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smic Heavenly Demon 3077 RAW novel - Chapter (243)
우주천마 3077 우주천마-244화(244/349)
37. 궁극무인 Ultimate Artificial Warrior (2)
37. 궁극무인 Ultimate Artificial Warrior (2) – 래디컬 이기주의
탁. 탁. 초조함을 담아 탁자를 두드리는 소리가 카페 안을 울렸다.
독서용 안경을 쓴 채 ‘월간 유니버설 강호 뉴우스’라고 적혀있는 잡지를 읽고 있던 목진의 눈가가 꿈틀 움직였다.
잡지를 슬쩍 내리니 맞은편 자리에 있는 순자의 모습이 보였다. 순자는 목진이 바라보고 있다는 것도 모르는지, 턱을 괸 채 반쯤 녹아버린 아이스 아메리카노만 뚫어져라 바라보며 탁자를 두드리고 있었다.
아침식사를 먹는 둥 마는 둥, 하루 종일 저 상태다. 목진이 크흠 하고 헛기침 소리를 내었다.
“진정 좀 하거라. 정신 사납게.”
목진의 핀잔에 순자의 시선이 목진을 향했다. 순자는 괸 턱을 풀고 고개를 들었다.
“이상하지 않아요?”
무엇이 이상한지는 물어볼 것도 없다. 목진은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조금 늦을 수도 있지.”
“그래요. 하루정도는 일이 생기면 늦을 수도 있죠.”
하지만 벌써 이틀째라구요. 순자가 탁자 위로 불쑥 몸을 들이밀었다.
“메일이나 메시지도 없이 이틀 동안 아무 연락도 없다는 게 말이 돼요? 뭔가 일이 생긴 게 분명해요.”
“고작 하루 정도로 요란 떨지 말거라. 사람이 진득하게 기다리는 법도 알아야지.”
“한 시간 동안 페이지 한 번 안 넘기던 목진 님이 하실 말은 아닌데요.”
“······.”
침묵하던 목진이 조금 붉어진 얼굴로 잡지를 탁 소리 나게 덮었다. 괜히 체면을 차린답시고 여유를 부려봤다가 본전도 못 찾았다.
나직한 한숨소리와 함께 잡지를 탁자 한쪽으로 밀어넣은 목진이 순자에게 물었다.
“통신은 여전히 안 되더냐?”
“네. 이쪽에서 통신을 걸어봐도, 통신중계 지원범위 밖에 있다고만 나오네요.”
이상한 일이었다.
아무리 인류가 이 은하계 전체를 속속들이 파악한 것은 아니라지만, 미개척 지역도 아니고 반경 삼십여 광년 내의 천체들이 모두 개발된 샌프란시스코 성계에서 중계범위 밖이라니.
“오늘 아침에 행성경비군 쪽 탐색로그를 해킹해 봤는데, 저희 우주선의 식별코드가 확인된 곳은 성계 외곽부위라고 해요.”
“그래서?”
“원래 외곽을 넘어서 성계 계면 안쪽까지는 그 이동경로가 탐색로그에 찍히는 게 보통이에요. 태양풍의 흐름 변화를 탐지해서 우주선의 움직임을 특정하거든요.”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 쉽게 설명해 주면 안 되겠느냐?”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이공계 특유의 전문용어에 목진이 인상을 찡그렸다. 현대 문물에 나름 잘 적응한 목진이지만, 저놈의 과학적 전문용어들은 시간이 지나도 도무지 적응이 되질 않았다.
목진의 불평에 순자가 알기 쉽게 요약을 해주었다.
“쉽게 말해 성계 외곽에서 우주선이 증발했다는 뜻이에요.”
“증발?”
어쩐지 모르게 불길한 단어에 목진의 눈이 가늘어졌다. 멀쩡한 우주선이 유령처럼 사라졌다는 소리가 아닌가.
“이 우주에도 괴력난신 같은 일들이 일어나는 건가?”
“온갖 일이 일어나는 우주니까 괴담 같은 건 어디든 존재하죠. 실제로는 운 나쁘게 성간천체와 충돌해 우주선이 파괴되거나, 해적들에게 약탈당하고 우주선이 파괴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요.”
“······그건 심각한 문제가 아니냐?”
