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smic Heavenly Demon 3077 RAW novel - Chapter (245)
우주천마 3077 우주천마-246화(246/349)
37. 궁극무인 Ultimate Artificial Warrior (4)
37. 궁극무인 Ultimate Artificial Warrior (4) – 자연발생
인간은 살아가며 죄를 지으며 살아간다.
작은 것이든 커다란 것이든, 그 양이 다를 뿐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어떤 방식으로든 죄업을 쌓아가기 마련.
한번 저지른 죄는 사라지지 않고 계속 쌓이며 인간을 괴롭게 만드는데, 그로 인해 죄를 많이 저지른 인간은 언젠가 스스로가 쌓은 죄의 무게에 짓눌려 파멸의 수순을 밟게 되는 것이다.
때문에, 수백 년의 세월동안 무림인으로서 살아온 라이디 직스라는 인간이 쌓아올린 죄는 다른 평범한 이들의 것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하고 무거운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아아-아아아악-!”
눈, 코, 입, 그리고 귀. 칠공에서 피를 토하며 라이디가 바닥을 뒹굴었다. 발목까지 차오른 물결이 금세 붉게 물들었다.
다른 생각은 할 겨를이 없다. 그저 사력을 다해 버틸 뿐.
끝없이 쏟아지는 죄의 파도에 라이디는 아무 생각도 하지 못하고 다만 견디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허나 이대로 견디기만 하다가는 그녀의 자아가 붕괴할 수밖에 없을 터.
당장에라도 죽을 것처럼 꺽꺽거리며 발작하던 라이디의 눈이 돌변한 것은, 비릿한 피냄새를 맡은 순간이었다.
자신이 토해낸 피에서 나는 냄새일까, 아니면 정체불명의 패스를 타고 전해진 냄새일까.
하지만 그녀에게 그런 것은 중요치 않았다.
머리가 터질 것 같은 상태임에도 느껴지는 코를 찌르는 피비린내가, 그녀가 가장 증오해 마지않는 무언가를 상기시켰기 때문이었다.
혈교(血敎).
라이디는 기억하고 있었다.
친애를 가득 담은 채 사랑을 속삭이던 남자의 눈동자를.
무감정한 눈으로 그녀에게 검을 찔러넣던 남자의 붉게 물든 눈동자를.
그리고, 그녀의 소뢰(素雷)를 받아들이며 미안하다 말하던 남자의 눈동자를.
백수십 년이 넘게 지난 지금에 와서도, 그녀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
소리 없는 포효, 비명, 혹은 절규가 터져 나왔다.
라이디의 손에 새하얀 번개가 맺혔다. 그녀는 제 손에 맺힌 번개를 한 치의 주저함도 없이 제 머리에 가져다 댔다.
“-!”
이번에도 소리는 없었다. 그러나 그건 비명조차 지를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럽기 때문이었다는 것이 달랐다.
라이디의 작고 가녀린 몸이 발작하듯 꿈틀거렸다. 형용할 수 없는 작열통이 그녀의 전신을 헤집었다.
제 머리를 번개로 지지다니, 제정신이라면 떠올릴 수조차 없는 행동이었다. 아무리 전뇌공간 속이라지만 고통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머릿속을 파먹으려 하는 메뚜기떼 같은 관념들을 지우기엔 충분했다.
두 눈을 하얗게 까뒤집고 경련하던 라이디가 다시금 몸을 튕겼다.
“큭, 케흑?!”
그녀의 작은 입에서 분수처럼 뿜어져 나오는 붉은 선혈.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양이긴 했지만, 이곳은 전뇌공간이었다.
“하, 하아. 하······.”
라이디는 제가 토한 피로 붉게 물든 물결 위에 대자로 누운 채 가쁘게 숨을 내쉬었다. 그녀의 팔다리는 감전의 여파로 아직까지도 경련하고 있었다.
비록 고통에 일그러져 있긴 했지만, 그녀의 눈동자는 원래 그녀의 것으로 돌아와 있었다.
어느 정도 정신을 추스린 라이디의 목소리에서 증오가 가득 담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혈교······.”
그녀는 어금니가 부서질 정도로 이를 악물었다. 가장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을 강제로 떠올리자, 그간 억누르고 있던 증오심이 걷잡을 수 없이 터져나온 것이다.
오랜 세월을 살아오며 두 번이나 혈교의 난을 겪어본 라이디였지만, 이렇게 직접 혈교의 정신공격을 마주한 것은 처음이었다.
‘나는 운이 좋아서 이겨낸 것에 불과해.’
