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smic Heavenly Demon 3077 RAW novel - Chapter (220)
우주천마 3077 우주천마-221화(221/349)
34. 무영귀탑 Phantomic Shadowless Colony (4)
34. 무영귀탑 Phantomic Shadowless Colony (4) – 도시전설: 노인정
흔히 말하는 무공의 성취란 게임의 레벨업과 다르지 않다.
아무것도 모르는 초보자 때는 대충 해도 실력이 쑥쑥 올라가고, 어느 정도 반열에 오르면 다음의 단계로 오를 때까지 점점 더 많은 인내와 노력을 요구한다.
문외한이 봐도 그 차이를 실감할 수 있을 정도로 빠른 성장에서, 저 자신이 봐도 헛수고처럼 느껴질 정도로 느린 성장까지.
때문에 고수의 반열에 이른 이들은 스스로의 무공이 정체되었다는 말을 하곤 한다.
아무리 수련에 수련을 거듭해도 진전이 보이지 않는 무공에 슬럼프를 겪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그 표현에는 어폐가 있다. 그 속도가 답답하도록 느릴 뿐, 실제로는 수련을 통해 그들의 무공은 아주 조금씩이라도 앞으로 나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거기에서 무인에게 주어지는 선택지는 보통 세 가지다.
현재의 성취에 안주해서 더 이상의 무공 수련을 포기하던가.
깨달음을 얻어 정체되는 무공을 단번에 끌어올리던가.
아니면 진득한 끈기를 가지고 정석적인 수련을 거듭하던가.
대부분의 무인들은 첫 번째, 혹은 두 번째를 선택한다. 성취감 하나 없이 우직하게 수련을 이어가는 것은 가장 정석적인 길이나 너무나 고난한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절대고수의 반열에 올라선 이들은 깨닫고 만다.
가장 미련하고 단순하게만 보였던 마지막 방법이야말로, 정석(定石) 중의 정석이라는 것을.
그들의 눈앞을 가로막는 거대한 벽은 알량한 깨달음 따위만으로는 극복할 수 없다.
한 번 한 번의 부딪힘에 혼신의 힘을 다하고, 그것을 억겁에 걸쳐야 간신히 작은 자국 하나를 새길 수 있으니.
쉬운 길을 찾아 오직 깨달음만을 추구하던 이들은 그들을 가로막는 벽 앞에서 주저앉고야 만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벽에 도전하는 것은 그들 중 지극히 적은 수.
그러나 그들은 오래지 않아 깨닫고 만다.
이제 그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그리 오래 남아있지 않다는 것을.
주어진 생의 대부분을 무(武)의 신에게 가져다 바친 그들의 등 뒤에서 수명의 한계라는 또 다른 벽이 다가온다.
그 벽의 이름은 죽음.
그것이 다가오는 속도는 빠르지 않다. 그러나 그것이 멈추는 일 또한 없다.
때문에 벽을 넘어서지 못하는 이들은 죽음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그것이야말로 순리였고, 또한 운명이었으니까.
하지만 수백여 년 전, 그러한 순리를 거부한 이가 있었다.
평생을 무공에 미쳐 살고, 죽어서도 무공에 미치고자 한 그는 생각했다.
– 살아있는 동안 무공을 익히는 것으로는 부족하다면, 죽어서도 무공을 쌓으면 그만이 아닌가?
먼 옛날에는 우스개소리에 불과했을지 모를 이야기이지만, 우주에 진출하여 수많은 과학기술을 발전시킨 인류에게는 충분히 시도해볼 법한 일. 고명한 고수이자 거대기업의 후계자였던 그는 폐기 예정이던 소형 콜로니를 구입하고, 인류정부와 교섭하여 당시의 최신 기술이었던 전뇌(電腦) 기술을 손에 넣게 되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은 죽은 뒤에도 무공을 수련할 수 있는, 오직 무인만을 위한 사후세계.
무영탑(無影塔)은 그렇게 탄생했다.
뇌와 척수를 적출해 직접 연결하고, 생전에 사용하던 내공 드라이브와 연동하여 실제와 다름없이 무공을 펼칠 수 있는 궁극의 전뇌공간.
자신이 만들어낸 무영탑의 탑주이자 첫 번째 입주자가 된 그는 자신과 같은 고민을 안고 있던 절대고수들을 초청하기 시작했다.
