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smic Heavenly Demon 3077 RAW novel - Chapter (207)
우주천마 3077-208화(208/349)
32. 창귀타호 Possessed Tiger (4)
32. 창귀타호 Possessed Tiger (4) – 법대로 하자
······저거 좀 위험한 거 아닌가.
세령과 상원의 생사결을 관전하던 청호대 출신의 무인 하나는 생각했다.
그는 조금 전에 상원이 펼친 것이 무엇인지 알아본 몇 안 되는 이들 중 하나였다.
워낙에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진데다가 멀리 떨어져 있기에 대부분의 동료들은 알아채지 못했을 테지만, 과거 저 기운과 직접 싸워본 적이 있는 자신은 분명히 알아볼 수 있었다.
용타녹겸(鎔唾綠鎌) 레이브너의 부골갈녹.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갈색 기운에 닿은 무인들 대다수를 한 줌 혈수로 녹여버린 끔찍한 마공이었다.
문득 그의 머릿속에 예전 술자리에서 동료와 나눴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 비밀연구소에서 일하는 불알친구한테 언뜻 들었는데, 요즘엔 내공 드라이브 재활용 관련 연구를 하고 있다더라.
– 너한테 대놓고 말할 정도면 그게 비밀 연구냐? 쯧쯧.
– 당연히 자세한 얘긴 못 들었지. 대충 그런 연구가 있다. 하는 정도만 들은 거야.
– 근데 그게 왜?
– 아 왜 요즘에 사파나 마교 쪽이랑 붙으면 죽은 사람들 코어 손상도 체크해서 매입했었잖아.
– 그랬지. 솔직히 돈 아깝고 귀찮게 왜 그런 일을 하나 싶더라. 손상된 코어는 고칠 방법도 없는 폐기물이잖아.
– 들어 봐 임마. 그게 사실 비밀연구소에서 재활용 연구용으로 쓰는 거래.
– 아 그래? 좋은 데 쓰네. 재활용 할 수 있으면 좋지.
– 거기다 그 매입금이 다 그쪽 유족들한테 들어간다더라. 소가주님이 직접 지시하신 거래.
– 소가주님이 그런 세세한 부분까지 하나하나 지시하시는 분이시던가?
– 죽은 놈들 유족들한테 원한 사서 좋을 게 없으니까. 아무리 걔들이랑 우리랑 비즈니스로 칼부림하는 사이라지만, 사적인 원한이 아예 안 생길 수는 없잖아? 그걸 최소화하는 거지.
– ······이야, 생각해 보니까 장난 아니네. 연구재료 확보하면서 원한도 줄이는 거잖아. 거기에 저쪽 애들은 그걸로 유족 보상금에 생색도 낼 거고.
– 거기에 명분도 예쁘지. 괜히 우리 하북팽가가 다른 세가 놈들이랑은 다르게 진짜 정파 소리를 듣겠냐?
– 근데 손상된 코어를 재활용해서 어디다 써먹는대? 코어라고는 해도 어차피 내공 아닌가? – 글쎄? 친구 말로는 코어에 남은 잔여 내공을 활용한다느니 한다던데.
– 허, 그러면 우리가 걔들 무공을 쓸 수도 있는 거 아니냐? 문제 생기는 거 아냐?
– 뭐 그거야 자기네가 알아서 잘 했겠지. 그리고 잔여 내공 가지고 무공이라고 하긴 좀 그렇지 않냐?
– 하긴, 그것도 그렇네.
당시에는 그냥 술안줏거리 정도로 넘어갔던 이야기였다.
그런데 설마 그 이야기가 전부 사실이었을 줄이야. 무인은 흔들리는 눈으로 자신들의 소가주가 펼치는 무공을 바라보았다.
그야 무공을 훔치는 건 아니니까 강호의 도의에 반하는 일이라고 하기엔 애매하긴 하다.
하지만 그는 팽상원이 펼치는 부골갈녹을 보고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느꼈다.
과연 그 거부감은 그가 저 기운과 싸웠던 적이 있어서일까. 아니면 정파의 무인으로서 사악한 마두의 내공을 사용하는 것이 꺼림직하기 때문일까.
무인은 곧바로 단정지을 수 없었다.
그는 다만 복잡한 표정으로 비무대에서 펼쳐지는 생사결을 지켜볼 뿐이었다.
하지만 그는 알까.
