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smic Heavenly Demon 3077 RAW novel - Chapter (215)
우주천마 3077-216화(216/349)
33. 대적준동 Omen of Blood Cult (4)
33. 대적준동 Omen of Blood Cult (4) – 잠깐만, 다시 말해줄래?
하북팽가의 봉문 선언이 발표된 다음날. 제갈세가와 남궁세가, 황보세가가 동시에 공식 성명을 발표했다.
– 사천당가의 비극에 유감을 표한다. 비록 세간에 공표되지 못한 깊은 사정 또한 존재하나, 사천당가의 생존자로서 충분히 원함을 가질 수 있음을 이해하는 바. 우리 오대세가는 사천당가의 후예 당세령의 복수행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받아 들이겠다.
세령이 공식적으로 복수행을 천명한 지 정확히 일주일. 무슨 대처를 해보기도 전에 엉겁결에 생사결을 치르게 된 하북팽가를 제외하면 처음으로 발표되는 오대세가의 공식 성명이었다.
그러자 강호의 여론이 다시 세령의 복수행 쪽으로 향했다.
갑작스런 하북팽가의 봉문 선언으로 강호 전역이 시끌시끌했지만, 그 모든 것이 세령의 복수행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까지 크게 벌어진 판에 세령의 지목을 거부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긴 했다.
그러나 예상은 어디까지나 예상일 뿐. 오대세가가 정식으로 그녀의 복수행을 받아들이게 되자 우주강호 전역이 또다시 들썩이기 시작했다.
– 그러면 정말 염화나찰이 오대세가랑 한판 뜨는건가?
– 모용세가는 제외해야지. 거긴 사천당가가 망한거랑은 관계없잖아.
– 와, 혼자서 오대세가랑 싸우다니······. 완전히 혼자서 무협지 찍는 격이구만.
– 멋지네. 복수행이 성공할 가능성이 높진 않아 보이지만.
– 하북팽가는 만신창이로 털리고 봉문선언했잖아.
– 그게 염화나찰이 한 거냐? 실질적으로는 참룡검제 작품이지.
– 그런데 염화나찰도 대단하네. 그 복모유호를 상대로 승리했잖아. 몇 년 전까지만 해도 C랭크 근처 아니었나?
– 참룡검제가 일행으로 있었잖아. 뭔가 떡고물이라도 떨어졌겠지.
– 참룡검제는 내츄럴 고대인에다가 내가기공 근본주의자 아니었나? 그런 양반한테 받아먹을 게 있어?
– 뭐라도 배웠겠지. 명색이 절대고수인데. 상식적으로 참룡검제 외에는 저만한 성장을 설명할 방법이 없잖아.
– 기연이네. 내가기공에 우리가 모르는 숨겨진 수련법 같은게 있나?
사람들은 사천당가의 후예 당세령과 오대세가가 정식으로 대립하게 된 것에 흥미를 붙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세령의 무공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빠르게 성장했다는 사실에 놀라워하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이 년 전 참룡검제 이목진과 서천검후 김연화의 비무가 우주 전역에 생중계되기 전까지만 해도 염화나찰 세령의 등급은 고작 C+.
그런데 고작 이 년 남짓한 시간 만에 S+랭크로 평가받는 복모유호 팽상원과 자웅을 겨루고, 나아가 어렵지 않게 제압해낸 것이다.
물론 무인의 등급은 단지 객관적인 지표로 나눈것일 뿐, 승패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익히 알려진 사실이긴 하다.
하지만 그것이 세령의 비상식적인 성장에 대한 설명은 될 수 없었다.
팽상원과의 생사결 영상에서 세령이 선보인 것은 뚜렷하게 형성된 붉은색 강기. 그 말인즉 최소 S랭크의 경지에는 올랐다는 뜻인데, 아무리 현대 무림이라고는 해도 고작 이 년 만에 C랭크에서 S랭크로 오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으니 말이다.
그나마 그녀의 일행으로 알려진 참룡검제 이목진이 있기에 절대고수가 선사하는 기연 같은 느낌으로 간신히 납득이 되는 분위기랄까.
정작 강호인들의 입방아에 오르는 상황과는 달리, 당사자인 세령은 오대세가의 공식성명을 보며 짜증을 내고 있었지만 말이다.
“깊은 사정은 얼어죽을.”
