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smic Heavenly Demon 3077 RAW novel - Chapter (201)
우주천마 3077-201화(201/349)
31. 착호검객 Samurai the Tigerhunter (5)
31. 착호검객 Samurai the Tigerhunter (5) – 칠 할의 실패, 삼 할의 성공.
아무런 내용 없이 달랑 도망치라는 말 한 마디가 전부인 이상한 메시지.
이상하군. 백호대주가 인상을 찌푸리며 중얼거리고는 부하를 향해 물었다.
“저게 전부인가?”
“네. 다른 내용은 없습니다.”
“다른 신호는?”
“아뇨. 관측되는 건 저 신호가 전부입니다.”
부하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통신 재밍일까? 저 멀리 보이는 녹호대의 비무선에선 아무런 신호도 잡히지 않았다.
아무런 신호 없이 다만 조용히 우주 공간에 멈춰 있는 비무선과 녹호대의 우주선들. 아무런 신호조차 잡히지 않는, 지독히도 고요한 광경이었다.
백호대주는 그 광경에서 문득 소름이 끼칠 정도의 불길함을 느꼈다.
‘느낌이 안 좋은데.’
그의 감은 제법 잘 맞는 편이었다.
“다른 대주들도 확인했겠지. 잠시 진입을 멈추고 논의 요청을 넣도록.”
“예.”
백호대주의 요청에 의해 세 명의 대주들이 통신패널을 열고 논의에 들어갔다. 당연히 논의의 주제는 그들이 발견한 도망치라는 메시지 쪽이었다.
백호대주가 먼저 말을 꺼냈다.
“상황이 심상치 않다. 일단 세가에 보고부터 하고 지침을 기다리는 편이 낫지 않겠나.”
– 무슨 얼빠진 소리를 하고 있냐? 바로 저기에 녹호대 대원들이 있어. 그런데 여기서 돌아가자고?
– 적호대주 말이 맞아요. 고작 메시지 하나일 뿐이잖아요.
신중론을 펼치는 백호대주와는 달리 적호대주와 청호대주는 바로 녹호대를 구원하러 가자는 주장을 펼쳤다. 녹호대주의 바이탈 사인이 끊어져 죽음이 기정사실화 된 지금, 다른 대원들의 목숨 또한 장담할 수 없었기에 조금이라도 빨리 지원을 가야한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백호대주는 그들이 수신한 짧은 메시지에가 결코 가볍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북팽가의 주력부대로서 혹독한 훈련을 거친 이들이다. 그런 그들이 보낸 메시지에 아무런 의미가 없을 리가 없지 않은가.
백호대주가 두 대주의 주장에 고개를 저었다.
“우리가 대기하고 있다는 건 녹호대원들 전체가 알고 있는 사항이다. 그런 그들이 저런 메시지를 보냈다면 우리가 감당하기 힘든 위험이 있다는 뜻일 확률이 높지 않겠나. 함정일 가능성이 있다.”
– 죽기 전에 판단력이 흐려져서 의미 없는 소리를 하는 건 딱히 드물지도 않은 일이야. 왜 그렇게 빼려고 하는 건데?
– 녹호대주가 죽었다면 거합문과 전면전은 피할 수 없어요. 그러면 그 전에 저희가 합공해서 일섬뇌전도를 죽여두는 게 유리해요.
적호대주는 둘째치고, 청호대주의 말은 제법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그들 중 둘만 있어도 충분히 안드레를 상대할 수 있다 자부하고 있는데, 녹호대주를 상대한 뒤인 지금이라면 필승일 테니까.
하지만 백호대주는 여전히 부정적인 입장을 바꿀 생각이 없었다.
“너무 리스크가 커. 만약 여기에서 우리들까지 죽거나 부상을 입으면 세가가 감당할 수 있는 영역을 넘어선다. 우린 세가를 위해 전력을 온존해야 할 의무가 있어.”
그들이 죽으면 각 전투대의 부대주에게 지휘권이 이양되긴 하지만, 그것은 단지 임시방편일 뿐 제 역할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애초에 매뉴얼부터가 부대주가 전투대를 지휘하는 동안 다른 오호대에서 부족함을 메꾸는 방식이니까.
