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smic Heavenly Demon 3077 RAW novel - Chapter (208)
우주천마 3077-209화(209/349)
32. 창귀타호 Possessed Tiger (5)
32. 창귀타호 Possessed Tiger (5) – 그러니까 너희가 유사 정파 소리를 듣는거지
“이걸로 끝이야.”
양 팔이 잘린 채 무릎을 꿇은 팽상원의 목에 검 끝을 들이대며 세령이 입을 열었다.
왼팔로부터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의 고통이 밀려 들어왔다. 부골갈녹에 당한데다가 다른 공격들까지 억지로 받아내며 상처투성이가 된 탓이었다.
‘차라리 전력을 다할 걸 그랬나?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니지.’
그래도 팔 자체가 절단되었던 철시귀옹 때보다는 낫다. 세령이 낮게 한숨을 쉬며 분한 표정을 짓는 팽상원을 내려다봤다.
자동으로 진통제라도 투약되었는지 고통 따위는 느껴지지 않는 표정으로 그녀를 노려보는 부모의, 그리고 가문의 원수.
복수라는 감정에 의무가 섞여들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앞으로 셋의 복수가 더 남아있기 때문일까. 첫 복수의 성취를 눈앞에 두고 있었는데도 어째서인지 대단한 감흥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남길 말 정도는 들어줄 생각이 있는데.”
“······당가에 대한 사죄라도 원하나?”
팽상원이 비꼬는 듯한 어조로 되물었다. 그러나 세령은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딱히. 사고는 같이 쳐 놓고 모르쇠 하는 게 보기에 엿 같았을 뿐이야.”
죽은 양반들에 대한 의무도 조금 정도는 있지만. 세령이 덧붙였다.
퉷. 팽상원이 거칠게 죽은 피를 뱉어냈다. 그는 아무것도 모르는 주제에 십수 년도 더 전에 끝난 일을 들먹이는 세령이 짜증스럽기 그지없었다.
당장 자신이 짊어진 과업이 얼마나 무거운데 고작 그딴 일을 가지고 발목을 잡는다는 말인가.
오대세가 전체를 상대로 전쟁을 일으킬 기세로 호전적이었던 인류정부. 턱없이 부족한 전력과 자신들을 압박하던 우주무림. 그리고 그 와중에도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폭주하는 사천당가.
사천당가의 멸문 당시에 여덟 살에 불과했던 애새끼가 뭘 알면서 복수를 운운한다는 말인가.
그때는 그게 최선이었다. 그렇지 않다면 이십세기가 넘게 명맥을 이어오던 오대세가의 명맥이 모두 끊어졌을 테니까.
팽상원은 당시의 선택을 단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었다.
“어렸던 너는 모르겠지만, 우리에게 선택의 여지가 있었던 건 아니다. 우린 그저 비즈니스적으로 최선의 판단을 했었던 것뿐이야.”
“그 오랜 역사 동안 함께해 온 오대세가의 결속이 고작 비즈니스일 뿐이었다니, 마음이 아프네.”
세령이 비아냥거렸다.
“그럼 수많은 오대세가의 가솔들이 모조리 다 너희 사천당가처럼 행성폭격의 화염에 불타 죽었어야 했다는 거냐?”
“당신들이 저지른 짓에 대한 대가가 그랬다면 그랬어야지.”
세령이 얼음장같은 목소리로 팽상원의 반박을 일축했다.
“그 정도 각오도 없이 그런 일을 벌였던 거야?”
고리타분한 이상론이군. 팽상원은 세령의 말에 대해서 가소롭다는 듯 비웃음을 흘렸다.
“그건 네가 모두를 이끄는 자리에 앉아본 적이 없으니까 지껄일 수 있는 말이지 않나. 네 어깨에 수십 수백만의 목숨을 짊어지게 된 뒤에도 과연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현실을 겪어본 적 없는 애송이니까 태평하게 그런 원론적인 소리나 할 수 있는 거겠지. 팽상원이 조롱조로 덧붙였다.
세령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의 말이 딱히 틀린 말은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수많은 사람들을 이끄는 자리의 무게를 알지 못했고, 그녀의 말은 현실을 모르는 원론에 불과했으니까.
하지만 그녀는 이미 보지 않았나. 그런 고리타분한 이상론을 위해 목숨을 거는 이들을.
그렇기에 세상은, 그리고 무림은 그들을 하나의 이름으로 불렀다.
정파(正派).
“그 책임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게 정파잖아.”
이번엔 팽상원의 입이 다물어졌다. 그는 세령의 말에 곧바로 대답할 만한 말을 떠올리지 못했다.
“그러니까 네가 정말로 하북팽가를 사랑한다면, 나한테 고마워하는 게 맞는 거 아닐까?”
적어도 최소한의 정파다움을 지켜주는 거잖아. 세령이 슬쩍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검을 치켜들었다.
딱히 남길 말이 있어 보이진 않으니, 이젠 십칠 년 전에 마무리짓지 못한 일을 끝마칠 차례였다.
