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smic Heavenly Demon 3077 RAW novel - Chapter (223)
우주천마 3077 우주천마-224화(224/349)
34. 무영귀탑 Phantomic Shadowless Colony (7)
34. 무영귀탑 Phantomic Shadowless Colony (7) – 댁이 그걸 어떻게 알아?
“여러모로 복잡한 기분이긴 하지만······인정할 건 인정해야겠지.”
당소아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의 말마따나 그녀의 얼굴은 참 복잡한 표정이었다.
그런 그녀를 향해 반쯤 해탈한 표정의 당군성이 애써 긍적적으로 말했다.
“그래도 결과적으로는 잘 된 일이 아닙니까, 선배님. 어디 근본 없는 무공을 익힌 것보다야 세가의 무공다운 무공을 익힌 것이 낫지요.”
근본 없는 무공이라는 말에 세령의 몸이 움찔했다. 솔직히 그녀의 일생 대부분은 근본 없는 무공과 함께였기 때문이었다.
당소아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세령이 처했던 여건을 생각해 보면 그야말로 복권당첨에 준하는 상황이긴 했다.
외인에게 사천당가 무공의 정수가 털렸다는 사실이 못내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지금이 어디 찬 밥 더운 밥 가릴 처지던가. 두 사람은 어렵사리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들어보니 고대 무공서들 중 일부를 세령이 이해할 수 있도록 직접 술해(述解)까지 하여 주었다지 않은가.
자고로 고대 무공서의 해석이라는 것은 원시무공 해석학 박사 학위를 딴 전문가들조차 애를 먹을 정도로 어려운 일. 그만치 정성을 담아 세가의 후예를 돌봐준 귀인이라면 세가 무공의 정수를 외부에 유출하는 일 따위는 하지 않으리라.
‘우리 후손이 정말로 귀인을 만났구나.’
물론 그건 옛 무공에 대한 해석을 독서하듯 술술 흘러넘기는 목진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했기에 떠올릴 수 있는 생각이었지만 말이다.
잠시 얼굴도 모르는 귀인에게 감사의 마음을 품은 당소아가 반짝거리는 눈으로 고개를 들었다.
“명색이 선조가 되어서 외인에게 모든 걸 맡기기만 할 수는 없지. 우리의 무공을 배우렴.”
“그래. 선배님의 말씀이 맞다. 분명 네가 익힌 섬뢰사독검식은 사천당가의 것이라 하기에 충분하고, 객관적으로 보아도 뛰어난 절기임이 분명하긴 하다. 그러나 우리가 익힌 본래 세가의 무공들 또한 부족함이 있는 것은 아니니, 익혀두면 반드시 도움이 될 것이다.”
당소아의 말에 당군악이 맞장구를 쳤다. 이미 두 사람은 세령의 존재를 깨달았을 때부터 각자의 무공을 전수해주겠다고 마음을 굳힌 상태였다.
거절할 이유가 없는 제안이었다. 하지만 세령은 곧바로 고개를 끄덕일 수가 없었다.
“어······정말로 감사한 말씀이긴 한데요, 당장은 좀 어려울 것 같은데요.”
“아?”
설마 거절당할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는지, 당소아의 큼직한 눈망울이 동그래졌다. 세령이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제가 사흘 뒤에 바로 나가봐야 하거든요. 황보세가에 갈 차례라서요.”
“아······.”
생사결이 예정되어 있음을 암시하는 세령의 말에 당소아의 어깨가 축 처졌다.
세가의 무공을 전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복수행의 일정을 미룰 수는 없는 노릇. 당군악은 잠시 머릿속으로 계산을 해보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 작게 한숨을 쉬었다.
“어쩔 수 없구나. 일단은 우리의 무공을 받아두고만 있거라. 복수행이 끝난 뒤에 다시 이곳을 찾아오면 그때 정식으로 무공을 전수해주마.”
합의한 적 없는 이야기가 불쑥 튀어나오자 당소아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후배? 갑자기 그게 무슨······.”
“저희들은 저희만이 해줄 수 있는 것이 따로 있지 않습니까.”
남은 세가들의 무공에 대한 공략법을 알려주어야지요. 당군악이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한때 사천당가를 이끌었던 가주답게, 당군악은 냉정하고 객관적인 시선으로 상황을 관조하고 있었다.
사흘의 시간이면 각 세가의 무인들을 상대하는 공략법을 알려주기도 빠듯한 시간. 때문에 당군악은 과감하게 그녀에게 직접 무공을 전수하는 것을 포기한 것이다.
