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smic Heavenly Demon 3077 RAW novel - Chapter (237)
우주천마 3077 우주천마-238화(238/349)
36. 납자응징 Kidnapper Judgment (4)
36. 납자응징 Kidnapper Judgment (4) – 천마는 안드로이드의 마음을 모른다
‘최악의 상황이다.’
아예 이런 상황을 상정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그야 같은 절대고수들과 비교해도 군계일학의 무위를 지녔다 할 수 있는 그가 천마의 자리에 올랐다는 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으니까.
아니, 되려 그만한 무력을 지니고도 천마가 아니었다고 하는 쪽이 더 이상하리라.
아테나는 그제야 천마신교가 참룡검제 이목진을 언급할 때 답지않게 저자세를 내비쳤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현대에는 종교적 성격은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지만, 명목상으로나마 천마를 숭배하는 그들이 먼 과거의 천마를 만났는데 어떻게 무시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무림교류부의 입장에선 아니었다.
이십 세기도 전의 고대인인 탓에 현대 무림의 세력과 아무런 연관이 없다는 판단을 내렸고, 그렇기에 오대세가의 견제를 의뢰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와서 뜬금없이 천마신교 소속이라고?
무림교류부로서는 얼얼하게 뒤통수를 맞은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저희 측의 입장을 알고 계실텐데요.”
한참 말을 고르던 아테나가 입을 열었다. 그녀는 목진의 분위기가 차분한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어쩌면 역으로 무림교류부의 약점을 잡으려는 의도가 아닐까. 문득 떠오른 불길한 가설에 아테나의 입안이 바싹 말랐다.
정파인 오대세가를 견제하기 위해 천마신교를 움직인 인류정부.
만에 하나라도 그런 이야기가 흘러나간다면 가장 큰 타격을 입는 쪽은 인류정부와 무림교류부다.
물론 명색이 사천당가의 후예인 당세령과의 친분을 생각하면 폭로전으로 나설 가능성은 높지 않겠지만, 최악의 상황에 같이 죽자는 식으로 나오게 되면 인류정부의 입장이 대단히 난처해지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에 대한 목진의 대답은 단순한 것이었다.
“최소한 복수행이 끝날 때까지 바깥으로 이야기가 나돌지 않으면 문제 될 것 없지 않소?”
“천마신교의 소속이라는 걸 계속해서 숨길 생각이신 건가요?”
“적어도 지금의 나는 천마신교의 소속이 아니외다.”
목진이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물론 신교가 과거의 업으로 인해 나를 존중하는 것은 부정하지 않겠소. 허나 나는 천마 이목진이 아닌 무인 이목진으로서 이 시대를 살아가길 원하오.”
아테나는 목진을 눈을 마주보았다. 거짓이나 기만은 보이지 않았다.
“그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닐 텐데요.”
“신교는 나의 의사를 존중해주기로 하였소.”
지금까지 반 년 동안 조용했던 것은 그들이 입단속을 잘 해준 덕분이지. 목진이 덧붙였다.
“나는 사적인 친분 외에 신교와 연루되고자 할 생각이 없소. 신교 또한 그리하길 원하지. 나는 굳이 신교에 몸을 의탁하여 그들에게 부담을 지워줄 생각이 없소이다.”
“확실히······.”
목진의 말에 아테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예 천마의 자리가 부재중인 상황이라면 모를까, 지금 목진이 천마신교에 들어가게 되면 현 천마인 위소하와 목진 양쪽의 입지가 애매해질 테니까.
‘나쁘지 않아.’
아테나는 머릿속으로 빠르게 계산을 시작했다. 천마신교와 목진 모두가 그의 정체를 밝히지 않길 원하는 상황이라면, 그녀가 우려했던 대로 목진의 정체가 폭로되어 인류정부가 곤란해질 가능성은 희박했다.
설령 진실이 알려진다 해도 천마신교의 협조를 얻어 여론전을 펼친다면 충분히 거짓정보로 덮을 수 있다. 아테나는 고심 끝에 목진의 말이 합리적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그러면 그 사안에 대해서는 대협과 천마신교 측을 믿는 수밖에 없겠네요.”
“그대가 더 잘 알고 있겠지만, 이 사안에 대해서는 아는 이가 적을수록 좋을 것이외다.”
