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smic Heavenly Demon 3077 RAW novel - Chapter (23)
우주천마 3077-22화(23/349)
4. 서천검후 Western Sword Queen (5)
4. 서천검후 Western Sword Queen (5) – 힘세고 강한 출력, 내 이름은 노심급 내공 드라이브
“커다란 돌덩이 위에 올라있는 건 참 기묘한 느낌이구나.”
목진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했다. 목진은 지금 이름 없는 작은 소행성 위에 올라서 있었다. 화경과 그 이상의 절대고수 둘이 싸우면 최상급의 비무선도 멀쩡할지 장담할 수 없는 판에, 아무리 웨스턴 소드퀸 호가 대형 여객함이라 해도 비무의 여파를 감당할 수는 없기 때문에 이루어진 특단의 조치였다.
“전설 속 선계와는 다르다만, 이것이 선계가 아니라면 무엇이랴. 눈만 돌리면 드넓은 우주가 보이는 것이 웅장하기 그지없도다.”
서천검후 김연화의 수하들이 소행성의 임시 테라포밍화를 위해 바쁜 작업을 하는 동안, 목진은 온통 새카만 우주를 보며 그 풍경을 감상하는 데에 여념이 없었다. 과학적 원리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고대인인 목진에게 있어, 고작 수십 킬로미터 크기의 작은 소행성임에도 숨이 쉬어지고 온도가 적당하며 중력이 있다는 사실은 그리 신기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아씨 내가 어쩌다 이런 상황에 오게 된 거지. 그런 목진의 옆에서 세령은 머리를 부여잡고 끙끙거리고 있었다.
고작 하루다. 쓰레기별이 된 지구에서 목진을 발견하고, 마교의 적랑대를 쳐부쉈으며, 녹림의 흑표채와 추격전을 했고, 흑표채주 부월흑표와 팔척투귀를 연달아 쓰러트린 뒤에 서천검후와 비무를 하게 된 일련의 사건들이 전부 일어난 시간이 말이다. 여태껏 세령이 겪어온 하루 중에서도 최고로 다이나믹한 하루가 아닐 수 없었다.
당장 우주선 보험료 낼 크레딧이 없어서 골골대던 게 엊그제의 일인데, 이젠 크레딧이 문제가 아니게 되었다. 태어나 서천검후의 비무를 눈앞에서 볼 일이 있기야 하겠는가.
‘아니, 크레딧이 문제가 아닌 건 아니지.’
당장 그녀의 우주선에 반쯤 송장인 상태로 보호중인 삼백만 크레딧의 의뢰주. 천령상단의 소단주를 떠올리며 세령이 고개를 저었다. 지금의 일만 잘 마무리되면 삼백만이라는 떡 벌어질 돈이 그녀의 수중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물론 크루원들의 몫을 나눠주긴 해야겠지만, 그걸 감안해도 엄청난 수익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았다.
세령은 목진을 흘긋 쳐다봤다. 그녀를 한순간에 제압했을 때부터 고수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설마 서천검후조차 넘어서는 어마어마한 절대고수일 줄이야. 허허로운 노인네 같은 모습을 보이다가도 마교도 뺨칠 정도로 사나운 모습을 보이는 사내. 세령은 이 남자를 도통 어떻게 대해야 할 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이천년 전의 고대인이라는 현실감 없는 배경과 다사다난했던 첫 만남 때문에 지금까지 영감님 취급을 하며 할 말 못할 말 다 해 왔는데, 이제 와서 무림 대선배 취급을 하며 공손히 받들어 모시는 것도 또 웃긴 모양새가 아닐까? 그나마 긍정적인 점이라면, 당사자인 목진이 현재 세령의 태도를 썩 마음에 들어하는 눈치라는 것 정도였다.
이번 일이 끝나면 좀 진지하게 이야기를 해 봐야겠다. 그렇게 세령이 막 마음을 먹은 참이었다.
“실례합니다. 이 서류에 서명 좀 해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두 사람 앞에 나타난 서천검후의 비서호법이 단말기를 내밀었다. 정확히는 목진에게 내밀었으나, 그녀가 내민 게 뭔지도 몰라 멀뚱거리는 목진을 대신해 세령이 단말기를 대신 받았다. 비서호법이 두 눈을 깜박였다.