목진의 얼굴이 싹 굳었다. 처음 세령 일행을 만났을 때와 다르게, 지금의 그는 사고나 습격으로 우주선이 터지면 무공을 익힌 무림인이라 할지라도 꼼짝없이 죽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순자는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보통 그런 경우는 우주선 내의 블랙박스에서 강한 비상신호를 퍼트리게 되어있어요. 성계 외곽에서 비상신호가 터졌으면 행성경비군이 모를 리가 없죠. 우주선이 파괴되었을 가능성은 거의 없어요.”
세령의 안전을 걱정하는 것과는 별개로, 순자의 추리는 지극히 냉철했다.
‘분명 왕언니는 라이디 님의 소개로 무영탑에 간다고 했었어.’
주어진 정보들을 바탕으로 추측을 이어 나간 순자는 다시금 탁자를 두드리며 입을 열었다.
“가장 가능성이 높은 건 광범위한 위장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우주선과 접촉했다는 가설이에요. 그리고 라이디 님이 말한 무영탑이라는 곳이 도시전설로 불릴 만큼 그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 곳이라면, 그럭저럭 이야기가 맞아떨어지죠.”
“쯧······. 결국 그 무영탑이라는 곳이 문제로구나.”
목진이 탐탁찮다는 듯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생각해 보면 세령과 다투게 된 것도 다 그놈의 무영탑 때문이 아니던가.
“아마 두 분은 성계 외곽에 무영탑 소속 우주선과 함께 있을 가능성이 높아요. 연락도 없이 늦어지는 건 뭔가 문제가 생겼다는 뜻이고요.”
문제라. 목진이 순자의 말을 곱씹었다.
이 강호무림에서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기는 것은 일상다반사이긴 하다. 사람과 사람이 부대끼고 살아가는 이상 갈등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무림인이라는 족속들은 그 갈등을 칼로 해결하는 것에 익숙한 이들이었으니까.
하지만 이번은 경우가 다르다.
뇌신유녀 라이디 직스는 그 거대한 천마신교에서도 한 손에 꼽힐 정도로 대단한 고수.
그런 그녀가 동행중인데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는 건, 그리 간단하게 넘어갈 만한 일이 아니었다.
“하면 우리가 직접 찾아가야겠구나.”
라이디는 기본적으로 목진에게 상당한 공경심을 품고 있다.
그러니 그녀가 약속 시간에 늦을 것을 알면서도 아무런 연락을 취하지 않았을 가능성은 제로. 그렇다면 그녀조차 쉽게 해결할 수 없는 트러블에 휘말렸을 가능성이 컸다.
목진의 말에 순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 하염없이 기다리는 것보다는 나은 방법이죠.”
황보세가와 생사결을 약속한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미 강호넷은 염화나찰 당세령과 철군자 황보륭의 생사결에 대해 떠들며 승부가 어찌 날지를 논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대로 대책 없이 기다리기만 하다가는 황보세가와의 일전을 앞두고 겁먹어서 도망갔다는 오명을 뒤집어써야 할 판. 예정이 어그러진 이상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우주선의 신호가 끊긴 성계 외곽을 수색한다. 일행의 목표가 정해지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 전에,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만 했다.
“······헌데 우리는 우주선이 없지 않느냐.”
바로 우주선.
원래 일행이 타고다니던 나찰즈 우주선은 현재 세령과 라이디가 가져간 상황이니, 따로 움직일 수 있는 우주선이 없는 목진과 순자는 행성 밖으로 나갈수가 없었던 것이다.
일반적으로 우주선을 가지고 있지 않은 이들은 행성간 사람과 짐을 실어나르는 여객용이나 운수용 우주선을 타는 게 보통이었다.
하지만 목진과 순자의 경우는 다른 행성이나 성계로 가는 게 목적이 아닌, 성계 외곽으로 이동해 광범위한 구역을 수색하는 것. 여객용이나 운수용 우주선들은 애초에 그런 수색을 위한 장비 자체를 가지고있지 않았다.
“하면 관아에 신고하는 건 어떠냐? 관의 우주선이라면 수색에도 일가견이 있을 터.”
어쩐지 모르게 지극히 상식적으로 들리는 의견. 하지만 순자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무림인의 일이라 허가가 안 날 거에요. 설령 난다고 해도 내부 심사를 거치느라 하루이틀 정도는 걸릴 거고요.”
무림인들은 민간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일반적인 법의 테두리 밖에서 활동할 수 있지만, 그 말은 곧 법의 보호를 받는 데에도 어느 정도 제한이 따른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하면 어찌할 셈이냐?”