그리고 그녀의 검이 무정하게 팽상원의 심장을 꿰뚫으려던 순간-.
‘어?’
온 몸의 본능이 그녀를 향해 일제히 경고를 울렸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을 박살낼 기세로 휘둘러오는 거대한 대도(大刀)의 모습에 황급히 검을 치켜올렸다.
“-!”
쩌엉 하고 쇳덩이가 쪼개지는 소리와 함께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비무장 한쪽으로 튕겨나가는 세령.
별안간 생사결에 난입한 하북팽가의 가주, 팽호혁의 모습에 장내에 기묘한 술렁임이 내려앉았다.
이 자리를 참관하는 팽가의 무인들은 팽가의 사람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무림인이다. 그런 그들에게 있어 소가주의 패배가 충격적인 것과는 별개로, 공식적인 생사결 중에 난입해 한쪽을 공격하는 팽호혁의 행동은 쉽사리 받아들일 수 없는 돌발행동이었다.
“끄······이 미친놈이······.”
간신히 공중에서 몸을 가눠 바닥에 착지한 세령이 신음을 흘리며 욕설을 내뱉었다.
오른손에 간신히 쥐고 있는 검이 아직도 웅웅 울릴 정도로 강맹한 일격. 솔직히 검을 놓치지 않고 막은 게 기적일 정도였다.
세령에게 공격을 가하며 장내에 내려선 팽호혁은 팽상원을 잠시 바라보더니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흑호대(黑虎隊).”
“예, 가주!”
팽호혁의 호명에 검은 무복을 입고 얼굴을 가린 수십명의 무인들이 일제히 비무장 위로 뛰어들었다.
공식 편제에는 단지 그 이름만 올라가 있는, 어지간한 일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가주의 친위대. 가주와 같은 형태의 거대한 대도를 들고 있는 그들은 하나같이 오호대의 부대주 급에 버금갈 정도로 예사롭지 않은 기세를 흩뿌리고 있었다.
– 뭐야, 무슨 일이야?
– 가주님이 이러실 분이 아닌데······.
– 뭐가 있는 건가?
팽호혁의 난입과 함께 급변하는 분위기에 다른 팽가 무인들의 술렁임이 한층 더해진다.
그들이 아는 하북팽가의 가주 팽호혁은 오로지 무공에만 관심을 두는 외곬의 무인. 비록 그 성격상 가문의 대소사에는 관여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적어도 무인으로서의 팽호혁은 그들에게 있어 존경해 마지않는 이였으니까.
하지만 팽호혁은 그런 술렁임에도 불구하고 조금도 신경을 쓰지 않으며 소집된 흑호대를 향해 명령을 내렸다.
“염화나찰을 죽여라.”
그리고 그 명령은, 가주의 명령이라면 철저히 복종하도록 훈련된 친위대인 흑호대조차 순간적으로 할 말을 잃고 팽호혁을 돌아볼 만큼 당황스러운 명령이었다.
“가주······?”
생사결에 난입해 한쪽을 합공해서 죽이라니.
아무리 가주만을 위한 친위대라 해도 그들은 당당한 정파의 한 기둥인 하북팽가의 무인이다. 세령과 상원의 생사결에 개입했다는 사실 자체도 속으로 갈등하고 있는 와중에 사파나 흑도조차 하지 않을 일을 명령받으니 당연히 거부감이 들 수밖에.
주춤거리는 흑호대를 보며 팽호혁이 호랑이같은 눈을 번뜩였다.
“두 번 말하지 않겠다.”
“그러나······.”
“······존명!”
팽호혁의 서슬 퍼런 목소리에 유달리 충성심이 강한 몇몇이 세령을 향해 거대한 도를 치켜들며 달려들었다. 자세한 사정은 알지 못하지만, 그들이 알지 못하는 모종의 사정이 있을거라는 믿음에서였다.
그리고 그것이 그들의 명을 재촉했다.
“멍청한지고.”
아무런 예고 없이, 한 줄기 메마른 바람이 달려드는 흑호대원들 사이로 불었다.
팽호혁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머뭇거리던 흑호대원들은 뒤늦게 옅은 피냄새가 배어든 바람을 맞았다.
그들은 조금 전까지는 보이지 않던 한 사내가 그들의 앞에 서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들은 사내의 등 뒤로 볼 수 있었다.
바람에 밀려 힘없이 굴러떨어지는 머리와, 머리 없이 몇 걸음을 더 걷다가 고꾸라지는 몸뚱이들을.
뒤늦게 생사결을 감독하던 입회인의 정체를 깨달은 이들의 눈에 숨길 수 없는 공포가 피어올랐다.
참룡검제. 누군가가 멍하니 흘린 목소리가 그들의 귓가에 파고들었다.
그리고 그 말에 화답하듯, 표정 없는 얼굴로 목진이 입을 열었다.
“움직이지 말거라. 헛되이 그 생을 내버리고 싶지 않다면.”
그렇게 말한 그는 흑호대에는 관심이 없다는 듯 팽호혁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정상적인 상태가 아님은 알았으나, 이리도 어리석은 선택을 한 이유가 무엇이냐.”