이만한 고통을 동반한다면 누구라도 혈교에 오염될 수밖에 없지 않나. 라이디가 제 미간을 꾹꾹 누르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자칫 잘못했으면 자신마저 혈교의 주구가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오싹한 기분에 라이디가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녀의 이성은 냉정하게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
‘이상해. 어째서 무영탑이 혈교와 연결되어있는거지?’
외부와 단절되어있는 사설 전뇌공간. 그리고 그럼에도 연결되어있는 혈교와의 패스.
강호 경험이 많고 혈교에 대한 지식도 적지 않은 그녀였지만,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었다.
하지만 하나만큼은 확실했다.
이곳 무영탑조차, 혈교의 오염으로부터 안전한 곳은 아니라는 것.
다시금 라이디의 뇌리에 의문이 떠올랐다.
‘무영탑주는 이 사실을 알고 있는 걸까?’
만약 이 일을 벌인 것이 무영탑주라고 한다면, 그는 이미 혈교에 오염되었을 것이다. 라이디의 등에 쭈뼛 소름이 돋았다.
무영탑주 시그마는 이 전뇌공간 내에서는 전지전능한 신과 다름없는 존재다. 생각조차 읽을 수 있는 그가 오염되었다면 그녀와 세령은 결코 이 무영탑에서 빠져나갈 수 없다는 뜻이었다.
“아니, 잠깐.”
생각을 이어가던 라이디가 중얼거렸다. 그러고 보니, 한 가지 놓치고 있던 게 있었던 것이다.
라이디가 한 손을 들었다. 그녀의 손에 새하얀 번개다발이 맺혔다.
라이디가 미간을 좁히며 중얼거렸다.
“······내공을 쓸 수 있어?”
무영탑주가 직접 건 봉인이 풀어졌다.
그가 직접 그녀의 봉인을 풀었을 리는 없으니, 결론은 하나였다.
혈교가 그녀를 오염시키려던 과정에서 무영탑주의 봉인을 풀어버렸다는 것.
그렇다면. 라이디가 중얼거렸다.
“무영탑주도 혈교의 오염을 모르고 있었다는 건가······.”
그러면 도대체 혈교는 어떤 경로로 무영탑에 들어올 수 있었던 거지? 라이디의 얼굴이 복잡해졌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혈교 오염원과 이어진 패스를 올려다봤다.
허공은 여전히 불길하게 일렁이고 있었다.
“······예상보다 반응이 빠르네요.”
아무런 전조도 없이 눈앞에 나타난 스페이스 콜로니, 무영탑을 보고 놀란 가슴을 간신히 추스른 순자가 살짝 미간을 좁혔다.
보통 반나절에서 하루는 걸린다고 했던 라이디의 언질과는 달리, 초대코드를 활성화하자마자 곧바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마치 기다리고 있었던 양 말이다.
평소라면 의심부터 했겠지만, 하루의 시간조차 촉박한 지금으로서는 오히려 고마운 일이다. 빠른 스캔으로 무영탑의 외부 구조를 파악한 순자가 소행성 중심을 가로지르는 인공 구조물 쪽을 가리켰다.
“저기가 도킹 스테이션이에요. 돌입하죠.”
“그 전에 교신부터 해야······.”
“초대 코드가 있으니까 괜찮아요.”
헤어지기 전에 라이디에게 들은 설명을 떠올린 순자가 대답했다. 도킹 스테이션 입구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이 번뜩였다.
‘안 열어주면 해킹으로 따면 되지.’
다행인지 불행인지, 순자가 해킹실력을 뽐낼 기회는 없었다. 우주선이 도킹 스테이션으로 접근하자 당연하다는 듯 입구가 열렸으니까.
“도킹 스테이션 진입합니다.”
우주선을 조종하는 가을의 말과 함께 도킹 스테이션 안의 모습이 모습을 드러냈다.
“저건······.”
“제대로 찾아왔군,”
들어오자마자 보이는 낯익은 모습의 우주선. 나찰즈의 이름이 선명하게 새겨진 우주선을 본 목진과 순자의 표정이 조금 밝아졌다.
나찰즈의 우주선과 채널을 연결해 이것저것 확인해 본 순자가 목진에게 말했다.
“우주선의 상태에는 별다른 이상은 없는 것 같아요. 왕언니와 라이디 님은 보이지 않지만요.”
“바깥도 마찬가지다. 사람은 보이지 않으나, 딱히 경계하는 듯 보이지는 않는구나.”
“일단 안쪽을 수색해 봐야할 것 같은데요.”
“같이 가려느냐?”
“안내자 역할 정도는 필요할 테니까요. 원래 이런 대형 시설에 혼자 들어가시는 건 별로 좋은 선택이 아니에요.”
