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smic Heavenly Demon 3077 RAW novel - Chapter (22)
우주천마 3077-21화(22/349)
4. 서천검후 Western Sword Queen (4)
4. 서천검후 Western Sword Queen (4) – 뜨자
새하얀 대리석과 푸른 비단으로 가득한 궁전(宮殿).
언젠가 무림 전문 취재기자가 묘사한 한 문장은, 서천검후의 기함인 웨스턴 소드퀸 호의 함교를 설명하기에 더할나위 없이 완벽한 서술이었다.
함교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눈처럼 흰 대리석 바닥의 중앙을 가로지르는 푸른 비단길. 그리고 그 비단길의 양 옆으로 줄줄이 늘어선 호위대와 오퍼레이터들. 마치 왕이 기거하는 궁을 그대로 옮겨온 듯한 함교의 모습은 절대고수들 중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의 웅장함과 아름다움을 자랑했다.
그리고 그 정점에 있는 것이 바로, 사파이어로 장식된 옥좌. 서천검후 김연화는 그곳에 있었다.
고전적 경장의 디자인을 반영한 순결한 흰색의 케이프를 걸친, 이십대 중후반 정도로 보이는 성숙한 여인은 차분히 내리깐 검푸른빛 눈으로 자신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평소라면 은은한 미소가 맺혀있었을 입가는 딱딱하게 굳어 있고, 온화했을 목소리엔 냉기가 감돈다. 여인, 김연화는 흑표채의 부채주를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내가 누구인지 알고 있으니, 네가 한 말이 거짓일 리는 없겠지. 엘레나는 무공 외에 다른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아이이니······.”
연화의 시선이 이번엔 부채주 옆의 다른 여인을 향했다.
“엘레나의 상태는?”
“그리 좋지 않습니다. 일단 생명에 지장을 줄 고비는 넘긴 듯 하나, 감당하기 어려운 기파를 억지로 받아낸 것 때문에 전신의 기맥이 심하게 상했습니다. 큰 의원에 가서 몇 달은 요양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연화가 지긋이 입술을 짓씹었다. 아무리 직접 배 아파 낳은 아이가 아니라 인공자궁을 통해 낳은 아이라 하지만, 딸의 목숨이 경각에 달했다는 것은 어머니로서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
엘레나에 대해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이목진이라는 청년, 아니 청년의 탈을 쓴 노고수에게 적개심이 싹튼다. 무인으로서는 그러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어머니로서는 이성적인 사고를 할 수가 없었다.
그나마 속에서 들끓는 감정을 빠르게 억누를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그녀의 심공(心功)이 화경의 경지에 오른 덕분이리라.
“후우.”
연화는 깊게 심호흡을한 뒤 옥좌 옆에 시립해 있는 비서호법을 향해 손짓하며 말했다.
“일단 그들을 만나봐야겠다. 그들을 함교로 모셔오거라.”
“서쪽 우주의 검수 김연화라 합니다.”
“이목진이다.”
‘······보이지 않아.’
처음 연화가 목진이라는 남자를 보고 느낀 감상. 그것은 막막함이었다.
상대가 어떤 경지에 서 있는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연화는 옥좌에서 일어나 바닥으로 내려가 목진과 마주했다. 그녀의 눈이 가늘어졌다.
눈앞에 거대한 벽이 있는데, 그것을 인식조차 할 수 없다. 그녀가 화경의 경지에 접어든 뒤에는 처음 느껴보는 감각이었다.
의심의 여지가 없다. 눈앞의 남자는 자신보다 까마득히 위에 있는 경지를 밟고 있는 것이다.
이길 수 없다. 굳이 무공을 겨룰 것도 없이, 이 순간 승부는 정해지고 말았다.
하지만 연화는 동시에 아랫배 깊숙한 곳에서 끓어오르는 흥분을 느꼈다. 그건 무인으로서 응당 가지고 있어야 할 호승심이라는 놈이었다.
승패에 상관없이 그저 검을 맞대고, 검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그런 강렬한 열망이 연화의 머릿속을 헤집었다.