그만한 경지까지 올라선 무인들에게 더 높은 경지로의 갈망이 없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일. 거기에 무언가를 희생할 필요 없이 사후에 입주하겠노라 약조만 하면 끝나는 일이다.
때문에 무영탑의 초청을 받은 고수들로서는 무영탑주의 권유를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무영탑은 우주무림의 이면에서 은밀하게 존재하며 수백년 동안 차츰차츰 그 입주자들을 늘려오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여기 있는 이 양반들은 죽어서도 무공수련을 할 만큼 무공에 미친 인간들이라는거네요.”
박 노야의 설명을 들은 세령이 질린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얼굴 위에 공포감이나 혐오감 따위의 부정적인 감정은 보이지 않았다.
분명 충격적이기 그지없는 광경이었지만, 박 노야의 설명을 듣고 나니 그럭저럭 받아들일만 했기 때문이었다. 이 드넓은 우주무림에 온갖 복잡기괴한 일들이 천지인데 까짓거 움직이는 납골당 겸 메타버스 노인정 정도는 귀여운 수준이었다.
‘하긴 용 대협이나 검후님을 보면 저러고도 남을 거 같긴 해.’
무공 얘기만 나오면 신나서 체면이고 뭐고 다 집어던지는 절대고수들의 일상을 일 년 가까이 관람한 입장에서는 되려 저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공감이 된달까.
물론 세령 자신이 저 안에 들어갈 생각은 추호도 없었지만 말이다.
세령이 라이디를 돌아보며 물었다.
“그럼 라이디 님도 나중에 저기에 안장······아니 입주하실 예정이세요?”
“으응······. 글쎄요. 아직은 생각 중이에요. 꽤 매력적인 이야기이긴 한데, 굳이 저렇게까지 해야하나 싶은 생각도 들거든요.”
“그렇게 말씀하시면서 선계약금은 꼬박꼬박 넣어주고 계시지 않습니까.”
선계약금? 박 노야의 말에 세령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무영탑의 유지보수를 위한 자금은 필요하니까요. 저희는 입주예정자 분들을 대상으로 약 50년 할부로 소정의 선계약금을 받고 있습니다.”
“어차피 얼마 되지도 않으니까 보험 삼아 내 두는 거야. 설레발 치지 마.”
라이디가 딱 잘라 선을 긋자 박 노야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의 표정을 보아하니 라이디가 무영탑에 입주하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듯 보였다.
조금은, 아니 꽤나 그로테스크한 모습의 반 시체들을 쭉 둘러보던 세령이 물었다.
“······대충 이름들을 훑어보니까 정사마흑 가리지 않고 다양한 양반들이 오시는 모양인데, 그쪽 사문들은 저 양반들이 저러고 있는 거 알아요?”
모릅니다. 박 노야가 즉답했다.
“이곳 무영탑은 속세의 인연을 완전히 끊어야만 들어올 수 있는 곳. 타인에게 무영탑의 존재를 알리지 않도록 맹세하고, 저희가 제공하는 가이드라인을 따라야만 무영탑에 입주할 수 있습니다.”
“가이드라인도 있어요?”
“장례는 치러야 하니까요. 장례 이후에 냉동보관된 중추신경계와 예비 내공 드라이브를 인수 받아서 무영탑에 업로드하는 거죠.”
“그거 참 비밀스러운 조직답네요.”
굳이 그런 번거로운 일까지 해야 하나? 세령이 의아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어차피 온갖 기기괴괴한 기술들이 넘쳐나는 우주무림이니 딱히 사술 취급을 받을 수준도 아니다. 아니, 애초에 이름값 좀 날리는 문파의 사조들이 입주해 있는데 자기네 선조님들 상대로 사술이라고 하진 않을 거 아닌가.
하지만 박 노야는 가만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희가 괜히 관심을 끌어봐야 좋을 게 없습니다. 애초에 인류정부와 계약할 때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다는 게 조건이기도 했고요.”
그렇다고 해도 도시전설이라는 명목으로 그 존재가 새어나가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었지만 말이다. 다만 그 정도는 무영탑의 입장에서도 그럭저럭 허용범위였기에 적당한 정보왜곡 외에는 딱히 조치를 취하지 않았을 뿐.
“아, 그러고 보니 인류정부한테 기술 지원을 받았다고 했었죠.”
그럼 이거 그냥 인류정부의 비밀연구소같은 거 아니에요? 세령의 물음에 박 노야가 피식 웃었다.
