기어코 탈환해 왔을 정돈데.”
“개방? 개방이랑 만천화우랑 무슨 상관이냐?”
개방에 만천화우가 있다고? 목진이 눈을 꿈벅였다. 과거 그런 것에 신경 쓴 적이 없기에 자세히는 모르지만, 목진으로선 금시초문인 말이었다.
“개방에도 만천화우 있긴 있어요. 아예 다른 무공이고 이름만 같은 무공이었는데, 당가에서 상표권 소송 이겨서 지금은 이름도 바꿨을걸요?”
그 정도면 전통 중의 전통 아닌가? 세령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선조들이 아득바득 지킨 아이덴티티니까 그정도면 충분한 당가의 근본 무공이었다.
“허 참, 그런 일도 있었구나.”
“아무튼 보조연산장치로 컨트롤하는 건 비도 쪽이고 검은 제가 직접 휘두르는 거니까 넘어가 줘요. 대형문파에서 재능 없는 애들은 아예 보조연산장치로 다 커버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거에 비하면 나 정도는 근본 무림인이지.”
끄응. 세령의 말에 목진이 못내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그의 소매에 칼집을 내는 성과를 거두었으니 인정해줄 수밖에.
바닥에 떨어진 비도들을 모두 수거해 전용 컨테이너에 수납한 세령이 저 멀리 떨어트려 놓았던 이동용 드론을 불러들이며 목진을 돌아봤다.
“다 챙겼다. 이제 가시죠?”
“오냐.”
목진은 세령을 따라 드론 위에 올라탔다. 두 사람이 별채로 돌아오는 데까지는 채 십 분이 걸리지 않았다.
“다녀왔습니다.”
“아, 오셨어요?”
세령과 목진이 돌아오자 마루에 엎드려서 복잡한 차트를 보고 있던 순자가 일어나 두 사람을 맞이했다.
“오늘은 어땠어요? 이번에도 불합격?”
“흐흥. 어떨 것 같아?”
어머? 평소와는 달리 자신만만한 웃음을 머금은 세령의 반응에 순자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요즘 들어 매일같이 목진의 옷자락 하나 건들지 못하고 누적 패배 카운트를 늘려가기만 하던 세령이었는데, 드디어 첫 성과를 따낸 것이다.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고 있는 세령을 대신해 목진이 입을 열었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한층 무거운 말투였다.
“이제 때가 되었느니라.”
“······그러면 이제 계획을 실행할 때라는 말이네요.”
목진의 말에 세령이 장난스런 표정을 풀고, 순자의 얼굴에도 진지함이 담겼다.
목진의 귀띔을 들어 조만간 때가 올 것이라는 말을 듣긴 했지만, 막상 직접 들으니 그 무게가 남다르다. 순자는 저도 모르게 주먹을 꾹 쥐었다.
복수행(復讎行).
등 뒤에서 배신당한 사천당가의 몰락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한, 세령의 첫 번째 비원(悲願).
그 첫 번째 발걸음을 뗄 때가 온 것이다.
순자의 말에 목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첫 행선지는 전에 세령이가 이야기했듯, 하북팽가로 하면 될 것이다.”
“성명은 언제 발표할까요?”
세령의 본래 이름이 사천당가의 직계 후손 당세령임을 우주무림에 밝히고, 사천당가의 몰락에 오대세가의 배신이 있었음을 성토하며, 당시 각 세가를 이끌던 가주였던 이들에게 복수를 천명하는 성명.
지난 반 년 동안 복수행의 시나리오를 준비하던 순자였기에 이미 발표성명은 전부 작성이 끝난 상태였다.
순자의 말에 목진이 주변을 둘러봤다.
거의 일 년이 넘게 생활했기에 집처럼 느껴지는 곽가장의 별채.
하지만 이제는 떠날 때가 되었다. 목진이 입을 열었다.
“곽가장주 내외와 용가, 화린이에게 먼저 작별을 고하고 이 곽가장을 떠난 이후에 발표하는 것이 좋겠지. 우리의 사정에 그들을 끌어들여 난처하게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니.”
“당연히 그래야겠죠. 그러면 다른 사람들은요?”
지난날 함께 단체비무를 했던 아수라 붓다와 김연화, 다라는 이미 각자의 길을 떠난 지 오래다. 이곳에 남아있는 일행의 지인은 천마신교 소속의 라이디와 려, 그리고 낭인용병인 디마와 이르비스였다.
“천마신교 쪽은 우리와 움직임을 같이하기로 사전에 이야기를 해 두었으니 확인만 하면 될 것이니라. 이르비스들 쪽은······.”
“우리한테 고용될 건지, 아니면 이쯤에서 서로 갈 길을 갈 건지 물어보자.”
미처 낭인 듀오에 대한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던 목진이 말꼬리를 흐리자 세령이 그를 대신해 말했다.
“과연 두 사람이 저희랑 같이 가려고 할까요? 상대가 오대세가인데?”
“뭐······아마 후자 쪽이겠지. 그래도 그동안 쌓은 정이 있는데 예의상 한 번쯤은 물어봐 줘야 하지 않겠어?”
별로 기대는 하고 있지 않지만, 만에 하나라도 두 사람이 고용되어 준다면 꽤나 든든한 전력이 될 것이다. 주변인들이 워낙 거물들이라 그렇지, 그 두 사람도 낭인용병 업계에서는 알아주는 고수였으니까 말이다.
“그러면 두 분께도 미리 연락을 넣어둘게요. 언제쯤 떠나실 건가요?”
“이별은 짧을수록 좋지. 사흘 후에 출발하는 게 어떻겠느냐?”
세령이 순자를 돌아봤다. 보급이나 우주선에 관련된 건 순자의 담당이었다.
잠시 생각하던 순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흘 정도면 충분할 것 같아요.”
“그래. 그러면 그렇게 하는 것으로 하자꾸나.”
나는 일단 먼지부터 좀 씻어내야겠다. 목진이 그렇게 말하며 샤워실 쪽으로 향했다.
“아 나도.”
세령이 다른 쪽 샤워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순자는 그런 두 사람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영영 이루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그 때가 눈앞으로 다가왔다. 순자의 가슴이 묘하게 뭉클거렸다.
그간 불가능에 가까운 꿈을 꾸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아득바득 노력하던 세령의 모습을 보며 얼마나 안타까웠던가. 겉으로는 내색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지만, 간혹 혼자 있을 때면 얼굴 위로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던 왕언니였다.
이게 다 목진과 만난 덕분이다. 순자가 보일 듯 말 듯한 미소를 짓고 곁눈질로 목진을 바라봤다. 만약 그때 지구에서 목진과 만나지 않았다면, 지금쯤 세령은 여전히 쓰레기같은 내공 드라이브를 가지고 돈을 벌기 위해 죽어라 고생하고 있었으리라.
‘오랜만에 로버트 씨에게 안부 연락이나 해 볼까?’
순자는 오랜만에 그동안 잊고 있었던 나찰즈의 객원멤버를 떠올리며 조만간 한번 연락이나 해야겠다는 생각을 떠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