‘이게 그 아이가 느꼈던 감정이구나.’
연화는 손톱으로 지그시 엄지를 누르며 생각했다. 자식 중에서 가장 자신의 피를 짙게 물려받은 것이 바로 엘레나다. 그녀라면 이 열망에 몸을 맡긴 채 앞뒤 재지 않고 눈앞의 남자에게 달려들어도 이상할 게 없었다.
연화는 치밀어오르는 열망을 억누르며 살짝 고개를 숙였다.
“이번에 제 딸아이가 무례를 저질렀다 들었습니다. 어미로서 그 부분에 있어 사과드리겠습니다.”
서쪽 우주의 검후라는 위치에 있으면서도 그녀는 고개를 숙이는 데에 거리낌이 없었다. 부모가 자식을 위해 고개를 숙이는 것을 마다할 리가 없지 않은가. 엘레나는 분명 잘못을 했고, 그녀는 어머니로서 그녀의 책임을 덜어주어야 했다.
하지만 목진은 가만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다 큰 성인의 사죄는 부모가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네.”
명백한 거절의 의미. 딱히 목진의 말투에서 그녀를 배려하는 어조는 느껴지지 않는다. 말 그대로, 사죄를 받는다면 당사자인 엘레나에게 듣겠다는 의미였다.
서천검후의 앞에서 그 누가 이리도 광오할 수 있을까. 목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곧바로 분위기가 냉랭해지고, 호위대의 분위기도 변한다.
‘영감님, 제발 좀······!’
세령은 안절부절한 얼굴로 보이지 않게 목진의 옷깃을 끌었다. 목진은 그녀를 한번 본 뒤 괜찮다는 듯 다시 고개를 돌려 연화의 시선을 마주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세령에겐 억겁과도 같던 시간이 지나고, 먼저 입을 연 쪽은 연화였다. 무언가를 내려놓은 듯 깊게 한숨을 내쉬며 그녀가 입을 열었다.
“······후우. 원래 이렇게 대할 생각은 없었어요.”
가슴까지 내려오는 흑단같이 검고 긴 머리카락을 쓸어올려 케이프 안으로 집어넣은 그녀의 모습은 고혹스러움을 넘어 일견 성스러움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오죽했으면 같은 여성인 세령조차 할 말을 잃고 멍하니 그녀를 바라볼 정도였을까.
“처음에는 딸아이에게 자신도 그 경지를 알지 못하는 대단한 고수가 있다는 말을 듣고 급히 날아왔는데, 막상 와서 본 것이 만신창이가 된 딸아이의 모습이어서 스스로 마음을 다스리지 못한 것 같습니다. 고인께 부끄러운 꼴을 보였군요.”
만신창이라는 말에서 세령의 몸이 움찔 떨렸다. 하지만 정작 그 딸아이를 만신창이로 만든 장본인인 목진은 담담한 목소리로 작게 한 번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전부였다.
“그래, 그대가 분노하는 것은 정당하고 당연하네. 내 비록 그 아이를 벌하긴 하였으나, 부모 된 자의 마음을 어찌 모르겠는가.”
워낙 복수와 음모가 판치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왔던 탓에, 목진은 혼인을 하여 자식을 둔 적이 없었다. 하지만 자식처럼 제자를 키워본 적은 있었기에 그는 연화의 감정을 십분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너무 걱정할 것 없네. 그 아이는 그대가 걱정하는 것보다 명이 긴 아이이니. 조금 전 얼핏 보건대 고비를 넘긴 듯 싶으니 금세 일어나 제가 원하던 것을 얻을 것이니.”
목진의 말에 연화가 번쩍 고개를 들었다.
“그 말을 믿어도 좋겠습니까?”
“나는 내가 본 것을 말했을 뿐이다. 믿건 말건 그건 그대에게 달린 일이지.”
“······감사드립니다.”
“감사할 것 없다. 나는 진심으로 그 아이가 죽어도 좋다고 생각하고 무공을 펼쳤으니. 운이 좋게 기연을 얻은 것은 그 아이의 운명이겠지.”