“뭐, 아주 틀린 말은 아니죠. 처음엔 실제로 그런 느낌이기도 했고요.”
하지만 이젠 아니에요. 박 노야가 덧붙였다.
최신 전뇌공간 기술에 대한 임상 데이터가 필요했던 인류정부. 그리고 기술이 필요했던 무영탑. 딱 그림이 맞아떨어지지 않는가.
하지만 그건 수백 년도 더 전의 계약일 뿐. 이미 무영탑과 인류정부와의 연결은 완전히 끊긴 지 오래였다. 오죽하면 로스트 테크놀로지를 되찾겠다고 자신들을 쫓으려는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겠는가.
“그런데 저런 상태로 무공을 수련해서 의미가 있긴 한가요?”
“······무슨 의미이신지?”
물끄러미 특수용액 위로 둥둥 떠있는 뇌수를 보던 세령이 묻자 박 노야의 눈가가 살짝 꿈틀거렸다.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녀의 물음은 이곳 무영탑의 존재의의 자체를 의심하는 말이었으니까. 평생을 이곳 무영탑을 위해 봉사해 온 박 노야에게 있어 불쾌하게 들릴 수밖에 없었다.
이크. 자신도 모르게 필터링 없이 나간 질문의 무례함을 자각한 세령이 낭패한 표정을 지었다.
“어, 그게 그런 의미가 아니라요, 제가 같이 다니는 고수님이 맨날 하시던 말이 있거든요. 그 뭐냐, 육체와 기와 정신이 함께 균형을 이루어야 더 높은 경지로 올라갈 수 있다나······.”
세령이 재빨리 목진의 핑계를 댔다. 실제로도 그 말은 목진이 그녀에게 무공을 가르치며 간간히 강조하던 말이기도 했다.
그러나 박 노야는 역정을 내는 대신에 작게 한숨을 쉬었다.
“······뭐, 괜찮습니다. 실제로 여기 오신 고수님들 중에서는 전뇌공간에서의 수련에 의구심을 품으시는 분들도 적지 않으니까요. 당 소협과 같은 말씀을 하시는 분들도 더러 계셨지요.”
그리고 그분들은 무영탑의 기존 입주자 분들과 비무를 한 뒤에 입장을 바꾸고 무영탑의 입주자가 되셨죠. 박 노야가 가볍게 어깨를 으쓱이며 덧붙였다.
“······뭐랄까, 한판 떠 보면 알게 된다는 소리로 들리는데요.”
“자고로 무인은 혀가 아니라 힘으로 말하는 법이 아니겠습니까.”
따라오시죠. 박 노야가 두 사람을 전뇌공간에 접속하기 위한 시설이 있는 응접실로 이끌었다.
잠시 뒤, 응접실에 도착한 세령은 눈앞에 보이는 커다란 전뇌공간 접속기를 보고 신기한 것을 보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어째 거창하게 생긴 게 일반 접속기랑은 다르게 생겼네요.”
“입주자 외의 손님이 무영탑에 접속하려면 시스템적으로 조금 복잡하거든요. 무영탑의 전뇌공간은 일반 전뇌공간과는 하드웨어 설계 레벨부터가 다릅니다.”
당 소협이 따로 하실 일은 없고 그냥 접속기에 누우시면 됩니다. 박 노야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라이디는 이미 설명도 듣지 않고 먼저 접속기에 들어가 누워 있었다.
‘뭐, 라이디 님도 있으니까 괜찮겠지.’
어떤 백도어 기능이 있을지 모르는 접속기에 거부감을 느낄 법도 하건만, 세령은 의외로 순순히 접속기에 누웠다. 라이디의 존재 때문이었다.
‘아저씨가 있는데 나를 함정에 빠트릴 리도 없고.’
정확히 말하자면 그녀 자체를 신뢰한다기보다는 그녀의 목진에 대한 신앙에 가까운 존경심 쪽을 신뢰하는 것이었지만 말이다.
“접속 준비 되셨나요?”
“네.”
“좋습니다. 그러면 무영탑에서 뵙죠.”
그리고 박 노야의 말과 함께 세령의 의식이 암전했다.
“으······?”
세령은 조금 당황스러운 기색으로 천천히 눈을 떴다. 일반적인 전뇌공간 접속과는 조금 다른 감각 때문이었다.
그녀는 창문이 없는 작고 새하얀 방 안에 있었다. 그녀의 옆에는 가볍게 몸을 푸는 라이디가 있었고, 앞에는 조금 전 봤던 박 노야가 매우 편안해보이는 트레이닝복을 입은 채 옅은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여기가 무영탑인가요?”