물론 무력으로 치면 일반인이나 마찬가지인 순자를 데려가는 것이니 리스크가 있긴 하다. 하지만 두 사람 중 어느 쪽도 그런 것에 신경쓰지는 않았다.
“그럼 저희는 남아야 하나요······?”
가을이 슬그머니 손을 들며 물었다. 그녀의 꼬리는 긴장한 듯 빳빳하게 뒤로 젖혀져 있었다. 어딜 봐도 함께 진입하고 싶어 안달이 난 모습이었다.
‘기껏 전설 속 무영탑에 왔는데 우주선이나 지키고 있긴 싫은데······.’
목진과 순자의 태도를 보면 나름 진지한 상황이라는 것 정도는 안다. 하지만 사람 일이라는 게 또 어찌 될지 모르는 일이 아닌가. 단지 고용되었을 뿐인 삼자매의 입장에서는 무영탑의 기연이라는 어마어마한 부수입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가을의 말에 순자가 생각에 잠겼다.
“정석적인 배치는 우주선을 지키는 인원을 남겨야 하겠지만······.”
문제는 이곳이 그냥 평범한 우주시설이 아니라, 최소 절대고수 급들이 죽치고 앉아있는 비밀시설이라는 거다.
“어쩔 수 없네요. 같이 가죠.”
결국 고민하던 순자가 내린 결론은 동행이었다.
현상금 사냥꾼 중에서는 나름 한 가락 하는 낭호교 삼자매라지만, 절대고수는커녕 S랭크의 고수만 튀어나와도 몰살당할 것을 걱정해야 할 판. 차라리 아예 처음부터 목진과 함께 움직이는 편이 나았다.
“······아자.”
세 자매가 동시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어지간히도 기연이 고프긴 한 모양이었다.
각자의 무기와 장비들을 챙긴 일행이 메인 독으로 나왔다.
그리고 그곳에는, 무영탑의 관리자 박 노야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목진과 눈을 마주친 그는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입을 열었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참룡검제 이목진 대협. 저는 이곳 무영탑을 관리하는 박가라고 합니다.”
“흠······ 꼭 내가 올 것을 알고 있던 것처럼 말하는구나.”
목진의 말에 박 노야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전에 세령과 라이디를 대할 때와는 달리, 그의 표정에서는 여유가 아닌 진중함이 묻어나오고 있었다.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대협께서 오실 것을 기다리고 있었지요.”
“하면 내가 어째서 왔는지도 알고 있으렷다.”
그의 말에 박 노야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대협께서 불쾌하게 여기실 행동을 하여 죄송스러운 마음뿐입니다.”
“하. 알면 하지 않았으면 될 일이 아니더냐.”
일이라는 게 뜻대로 되는 것만은 아니더군요. 목진의 차가운 목소리에 박 노야가 쓴웃음을 지으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변명이라 하기에는 조악한 이야기이나, 이번 돌발행동은 시그마 탑주의 심복인 그조차도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다.
무영탑의 시스템을 완성한 뒤, 수백 년의 세월 동안 그에게 전권을 맡긴 채 루트 권한에는 직접 손대는 일이 거의 없던 주인이 아니던가.
그렇기에 이번 시그마 탑주의 행보는 박 노야의 입장에서도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시는 것인지······.’
박 노야 자신과 상의도 없이 대뜸 루트 권한을 사용해 두 손님을 억류한 시그마 탑주의 행동은 분명 도를 지나친 횡포다.
때문에 박 노야는 그가 행한 행동이 옳지 않은 일이라 역설하며 두 사람을 풀어주라 충언했었다. 참룡검제와 검을 나누고 싶으면 자신이 무슨 수를 써서든 자리를 만들 테니, 탑주의 이름에 부끄러운 일이 남지 않도록 해달라. 그리 말했었다는 말이다.
– 잠자코 시키는 대로 하게.
하지만 시그마 탑주는 단호한 어조로 그의 충언을 거부했다. 수백 년 동안 무영탑을 관리하며 탑주를 보필하던 그로서는 꽤나 충격적인 반응이었다.
비록 끝까지 고집스럽게 굴긴 하지만, 최소한 겉으로나마 박 노야의 말을 경청하는 시늉이라도 하던 시그마 탑주였다. 박 노야는 처음으로 그에게 고압적인 태도를 내비친 주인을 떠올리며 보이지 않게 주먹을 쥐었다.
‘악수(惡手)임은 알고 있지만······주군의 뜻이 그러하다면 따를 수밖에.’
그가 탑주의 뜻을 따를 수밖에 없다는 것은 그저 구색일 뿐. 박 노야는 먼 옛날 그가 바친 충성의 맹세를 아직까지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니 그는 따라야만 했다. 무영탑주가 그것을 원하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