목진은 내심 혀를 차며 툴툴거렸다. 그로서는 정말 죽일 작정으로 무공을 펼쳤는데, 정작 엘레나가 기연을 얻어버린 게 진심으로 못마땅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런 기색을 대놓고 드러내진 않았지만 말이다.
목진의 말을 끝으로 잠시 대화가 끊기자, 연화가 그를 향해 물었다.
“고인께서는 누구십니까?”
여러 의미가 함축된 물음이었다. 목진은 옆에서 안절부절하고 있는 세령을 흘긋 바라봤다. 진실을 말해도 괜찮겠냐는 의미였다.
평범한 무림인 나부랭이도 아니고, 그 누가 서천검후 앞에서 거짓을 고할 수 있을까. 이미 숨기는 것이 의미가 없는 상황이었다. 세령은 고민할 것도 없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목진이 말했다.
“본존은 이천 년 전, 무림을 평정하고 천하제일의 자리에 앉았던 사람이니라.”
엘레나의 앞에 있을 때처럼 오만하기 그지없는 목소리.
그것은 세령이 생각했던 것과는 조금 많이 다른 자기소개였다.
그리고 잠시 후.
“······쉽게 믿기 어려운 이야기로군요.”
자초지종을 들은 연화가 고운 미간을 좁히며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이천 년 전부터 지구에 잠들어 있던 고대인이라니. 아무리 하루가 멀다하고 기기묘묘한 일들이 일어나는 강호무림이라지만, 그 와중에도 이건 좀 많이 기묘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내공 드라이브가 없는 내츄럴이라는 것을 눈앞에서 보고 나니 또 믿지 않을수도 없었다. 어디 오래된 문파의 역사적 유물 따위로나 남아있을 내가기공을 직접 연마해서 상상도 못할 경지를 이룩했다는데, 이게 어디 현대 무림에서 가당키나 한 이야기던가.
“그렇다면 정녕 내공 드라이브 없이 그와 같은 경지를 이룩하신 것인지요? 무공을 쓸 때도 통합내공운용시스템과 초식 인터페이스의 보조를 받지 않았고요?”
연화가 저도 모르게 입을 가리며 묻는다. 놀라움을 넘어 경이로움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일류 무가의 핏줄이자 무공에 조예가 깊은 연화이기 때문에 알 수 있다. 내공 드라이브가 나오기 전의 비효율적이기 그지없는 내가기공을 익혀 대성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말이다.
평균적인 통계로 보면, 무공에 입문한 자가 무(武)의 재능의 한계점에 처음으로 도달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보통 빠르면 5년, 늦어도 30년 안팎이다. 그 이후에는 시스템의 업그레이드 없이 깨달음을 얻어 스스로의 한계를 돌파하기 위한 인고의 시간이 필요하지만, 적어도 근골(筋骨)과 오성(悟性)의 한계에 도달하는 데에는 그 정도의 시간이면 충분한 것이다.
하지만 스스로 기를 모아야 하는 내가기공의 경우는 어떻던가? 내공을 모으는 데만 해도 한 세월이 걸리며, 수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자신의 인생을 다 바쳐도 자신이 가진 재능의 한계점에 도달할 수 있을지조차 장담할 수 없다.
현대의 무인들이 부업이나 여가활동을 즐기면서도 무공 수련에 여유가 있는 것을 보면 그 차이는 명백하지 않은가. 내공 드라이브가 나온 뒤 내가기공이 도태된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었다.
하지만 여기, 그런 내가기공을 가지고 스스로의 한계를 초월한 무인이 있다. 가지고 있던 스스로의 한계를 돌파해 화경(化境)의 경지에 오른 그녀이기에 다른 이들보다 더욱 깊숙히 느낄 수 있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천하제일의 자리에 올랐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지요. 자고로 무공의 경지란······.”