생사결을 관전하는 수많은 팽가 무인들 중 몇몇이, 그가 짓고 있는 표정과 닮은 표정을 떠올리고 있다는 것을.
“······저런 것을 보여주고도 정파의 이름을 달고 살아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더냐?”
세령과 상원의 생사결을 주관하던 목진이 딱딱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상원이 선보인 저 무공이 무엇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저것이 결코 정파인이 펼칠 무공이 아니라는 것은 알았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는 죽음의 기운. 제 딴에는 나름 억제한다고 억제한 모양이다마는, 적어도 이곳에 있는 하북팽가의 무인들 중 무공의 수위가 낮지 않은 자라면 그 기운을 느낄 수 있을 정도다.
사기(死氣)란 본디 사파 중에서도 떨어질 대로 떨어져 그 사악한 광기가 극에 달한 자들이나 다루는 것인데 어찌 수천 년간 정파의 이름을 짊어져 온 무림세가의 소가주가 그것을 다룬다는 말인가.
하지만 정작 팽호혁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은 채 담담한 표정으로 목진의 말에 답할 뿐이었다.
“호랑이에게 잡아먹힌 인간은 호랑이의 시종이 되어 봉사하게 되지. 저들도 마찬가지일 뿐이오.”
“이미 죽은 자의 혼을 잡아 가두고, 그들을 욕보이며 노예처럼 부리는 것을 두고 참으로 고상하게 포장하는구나.”
“감성적인 측면에서 논란이 생길 만한 기술이라는 것은 인정하오. 그러나 딱히 도의적인 문제도, 법적인 문제도 없소.”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군.”
목진이 대번에 눈살을 찌푸렸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하는 것일까, 아니면 정말로 모르는 것일까.
심안을 깨워 본래라면 보지 못했어야 할 것들을 볼 수 있는 목진에게는 훤히 보였다.
팽상원의 팔에 새겨진 검은 얼룩 속으로 보이는, 고통에 절규하는 원혼의 모습이.
이건 단순한 무공이나 기술의 영역이 아니라 사술(邪術)의 영역이지 않은가. 목진은 이들 하북팽가가 어딘가 비틀려도 단단히 비틀려 있음을 느꼈다.
그때, 두 사람 옆의 허공에서 검은 슈트를 입은 한 사내가 나타났다.
“잠시 저희에게 오해를 풀 기회를 주시지 않겠습니까, 참룡검제 대협.”
“수신호위더냐.”
처음부터 그의 존재를 감지하고 있던 목진이 고개도 돌리지 않고 물었다. 사내는 공손한 태도로 목진에게 고개를 숙였다.
“소가주님의 호위를 맡고 있는 암호라 합니다.”
“눈 앞에 보이는 진실이 자명하거늘 무엇이 오해라는 말이냐.”
조금 전보다 한층 거센 기세로 세령을 몰아붙이는 팽상원의 모습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목진이 물었다.
“창귀 프로젝트는 무림맹 공식심의를 통과하고 핵심기술 검사까지 마친 예비 공인기술입니다. 대협께서 거부감을 느끼셨듯 강호인들에게 곧바로 인정받기에는 감성적인 면에서 불민한 여지가 있지만, 적어도 사람들의 지탄을 받아야 할 정도로 비인륜적인 기술은 아님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비인륜적인 기술이 아니라고?”
목진이 그제야 암호를 돌아봤다. 그의 눈에는 어처구니없다는 감정이 자리하고 있었다.
“네 눈에는 저 치에게 들러붙은 원념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말이냐?”
하지만 목진의 말에 암호는 이해하기 어렵다는 듯 살짝 미간을 좁혔다. 그는 목진이 말한 원념이라는 단어가 일종의 비유인지, 아니면 말 그대로의 의미인지 알 수 없었다.
“원념······말씀이십니까? 그야 조금 꺼림직한 기분이 드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긴 합니다만······.”
당장 암호 자신도 창귀 프로젝트를 참관할 때 묘하게 섬찟한 기분을 느꼈던 적이 있긴 하다. 하지만 단순히 감이 좋지 않은 것과 명백하게 입증이 된 것은 다른 문제이지 않은가.
‘혹시 도덕적인 문제 때문에 저런 반응을 보이는 건가?’
암호가 재빨리 말을 덧붙였다.