“네. 딱히 신경계에 이상이 느껴지진 않으시죠?”
“네.”
“좋아요. 그러면 바로 가죠. 기왕 오신 것 소개시켜드릴 분들이 있는데, 아마 앞에서 기다리고 계실 겁니다.”
자 그럼. 박 노야는 어쩐지 연극을 하는 것과 같은 말투로 방의 한쪽에 나 있는 문을 열며 말했다.
“무인들의 영원한 발할라, 무영탑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오.”
문을 열자 세령을 맞이한 것은 푸르고 아름다운 초원, 그리고 그 중심에 우뚝 서 있는 높은 탑. 순간 전뇌공간이라는 것을 망각할 정도로 대단한 현실감에 세령이 저도 모르게 감탄의 목소리를 흘렸다.
‘하긴, 이 정도 퀄리티는 되어야 고수들이 오려고 하겠지.’
“풍경이 꽤 멋지네요.”
“무영탑에는 여러 지역들이 있어요, 하나같이 절경들이죠. 아마 나중에 구경할 수 있을거에요.”
“라이디 님 말씀대로입니다. 입주자 분들 말씀으로는 보이는 것이 아름다워야 수련도 더 잘 된다고 하시더군요.”
라이디의 말에 박 노야가 가볍게 웃으며 덧붙였다.
음 그런가. 박 노야의 말에 공감하지 못한 세령이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요 근래 그녀에게 있어 수련이란 구르고, 구르고, 또 구르는 것의 연속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때, 한쪽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왔군요. 정말 왔어요.”
“어디? 어디?”
어쩐지 흥분한 기색이 가득한 남녀의 목소리. 일행의 고개가 그쪽으로 향했다.
그곳에 보이는 것은 길고 푸석푸석한 검은 머리를 한 매서운 인상의 사내와 녹색 머리카락을 등 뒤로 땋아내린 포근한 인상의 여인이었다.
두 남녀는 그들을, 정확히는 세령과 라이디를 보며 잰걸음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어느 쪽이야? 금발 쪽?”
“낯이 익은 걸 보면 그쪽은 예비 입주자일 겁니다. 아마 검은 머리카락 쪽일 겁니다 선배님.”
“엥?”
남녀의 말이 자신을 가리키고 있다는 것을 알아챈 세령이 두 눈을 깜박였다. 두 남녀는 숫제 콧김까지 뿜으며 잔뜩 고조된 얼굴로 그녀를 향해 다가왔다.
그리고, 세령이 뭔가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녹색 머리카락의 여인이 냅다 그녀를 끌어안았다.
“으-?!”
당황한 건 둘째치고 감히 대응할 엄두도 나지 않을 정도로 기민한 움직임. 자신보다 작은 체구의 여인에게 꽉 안긴 세령은 그녀가 암만 봐도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고수임을 깨닫고 본능적으로 몸을 떨었다.
잠시 그녀를 꽉 끌어안고 있던 여인이 이내 고개를 들어 양 손으로 세령의 얼굴을 갑싸쥐었다. 그녀의 얼굴을 조목조목 뜯어보던 여인의 눈에 그렁그렁한 눈물이 맺혔다.
“아이고,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얼굴만 봐도 보이네. 이 어린 것이 얼마나 고생이 많았을까······!”
“예?”
상황을 따라가지 못하는 세령이 저도 모르게 되물었다. 차마 함께 끌어안지 못해 두 사람의 옆에서 움찔움찔거리던 남자가 여인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선배님, 일단 설명을 해 줘야하지 않겠습니까.”
“아 맞다.”
남자의 말에 여인이 세령의 얼굴을 놓고 흠흠 하며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남자가 그녀의 옆에 나란히 서서 근엄한 표정을 지었다.
세령은 그런 두 사람을 보며 여전히 혼란스러움을 감추지 못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런 세령을 향해, 여인과 남자는 차례대로 그들의 이름을 소개했다.
그리고 그 이름은, 세령이 감히 상상하지 못했던 이름들이었다.
“무영탑에 어서 오렴, 당가의 아이야. 내 이름은 당소아, 너의 먼 선조란다.”
“나는 당군성이다. 사천당가의 81대 가주였지.”
전혀 예상치 못했던 선조들과의 만남에, 세령의 입이 천천히 벌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