목진의 물음에 순자의 눈이 빛났다.
“우주선을 가진 사람을 고용해야죠.”
마침 이미 거래를 튼 용병낭인이 있잖아요? 순자의 대답에 세 명의 수인 자매를 떠올린 목진이 아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 내상을 치료하며 남은 대출금을 어떻게 갚아야 할까 고심하던 낭호교 삼자매가 순자의 제안을 냉큼 수락한 건 굳이 확인할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하!”
번뜩이는 검광과 함께 눈으로 좇기 힘들 정도로 쾌속한 검격이 허공을 수놓는다.
웬만한 문파의 문주급 고수들도 결코 쉽게 받아내지 못할 쾌검.
그러나 그것을 받아내는 이는 마치 미래라도 예지하는 것 마냥 미리 검이 날아드는 곳에 손을 뻗고 있었다.
눈 한번 깜박일 시간 동안에 도합 여덟 번 검을 튕겨낸 사내, 무영탑주 시그마가 감탄의 목소리를 흘렸다.
“그 짧은 시간 동안에 눈에 보일 정도로 실력이 늘어나는군. 과연 이 무영탑을 견학할만 하기에 부족함이 없어.”
이곳 무영탑에 들어오는 이들 중 천외천의 천재 소리를 들어보지 못한 이는 없다.
애초에 절대고수라는 영역부터가 어중간한 천재 따위는 감히 닿지도 못할 우주적 천재들의 영역이고, 무영탑은 그러한 천재들 중에서도 무공에 미친 이들만이 들어오는 곳이니까.
그러니 무영탑의 주민들, 그리고 그들을 규합한 무영탑주 시그마의 재능에 대한 눈높이는 범인들이 상상하는 그것과는 차원이 다른 영역에 있을 수밖에.
대문파의 장문인 자리를 꿰어차는 인재들조차 주저 없이 무재(武才)가 부족하다 평하는 진정한 천년기재(千年奇才)들의 시선.
하지만 지금 그에게 검을 휘두르는 저 젊은 후배의 재능은 그런 천재의 시선으로 보기에도 특출나다 평할 만한 수준이었다.
“······하 씨, 누굴 놀리는 것도 아니고. 한 발짝도 안 움직이고 사흘 내내 칼질을 받아낸 양반이 그런 말 하면 칭찬으로 들릴 것 같아요?”
시그마와 거리를 벌린 세령이 짜증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볼멘소리를 냈다. 그 말에 시그마가 껄껄 웃음을 터트렸다.
“너와 본 탑주가 쌓은 무공의 차이가 얼마인데, 아무렴 화경의 경지에도 도달하지 못한 네 검에 맞아주겠나. 재능만 있을 뿐, 객관적으로 봤을 때 네 무공은 아직 걸음마 수준에 불과하다.”
“그 걸음마 수준의 무공을 가진 후배를 인질로 잡는 건 안 부끄러우시고요?”
시그마의 말에 세령이 날카로운 말투로 쏘아붙였다.
그녀의 목소리 안에는 숨길 수 없는 초조함이 배어있었다.
돌아가기로 약속한 날짜로부터 벌써 이틀이 지났다. 하지만 그럼에도 세령과 라이디는 여전히 이 무영탑을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두 사람이 떠나지 못하는 이유.
그건 사설 전뇌공간인 무영탑이 그들의 로그아웃을 틀어막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주도한 것이 바로 눈앞의 사내, 무영탑주 시그마였고 말이다.
“크흠. 인질이라고 표현하는 건 다소 민망하군. 목적을 위해 잠시 협조를 받는다고 표현해 주시게.”
세령의 말에 시그마가 헛기침을 했다. 그 자신이 생각해도 대놓고 인질이라 말하니 부끄러움을 느끼기는 하는 모양이었다.
협조는 얼어죽을. 세령은 시그마를 향해 대답 대신 잘 빠진 중지를 치켜 올렸다.
시그마가 난감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처음 봤을 때 말했지 않나. 협조를 해 달라고.”
“아니 근데 시발 진짜 저도 일정이 있다니까요? 황보세가랑 생사결이 잡혀있다고!”
“흐음, 속세의 일에는 관심 없네. 그건 자네의 사정이지 않나.”
“이런 개······!”
속이 터질 것 같은 답답함에 세령이 소리 없는 고함을 질렀다.
딱히 자신들에게 악의를 품은 것 같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자신들의 사정을 고려해 줄 생각은 없어 보인다.