“알고 있어요.”
아테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사실은 무림교류부 장관님께 직접 특급 기밀로 전달할게요. 적어도 이 사실이 저희를 통해 외부에 알려질 일은 없을 거에요.”
“좋소.”
딱히 취할 수 있는 조치가 없으니 덮을 수 있으면 덮는 게 상책. 어차피 지금 상황에서 무림교류부가 무슨 조치를 취하든 상황만 악화시킬 뿐이었다.
“협조에 감사드려요.”
아테나가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다소 무거운 진실이기는 하지만, 모르고 있다가 뒤통수 맞는 것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그녀의 감사에 목진이 천천히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무얼. 이 일이 알려져 봐야 그대들의 손해일 뿐이니 편히 말할 수 있었던 것이지.”
“······읏.”
역시 알고 있었구나. 아테나는 등골을 타고 돋아나는 소름에 간신히 표정을 관리했다.
목진의 말은 일종의 경고였다.
훗날 계약을 저버리고 입을 싹 닫는다면, 이판사판으로 폭로전을 벌일 수도 있다는 경고.
‘적어도 한때 천마신교를 이끌었던 우두머리이긴 했다 이건가.’
물론 그와 인류정부의 관계가 완전히 파탄나지 않는 이상 거기까지 갈 일은 없겠다마는, 아테나의 입장에서는 이야기만 들어도 간담이 서늘해지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럴 일이 없도록 노력해야겠네요.”
“함께 노력해야지.”
목진이 빙긋 웃었다. 온화해 보이지만, 어쩐지 모르게 섬뜩함이 느껴지는 웃음이었다.
“아하하······그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는 게 좋겠네요.”
이 주제로 더 이야기를 이어나갔다는 위장에 구멍이라도 뚫릴 것 같다. 아테나는 애써 마주 웃으며 이야기의 화제를 돌렸다.
“일단 공룡문의 일을 해결하는 게 급선무겠죠. 순자 양이 말하길, 대협께서는 그 고독이라는 생명체가 기생했는지 아닌지를 구별하실 수 있다고 들었는데요.”
“반드시 알 수 있는 건 아니고, 주의를 기울이면 다른 기운을 품고 있는지 아닌지 정도의 여부는 알 수 있소.”
“······대단하시네요.”
목진이 긍정적인 답을 내놓자 아테나가 감탄의 목소리를 흘렸다.
이미 아테나는 팽가에서 확보한 고독의 사체를 토대로 민간 연구소에 고독 탐지장치의 개발을 의뢰한 상태이긴 했다. 중앙의 기술선도국을 믿을 수 없으니만큼 상부에 대한 보고 없이 비밀리에 일을 진행시킨 것이다.
하지만 엊그제 막 주문서를 작성해 넘겼을 뿐, 시제품이 나오기까지는 약간의 시간이 필요한 이상 현재로서는 오직 목진만이 확실하게 고독의 기생 여부를 구분할 수 있다고 생각해도 무방했다.
이 사람만 있으면 적어도 무림교류부 내에 적이 얼마나 되는지 파악할 수 있을 텐데. 아테나의 눈이 반짝 빛났다.
“혹시 저희 무림교류부에 협력하실 생각이······.”
“나는 무림인이오. 관의 일에 직접적으로 도움을 줄 생각은 없소.”
“아······네.”
역시 그렇겠지. 지극히 무림인다운 목진의 반응에 아테나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하지만 그리 크게 낙담할 만한 일인가 하면, 또 그런 것은 아니었다. 어차피 혈교의 마수가 인류정부의 중추에 파고들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외부인인 목진에게 꺼낼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당장 공룡문의 일로 받는 정도로도 충분해.’
아직 혈교의 일이라고 단정 지을 수 있는 물증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아테나는 어쩐지 모르게 공룡문에도 혈교의 손이 뻗쳐있을지 모른다는 예감이 들었다.
“관이 우리를 돕고자 하니, 이제 인질로 잡힌 아이들을 구하기는 더욱 수월하겠구나.”
에다 블루에 대한 신문의 마무리를 위해 자리를 떠나는 아테나의 등을 보며 목진이 중얼거렸다.
이로서 그 현마라고 하는 축생에게 한 약속은 지킬 수 있을 터. 목진은 홀가분한 미소를 지었다.
