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smic Heavenly Demon 3077 RAW novel - Chapter (225)
우주천마 3077 우주천마-226화(226/349)
35. 야수강호 Wolfy&Foxy&Sharky (1)
35. 야수강호 Wolfy&Foxy&Sharky (1) – 끔찍하리만치 흉악한
“허허, 무릉도원이 따로 없구나.”
파란 하늘과 따사로운 햇살, 그리고 시원한 바람.
간만에 맛보는 자연다움에 목진은 해변가의 썬탠 의자에 누운 채 기분 좋은 웃음을 터트렸다.
“그렇게 좋으세요?”
“암. 좋다마다. 하늘도, 공기도, 산천초목도 모두 지구에 있을 적을 떠오르게 만드니 어찌 기분이 좋지 않을 수 있겠느냐.”
그동안 지나온 행성들 중 지구 못지않게 아름다운 풍경을 가진 곳은 더러 있었으나, 이곳 샌프란시스코 행성처럼 지구와 비슷한 자연을 가지고 있는 행성은 없었다. 지난 이 년 동안 전뇌공간의 풍경으로 향수를 달래던 목진이 기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지구······인가요?”
물론, 방사능에 푹 절어지기 전의 지구에 대해서 알지 못하는 순자로서는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할 뿐이었지만 말이다.
“예전에 해남파에 갔을 때 본 바다도 딱 이런 모습이었지.”
물론 그 때는 이리 평화로운 분위기는 아니었다마는. 목진이 들릴락 말락하게 중얼거렸다.
무림일통을 했다던 천마가 정파인 해남파에 갔다면야 그 목적이야 달리 생각해볼 것도 없는 일. 순자는 목진의 말을 메모리에서 삭제했다.
“생각해 보니 말이다. 만약 세령이 고것을 따라 무영탑인지 뭐시긴지에 갔었다간 이 멋진 행성을 제대로 즐기지 못했겠지? 역시 안 가기를 참 잘 했어.”
“하하······.”
아직 세령에 대한 감정이 풀리지 않았는지 궁시렁거리는 목진을 보며 순자가 쓴웃음을 지었다. 아무래도 세령 일행과 다시 만날 때까지 그쪽 화제는 피해야 할 것 같았다.
괜히 그쪽으로 이야기가 빠지기 전에 일단 맛있는 것부터 먹이는 게 답이다. 순자는 들고 온 피크닉 가방 안에서 샌드위치를 꺼내 목진에게 내밀었다.
“이것 좀 드셔보실래요? 오는 길에 사왔는데, 이 도시 명물 샌드위치래요.”
“······어째 색이 시뻘건 것이 매워 보이는구나?”
샌드위치 사이에 뿌려진 소스를 본 목진의 얼굴이 흠칫 굳었다.
사실 목진이 매운 음식에 약한 편이긴 했어도 처음부터 저렇게 기겁하는 반응을 보이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전에 세령이 사온 헬파이어 양념 꼬치구이를 몰래 술안주로 먹으려다 큰 곤욕을 치른 뒤로 붉은 음식만 보면 저런 반응을 보이곤 했다.
순자가 킥킥 웃었다.
“특제 케찹 소스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아무렴 제가 목진 님한테 매운 음식을 드리겠어요?”
“흠흠. 뭐 그렇다면야.”
목진이 냉큼 샌드위치를 받아 한입 베어물었다. 달콤짭쪼름한 소스와 버터 바른 빵, 담백한 햄이 한데 어우러진 샌드위치는 과연 도시 명물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맛이었다.
순식간에 샌드위치를 해치운 목진이 입가에 묻은 소스를 핥으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음. 맛이 좋구나. 나중에 모든 일이 끝나면 다시 와서 느긋하게 이 행성을 즐기자꾸나.”
목진의 말에 순자가 그래요.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세령의 복수행이 첫 걸음을 성공적으로 떼었으니, 머잖아 남은 세 무가의 일도 어떤 식으로든 마무리될 것이다.
하지만 과연 세령이 그때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순자의 표정에 미세하게 그늘이 드리워졌다. 그녀가 세령을 믿는 마음과는 별개로, 객관적인 분석에 따른 복수행의 성공률은 그리 높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런 순자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목진이 툭 내뱉었다.
“걱정되느냐?”
주어가 생략되어 있었지만 무엇을 두고 하는 말인지는 뻔했다. 잠시 우물거리던 순자가 고개를 떨구며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엄청요.”
최근 들어 순자는 두뇌 연산능력에 여유가 날 때마다 세령과 복수대상들의 데이터를 수집하며 전투 시뮬레이션을 돌리고 있었다.
팽상원을 상대로는 비교적 우위에 있었고, 황보륭이나 제갈현을 상대로는 충분히 승부를 걸어볼 만한 승률이 나오는 편이다.
하지만 문제는 남궁세가의 벽검성 남궁수련이었다.
아무리 낙관적으로 상황을 판단해도 십 퍼센트를 넘지 못하는 승률. 지병으로 인해 본신의 능력을 온전히 낼 수 없다지만 본래의 무공은 그 서천검후에 필적할 만한 고수인 만큼, 아무리 약해졌다고 해도 기본적인 클래스부터가 다른 상대였다.