세령이 손에 든 음료수 캔을 구깃거리며 욕설을 내뱉었다. 그녀의 왼팔에 감긴 붕대를 새 것으로 갈아주던 순자가 그녀의 등을 찰싹 때렸다.
“기껏 잘 이겨 놓고 왜 화를 내고 있어요? 화내면 나을 상처도 안 나아요.”
“저놈들 말하는 꼴을 보고도 내가 화 안 나게 생겼냐?”
세령이 씩씩거리며 강호넷에 올라온 오대세가의 공동성명을 가리켰다.
“저 봐. 그냥 깔끔하게 오케이 하면 그만이지, 그 와중에도 졸렬하게 니들이 모르는 깊은 사정이 있었으니까 우리는 무조건 잘못한 거 없다고 찡찡거리는 꼬라지 하고는.”
저런 것들이 정파 간판을 달고 있으니 무협지에서 정파가 항상 호박씨 까는 놈들로 나오지. 일단은 자기도 같은 정파의 오대세가 출신이라는 것을 잊어버린 건지, 세령은 순자를 상대로 열심히 오대세가들을 씹어대기 시작했다.
반면 라이디와 목진은 세령이 화를 내거나 말거나, 한 발짝 떨어진 채 이번 하북팽가에서의 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실력이 많이 늘었다고 생각은 했지만, 그 복모유호를 쓰러트릴 정도였다니······. 솔직히 꽤 놀랐어요.”
사뭇 감탄이 섞인 눈으로 세령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라이디가 입을 열었다. 수백 년을 살아온 그녀가 보기에도, 이번에 세령이 보여준 성장은 과거에 유래가 없을 정도로 빠르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저 정도 인재를 제자로 키울 수 있다면 바랄 것이 없을 텐데. 노고수의 고질병인 제자 욕심이 발동한 라이디가 저도 모르게 입맛을 다셨다.
그 마음을 모를 리가 없는 목진은 속으로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으며 짐짓 모르는 척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첫 실전을 잘 소화해 냈으니 한시름 놓았지. 앞으로의 생사결을 통해 얼마나 성장하게 될지 기대가 되는군.”
저 정도의 성장속도면 십 년 내로 화경의 경지를 밟는 것도 불가능하기만 한 이야기는 아닐 터. 목진은 은근히 뿌듯한 얼굴로 세령을 바라보왔다.
그런데 어째 일행 중 하나가 빠진 느낌이다. 주변을 한 차례 둘러본 목진이 라이디에게 물었다.
“헌데 려 그 아이는 어디로 갔느냐? 어째 우주선 안에 보이지 않는 것 같다마는.”
“이호 말씀이신가요?”
그러고 보니 말씀드리는 걸 잊었네요. 라이디가 조금 진지한 얼굴로 목진을 돌아봤다.
“이호는 지금 신교 본단에 가 있어요. 이번에 팽가에서 일어난 일을 보고해야 해서요.”
“팽가에서 일어난 일이라.”
이번 사건에서 천마신교가 신경쓸 만한 일이라면 하나뿐이다.
“······그 혈교라는 놈들에 대한 것 말이더냐?”
“아직 혈교라는 게 확정된 건 아니지만, 혈교일 가능성이 적지 않으니까요.”
“허어.”
도대체 혈교가 뭐 하는 놈들이길래 저리도 기겁을 하는지. 목진이 미간을 좁혔다.
이전에 암림채주 레오나와 흑표채주 김성범에게 혈교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뒤로, 목진도 나름 혈교에 대해 알아보긴 했다.
21세기에 벌어진 관무대전부터 시작해서 무림의 굵직굵직한 사건들에 개입했거나 개입한 의혹이 있는 오랜 역사의 사교집단. 인류정부와 무림이 손을 잡고 일소작전을 펼쳐도 전부 박멸되지 않고 튀어나오는 질긴 근성을 자랑하는 그들은 한동안 보이지 않나 싶더니 최근 다시 슬금슬금 기어나오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래 봐야 매번 무림과 관부의 합공에 격퇴당할 뿐이건만, 왜들 그리 호들갑을 떠는지 모르겠구나.”
“매번 이겨내긴 했지만, 혈교가 모습을 드러낼 때는 항상 무림 전역이 적지 않은 피해를 입었거든요.”
