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smic Heavenly Demon 3077 RAW novel - Chapter (209)
우주천마 3077-210화(210/349)
32. 창귀타호 Possessed Tiger (6)
32. 창귀타호 Possessed Tiger (6) – 가장 혐오스러운 사술
목진이 무언가를 중얼거린 직후, 팽호혁의 모습이 사라졌다.
단련에 단련을 거듭한 무림인들도 그 모습을 포착할 수 없을 정도로 무지막지한 빠르기였다.
“칵-!”
한 박자 늦게 들려오는 기합인지 비명인지 모를 괴성.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산이 무너지는 듯한 굉음이 홀 안에 울려 퍼졌다.
온 몸이 저릿저릿할 정도의 충격파.
그러나 충격파가 발생했다는 말은, 그의 도가 사람의 육신을 쪼갠 것이 아니라 다른 무언가에 막혔다는 뜻이기도 했다.
“확실히 빠르고 강해지긴 했다마는.”
당장에라도 부러질 것처럼 얇은 검 한 자루로 팽호혁의 거대한 도를 막은 목진이 입을 열었다.
그 목소리에 담긴 차분함은 이전과 다를 바 없이 그대로였다.
“결국 그 안에 담긴 무(武)에 바뀖이 없으니 희생에 비해 얻은 것은 작기만 하구나.”
동수를 이루던 비슷한 급의 무인이라면 지금과 같이 진원진기를 폭주시켜 단숨에 압살할 수 있을지 모른다.
아니, 동급이 아니라 한 수 위의 고수라고 해도 저 폭발적인 속도와 힘을 감당하기는 쉽지 않으리라.
하지만 그뿐이다.
힘이 강해지고, 속도가 빨라졌다고 해도 결국 그 본질은 바뀌지 않았지 않나.
목진과 같이 완전히 다른 경지에 올라있는 고수의 앞에선 그런 단편적인 각성 따위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크아아-!”
검게 변한 팽호혁이, 아니 팽호혁이었던 것이 안간힘을 쓰며 목진의 검으로부터 제 칼을 떼어내기 위해 발버둥쳤다. 그러나 그의 대도는 용접이라도 한 듯 목진의 검으로부터 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목진은 지그시 눈살을 찌푸린 채 그런 팽호혁을 바라보았다.
“그 이상 추해질 일은 없게 해 주도록 하마.”
감사할 필요는 없다. 목진은 그의 대도를 놓아줌과 동시에 검을 휘둘렀다.
그리고 당연히, 팽호혁이 그가 진심으로 펼치는 검을 막아낼 방법은 없었다.
검을 휘두르는 목적은 제압이 아니라 그의 명을 끊는 것. 목진의 검이 팽호혁의 전신을 훑었다.
팔다리의 힘줄을 지나 폐와 심장을 가르고, 마지막으로는 머리를 꿰뚫는, 철저하게 그 숨통을 끊기 위한 검이었다.
이곳에서 유일하게 그 검을 눈에 담은 라이디가 미간을 좁혔다.
‘······왜?’
일견 강박적이게까지 느껴질 정도로 상대를 죽이는 것에 집착하는 것을 두고 불만을 가진 것은 아니다. 천마신교에서 살기가 좀 짙은 무공들 중에서는 그보다 악독한 무공들이 넘쳐났으니까.
하지만 어째서.
상대의 죽음을 향해 거침없이 나아가는 그의 검에는 살(殺) 대신 활(活)이 느껴지는 것일까.
목진의 검에 팽호혁의 목숨이 끊어지는 그 순간까지도, 그녀는 목진이 무슨 생각을 담아 검을 휘둘렀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어느새 목진의 검은 그의 검집에 들어가 있었다.
그러나 팽호혁은 미동도 없이 처음 검을 내리치던 자세 그대로 굳어있을 뿐이었다.
“스으······.”
몇 초나 지났을까. 기이한 침묵 속에서 팽호혁이 길게 숨을 내쉬었다.
평생을 동고동락하며 그를 보필하던 흑호대는 어째선지 모르게 그 날숨을 타고 그의 혼이 빠져나가는 것 같다는 기분에 가슴 한켠이 먹먹해져 옴을 느꼈다.
팽호혁의 미간에 붉은 점이 생겼다.
아직 채 식지 않은 생명을 담은 더운 피가 그의 얼굴을 타고 천천히, 그러나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하북팽가의 무인들이 그의 죽음을 인지한 것은 그로부터 조금 뒤, 그 거구가 제 무게를 지탱하지 못하고 힘없이 바닥에 무너졌을 때였다.
위대한 대 하북팽가의 가주, 태호명왕(太虎明王) 팽호혁의 최후는 그렇게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가······가주······.”