당장 비교적 승률이 높은 편이던 팽상원과의 생사결만 해도 자칫 잘못하면 목숨을 일었을 수도 있을 정도의 상처를 입지 않았던가.
바꿔 말하면, 지금의 세령이 남궁수련을 쓰러트릴 확률은 대단히 희박하다는 뜻. 그리고 그 말은 곧, 세령의 죽음을 의미했다.
그렇기에 순자는 초조할 수밖에 없었다. 세령은 그녀에게 가장 소중한 왕언니였으니까.
그녀가 겉으로나마 평정을 유지하고 있을 수 있는 건, 나찰즈의 본업인 낭인용병 일이 원래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일이라 어쩔 수 없이 적응해버린 덕이었다.
“차라리 지금이라도 복수행이고 뭐고 다 집어치우고 왕언니랑 같이 도망가자. 하루에도 몇 번씩 그런 생각을 해요.”
순자는 어디 가서 하소연할 수도 없는 속내를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이런 면으로는 확실하게 믿을 수 있는데다가 세령의 사정에 대해서 그녀 다음으로 잘 알고 있는 목진이기에 부릴 수 있는 어리광이었다.
물론, 목진의 성격을 잘 아는 그녀였기에 그 이상을 기대하진 않았지만 말이다.
“해야만 하는 일이다.”
보다 진중한 목소리로, 목진이 입을 열었다.
“협(俠)이 있기에 무림인은 무림인으로서 살아가는 것을 허락받는다. 은원에 끝맺음을 짓는 것은 그러한 협의 한 갈래이고. 태어나길 무림인으로 태어난 이상 이 복수행은 세령이가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니라.”
“······저도 알아요. 안다고요. 그러니까 목진 님에게 말하는 거잖아요.”
순자가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빈말로도 그녀의 어리광을 받아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고 있었지만, 그래도 토라지는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목진은 그런 그녀를 달래듯 가볍게 순자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맘 상해하지 말거라. 그걸 돕기 위해서 우리가 그 애 곁에 있는 것이 아니더냐.”
피할 수 없는 숙명이라면 온 힘을 다해 맞서야 할 뿐이지. 목진의 말에 순자가 그를 돌아봤다.
“목진 님은 왜 왕언니를 도와주시는 건가요?”
“음?”
“아직도 예전 친우분에게 진 빚 때문에 왕언니를 도우시는 건 아닌 것 같은데요.”
“······.”
허를 찔린 듯, 목진의 입이 잠시 다물어졌다. 잠시 눈을 감고 생각을 정리한 목진이 작게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헛, 네 허를 찌르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구나.”
네 말이 맞다. 목진이 순자의 머리에서 손을 떼며 말했다.
“이유라. 생각해보니 이제 와선 그 이유가 무엇이든 아무래도 좋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목진이 잠시 말을 고른 뒤 입을 열었다.
“그저 돕고 싶기에 돕는 것이다. 나의 근간은 곧 내 마음이 가는 길을 따라 행하는 것이니, 이를 두고 무림인으로서의 내가 품은 협이라 할 수 있겠지.”
친우에 대한 빚이나 내가기공의 부흥 등의 이유 또한 물론 중요하나, 그것은 부수적인 목적일 뿐. 예나 지금이나 목진의 행동원칙은 오직 그의 마음이었다.
목진의 말에 순자의 입꼬리가 부드럽게 휘어졌다.
“그냥 왕언니가 좋아서 돕는 거라고 하시면 될 걸 왜 그렇게 어렵게 말씀하시는 거에요.”
“흥. 그 괘씸한 것이 좋기는 무슨.”
목진이 콧방귀를 뀌며 어림도 없다는 듯 말했다. 지금까지의 진지한 분위기와는 달리 다소 과장된 반응이었다.
솔직하지 못하시기는. 목진의 반응을 보며 쿡쿡 웃은 순자가 입가심으로 사온 음료수를 쪽 빨아 올렸다.
“목진 님은 어떠실지 모르겠지만, 전 하루라도 빨리 이런 위험한 일은 그만두고 정착하고 싶어요.”
“내게 사천당가의 재건이라는 말을 한 것이 그런 연유 때문이었느냐?”
정착. 어떻게 보면 사천당가와는 별다른 관련 없는 타인인 순자가 당사자인 세령보다도 진지하게 사천당가의 재건을 계획하고 있던 데에는 그런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목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순자가 되물었다.
“좀 불순한가요?”
목진은 가당찮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처음 문파를 세우는 이들의 생각이라고 해서 너와 크게 다르지는 않느니라.”
한 치 앞의 생사도 알 수 없는 도산검림의 무림에서 안정을 찾고자 함께할 이를 모아 무리를 이룬 것이 바로 문파이고, 무가(武家)이다. 그런 의미에서 정착을 위해 세가를 재건하려는 순자의 동기는 사천당가의 생존자로서 짊어진 의무감으로 세가를 재건하려는 세령 이상으로 순수한 것이라 할 수 있었다.