“왜 염화쾌검 여협께서?”
“이 양반 깨어난 지 하루밖에 안 돼서 무림변호사는커녕 무림인 등록도 안 돼 있어요.”
뭣보다 알파벳도 읽을 줄 모르고. 세령은 굳이 뒷말을 입으로 내뱉지는 않았다. 비서호법은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여협이 대리인을 맡아 주신다면 검후께 그리 전해드리겠습니다.”
“내가 어쩌다가 대리인 역할까지 하게 됐는지······. 응? 비무영상 촬영 동의서?”
비서호법이 내민 서류를 본 세령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럼 이거 공식전으로 취급되는 건가요?”
“네. 검후께서는 그렇게 생각하고 계십니다. 물론 대협께서 원하지 않는다면 동의하지 않으셔도 상관은 없습니다만.”
세령이 어떻게 하냐는 듯 목진을 돌아봤다. 목진은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그게 무엇이냐?”
“촬영이 뭐긴요. 당연히······아, 이거부터 설명해야 하는구나. 그러니까······비무의 내용을 그대로 보존해서 다른 사람도 볼 수 있도록 하는 거에요.”
마교도 때나 녹림 때나 워낙 갑작스럽게 일이 벌어져서 그렇지, 보통 비무 때 비무영상을 촬영해서 쏠쏠한 수익을 벌어들이는 일은 왕왕 있는 편이다. 당장 목진과 비무를 앞두고 있는 서천검후도 적잖은 비무영상을 따서 후학 양성을 위해 기증한 적이 몇 번은 있었고 말이다.
하지만 비무는커녕 무공 수련조차 외인에게 보이지 않는 것이 당연한 시대를 살던 목진에겐 그야말로 날벼락 같은 소리였다.
“뭐라? 무공을 외인에게 보여? 그게 무슨 미친 소리란 말이냐?”
“영감님 시대에는 어땠는지 모르지만, 지금은 평범한 일이라구요. 무림인은 이슬만 먹고 살아요? 가진 게 무공밖에 없으니 무공 쓰는 모습이라도 팔아야지.”
어차피 초당 삼백 프레임도 안 나오는 영상으로는 무공의 약점 같은 거 못 찾으니까 그리 걱정할 건 없어요. 세령의 말을 들은 목진의 얼굴이 딱딱히 굳었다.
“그럼 지금 본존의 무공으로 알지도 못하는 자들 앞에서 재주를 부리는 광대놀음을 하라는 것이냐?”
내 이런 반응이 나올지 알았지. 세령이 이마를 짚었다.
“아 진짜, 사람이 왜 그렇게 말을 꼬아서 받아들여요? 이 시대에는 평범한 일이라니까. 정 안 내키면 그냥 동의하지 않으면 돼요.”
“영상 공개는 동의하지 않으셔도, 되도록이면 영상 촬영에는 동의해 주시면 안되겠는지요. 검후께서는 비무가 끝난 뒤에 비무영상을 보시면서 무공을 복기(復棋)하시는 것을 즐기시는지라······.”
“그건 또 무슨 소리더냐. 바둑도 아니고 무공을 복기해?”
“하아, 설명해 줄게요. 그러니까······.”
누가 무인 아니랄까봐, 정색하다가도 비서호법의 말에 목진이 반응을 보이자 세령이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절대고수들 중에선 따로 고 프레임 비무영상을 따 놓고 비무의 내용을 복기하는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였다.
“흐음.”
거기까지 들으니 구미가 동한다. 목진이 팔짱을 낀 채 고민에 잠겼다. 확실히, 자신이 펼친 무공을 차분히 되돌아보고 복기한다면 그 수련의 효용이야 의심의 여지가 없으리라. 뿐만 아니라 한편으로는 제 삼자의 시선에서 자신의 무공을 보고 싶다는 호기심도 스물스물 올라왔고 말이다.
잠시 저 혼자 고민하고 납득하고 하길 반복하던 목진이 문득 생각난 것이 있는 듯 고개를 들고 물었다.
“그러고 보니, 내 로밧에게 듣기로 스트리밍이란 게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혹 그렇게도 할 수 있느냐?”