“무림공적이 나타나는 일이니 어느 정도 피해는 당연하지 않느냐.”
“아뇨. 시조님이 생각하시는 피해와는 완전히 다를 거에요.”
평소 목진의 말에 웬만하면 토를 다는 일이 없는 그녀로서는 드물게, 라이디는 딱딱한 목소리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오랜 무림의 역사에서 무림 전역에 파란을 일으켰던 집단은 셀 수도 없이 많아요. 하지만 오직 혈교만이 무림과 인류정부의 지속적인 감시를 받고 있죠. 혈교의 준동에 대해 온 무림이 히스테릭한 반응을 보이는 건, 누구든지 한번 그들의 마수에 걸리면 영원히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에요.”
라이디가 검지손가락으로 제 머리를 톡톡 두드렸다.
“한번 혈교에게 전염된 사람의 정신은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변질되어 버려요. 지극히 폭력적이고, 공격적으로 변하죠. 일부의 사람들은 필요에 따라 그런 충동들을 억누를 수 있지만, 근본적으로 그들의 정신이 변질된다는 사실 자체는 변하지 않고요.”
“······마음을 병들게 한다는 말이냐?”
“네······정확해요. 때로는 심공(心功)이 깊은 고수조차 혈교에 물들어버리고, 심지어는 안드로이드조차 예외 없이 혈교에 감염되기도 해요.”
허어. 목진이 심각한 얼굴로 탄식했다. 마음을 병들게 한다니. 확실히 사교(邪敎)라는 말이 어울리는 행태가 아닐 수 없었다.
“하면 혈교로 인해 마음이 병들게 된 이는 어찌해야 나을 수 있느냐?”
“······.”
목진의 물음에 라이디가 덜컥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조금 뒤, 꾹 닫혀있던 그녀의 입이 열렸다.
“없어요.”
오직 숨을 끊어주는 것만이 그들을 구원해줄 수 있죠. 그리 말하는 라이디의 목소리는 놀라울 만큼 감정이 들어있지 않았다.
하지만 목진은 보았다. 철저할 정도로 모든 감정을 절제하고 있는 라이디의 눈, 그 깊숙한 곳에서 고요히 타오르는 불꽃을.
그 불꽃의 이름은 원망, 그리고 증오였다.
“하······도무지 답이 안나오네.”
인류정부 무림교류부 관무집행위원회 소속 일등집행관, 아테나 카푸르는 다크서클이 짙게 늘어진 눈으로 보고서를 읽으며 중얼거렸다.
패널 하단에 보이는 미확인 보고서는 3250개. 오늘 오전 동안 우주 전역에서 올라온 혈교의 활동에 관련된 보고서들이었다.
“집행관니임······저희 좀 쉬었다 하면 안 될까요요······.”
반대편 책상에서 초죽음이 된 상태의 부관이 당장에라도 죽을 것 같은 목소리로 애원했다.
누가 그 마음을 모르겠는가. 어제 오전부터 꼴랑 세 시간만 자며 보고서만 읽어온 그녀다. 당장이라도 다 때려치고 쉬고 싶은 마음은 그녀 또한 마찬가지였다.
“······조금만 버텨 봐. 오후부터는 헤르메스네들이랑 교대하기로 했잖아.”
“저는 평범한 인간이라구요오······.”
부관이 기어코 닭똥같은 눈물을 흘렸다. 태어날 때부터 유전자 조작을 통해 서류작업 하나는 끝내주게 잘하도록 태어난 집행관들과는 달리 평범한 엘리트 출신인 그가 이 미친 업무량을 어떻게 감당한다는 말인가.
“집행관님, 보름에 한 번씩 이 짓을 하는 것도 못해먹겠어요. 저희 사람 좀 씁시다. 네?”
벌써 일 년째 이 지랄. 보름에 한 번이라고는 해도 평소에 업무가 없는 것도 아닌 만큼 슬슬 정신적으로든 체력적으로든 한계가 찾아올 때가 되긴 했다.
하지만 아테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특급 기밀이라 너랑 나 아니면 열람 권한이 없어. 그거 아니었으면 진작에 행정 전문 안드로이드를 고용했겠지.”
“차라리 머리에다 다이렉트로 케이블 꽂아서 확인하면 안 돼요? 오염이고 나발이고 이러다 멀쩡한 사람도 혈교에 투신하겠어요!”