그만. 이어지던 연화의 말을 목진이 단칼에 잘라냈다. 듣기 싫다는 듯 단호한 목소리에 세령도, 당사자인 연화도 당황한 얼굴로 목진을 돌아봤다.
목진은 그 속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깊은 눈동자로 연화를 직시했다. 연화는 그 강렬한 시선에 저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무인이라는 족속은 일단 무공을 겨루어 봐야 대화를 시작할 수 있는 법이지. 그대의 귀밑머리 색이 하얀 것을 보아하니 화경의 경지에는 오른 듯 싶은데, 내 원하는 대로 받아줄 테니 대화를 하려면 검을 들게.”
“······어떻게 아셨는지요.”
“말을 하는 내내 검을 맞대고 싶어 죽겠다는 얼굴을 하고 있는데 내 어찌 모르겠는가.”
“······읏.”
담담한 목진의 말에 속내를 들킨 연화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이만한 경지에 이르렀는데도 호승심을 주체하지 못하고 주책을 부리다 들통이 나다니, 자신을 따르는 이들 앞에서 부끄러워 얼굴을 들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실실 올라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무리 봐도 그녀는 엘레나의 어머니가 확실한 모양이었다.
정보)
워낙 우주선 본체가 크기 때문인지, 웨스턴 소드퀸 함교의 내부는 정말 궁전같은 구조다. 함교의 입구는 보통 SF물에서 나오는 것처럼 함교 뒷편이 아니라 함교 앞, 전면 강화유리 아래에 대각선 엘리베이터 형식으로 나 있다. 그래서 함교에서는 정면을 바라보고 있음에도 누군가가 왔을 때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볼 필요가 없다.
서천검후의 딸 중 하나가 인테리어를 디자인한 웨스턴 소드퀸 함교는 무림 절대고수 함교 콘테스트에서 3회나 우승한 경력이 있다.
깔맞춤 때문에 흰 케이프를 입지만, 원래 서천검후는 검은 옷을 즐겨입는 편이다.
서천검후는 그놈의 하얀 케이프 때문에 무림인이 아니라 성직자 같다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케이프와 한 세트인 흰 장갑때문에 더욱 그렇다.
엘레나는 목숨 건 도박에 성공했다. 목진은 그걸 알기에 짜증이 났다.
서천검후와 그녀의 피를 짙게 받은 엘레나는 두 사람 다 강자를 보면 일단 눈이 돌아갈 만큼 호승심이 매우 강하다. 모전여전이다.
그나마 서천검후는 본 성격이 차분한데다 화경의 경지에 이르기까지 하면서 충동을 꽤 제어할 수 있는 편이다.
서천검후는 소싯적에 그놈의 호승심 때문에 왼팔이 날아간 뒤 쭉 기계의수로 대체해서 살고 있다. 생체의수 이식을 거부하고 기계의수를 쓰는 이유는 이래저래 편리해서라고 한다.
엘레나가 통신을 통해 강한 고수가 있다고 하자 서천검후는 온천욕을 즐기다 말고 신나서 날아왔다. 두 모녀가 이러는 건 하루이틀이 아니다. 엘레나는 다른 자식들에 비해 특히나 서천검후와 사이가 좋은 편이고, 그 때문에 엘레나가 빈사상태가 되었을 때 서천검후의 눈이 돌아갔다.
목진은 고대인 커밍아웃을 했다.
요즘 보통의 무림인들은 하루에 12시간 이상 수련을 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럼에도 내공심법을 쓰는 것보다 빠르게 성장한다.
내공심법을 쓰는 이들이 한계(벽)를 늦게 경험하는 것은, 중간중간 깨달음을 통해 한계의 범위가 점점 늘어나기 때문이다.
귀밑머리가 하얀 것은 반박귀진의 증거로서, 화경에 들면 다 갖게 된다. 패션을 중시하는 절대고수들은 그냥 염색을 해서 숨긴다.
서천검후가 쓸데없는 말이 많았던 건 호승심을 숨기기 위해서였다.
서천검후는 솔직히 목진이 맞짱뜨자고 했을 때 (무인적인 의미로)심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