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smic Heavenly Demon 3077 RAW novel - Chapter (221)
우주천마 3077 우주천마-222화(222/349)
34. 무영귀탑 Phantomic Shadowless Colony (5)
34. 무영귀탑 Phantomic Shadowless Colony (5) – 아니 왜 울어요
세령은 철이 들었을 때부터 알고 있었다.
이 우주에 더이상 당씨 성을 가진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당연한 일이었다.
우주무림에 당씨 성은 곧 무림공적이라는 뜻이었으니까.
그나마 당씨 성을 달고 있던 이들은 살기 위해 성을 갈았고, 성을 갈지 않을 정도로 대가 센 이들은 사천성계 본성과 함께 모조리 불타버렸다.
그러니 이 우주에 당씨 성을 당당히 드러내고 사는 이가 없을 수밖에.
당장 오대세가에 대한 복수를 가슴 속에 품고 있던 세령 자신조차 복수행을 선포하기 전까지는 자신의 성을 숨기고 살아오지 않았던가.
때문에 세령은 사천당가의 생존자를 만나겠다는 생각 따위는 해본 적도 없었다. 설령 어딘가 그녀처럼 운 좋게 살아남은 이가 있다고 한들 이 넓은 우주무림에서 만날 확률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런데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그것도 그냥 사천당가의 생존자가 아니라, 백 년도 더 전 과거의 조상님들이란다.
상상도 해본 적 없는 선조와의 갑작스런 조우에 세령의 머리는 더 이상의 순간적으로 패닉에 빠졌다.
“어······저기······그게요······.”
일단 선조님이니까 인사를 하긴 해야 할텐데, 세령의 입에서는 저도 모르게 본심이 튀어나왔다.
“진짜요?”
아, 이렇게 말하면 안 되는데. 세령이 아차 했다.
일단 정말 선조님인지는 일단 제쳐두고서라도, 기껏 선조님께서 무게를 잡고 먼저 스스로를 소개하셨는데 후손이라는 놈이 넙죽 고개를 숙이지는 못할지언정 진짜냐고 의심부터 하면 좋아할 리가 만무하다.
“아, 아니 그게요······.”
이미 내뱉은 말은 주워담을 수 없는 법이니 어떻게든 수습이라도 해야 한다. 세령이 황급히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두 사람의 반응은 그녀가 상상하던 것과는 조금 많이 달랐다.
“흐윽······!”
“큭······.”
왈칵 눈물을 쏟으며 제 입을 틀어막는 당소아와 눈시울을 붉히며 고개를 돌리는 당군성. 그걸 본 세령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내가 뭔 말을 했다고.’
“그, 뭐냐, 그러니까······선조님들······이시라구요.”
세령의 말에 당소아가 차마 대답을 하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를 대신해 당군성이 착 잠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래. 혹시 가문의 역사에 대해 배울 때 우리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느냐?”
애초에 배운 적이 없는데. 세령이 고개를 흔들었다.
“당가가 멸문······을 한게 제가 여섯 살 때인가 였거든요. 그래서 딱히 가문에 대해서 뭘 배운 적은 없······.”
“흐아아앙-!”
가문의 마지막 후손이 꺼내는 말 하나하나가 가슴을 후벼 파기 때문일까, 세령의 말에 기어코 당소아가 울음을 터트려버리고 말았다. 당군성은 아예 입을 꾹 다문 채 하늘 위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이걸 어쩌냐. 머나먼 과거의 선조님들께서 보여주시는, 본인 감정에 충실하기 그지없는 모습에 당황한 세령이 움찔 몸을 떨며 박 노야를 돌아봤다.
박 노야는 일이 이렇게 될 것을 예상했다는 듯 곤란한 표정으로 뒷목을 긁적였다.
“이것 참. 예상은 했지만 조금 당황스럽긴 하군요.”
“저기, 선조님들께서 원래 저렇게 솔직······하신 성격들이신가요?”
“음······아무래도 무영탑 자체가 폐쇄 네트워크이기 때문에 외부와의 교류가 거의 없는데다가 입주자 분들의 연세도 적지 않으시다 보니 감성적인 부분에서 많이들 약하십니다. ······물론 본래의 성격과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요.”
박 노야는 이제 아예 곡소리까지 내며 울고 있는 당소아와 그런 그녀를 달래며 코를 훌쩍이는 당군성을 보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당 소협께서 이해해 주시길. 처음 사천당가의 멸문 소식을 알려드렸을 때, 두 분께서 마음고생이 좀 심하셨었거든요.”
“······아, 하긴 그렇긴 했겠네요.”