데이터 형태로 넘겨주는 무공만으로도 익히는 것 자체는 충분히 가능하다. 다만 그들이 직접 전수하고 이끌어주는 것에 비해서 많은 시간과 시행착오를 거쳐야 할 뿐.
‘무공 쪽은 여차하면 그 생사경의 고수가 도와주지.’
당군악은 얼굴도 모르는 목진을 떠올렸다. 솔직히 말하자면 아직도 생사경이라는 경지가 와닿지는 않았지만, 그들보다 명백히 상위에 있는 고수이니 무공에 있어서는 더 도움이 되지 않겠는가.
“앞으로 사흘 동안 황보세가와 제갈세가, 남궁세가의 무공들을 상대하는 법을 알려주도록 하마. 완벽한 공략법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으나, 지난 수백 년의 세월 동안 그들의 무공을 지긋지긋하게 상대해 보았으니 약간의 요령만 습득할 수 있어도 앞으로의 복수행에 적잖은 도움이 될 것이다.”
정석적인 공략이 아닌 편법. 그러나 그런 꼼수를 쓰는 데 대한 거리낌 따위는 조금도 없다. 사천당가에게는 상대의 약점을 찌르는 것이 곧 정정당당함이었으니까.
그리고 그들의 후예인 세령은, 그보다 한 발짝 더 나아가 ‘이기는 것이 곧 정정당당’이라는 다소 사파적인 마인드의 소유자였고 말이다.
“······네! 감사합니다. 선조님.”
당군악의 말에 반색한 세령이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그가 말한 것은 지금의 세령에게 그 무엇보다도 간절히 필요한 것이었다.
선조님들 앞에서 떠올리기에는 다소 발칙한 생각이긴 하지만, 당장 써먹을 수도 없는 사천당가의 상승무공보다는 그녀의 승률을 올려줄 수 있는 공략법이 훨씬 더 유용했다.
하지만 그런 그들의 훈훈한 대화에 초를 치는 이가 한 명 있었으니.
“······그야 예상을 하긴 했지만, 그렇게 대놓고 탑의 규칙을 어기겠다 말씀하시면 제가 어떻게 반응해야 하겠습니까?”
바로 언제 나타났는지 모르게 그들의 옆에 서서 한숨을 쉬는 박 노야의 존재였다.
이럴 줄 알았다는 듯 미간을 꾹꾹 누르는 박 노야가 당군악을 향해 다소 깐깐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탑의 입주자는 외부와의 연을 끊는다. 그것을 잊은 건 아니시겠지요?”
“······끄응.”
알고는 있었지만 이리 단호할 줄이야. 당군악이 신음을 흘렸다.
어차피 박 노야의 눈을 피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긴 했다. 무영탑의 관리자로서 전뇌공간 안의 데이터 플로우를 모두 꿰뚫어 볼 수 있는 유일한 존재였으니까.
하지만 설득을 시도해볼 가치는 충분하다. 애초에 이 무영탑의 규칙이라는 놈은 그렇게 빡빡한 녀석이 아니었다.
“이보게 박 노야, 이것을 꼭 어긴다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단지 후손에게 몇 수 가르쳐주겠다는 것일 뿐인데.”
“아무리 후손이라고 해도 곤란합니다. 다른 경우라면 모르겠으나, 당장 다른 세가의 대표들과 생사결을 치르겠다는데 거기에 관여하시면 곤란하지요. 원래는 입주자의 무공을 반출하는 것부터가 문제입니다.”
“삼십 년 전에 고검군자(古劍君子)의 무공은 반출하지 않았는가.”
“그거야 그분의 진전을 이은 전인이 없기에 무공이 소실되는 것을 방지하고자 허가가 난 것이지요.”
그리고 그때는 전인을 선발해 전달한 것이 아니라 비어있는 유적에 숨겨두어 연이 닿는 이가 익힐 수 있도록 반출한 겁니다. 박 노야가 덧붙였다.
아니 누구 무공은 안 그런가. 순간적으로 울컥하는 마음에 당군악의 언성이 높아졌다.
“이보게 박 노야. 그리 따지면 우리 사천당가 또한 멸문지화를 당해 대부분의 무공이 소실되었지 않나!”
“······.”
그렇게 따지면 할 말이 없긴 하다. 박 노야가 입을 다물었다.
“후······. 좋습니다. 탑주께 여쭤봐야 할 문제이긴 하지만, 일단은 허가가 날 가능성이 높으니 당 선생님의 말씀대로라 하지요. 하지만 각 세가를 상대할 공략법을 알려주는 것은 이야기가 다르지 않습니까.”