“네? 갑자기?”
목진이 툭 내뱉은 말에 세령과 비무호법이 눈을 치켜떴다. 방금까지만 해도 광대놀음이 싫다며 발끈하던 양반이 갑자기 무슨 바람이 들어서 스트리밍 이야기를 꺼낸단 말인가. 고개를 주억이며 비무호법이 대답했다.
“물론 검후께서 마다하신 않으실 테니 대협께서 동의하면 가능하긴 합니다만······. 정녕 실시간으로 비무가 생중계되길 원하시는 것인지요?”
“그렇다만.”
“아니, 방금은 싫다면서요?!”
“내 다 생각이 있느니라.”
목진의 말에 세령이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목진은 그녀의 반응을 무시하며 비무호법을 바라봤다. 비무호법이 단말기를 받아 잠시 몇 번 두드리더니 다시 내밀었다.
“이대로 서명하시면 비무 내용이 강호넷에 실시간으로 스트리밍될 겁니다. 물론 중계 프레임은 이백오십 프레임으로 고정이 되니 무공의 정보가 유출될 우려는 하지 않으셔도 될 것이고요.”
그런 자잘한 것은 신경쓰지 않는다. 그것이 천고의 기재이든 무지렁이든 그의 무공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목진은 그녀의 말에 펜을 잡아들었다.
“그래, 여기를 말하는 것이냐? 그나저나 붓이 희한하게 생겼구나.”
와 서명을 한자로 하네. 서예를 하듯 펜 끝을 잡아 일필휘지로 서명한 목진을 보며 세령이 무심코 중얼거렸다.
단말기 화면에 쓰여진 이목진(李炑晉)이라는 세 글자의 이름.
바야흐로, 두 절대고수의 일대 비무를 위한 모든 것이 준비되는 순간이었다.
새까만 우주에 잡아먹힌 듯 적막하기만 한 소행성 위, 마침내 흑백의 남녀가 서로를 마주보고 섰다.
흑색 무복을 두른 이는 고대에서 소생한 천마 이목진이요, 백색 케이프를 두른 이는 서천의 검후 김연화.
둘은 서로를 향해 가볍게 포권하며 비무의 예법에 따라 스스로를 소개했다.
“김연화입니다.”
“이목진이네.”
스르릉 하는 소리와 함께 검집에서 묵빛의 검이 빠져나온다. 목진은 검을 아래로 늘어트린 자연체의 자세를 잡았다. 초식이 무의미한 경지에 다다른 그에게 자연체 이상으로 이상적인 자세는 없었다.
연화는 두 자루의 검을 들었다. 왼발을 뒤로 빼고 비스듬히 비껴 선 뒤, 오른손의 검만 앞으로 내민 특이한 기수식. 눈송이를 보는 듯 새하얀 검신을 잠시 감상한 목진이 입을 열었다.
“이검(二劍)을 쓰는가.”
“그러합니다.”
“좋은 검이로군.”
명장(名匠)의 손에서 빚어진 검만이 뿜어낼 수 있는, 고아하다거나 난폭하다거나 한 특유의 기세는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 대신, 극한까지 연마된 예기와 무슨 일이 있어도 부서지지 않을 단단함이 느껴진다. 날카로움과 견고함. 검으로서는 최고의 극찬이었다.
그에 반해 목진이 들고 있는 건 세령에게 빌린 평범한 묵빛의 탄소강 장검. 나쁘진 않으나 동등한 조건에선 연화의 검에 감히 대적할 수 있는 검이 아니다.
허나 검의 질에 구애받지 않는 경지인 목진에게 있어선 그것만으로도 족했다. 목진은 가만히 그녀에게 손을 까닥였다.
“세 초식을 양보하겠네. 오시게.”
고수가 하수를 상대하는 듯 여유로운 태도. 이렇게 까마득한 자를 상대로 검을 든 것이 얼마만일까. 연화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사양 않고 가겠습니다. 이 초식의 이름은 칠섬십예(七晱十藝)라 합니다.”
그녀가 정면을 향해 든 오른손의 우수검(右手劍) 끝에 검환이 맺힌다. 마치 우윳방울처럼 모여든 새하얀 검환의 모습. 그것을 본 목진의 검 끝에도 묵빛의 검환이 맺혔다.