순수하게 궁금증이 일어 던진 질문이었다. 누가 생각해도 지금의 행동은 정파로서, 나아가 무인으로서 용납받을 수 있는 행동이 아니지 않은가.
하지만 팽호혁은 목진의 말에 대꾸조차 않은 채 무릎 꿇은 상원의 품에 손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그의 손이 다시 나왔을 때, 그의 손에는 십여 개 가량의 앰플 뭉치가 들려있었다.
그는 천천히 상체를 풀어헤쳤다.
그의 행동을 주시하던 팽가 무인들의 눈에 미미한 경악과 동요가 떠올랐다.
단단한 바위처럼 단련된 육체의 중심. 내공 드라이브가 자리하고 있는 단전에 원을 그리며 이식되어있는 수많은 창귀 앰플 슬롯들.
팽상원조차 팔다리에 하나씩 이식한 게 고작인 그것을 복부에 수십 개 박아넣은 광경은 그리 흉측한 모습이 아닌데도 기이할 정도의 괴기스러움을 자아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목진의 눈가가 꿈틀 찡그려졌다.
“······애초에 미련이 없었나보군.”
목진은 소가주의 수신호위라는 암호조차 알아보지 못한 창귀 앰플의 정체를 거의 정확히 꿰뚫어 보고 있었고, 그렇기에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단전 주위에 빙 둘러 이식한 앰플 슬롯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팽호혁은 상원의 품에서 꺼낸 수많은 앰플들을 차례차례 그의 복부에 박아넣었다.
그 행동이 뜻하는 바는 달리 생각할 여지가 없었다.
목진은 잠시 고개를 치켜들었던 호기심을 거두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굳이 벌주를 들겠다는 걸 굳이 만류할 이유는 없지.”
“가주? 그건 도대체 무슨······?”
“모르고 있었다면 물러서기나 하거라.”
목진은 아연한 눈으로 팽호혁을 돌아보며 중얼거리는 흑호대원을 향해 비키라는 듯 손짓했다.
그리 놀랄만한 일도 아니다.
생(生)의 원천, 진원진기(眞元眞氣)를 폭발시켜 순간적으로 강대한 힘을 얻는 것은 지난날 그가 무림을 일통할 적에 몇 번이고 본 일이었으니.
그리고 그렇게 그의 앞에서 맞선 이들 중 살아남은 이는 없었다.
물론 당시의 무인들과 팽호혁은 다르다. 적어도 그들은 타인의 진원진기까지 끌어다 쓰지는 않을테니까.
‘내공 드라이브의 코어는 단지 눈속임일 뿐이었나.’
팽호혁이 무엇을 하려는지 간파한 목진은 그제야 창귀 앰플이 무엇을 담고 있는 것인지 완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타인의 내공을 재활용한다는 사실은 그저 부수적인 요소일 뿐, 그것의 진정한 목적은 혼과 진원진기를 빼앗아 저장하는 그릇이었던 것이다.
목진조차 강호의 풍문으로 들은 게 전부인, 사이하기 그지없는 사술(邪術).
오대세가의 그 누구보다도 정파다움을 자처하던 하북팽가이기에 더욱 다른 무인들에게 충격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는 광경이었다.
잘하면 팽가에 빚을 지워둘 수도 있겠군. 목진은 검을 휘둘러 깔끔하게 끝을 내는 대신 가만히 팽호혁의 행동을 지켜봤다.
“크······흐······.”
제 몸에 앰플을 박아넣은 팽호혁의 숨이 거칠어진다. 호랑이를 닮은 눈의 흰자위게 피로 붉게 물들고, 강인한 육체가 온통 검은 얼룩으로 뒤덮인다.
“가, 가주······?”
정파인으로서 본능적인 거부감을 느끼는지 그의 명령으로 비무대에 올라온 흑호대원들이 주춤주춤 그로부터 뒷걸음질을 쳤다.
“호오······그걸 버틴다고.”
목진은 검게 물든 채 당장이라도 조각날 듯 전신에 핏빛 실금이 그어진 팽호혁을 보며 꽤 놀랐다는 듯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다.
어지간히 단련된 무인의 육체도 진원진기의 폭발 하나조차 감당하기 벅차거늘, 수십이 넘는 진원진기들을 연쇄적으로 폭주시키면서도 그의 육체는 제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흐으······흐······.”
짐승의 숨소리 같은 소리와 함께, 팽호혁이 처음으로 목진을 똑바로 바라봤다.
더 이상 사람의 것인지도 알 수 없는 그의 눈에서는 피인지 뭔지 모를, 검은 액체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목진과 팽호혁은 서로를 바라봤다.
그리고 목진은, 자신이 처음으로 팽호혁과 마주했음을 깨달았다.
“······그래, 그랬던 게로군.”
목진은 작게 읊조렸다. 그의 얼굴에는 여전히 표정이 없었다.
그의 눈에 처음으로 미약한 감정의 파문이 일렁였다.
그 파문의 이름은 연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