“그것도 선례가 있을 텐데.”
이번에는 당소아가 입을 열었다. 그녀는 세령을 대할 때와는 달리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백칠십년쯤 전이었나, 아마 무당파의 성 요한이 마교에 복수를 하라고 그 제자에게 한 달 동안 가르침을 내려준 적이 있었어.”
아 이런. 박 노야가 얼굴을 감싸쥐었다. 간신히 당군악의 요구를 무마할 수 있나 싶었는데, 이번에는 무영탑의 초창기 멤버 중 하나인 당소아가 나선 것이다.
“아니, 선생님. 그건 저희 무영탑이 막 구색을 갗추기도 전의 일이지 않습니까. 그 당시에는 천마신교 출신 입주자 분들도 안 계셨었습니다.”
“어쨌든 선례가 없는 일도 아니라는 거잖아.”
아 그놈의 선례. 박 노야가 지긋지긋하다는 듯 제 머리를 쥐어뜯었다. 기껏 룰을 정해놓으면 뭘 하는가. 항상 이런 식으로 잡음이 나오는데. 이게 다 주먹구구식으로 초창기의 무영탑을 운영하던 무영탑주 때문이었다.
세가의 생존을 위해 절대로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지를 불태우는 두 명의 당문 고수. 결국 졌다는 듯 양 손을 든 박 노야가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좋습니다. 그러면 무영탑주님께 두 분의 요구를 상신해 드리죠. 제가 해드릴 수 있는 양보는 거기까지입니다. 이 이상은 절대로 안 됩니다.”
“좋아. 그걸로 충분해.”
박 노야의 말에 당소아가 언제 정색했냐는 듯 빙긋 미소를 지었다. 어차피 박 노야는 관리자로서 무영탑주의 권한을 대신 행사하는 입장. 실질적으로 무영탑의 모든 권한을 가지고 있는 무영탑주만 설득할 수 있다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다.
고작 몇 마디의 대화 만으로 폭삭 늙은 듯한 얼굴이 된 박 노야가 세령을 향해 손짓했다.
“······제가 이러니 제 명에 못 죽는다니까요. 일단 당 소협께서는 이리로 오시죠.”
“저요?”
“무영탑에 견학을 오셨는데 탑주 님 정도는 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 나 여기 견학 왔었지. 그제야 제 목적을 떠올린 세령이 고개를 돌려 선조들에게 시선을 향했다. 이대로 따라가도 괜찮겠냐는 의미였다.
당군악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다녀오거라. 우리도 네게 가르칠 것들을 미리 준비해 놓아야 하니.”
“그래. 좀 대하기 부담스럽긴 해도 속내는 친절하신 분이니 너무 긴장할 필요는 없고.”
“아 네, 다녀올게요.”
세령은 두 사람의 배웅을 받으며 박 노야와 함께 채널을 이동했다.
그리고 그녀의 눈앞에 보인 것은-.
바닥까지 내려오는 희고 긴 수염을 기르고 있는, 삼 미터에 이를 정도로 거대한 몸집의 노인이었다.
얼핏 보기엔 온화해 보이는 노인의 얼굴을 하고 있음에도 본능적으로 위압감이 느껴지는 고수의 기백.
무영탑주는 위엄 가득한 눈으로 세령을 내려다보며 우렁우렁하게 울리는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만나서 반갑군, 당가의 전인이여.”
“으······처, 처음 뵙겠습니다. 탑주님.”
어지간한 고수들 쯤은 기세만으로도 가뿐히 억누를 것 같은 위압감. 그 기세를 정면에서 받아낸 세령의 얼굴이 파리해졌다.
하지만 그녀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 이름의 무게 하나하나가 범상치 않은 절대고수들의 틈바구니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지내온 그녀에게 있어선, 이 정도 기세쯤은 버텨내지 못할 것도 없었다.
다소 버겁기는 하지만, 두렵지는 않다.
그런 세령의 눈을 마주한 무영탑주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흠. 제법이로군.”
그녀의 전신을 압박하던 기세가 사라진 것은 그의 말이 끝난 직후였다.
“후, 후우······.”
간신히 숨을 돌리는 세령을 내려다보며, 무영탑주가 입을 열었다.
“확실히 생사경에 이른 고수가 사사할 만한 그릇은 되는 모양이로구나.”
너를 보니 더욱 관심이 가는군.
세령을, 아니 세령의 너머에 있는 누군가를 바라보며 그가 짙은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