흑호대원 하나가 아연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들의 가주, 그들의 어버이, 그리고 그들의 주군. 서서히 사라지는 검은 얼룩 사이로 흉측하게 얽어진 팽호혁의 얼굴이 보였다.
자신들의 앞에 섰을 때는 거대한 산과 같이 느껴졌건만, 목숨처럼 소중히 여기던 적아대도(赤牙大刀)와 함께 바닥에 널브러진 그의 등은 볼품없이 작은 모습이었다.
어째서 그들의 주군은 이리도 초라하게 목숨을 잃었는가.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해 혼란스러워하던 흑호대원들의 얼굴이 서서히 일그러졌다.
혼란은 불신을 낳고, 불신은 부정이 되며, 부정은 분노를 불러 일으킨다.
비무장 위에 올라온 흑호대를 시작으로, 홀을 가득 채운 하북팽가의 무인들 사이에 걷잡을 수 없는 분노의 불길이 치솟아오르기 시작했다.
그들도 처음 팽호혁과 팽상원이 펼친 무공을 보고 어쩐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는 것을 느끼긴 했다.
어쩌면 정말로 정도(正道)를 벗어나 사마외도(邪魔外道)에 손을 대었는지도 모를 일이지.
그러나 이제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한 문파의 수장이 죽었다. 그리고 그를 시해한 흉수가 그들의 눈앞에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분노가 끓어오르지 않는다면 문파에 몸담을 자격이 없었다.
이제 흑호대를 포함한 팽가의 무인들은 명백한 적의를 품고 목진을 노려보고 있었다.
아주 작은 계기만 있다면 당장에라도 도를 뽑아들고 달려들어도 이상하지 않을 일촉즉발의 상황.
그 상황을 일거에 잠재운 것은, 목진의 낮고 단호한 일갈이었다.
“갈-!”
그리 크지 않은 소리에도 불구하고 결코 항거할 수 없는 내력이 담긴 일갈에 허리에 찬 도에 손을 올리던 무인들이 움찔 몸을 떨었다.
목진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그들을 한 차례 돌아본 뒤 입을 열었다.
“아직 생사결은 끝나지 않았다.”
목진의 조용한 목소리가 바로 옆에서 귓가에 대고 말하듯 무인들의 귓속으로 파고들었다.
하지만 그의 말에도 불구하고 팽가 무인들의 적의는 좀처럼 사그라드는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생사결의 법도를 어기고 난입한 팽호혁의 죽음은 분명 논리적으로는 합당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와는 별개로 그의 죽음에 대해 분노하는 것 또한 하북팽가의 무인으로서 합당한 것이었다.
그러한 좌중의 분위기를 읽은 목진의 눈썹이 꿈틀 움직였다.
‘감히.’
무림에 몸담은 이로서 저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자신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적의를 흩뿌리는 팽가 무인들의 모습에 목진의 눈에 살기가 피어올랐다.
그 수가 무던히도 많기는 하다마는, 내공의 제약이 사라진 지금 칠주야를 싸울 것을 각오하면 모조리 죽이지 못할 것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쯧.’
불쑥 치밀어오른 충동에 목진이 속으로 혀를 차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지금 그는 이 자리에 생사결을 감독하기 위한 입회인으로 자리한 것이지 하북팽가를 멸문시키기 위해 온 것이 아니지 않은가.
잠시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여 앞뒤 생각 없이 모조리 죽이려 드는 건 이성 없는 짐승이나 피에 미친 마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직전에 썩 불쾌한 광경을 보았기 때문일까, 탈마(脫魔)의 경지를 진즉 뛰어넘은 지 오래임에도 순간적으로 평정이 흔들렸다.
목진은 가만히 바닥에 널브러진 팽호혁의 시체를 내려다보았다.
‘생사결부터 마무리 지은 뒤에 차근히 알아보려 했건만······. 어쩔 수 없군.’
생사결의 결착을 원하고 있을 세령에게는 조금 미안한 일이지만, 그래도 복수행을 하러 들어가서 팽가 무인들을 죄다 죽이고 나오는 것보다는 나을 터.
목진은 고개를 들어 팽가의 무인들을 향해 다시금 입을 열었다.
“너희는 과연 너희의 가주가 온전한 상태인 것이라 생각했느냐?”
“······무슨.”
목진의 말에 날카로운 적의를 흩뿌리던 무인들의 기세가 잠시 주춤했다. 분노와 복수심에 눈이 뒤집혀 한켠으로 밀어두었던 작은 의혹을 목진이 직접 지적해 끄집어낸 것이다.
조금씩 술렁이는 팽가의 무인들을 바라보며 목진이 말을 이었다.