“참고로 저희 하북팽가는 구파일방과 함께 무림맹에서 배포하는 정파 윤리규범을 적극적으로 준수하고 있습니다. 설사 상대가 사악한 마두라고 할지라도 가능한 선에서 최대한 시신을 올바르게 수습하고, 시신으로부터의 기술 탈취를 지양하며, 정식 장례절차까지 마친 뒤에 당사자의 사문에 인도하고 있지요.”
정파 소속이라고 해도 암호가 말한 것과 같은 정파 윤리규범을 칼 같이 지키는 이들은 구파일방을 제외하면 그리 많지 않다.
다른 오대세가들이 알게 모르게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정파 윤리규범을 슬쩍슬쩍 무시하는 것과는 다르게 팽가의 무인들은 세가 차원에서 무인들에게 정파인으로서의 도덕성을 크게 강조하는 편. 그를 포함해 팽가의 무인들은 대체로 세가의 정파다운 면모에 자긍심을 느끼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자세한 메커니즘을 설명드릴 수는 없으나, 창귀 프로젝트는 죽은 무인으로부터 다른 신체 조직의 수집 없이 오직 손상된 내공 드라이브 코어만 추출하여 재활용하는 기술입니다. 당사자의 사문으로부터 동의를 얻는 건 물론이고요.”
“시신을 온전히 돌려보낸다는 소리를 길게도 늘려 말하는구나. 나는 그런 것을 묻는 게 아니니라.”
목진은 그렇게 말하며 암호의 눈을 들여다봤다. 그의 눈동자를 채우고 있는 감정은 당혹과 혼란 뿐이었다.
이 자는 모르는 쪽이군. 목진은 암호에 대한 관심을 거두며 다시 팽호혁을 향해 물었다.
“그대는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있으렷다.”
그러나 팽호혁은 목진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다만 속을 알 수 없는 우묵한 눈으로 세령과 상원의 생사결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비무장 쪽에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비명 소리가 터져나왔다.
“크아악!”
폐부의 고통을 쥐어 짜내는 듯한 비명은 여성의 것이 아닌 남성의 것.
생사결의 끝이 다가온 것이다.
“······이걸로 끝이야.”
양 팔이 잘린 채 바닥에 무릎을 꿇은 팽상원. 그리고 그 앞에 선 채 그의 목에 검을 들이대고 있는 당세령.
승부의 결과는 달리 확인해볼 것도 없었다.
‘당연한 결과겠지만.’
세령의 본 실력을 알고 있는 목진은 그녀의 승리를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창귀니 뭐니 하는 사술을 쓴다고 해도 기본적인 기량의 차이를 메우는 게 어찌 쉽겠는가. 물론 피투성이가 된 그녀의 왼팔을 보니 비장의 수를 노출하지 않은 채 승리하기는 쉽지 않은 모양이긴 한 모양이었다마는.
“소가주님!”
당장에라도 뛰쳐나가려는 듯 몸을 움찔거린 암호의 앞을 불쑥 튀어나온 목진의 손이 가로막았다.
“망동하지 말거라.”
무심하고 서늘한 목소리. 살기 한 조각 담기지 않은 목진의 목소리임에도 암호는 전신이 얼어붙은 것만 같은 감각을 느꼈다.
“한쪽이 죽어야 끝나는 생사결의 자리임을 잊었느냐.”
“크윽······.”
암호가 참담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친구의 죽음을 무력하게 보고만 있어야 한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때.
“······이대로 끝낼 수는 없지.”
묵묵히 생사결을 관전하고 있던 팽호혁이 아무런 전조도 없이 세령과 상원, 두 사람을 향해 몸을 날렸다.
경악이 담긴 암호의 목소리가 그 뒤를 이었다.
“가주님?!”
‘가주님이 자신의 행동의 의미를 모르시지는 않을 텐데······!’
아무리 부자간의 정이 깊다고 해도 생사결이 선포된 자리에 난입하는 것이 용납될 리 없다. 그걸 납득했기에 이 생사결에 동의한 것이 아니던가.
문득 그의 귓가에 무심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느낌이 묘하다 했더니, 결국 일이 이렇게 되는구나.”
암호가 저도 모르게 목진을 돌아봤다. 목진은 여전히 무표정한, 그러나 그렇기에 더욱 섬뜩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너는 아랫것들에게 일러 방송 송출을 중단시키는 게 좋을 것이다. 그는 가만히 시선만 돌려 암호를 바라보더니, 그와 같이 말했다.
“이제 공식적인 생사결은 끝났으니.”
“대······협······.”
그리고 이제부터는 생사결의 법도대로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