“핫!”
목진을 향해 날아든 연화의 검이 곧게 찔러 들어온다. 목진의 눈이 빛났다. 그는 검을 들어 연화의 검을 향해 마주 찔렀다. 흰 백환(白丸)과 검은 묵환(墨丸)이 허공에서 닿음과 동시에, 배와 배가 부딪히는 듯한 굉음이 터져나왔다.
찰나의 순간, 연화는 느꼈다. 검정과 하양이 얽혀 태극을 만들어내는가 싶더니 이내 검정이 하양을 잡아먹듯 삼켜버리는 것을.
“칫!”
승리한 쪽은 목진의 묵빛 검환. 더 늦기 전에 뒤로 몸을 날린 연화가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빠르게 물러나 내상은 입지 않았지만, 비장의 한 수가 너무나 쉽게 막혔다. 그녀는 과연 목진이란 남자가 천하제일을 자부할 만 한 사내라고 생각했다.
일견 하나의 찌르기처럼 보일 지 몰라도 실제로는 눈으로 좇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일곱 번의 찌르기와 그 찰나의 순간에 생기는 빈틈을 노리고 열 방향을 점하고 베어들어가는 왼손의 좌수검(左手劍). 절대고수들을 통틀어 이 초식을 정면으로 받아낼 수 있는 자는 없으리라고 자부했건만, 목진의 손에 너무나 간단히 파훼당한 것이다.
“칠섬이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날카로운 무공이로다. 헌데······.”
목진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의 시선이 연화의 좌수검, 좀 더 정확히는 그녀의 왼손으로 향했다.
“우수(右手)의 초식은 훌륭하기 이를 데 없으나 좌수(左手)의 초식은 그에 비할 바가 못 되는 듯 하이.”
검환을 앞세운, 일곱 투로로 찔러오는 쾌속의 찌르기는 수많은 수련을 거듭한 것을 반증하듯 흠 잡을 곳 없이 완벽하다. 하지만 그에 반해 좌수검의 초식은 동일인이 펼치는 게 맞나 싶을 정도로 같은 경지의 무공이라기엔 부족함이 적잖이 보였다.
초식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 하수마냥 딱딱한 투로와 화경의 경지라기엔 조악한 내공의 흐름. 이것은 마치······.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연화가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말햇다.
“역시 대선배의 눈은 속일 수 없군요. 그 말이 옳습니다.”
그녀는 거리낄 것 없이 흰 케이프를 벗어던졌다. 사제복처럼 생긴 흰 케이프 안쪽에 자리하고 있던 것은 몸의 굴곡을 그대로 드러낼 정도로 착 달라붙는 검은색 슈트. 성숙한 여인의 몸에 저도 모르게 시선이 갈 법도 하건만, 목진은 그녀의 몸이 아니라 그녀의 왼팔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기관장치······?”
분명 그 형태는 사람의 팔 모양을 하고 있으나, 조금의 생기조차 느껴지지 않는 차가운 인공물의 질감이 느껴진다. 기계식 인공의수를 눈앞에 들어올린 연화가 쓰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철없던 어린 시절의 치기일 뿐입니다. 나름대로 좋은 물건인데도 대협께 보이기에 손색이 있는 건 어쩔 수 없군요.”
“그럼에도 이검을 고집하는가? 하수에겐 통할 지 몰라도 본인에겐 아닐세.”
잘린 팔을 다시 자라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외팔이가 되면 외팔이에 맞는 무공을 익히는 것이 순리이다. 굳이 저런 기관장치에까지 의지하며 이검을 고집할 필요가 있을까? 목진이 짐짓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으며 말했다. 자신을 향해 제대로 무공을 펼칠 수도 없는 가짜 팔로 검을 휘두르다니, 무인으로서 업신여김을 당하는 기분이었다.
목진은 내심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다. 화경의 고수라 하여 기대했거늘 결국 조악한 기관장치에 의존할 뿐인 쭉정이에 불과하던가? 그나마 목진이 엘레나 때와 같이 곧바로 역정을 내지 않은 것은, 화경이라는 경지에 닿은 무인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천 년 후의 미래를 너무 가벼이 보았다. 그가 살던 시대의 무인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규모의 내공을 뿜어내는 노심급 내공 드라이브가 절대고수에게 있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그리고 그 막대한 내공을 운용하는 내공통합운영시스템이 어떤 결과물을 도출해내는지 너무 이른 속단을 내린 것이다.