그야 사문이 궤도폭격을 맞고 멸문했다는 소리를 들으면 어지간히 충격을 받긴 했겠지. 고개를 주억거리는 세령에게 박 노야가 약간의 안타까움을 담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이곳 입주자 분들이 속세와 연을 끊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가문과의 유대감이 그렇게 쉽게 끊어지겠습니까. 몇 년 정도 지나서 어떻게든 충격을 추스르고 현실을 받아들이긴 하셨지만, 한동안은 다른 세가 출신의 입주자 분들과 말도 섞지 않으실 정도였습니다.”
같은 진영 소속일수록, 같은 파벌 소속일수록 더 쉽고 빨리 친해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 특히 오대세가 같은 경우는 수십 세기 동안 같은 정파의 일원으로서 등을 맞대고 싸워온 형제와 같은 맹우인 만큼 다른 문파 출신들에 비해 그 유대가 유달리 두터운 편이었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 다른 오대세가의 배신으로 세가가 멸문했다는 소리를 들었으니, 억장이 무너지는 마음이 오죽하겠는가.
다른 세가 출신의 입주자들은 자신들의 잘못이 아님에도 미안하고 면목이 없어 두 사람과 감히 시선을 마주치지 못하고, 당소아와 당군성은 그들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치솟아 오르는 분노를 가라앉힐 수가 없어 원망 섞인 눈으로 그들을 바라봤더랬다.
지금이야 들끓는 감정을 갈무리하고 현실을 받아들였기에 이전만은 못해도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는 편이기는 했으나, 전혀 기대하지도 않던 존재인 세가의 마지막 후손이 찾아왔다는 사실에 억눌려있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것이리라.
“으음······.”
세령은 복잡한 눈으로 눈물을 흘리는 두 사람을 바라봤다.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니 저런 반응이 나올 법 한 것도 같았다.
솔직하게 감정을 내보이는 두 사람의 행동이 다소 부담스럽긴 했지만, 어쩐지 모르게 가슴 한켠이 뭉클거린다. 세령의 표정에 약간의 감정이 담겼다.
음, 이거 어쩔 수 없군요. 곁눈질로 세령의 복잡한 표정을 본 박 노야가 뒷목을 긁적이며 입을 열었다.
“원래는 라이디 님이 말하신 대로 무영탑 견학을 시켜드리려고 했었습니다만, 이렇게 된 이상 스케줄을 바꾸는 게 좋겠네요. 아무래도 가문의 선조님들과 나눌 이야기가 더 많을 테니 말이죠. 라이디 님, 괜찮으시겠습니까?”
“나는 괜찮아. 솔직히 미처 생각하지 못한 일이긴 하지만, 그냥 무영탑을 견학하는 것보다는 선조들과 대화를 나누는 쪽이 그녀에게도 좀 더 유익하겠지.”
나는 기왕 온 김에 우리 쪽 선배들 얼굴이나 봐야겠네. 라이디가 가볍게 어깨를 풀며 방긋 웃었다. 그저 얼굴만 보고 끝내지는 않겠다는 의도가 다분히 묻어나는 제스쳐였다.
그러나 이 무영탑 안에서는 저런 호전적인 태도야말로 가장 평범하고 정상적인 반응이다. 박 노야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세령을 돌아보며 말했다.
“당 소협, 그럼 선조분들과 느긋하게 이야기를 나누시기 바랍니다. 나눌 이야기가 적지 않을 테니 저는 내일 다시 오지요.”
“예? 아니 잠깐······.”
박 노야와 라이디는 세령의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곧장 몸을 돌려 발걸음을 옮겼다. 세령은 차마 그들을 따라가지 못하고 어색하게 뻗던 손을 슬그머니 아래로 내렸다.
아니 이렇게 혼자 버려두고 가면 나보고 어쩌라고. 세령이 데구르르 눈을 굴려 선조님들을 돌아봤다. 그래도 나름 고수이긴 한지, 아니면 아예 한바탕 시원하게 울어서인지 두 사람은 금세 감정을 가라앉히고 있었다.
붉어진 콧망울을 훌쩍이며 당소아가 종종걸음으로 다가와 세령의 손을 꾹 쥐었다.
“미안, 많이 놀랐지? 우리가 갑자기 못난 꼴을 보였네. 여기 있다 보면 좀 감성적으로 변하는 경향이 있거든.”
“여기서 계속 이야기를 나누기는 뭐하니 조용한 곳에 가서 이야기를 나누지.”
“네, 뭐어······.”
당군성의 말에 세령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당장 다른 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선조님들께서 워낙 곡을 해댔으니만큼 누군가가 올 가능성은 충분했다.
먼저 가지. 그녀의 대답을 들은 당군성이 먼저 스륵 하고 사라졌다.
‘아 맞다. 여기 전뇌공간이었지.’
“그럼 우리도 갈게?”