‘이 아이가 세령이와 함께하는 것은 정말로 다행스러운 일이로구나.’
능력적인 면을 떠나 정신적인 부분에서도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관계. 목진은 순자를 내려다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흐뭇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목진의 눈길에 답지 않게 부끄러움이라도 느낀 걸까. 순자는 살짝 붉어진 얼굴로 어색하게 이야기의 주제를 돌렸다.
“그, 그나저나 샌프란시스코 성계는 소문대로 치안이 참 좋더라고요. 아무리 낮이라지만 어린아이들끼리 보호자 없이 길거리를 돌아다니기도 하던데요.”
“그래? 꽤 신기한 일이로구나. 화산파 때처럼 큰 문파가 자리 잡은 곳도 그 정도는 아니었거늘.”
무림문파들이 인류정부를 대신해 각 지역의 치안유지를 겸한다고는 하지만 다소의 치안 공백은 어쩔 수 없다. 무림문파는 기본적으로 무력을 기르는 것을 최우선으로 하는 단체이지 경찰조직이 아니었으니까.
당장 치안이 좋은 편으로 알려진 화산성계조차 지난날 연쇄 납치사건이 일어나 난리가 나지 않았던가. 비록 그 때는 사혈곡의 대마두가 배후에 있던 만큼 이례적인 경우이긴 했지만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꽤 널리 알려진 유명세와 높은 인구수에도 불구하고 이렇다 할 대형 문파가 자리잡고 있지 않은 샌프란시스코 성계의 치안 상태가 유독 좋은 것은 신기한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일단은 바로 옆 성계들에 위치한 대형 문파만 해도 세 곳이나 되니까요.”
사실 그냥 대형 문파라고 하기엔 어폐가 조금 있긴 하다. 그들 세 문파의 이름 하나하나가 무림인이 아닌 일반인조차 한 번쯤은 이야기를 들어봤을 정도로 유명한 네임드 문파들이었으니까.
오대세가의 일좌를 차질하고 있는 황보세가와 다른 대형문파에 비견될 법한 정파연합체인 정의회(正意會), 거기에 사파의 팔곡(八谷)중 하나인 야수곡(野獸谷)까지.
그런 세 문파들의 틈바구니에 껴서 일종의 중립지대화 된 것이 바로 이곳 샌프란시스코 성계였던 것이다.
“보통은 서로 진영이 달라서 대립하기는 하지만, 세 문파들의 사이는 의외로 꽤 좋은 편이라고 들었어요.”
“허어. 희한한지고.”
인접한 정파와 사파의 관계는 팽가와 거합문의 사례와 같이 서로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게 보통이다. 그런 의미에서 정파 두 곳과 사파 하나가 자리 잡고 있는데도 평화로운 분위기라는 건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는 해도 유독 치안이 좋은 편이긴 하지만요. 아마 이곳 특유의 날씨 때문이 아닐까요? 사람들도 다들 느긋한 편이던데.”
“하긴, 그럴 수도 있겠구나. 이리 좋은 날씨가 매일같이 이어진다면 다들 유해지기 마련이겠지.”
나름 설득력이 있는 순자의 말에 목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목진은 순자가 건네준 음료수를 쭉 빨아올리며 썬탠 의자에 몸을 뉘였다.
‘참으로 평화로운 곳이로다.’
저 멀리 펼쳐진 수평선을 바라보며 목진이 그런 생각을 떠올리던 순간이었다.
“······음?”
순간적으로 느껴진 묘한 감각에 목진이 몸을 홱 일으키며 등 뒤로 시선을 돌렸다. 옆에 앉아 간식거리를 오물거리던 순자가 그를 돌아봤다.
“목진 님? 왜 그러세요?”
목진은 순자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다만 몸을 돌려 거리 쪽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잠시 뒤.
꽈아앙!
커다란 굉음과 함께 거리에서 폭발이 터져나왔다. 폭발이 터져나온 장소가 어디인지 기억한 순자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저기 은행이었는데.”
은행에서 터져나온 폭발이라면 사고일 리가 없다. 갑작스런 돌발상황에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는 순자를 향해 목진이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평화롭다는 말은 취소해야겠구나.”
그리고,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폭발 연기 사이로 커다란 포효가 터져나왔다.
– 크아아앙! 다들 비켜! 이 금괴는 다 내 거다!
매캐한 회색 연기 사이로 보통 사람의 두배 정도 크기는 될 법한 거대한 그림자가 몸을 일으켰다.
저건 또 무슨 요괴인지. 목진이 미간을 좁히며 은행털이범으로 보이는 그림자를 바라봤다.
이윽고, 폭발 연기가 걷힌 뒤에 보이는 그 모습은-.
“······응?”
“······아?”
아주 귀엽고 깜찍하게 생긴, 거대 이족보행 레서판다였다.
거리 한복판에서 벌어진 흉악범죄에 비명을 지르며 도망가던 사람들조차 순간적으로 사고를 정지할 만큼 초현실적인 광경.
그 모습을 본 목진이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평화로운게······맞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