뭐가 됐든 자기 목적만 이루면 그만이라는 식.
멀쩡해 보였던 첫인상과는 달리 더럽게 이기적인 사고방식이었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거람.’
조상님들에게 꿀 같은 팁들을 전수 받은 뒤, 무영탑을 나가기 전에 인사를 위해 들렸던 것까진 좋았다.
– 미안하지만 자네들을 보내줄 수 없겠군.
별안간 무영탑주 시그마가 태도를 싹 바꾸며 저딴 소리를 하지만 않았다면 말이다.
– 나는 그 참룡검제 이목진이라는 자와 싸우고 싶네. 그러니 그가 올 때까지 잠시 협조해주셔야겠네.
도대체 무슨 사고를 거쳐서 저딴 결론이 도출된 걸까. 날벼락 같은 시그마의 선언에 세령과 라이디가 거세게 반발한 것은 당연한 반응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라이디가 고수라고 해도 사설 전뇌공간인 무영탑에서는 신과 같은 힘을 휘두르는 시그마에게 대항하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 손짓 한 번으로 라이디를 격리공간으로 날려버린 시그마는 딱딱하게 굳은 얼굴을 한 세령에게 하나의 내기를 제안했다.
– 그가 오기 전까지 나한테 한 번의 유효타라도 내면 그냥 보내주도록 하지.
세령에게는 선택지가 없었다. 그렇다고 이 전뇌공간에서 탈출할 방법이 있는 건 아니었으니까.
한 대만 맞아라. 한 대만.
그리고 그녀는 하루도 지나지 않아 깨달을 수 있었다. 시그마가 그녀에게 내기를 제안한 건, 그저 목진이 오기 전까지 심심풀이를 위해서였다는 것을.
어린아이를 상대하는 듯 여유로운 시그마 탑주의 태도에도 불구하고, 세령의 모든 수는 그에게 유효타를 내지 못했다. 그의 말마따나, 아직 화경의 경지조차 밟지 못한 세령으로서는 그에게 유효타를 낸다는 것이 불가능했다.
‘그래서 사흘째 이 지랄인 거고.’
피곤해 죽겠네. 정신적으로 피로해진 세령은 검을 늘어트리고 시그마를 향해 따졌다.
“아니 진짜 이해가 안 가네. 아저씨랑 한판 뜨고 싶으면 그냥 한판 뜨자고 전하면 되지 왜 쓸데없이 이런 짓을 해서 어그로를 끄는 건데요?”
“거절당할 수도 있지 않나. 괜히 불확실한 방법을 택할 필요가 있나? 이렇게 하면 그는 반드시 찾아올 텐데.”
“딱히 악감정이 있는 것도 아니라면서요. 그런데도 굳이 사람 성질을 긁을 필요는 없잖아요.”
이 양반 오래 살아서 맛탱이가 간 거 아닌가? 세령이 속으로 생각했다.
도저히 정상적인 사람의 사고방식으로는 따라갈 수 없는 사고관이다. 일단 목진이 도전을 거절하는 성격이 아닌 건 둘째치고, 왜 이렇게 방법이 극단적이라는 말인가.
하지만 시그마는 그런 세령의 말에 되려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기울였다.
“적대해서 나쁠게 뭐가 있지?”
“예?”
“나는 그와 즐겁게 친선비무를 하고 싶은 게 아니야.”
시그마의 눈이 번뜩였다.
그리고 그 눈을 마주한 세령은 문득 의문이 들었다.
오로지 더 높은 경지를 위해서 스스로의 뇌수를 적출해 무영탑을 세울 만큼 무공에 미친 자가, 수백 년의 세월 동안 다음의 경지로 올라서지 못했다.
그렇다면 과연 그의 정신은 정상적인 상태일까?
“······.”
세령은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키며 시그마의 시선을 마주했다. 그녀는 그의 눈 속에서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을 보았다.
그 심연을 가득 채운 것들의 이름은 맹목과 광기.
“······수백 년간 검을 휘두르는 것도 이제는 지쳤어.”
오르지 못할 하늘을 보며 미쳐버린, 어쩌면 처음부터 미쳐있었을 사내는 그녀가 아닌 자신을 향해 경고하듯 말했다.
“나는 이 끝없는 방황의 결착을 원한다.”
그가 원하는 것은 오직 하나.
죽거나, 아니면 더 높이 올라가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