부관이 꽥 소리를 질렀다.
정신오염의 위협이 있으니 뇌에다 다운받지 말고 일일이 직접 읽으라고? 직접 이 지옥에서 일해보고 그런 소리나 해보라지! 높으신 책상물림들을 향한 끝없는 분노가 치솟아 올랐다.
“혈교 이 새끼들도 문제야! 일 벌일 거면 차라리 후딱 저질러버리던가, 꼬리만 빼꼼 내밀면서 간만 봐? 이 죽일 놈의 새끼들!”
크아아악! 기어고 이성을 상실한 부관이 책상을 뒤집어엎고 바닥에 누워서 바둥바둥 고통의 몸부림을 쳤다.
또 쿨타임이 됐나 보구나. 아테나는 부관의 막나가는 행동에도 불구하고 그저 썩기 직전의 동태같은 눈으로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지난 일 년간의 경험으로 인해 잠깐 저렇게 발광하다가 오 분 정도 지나면 주섬주섬 책상을 세우고 업무에 복귀하게 될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래. 차라리 어디서라도 튀어나왔으면 좋겠네.”
인류를 수호하는 집행관이 입에 담기엔 윤리적으로 영 좋지 않은 말이긴 했지만, 지금만큼은 아테나 또한 부관과 같은 생각이었다.
작년 벽력자 한천향 폭주 사태로부터 일 년. 비상경계 태세로 전환한 관무집행위원회는 은하계 전역에서 혈교에 대한 정보들을 조사하기 시작했었다.
하지만 기껏해야 소규모 혈교 컬트같은 잔챙이들에 대한 소식만 들어올 뿐, 혈교 놈들의 본체에 닿을 정도로 굵은 뿌리는 여전히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상태. 일 년 동안 비상경계 태세를 유지하고 있는 관무집행위원회 내부에서도 이미 적지 않은 이력들이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대로면 별다른 소득도 없이 비상경계 체제가 종료될 상황. 찝찝함은 둘째치고 지난 일 년 동안 그녀와 동료들이 해온 일이 헛수고가 될 수도 있었다.
그런 것보다는 차라리 뭐라도 튀어나와서 수사에 진척이 생기는 게 낫지. 아테나의 인내심도 슬슬 한계에 이르러가고 있었다.
그때였다.
– 삑. 삑. 삑.
별안간 아테나의 개인 회선으로 통신 요청이 들어온 것은.
통신의 발신인을 확인한 아테나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뭐야. 얘가 웬일로 연락을 해온대.”
“누군데요?”
바닥에 누워서 꿈틀거리던 부관이 물었다. 아테나가 패널을 돌려 그에게 향했다.
“나찰즈의 순자······? 아, 그 참룡검제랑 같이 다니던?”
“맞아.”
“둘이 사적으로 대화도 하고 하는 사이였어요?”
“아니? 그때 뮤즈인가 하는 행성에서 일 하나 처리해준 뒤로는 딱히 연락한 적 없었는데?”
“뭐 부탁하려고 그러나?”
“······그렇게 계산을 못 하는 애로는 안 보였는데.”
만약 그 정도로 염치가 없는 상대였으면 대강 빚을 청산한 뒤로 아예 수신거부를 해 두었으리라.
일단 받아나 보자. 아테나가 통신을 받았다.
통신 너머에서 이제는 가물가물한 순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 아테나 님?
“어. 무슨 일? 나 지금 일하는 중인데.”
바쁘니까 핵심만 말해줄래. 아테나가 조금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에 순자의 목소리가 조금 조심스러워졌다.
– 아······실례했어요.
진짜 뭐 부탁하려고 했나보네. 아테나의 눈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그야 인류정부의 높으신 분하고 연줄이 생기면 쓰고 싶어질 수밖에 없다지만, 나름 좋은 기억으로 남았던 상대한테 그런 취급을 받으니 썩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런 그녀의 심정은, 이어진 순자의 말에 씻은 듯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 최근에 혈교가 관여한 것으로 추정되는 일이 있었는데, 혹시 여유가 되시면 알아봐 주실 수 있을까 해서요······.
“······어?”
얘 지금 뭐라고 한 거지? 아테나와 부관이 서로를 돌아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