모든 부하를 데려온 건 아니지만, 당장 자신들이 데려온 부하들만 해도 나름 정예대원들이다. 혹시 모를 함정에 걸려 자신들이 무력화되기라도 한다면 팽가는 순식간에 황호대를 제외한 오호대 전부를 잃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유독 이성적인 성격 탓에 냉정하게 상황을 분석하는 그와는 달리, 다른 두 대주들은 그러지 못했다.
– 야 이 개새끼야, 윌터가 죽었는데 지금 그런 소리가 나와?! 동료가 죽었잖아!
끝까지 신중론을 주장하는 백호대주의 말에 성질이 급한 적호대주가 버럭 성을 냈다.
애초에 예상치도 못하게 동료 하나가 목숨을 잃은 상황. 백호대주가 이례적인 케이스일 뿐 어지간한 인물도 완전히 평정을 유지하기는 어려운 상황에 남들보다 성격이 급한 적호대주에게 이성적인 판단을 기대할 수는 없었다.
백호대주는 청호대주 쪽을 바라봤다. 적호대주와는 달리 청호대주라면 자신의 설득이 통하리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의 예상과는 달리, 청호대주는 조용하지만 분노가 담긴 목소리로 그의 주장에 이의를 제기했다.
– 저기엔 녹호대의 핵심 대원들도 남아있어요. 굳이 녹호대주의 복수 때문이 아니더라도, 당신 말대로 전력을 온존하려면 그들을 구출해야만 하고요.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이 살리려면 지금 바로 돌입하는 게 맞아요.
“너무 위험해. 냉정하게 생각해라. 세가로부터 정식 명령을 받고 행동해도 늦지 않아. 너희의 결정에 따른 여파를 생각하란 말이다.”
백호대주가 조금 더 강한 어조로 말했다.
그리고 그런 그의 태도는 동료의 죽음에 흥분한 두 대주에게는 오히려 역효과였다.
– 야, 평소에 좀 따라주니까 우리가 니 부하인 줄 아냐? 이 병신같은 겁쟁이 새끼야. 우린 무조건 갈 거니까 너는 여기 짜져있던가 말던가 알아서 해라!
그를 향해 욕설을 섞어 쏘아붙인 적호대주가 대답도 듣지 않고 통신을 끊었다. 청호대주 또한 잠시 그를 노려보다가 통신을 종료했다.
쾅! 분을 참지 못해 우주선 벽을 후려친 백호대주가 으드득 이를 악물었다.
“······빌어먹을. 원래 저렇게까지 막 나가는 놈들은 아니었는데.”
적어도 자신이 정색하고 말하면 이야기 정도는 들어줬던 이들이다. 아무래도 녹호대주의 죽음이 그들로 하여금 이성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도록 가로막고 있는 것 같았다.
‘지들이 친하면 얼마나 친했다고 저 유난을 떠는지.’
동료의 죽음에 분한 마음이 드는 건 그도 다르지 않았다. 다만 오호대 중 하나를 이끄는 대주로서 그보다 이성적인 판단이 앞섰을 뿐.
아무리 그래도 한 전투대를 이끄는 대주라는 놈들이 눈까지 시뻘겋게 물들 정도로 감정에 잡아먹히는 게 말이나 된다는 말인가. 백호대주는 통신패널을 통해 언뜻 보인 듯한, 두 대주의 붉은 눈동자를 떠올리며 씩씩 성을 냈다.
그런 그를 향해 부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대주님······? 어떻게 합니까?”
다른 둘을 따라가 녹호대를 구출할 것인가, 아니면 이대로 멈춰서 홀로 세가의 명령을 기다릴 것인가.
부하의 말에 잠시 고민하던 백호대주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일단 거리를 두고 둘을 따라간다. 단, 상황을 봐서 빠질 수 있도록 엔진을 예열시켜두도록.”
“예.”
아무리 이성적으로 생각하려 해도 다른 동료들을 모두 버리고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백호대주는 최소한의 빠져나갈 구멍만을 남겨둔 채로 앞서가는 두 사람을 쫓아가는 쪽을 선택했다.
그리고 선택이 그와 백호대를 살렸다.
“이런 미친······.”
“전부, 죽었어요.”
각각 데려온 부대원들과 함께 이동용 드론을 타고 비무선에 도선을 시도하는 적호대주와 청호대주는 점점 선명하게 보이는 비무선 위의 광경을 보고 할 말을 잃었다.