“말씀대로 검 하나를 쓰는 무공을 익히는 것이 나을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평생을 바쳐 익힌 무공을 버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연화가 왼팔에 달린 외장형 내공 드라이브를 잡은 손에 힘을 준다. 좌수검만을 위해 내공을 만들어내던 커스텀 내공 드라이브가 왼팔에서 분리된다. 연화는 외장형 드라이브를 미련없이 던져버리며 말을 이었다.
“잃은 것을 버리지 못하는 미련함이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미련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하고 오랜 시간 무공을 갈고 닦아 마침내 답을 이루었다면, 대선배께선 믿어 주시겠습니까.”
연화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슈트 위로도 알 수 있을 정도로 그녀의 단전에서 붉은 빛이 새어나온다. 노심급 내공 드라이브의 출력이 최고조에 이른 현상이었다. 그런 그녀를 본 목진의 눈에 숨길 수 없는 놀라움이 담겼다.
“허어.”
저도 모르게 감탄의 탄식이 흘러나온다.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님에도, 기의 흐름을 느낀 그는 한 눈에 이해할 수 있었다.
“이기어검(以氣馭劍)의 경지에 닿았는가.”
신검합일(身劍合一)을 이룬 고수만이 닿을 수 있는, 검술의 최고봉에 이르는 경지. 화경을 넘어 현경(玄境)을 눈앞에 두고 있는 그녀를 그 누가 인정하지 않을 수 있을까.
좌수에 이기어검, 우수에 검환.
오직 막대한 출력의 노심급 내공 드라이브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과거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경이로운 광경을 목전에 둔 천마의 눈에 환희의 감정이 피어올랐다.
정보)
절대고수 쯤 되는 급의 대결은 이벤트성이 아닌 이상 보통 비무선이 아닌 근처의 행성이나 소행성에서 한다. 이때 해당 행성이 테라포밍이 되어있지 않으면 여러가지 장치를 통해 임시적으로 공기와 중력, 온도 등의 환경을 최대한 테라포밍된 환경에 가깝게 조정한다. 조정장치의 가격은 꽤 비싼 편이지만 절대고수 쯤 되면 그 정도 재력은 된다.
지금까지의 사건들은 고작 하루만에 일어난 일이다.
세령의 우주선 보험료는 석 달이 밀렸다. 보험사 직원이 세령의 친구가 아니었다면 골치 아팠을 것이다.
보통 절대고수 쯤 되면 여러 사무업무를 처리하는 비서호법을 대동하고 다닌다. 비서호법은 적당한 수준의 무공은 물론 각종 행정업무와 일부 무림법, 형사법을 포함한 수많은 지식들을 알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상당히 고스펙의 직업이다.
무인들은 보통 개인 담당 무림변호사를 고용하거나, 그게 아니더라도 무림변호사 명함 하나쯤은 가지고 다닌다. 정식 비무 때는 무림변호사를 통해 공증하는 게 이래저래 편하기 때문이다. 변호사 선임비는 편차가 크지만 매우 저렴한 경우도 있다.
세령의 무림변호사는 순자가 대신한다.
무림인은 보통 무림맹에 무림인 신고를 하고 무림인으로 등록한다. 안 해도 큰 상관은 없지만, 이래저래 혜택을 받지 못함은 물론 정부기관과 엮였을 때 아무런 보호도 받지 못하므로 웬만해선 무림인 등록을 한다.
슬픈 현실이지만, 목진은 알파벳도 모르는 우주 문맹이다.
보통 정식 비무에는 전문 장비로 비무영상을 촬영해서 강호넷에 올리는 일이 흔하다. 이유는 당연히 돈이 되기 때문이다. 무림인보다는 보통 무림을 동경하는 일반인들이 후원해주는 돈이 쏠쏠하다. 광고 수익도 나름 괜찮은 편이라 보통 무림인들은 비무영상을 올려서 밥값이나 숙박비, 교통비 등을 충당한다. 무림인이라고 이슬만 먹고 살 수는 없다.