새삼 자신이 전뇌공간에 접속했다는 것을 자각한 세령의 손을 붙잡은 채, 당소아가 붉게 부은 눈으로 그녀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그리고 시야의 반전. 익숙한 전뇌공간 내의 채널 이동이었다. 약간의 어지러움에 잠시 눈을 감았다 뜬 세령은 자신의 눈앞에 펼쳐진, 어쩐지 낯익은 광경에 두 눈을 깜박였다.
셀 수 없이 많은 짙은 자줏빛 건축물들 한가운데 당당히 자리 잡고 있는 거대한 고전풍의 전각과 그 앞으로 펼쳐진 드넓은 대로. 그리고 그를 지키는 요새와 같이 마름모꼴로 배치된 높고 두터운 외벽과 커다란 관문들.
아주 먼 과거, 그녀는 분명 그 광경을 본 적이 있었다.
“아, 이거 혹시······?”
사천당가(四川唐家).
이제는 가물가물한, 어릴 적 그녀의 기억 속에 어렴풋이 남아있는 광경이었다.
“그래도 이것만큼은 알고 있구나.”
어쩐지 젖어든, 그러나 조금은 밝은 목소리로 당소아가 입을 열었다. 세령의 손을 쥔 그녀의 손에 조금 힘이 들어갔다.
“세가가 멸문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 흔적이라도 추억하고 싶어 솜씨 좋은 디자이너에게 부탁해 따로 만든 전용 필드다. ······박 노야와 탑주의 배려 덕분이지.”
하지만······그것이 전부다. 당군성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세령은 어쩐지 그의 목소리가 오열하는 것처럼 들렸다.
세가의 본질은 건물이 아니라 사람이니, 저것은 그저 세가를 닮은 껍데기일 뿐. 사천당가의 풍경을 흉내 낸 전경을 바라보며 그들의 공허함이 채워질 리는 만무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두 사람은 이곳을 외면할 수 없었다. 이제 그들 외에는 멸망한 세가를 기억해줄 이가 아무도 없었으니까.
설령 가슴에 뚫린 공허한 구멍이 점점 더 크기를 들려간다 할지라도, 그들은 단지 저 싸늘한 껍데기를 바라보며 서서히 풍화되는 과거를 추억할 따름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다.
잔혹한 운명의 여신에게도 한 줌의 자비는 있었는지, 모두 죽은 줄로만 알았던 당가의 핏줄이 그들 앞에 나타났으니까.
세가의 본질은 어디까지나 사람. 그리고 사람은 곧 핏줄을 타고 흐르는 붉은 피을 말하는 것이니.
단 한 방울의 핏줄이라도 남아있다면 당씨의 이름은 이어질 수 있다. 당소아는, 그리고 당군성은 당세령이라는 이름의 후손을 보았을 때 포기했던 희망이 다시금 빛을 발하는 것을 느꼈다.
모든 것이 불타 없어진 잿더미 속에서 찾은 단 한 줄기의 희망.
그를 보았으니 어찌 감정이 북받치지 않을 수 있으랴.
당소아가 살며시 세령의 손을 감싸쥐고, 당군성이 그녀의 따듯하게 그녀의 어깨를 잡았다.
“저게 사천당가······.”
세령은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을 잊지 않겠다는 듯, 이제는 볼 수 없는 세가의 모습 구석구석을 두 눈에 담았다.
당소아는 대견함을 담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천천히 세령의 손을 잡고 한쪽으로 이끌었다. 그들의 옆에는 작은 정자 하나가 구현되어 있었다.
세 사람은 정자의 한가운데 비치된 탁자를 사이에 두고 앉았다. 잠시 머뭇거리던 당군악이 먼저 입을 열었다.
“나눌 이야기가 산더미처럼 많구나. 하지만 우리의 이야기는 이미 지나간 과거의 일. 그런 이야기는 나중으로 미루는 것이 좋겠지.”
“우선 들려주지 않겠니, 지금까지의 네 이야기를.”
“······네.”
조금은 조심스러운, 그러나 진지한 부탁. 세령은 당소아의 말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세가의 선조님들이시고, 이미 돌아가신 분들인데 굳이 숨길 건 없겠지.’
전뇌공간에서의 대화이기 때문에 완벽한 보안은 기대할 수 없지만, 어차피 무영탑이라는 시설 자체가 강호에 관여하지 않으니 그리 걱정할 것까진 없다.
굳이 숨길 만한 것을 대자면 목진의 정체 정도일까. 아무리 그래도 고대의 천마한테 도움을 받는다는 이야기를 정파 문파의 선조들 앞에서 꺼낼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럼······.”
어디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세령은 살며시 눈을 감고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며 천천히 그녀의 이야기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