그의 옆에서, 어쩐지 모르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들리기 전까지는 말이다.
“목진 님.”
“······왜 또 그러느냐.”
어쩐지 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묘한 기시감과 함께 입가에 걸린 미소를 지운 목진이 고개를 돌려 순자를 바라봤다.
으음. 내가 또 무언가 잘못한 것이 있었던가. 지금까지와는 달리 심각한 표정을 숨기지 않는 순자의 반응에 목진이 꼴깍 마른침을 삼켰다.
그런 그를 똑바로 바라보며, 순자가 묘하게 서늘한 목소리로 물었다.
“인류정부와 무슨 거래를 하신 거죠?”
단순히 목진의 정체를 밝히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분석한 순자는 어렵지 않게 목진과 인류정부 사이에 모종의 거래가 있다는 것을 추론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거래는 분명, 세령의 복수행과 관계가 있는 종류의 거래였다.
그것을 자각했을 때, 순자가 가장 먼저 느낀 감정은 서운함이었다.
그녀는, 그리고 세령은 목진으로부터 아무런 이야기도 듣지 못했으니까.
당연히 목진이 세령에게 해가 될만한 거래를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순자는 그것만큼은 확신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적어도 무슨 일인지 당사자인 자신들에게 귀띔은 해주었어야 할 게 아닌가.
순자는 묘하게 원망을 담은 눈으로 목진을 바라봤다.
“아.”
목진이 슬쩍 시선을 피했다. 생각해 보니 때가 되면 세령과 순자에게 이야기를 해주어야겠다고 생각만 하고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만약 이 시점에 적절한 대응을 보였다면, 목진은 볼멘소리 몇 번 듣는 정도로 일을 수습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적절하게 대응했다면 말이다.
“거······그것 말이냐? 별 것 아니다. 세령이가 복수행을 해나가는 도중에 오대세가들을 적절히 손봐달라는 거래였지.”
목진은 평소 타인을 대할 적에 상대의 말 속 작은 단서들을 꿰뚫어 보고, 그걸 토대로 상대의 심리를 파악하는 스킬이 뛰어난 편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제 영역 안에 들어왔다 여긴 이들에게는 긴장을 풀고 편하게 대하기에 간혹 상대의 심리를 파악하지 못하고 무심하게 들릴 수 있는 말을 꺼낼 때도 있다는 것이다.
별 것 아니다. 그 말대로 정말 별 것 아닌 양 가볍게 말하는 목진의 말을 들은 순자의 인공두뇌 회로 하나가 뚝 하고 끊어진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는지도 모른다.
순자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차라리 기대도 안 한 상대였으면 아무 기분도 들지 않았을 텐데, 왕언니인 세령 다음으로 믿고 의지하는 상대인 목진이 저런 무심한 반응을 보이니 울컥 참고 있던 서운함이 밀려왔다.
“이······.”
순자가 목진을 매섭게 노려봤다. 그녀의 눈가에는 그렁그렁한 눈물이 맺혀있었다.
목진은 나찰즈와 함께한 뒤로 단 한 번도 순자가 저런 표정을 짓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이, 이 아이가 갑자기 왜 이러는 것이냐.’
언제나 냉정함을 잃지 않던 강철의 안드로이드인 순자였건만, 갑자기 왜 저런 반응을 보인다는 말인가.
목진은 당황했다.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려봤지만, 당황한 상태인 그는 자신이 무슨 실수를 한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내가 뭔가를 크게 잘못한 것 같긴 한데, 뭘 잘못한 건지 도저히 모르겠다.
그 생각이 고스란히 목진의 표정을 통해 나타났음은 말할 것도 없는 일.
그리고 그 모습을 본 순자의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아버리고 말았다.
“목진 님은 똥멍청이에요!”
고막이 찢어질 기세로 빼액 소리를 지른 순자는 목진의 대답도 듣지 않고 함교를 떠났다.
“또, 똥멍청······?”
목진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두 눈을 깜박이며 중얼거렸다.
그러나 함교에 그 말에 대답을 해 줄 이는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다.
이후, 목진이 크레딧을 바치며 사과와 함께 간신히 순자를 달랜 것은 자그마치 한 시간이나 지난 뒤의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