온통 피가 낭자한 비무대와 바닥을 뒹굴고 있는 시체들. 나름대로 끈질기게 저항을 했는지 몇몇 시체들의 모습은 성치 않은 모습이었다.
“······아무래도 거합문이 정말로 전쟁을 원하나 보네.”
감히 주제도 모르고 하북팽가에 도전을 해? 적호대주가 으득 이를 악물었다.
반면 비교적 냉정을 유지하고 있는 청호대주는 비무대 위에 벌어진 참상을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안드레의 실력이 뛰어나긴 하지만······그 시간 동안 녹호대를 전멸시킬 정도라고는 생각도 못 했는데요.”
녹호대주의 바이탈 사인이 끊어지고 자신들이 여기에 오기까지 겨우 십오 분 남짓. 일섬뇌전도의 명성이 대단하다지만 나름의 정예무인들인 녹호대를 이렇게까지 일방적으로 학살할 수 있는 레벨은 결코 아니었다.
청호대주의 말에 적호대주가 인상을 찌푸렸다.
“다른 고수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거야?”
“아마도요.”
“젠장, 백호대주 그 병신 겁쟁이 새끼만 있었어도. 실력이 딸리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몸을 사리는 건데?”
적호대주가 다시 욕설을 내뱉었다. 실력은 몰라도 경험만큼은 자신들보다 위의 베테랑인 백호대주가 있다면 모를까, 두 명이서 안드레와 다른 고수까지 상대할 자신은 없었다.
“말은 그렇게 했어도 우리 뒤를 따라오고 있었으니까, 여차하면 강하팩이라도 들고 참전할 거에요.”
청호대주가 성을 내는 적호대주를 달랬다. 냉정한 구석이 있는 백호대주이긴 하지만, 동료애라는 게 아예 없는 냉혈한은 아니다. 그들이 위험하다고 판단되면 즉시 지원해줄 것이다.
두 대주가 대화를 나누는 와중에 그들이 탄 드론이 비무선에 도착했다.
그런 두 사람을 맞이한 이들은-.
거합문의 안드레와 녹호대의 부대주, 그리고 한 명의 사내였다.
“미셸!”
오른팔이 잘린 채 피투성이로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는, 익숙한 얼굴의 여인을 발견한 적호대주가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앞으로 달려나갔다.
아니 달려나가려 했다.
적호대주의 팔을 청호대주가 잡아채지 않았다면 말이다.
“아 뭔데?!”
아픔이 느껴질 정도로 강하게 움켜쥔 청호대주의 손아귀에 적호대주가 눈가를 찡그리며 뒤를 돌아봤다.
“······뭐야, 왜 그래?”
그리고 그녀는 볼 수 있었다. 여지껏 본 적 없을 정도로 파리하게 질려있는 청호대주의 얼굴을.
적호대주는 의아함을 담아 청호대주의 눈을 바라봤다.
그의 눈에는 단 하나의 감정만이 떠올라 있었다.
그것은 그녀가 적들의 목숨을 거두기 전 으레 보곤 했던 감정이었다.
두려움.
적호대주가 그 감정이 어디서 기인했는지를 생각해보기도 전에, 그녀의 등 뒤에서 녹호대 부대주의 목소리가 들렸다.
“왜 온 겁니까, 도망치라고 했는데 도대체 왜······!”
그건 절규였다.
원망과 비탄과 절망이 마구잡이로 뒤섞인 목소리로, 그녀는 그들을 향해 절규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절규에 답하듯,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네게 준 기회 중 칠 할이 무의미해졌구나.”
오싹할 정도로 무심한 목소리였다.
“허나 셋 중 하나는 살았으니, 네 노력이 완전히 무의미하지 않음을 위안으로 삼거라.”
적호대주는 낯선 목소리를 쫓아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시선에 한 사내가 잡혔다.
그녀는 그제야 사내의 얼굴을 제대로 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는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잠시 뒤, 백호대주의 우주선에 메시지 하나가 도착했다.
이전의 것과 같이, 그 메시지는 단지 짧은 단어 하나만을 담고 있었다.
메시지에 담긴 단어는 네 글자였다.
– 참룡검제.
백호대주는 조금의 주저도 없이 우주선을 돌려 하북팽가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