물론 당사자가 영상 촬영을 원하지 않거나, 일부 비공식 비무나 우발적 대결 등은 비무영상을 촬영하지 않는다. 상호동의가 없으면 영상을 올릴 수 없는데, 만약 상호동의 없이 영상을 올린다면 바로 영상이 내려감은 물론 무림맹에서 벌금을 물거나, 심하면 현상금이 걸린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말이지만, 비무 영상을 촬영해서 복기하는 것은 일정 경지 이상은 물론 하수들에게도 매우 효과적인 무공 수련법이다. 일부 은퇴한 노고수들은 무공분석기사 자격증을 따서 비무 영상을 보며 어드바이스를 하는 형식으로 초보 무림인들에게 무공과외를 해준다.
비무영상을 보고 무공에 대한 공략법이 나오는 경우도 가끔 있기 때문에 영상 촬영은 허용해도 스트리밍은 꺼리는 경우가 많다. 물론 최대 송출 프레임 제한이 있어서 고수에겐 큰 의미가 없지만, 하수들에겐 비장의 초식 하나하나가 알려지는 것이 큰 타격이기 때문에 비장의 한 수나 성명절기 등을 적당히 편집해서 영상을 올린다. 가끔 이를 이용해서 스트리밍때는 비장의 수를 쓰지 않고 숨겨놓는 식으로 전략적으로 이용하는 경우도 있다.
이 시대는 대부분의 무공이 데이터베이스화 되어있기 때문에 초식 동영상이 유출되어도 별로 의미는 없다. 중요한 건 초식다운로드 인터페이스에서 이용할 수 있는 세부조정된 초식 데이터코드이기 때문이다.
초식 데이터 코드는 텍스트 데이터인데도 불구하고 테라바이트 단위로 용량이 크다. 무공 하나에 온갖 세부조정 데이터가 포함되어있기 때문이다.
절대고수들은 대체로 기업 스폰싱 때문에 비무 영상이나 무공 영상을 자주 업로드하는 편이지만, 그중에서도 서천검후는 특히 활발한 편으로 스트리밍 송출도 자주 한다. 물론 같은 절대고수들을 상대로 매번 이기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강호넷에는 ‘서천검후 굴욕짤 모음’이라는 영상이 유행하고 있다.
세령이 준 탄소강 검은 그냥 평범한 기성품이다. 반면 연화의 검은 명문 대장간에서 오더 메이드로 만든 검이다.
칠섬십예에서 좌수검의 베기는 오더 메이드 외장형 내공 드라이브와 역시 오더 메이드인 기계식 인공의수로 철저한 계산과 조정을 가해 펼쳐지는 공격이다. 비슷한 경지에선 우수검의 검환 찌르기를 막거나 피하느라 생긴 빈틈을 노리는 공격이기 때문에 그 정도로도 충분하지만, 목진처럼 정면에서 일곱 번의 찌르기를 모두 받아낼 정도의 실력자에게라면 공격의 수준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연화는 과거 왼팔이 잘린 적이 있기 때문에 쌍검을 쓰되 의수인 왼팔의 좌수검을 보조적인 용도로 사용하고 오른팔의 우수검을 주력으로 사용한다.
케이프를 벗은 연화의 복장은 상체에 그대로 달라붙는 SF스러운 검은색 슈트다. 하의는 그냥 풍성한 검은색 무복이다.
한 쪽에 검환을 시전하고 반대쪽에 이기어검을 쓰는 건 과거 무림인 기준으로 미친 짓이다. 난이도 자체는 특출나게 어려운 것은 아니나 소모되는 내공의 양이 정신나간 수준이기 때문이다.
목진도 내공을 초월한 생사경에 이르기 전 단계에선 저 미친짓을 10분도 유지할 수 없다.
연화가 보이는 이기어검은 몸 주위를 움직이는 정도가 한계인 수어검(手馭劍)의 단계 초입이다. 연화는 아직 불안정한 이기어검을 의수의 정확도를 보완하는 용도로 사용하고 있다. 세부조정은 내공통합운영시스템이 담당한다.
연화는 화경의 끝자락에 도달해 현경의 벽을 마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