“이 무림에는 무를 추구하는 공부라 할 수 없는 기이한 수법들이 무수히 많다. 흔히들 사술(邪術)이라 부르는 것들이지. 인두겁을 쓰고 사람 흉내를 내는 놈들이 쓰는 그런 수법들 중에서는 특히나 기괴하고 몹쓸 것들이 많이 있느니라.”
죽은 자를 희롱하는 수법도 있고, 남의 무공을 빼앗는 방법도 있으며, 동남동녀의 피를 탐하는 악질적인 것도 있지. 목진은 과거 직접 마주치거나 이야기를 들은 적 있는 사술들을 하나하나 열거하며 좌중을 돌아봤다.
치솟아 오른 분노조차 일순 억지로 내리누를 수 있을 정도로 기이한 위압감이 담긴 목소리. 어느새 수많은 무인들은 차분히 말을 이어가는 목진에게 시선을 빼앗기고 있었다.
“그러나 그중 가장 악질이라 할 이들은 따로 있으니.”
목진이 팽호혁의 주검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사람을 제 뜻대로 조종하는 놈들이지.”
“그건······.”
귀혼곡(鬼魂谷). 그의 말을 들은 사람들의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사파로 분류되는 팔곡 중 일좌를 차지하고 있는 문파였다. 사람을 제 뜻대로 조종하는 이들이라면, 이 무림에서는 섭혼술과 세뇌술을 장기로 하는 그들 뿐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들의 생각과는 달리, 목진이 말하고자 하는 사술은 다른 것이었다.
지독히도 까다로운 조건 아래서 오랜 시간 정성을 들어야 펼칠 수 있는 섭혼술이나 금제술과는 달리 보다 직관적이고 간단한, 그리고 끔찍한 사술.
스릉. 목진은 이야기를 하다 말고 별안간 검을 뽑아들었다.
“읏?!”
갑작스런 돌방행동에 비무대 위에 있던 흑호대가 움찔 몸을 떨며 도 위에 손을 올렸다. 하지만 목진은 그런 그들에게 조금도 신경쓰지 않은 채 팽호혁의 주검 옆으로 다가섰다.
목진은 잠시 물끄러미 팽호혁의 주검을 내려다봤다. 그리고는 대뜸 이해 못할 소리와 함께 검을 찔렀다.
“아직 너희 가주에게 미약한 생기가 느껴지는구나.”
피륙을 가르는 섬뜩한 소리와 함께 목진의 검이 죽은 팽호혁의 목덜미를 파고들었다.
죽은 시신을 능욕하는 듯한 행태에 흑호대의 눈에서 불길이 번쩍였다.
“가주를 모욕하지 마시오!”
“내가 너희 가주를 모욕하여 얻을 것이 무에 있느냐.”
목진은 태연히 대답하며 팽호혁의 목덜미에 검을 찌른 채로 한 바퀴 빙글 돌렸다.
그것은 마치, 무언가를 깊게 도려내는 듯한 동작처럼 보였다.
목진은 팽호혁의 시신으로부터 검을 뽑아냈다. 묵빛의 검신에는 한 방울의 피도 묻어있지 않았다.
흑호대를 향해, 그리고 팽가의 무인들을 향해 그가 말했다.
“너희의 눈으로 똑똑히 보거라.”
목진이 팽호혁의 목덜미에 난 상처를 향해 왼손을 뻗었다.
그 동작이 절대고수만이 펼칠 수 있는 상승의 무공, 허공섭물(虛空攝物)이라는 것을 알아본 흑호대원들의 눈에 당혹의 감정이 떠올랐다.
허공섭물이란 기를 이용해 손을 대지 않고 사물을 움직이는 무공일 터인데, 도대체 눈앞의 사내는 가주의 시신으로부터 무엇을 끄집어내려 한다는 말인가.
그들의 의문에 답하듯, 숨길 생각 없는 노골적인 혐오를 담아 목진이 말했다.
“살아있는 사람의 머리에 파고들어 정신을 금제하고 제 뜻대로 조종하는 사특한 요물(妖物).”
푸확 하고 선홍빛 피분수와 함께 어린아이 주먹만한 무언가가 팽호혁의 시신으로부터 뽑혀나와 목진의 손 앞에 멈추었다.
– 끼에에에엑!
검붉은 핏줄이 공처럼 뭉쳐진 기괴하고 혐오스러운 이형(異形)의 괴생명체.
그것은 마치 목진의 허공섭물로부터 벗어나려는 듯 소름 끼치는 괴성과 함께 사방으로 검붉은 핏줄들이 꼬여 만들어진 흉측한 촉수를 뻗어대고 있었다.
본능적으로 거부감이 드는 그 괴이한 생명체의 등장에 좌중이 할 말을 잃은 가운데.
오직 목진의 목소리만이 거대한 공동을 가득 울렸다.
“고독(蠱毒)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