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smic Heavenly Demon 3077 RAW novel - Chapter (247)
우주천마 3077 우주천마-248화(248/349)
37. 궁극무인 Ultimate Artificial Warrior (6)
37. 궁극무인 Ultimate Artificial Warrior (6) – 백전무패
– 이제 내게 남은 건 오직 하나뿐이오. 오직 그것만을 의지한 채 끝이 보이지 않는 우주를 방황했지.
희로애락(喜怒哀樂)조차 시간에게 지불해버린 채 비어있는 넋에 남아있는 것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집념(執念).
– 그러나 더이상은 못 버티겠어.
오로지 무에 대한 집념으로 억겁의 세월을 헤메어야 했던 망령이 말했다.
– 이제는 어떤 식으로든 끝을 보고 싶소.
죽던가. 아니면 벽을 넘던가.
어느 결과든 그는 만족할 수 있었다.
한참동안 그를 바라보던 목진이 입을 열었다.
“······내가 너를 잘못 봤었군.”
실체가 아닌 홀로그램이기 때문이었을까. 목진은 시그마라는 사내의 본질을 오판하고 있었다.
그는 경지의 상승을 위해 그에게 도전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단지, 끝을 보고 싶었을 뿐이다.
목진은 시그마의 눈을 재차 들여다 보았다.
그것은 비록 홀로그램일 뿐이었지만, 마음의 눈을 개안한 목진은 그 너머에 있는 시그마라는 사내의 본질을 직시할 수 있었다.
제 혼을 깎을 정도로 정진하였으나, 종래에는 벽을 넘지 못하고 좌절한 이들. 시그마의 눈은 그런 이들의 눈과 꼭 닮아 있었다.
오르지 못하고 끝내 떨어져 버린, 실패자의 눈.
그러나 목진은 그를 실패자라 업신여기지 않았다.
벽을 넘어서지 못했다 하나, 수백 년 세월을 진념일직(眞念一直)의 마음을 품은 채 견뎌낸 무인을 어찌 업수이여길 수 있을까.
비록 시간의 사토를 견디지 못해 영락했을지언정, 눈앞의 무인이 품은 염원과 그가 걸어온 길은 같은 무인으로서 존중해 마땅했다.
“좋다.”
하여, 목진은 그에게 기회를 주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네게 종언을 고해주마.”
그러니 그에 걸맞은 공부를 보이도록 하여라.
그의 말에 시그마가 활짝 웃음을 머금었다.
– 고맙소.
아마도 아직 풍화되지 않았을, 기쁨(喜) 한 부스러기가 그렇게 피어났다.
트램이 도착한 곳은 거대한 공동이었다.
고수들이 마음껏 무공을 펼치기엔 다소 협소하나, 그렇다고 크게 부족하지는 않은 공간. 힘을 낭비하지 않는 경지에 오른 고수들에게는 충분한 크기였다.
“그럼, 저희는 관전 룸으로 가도록 하겠습니다.”
부디 보중하시길. 박 노야는 그리 말하며 시그마를 향해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공동을 나갔다.
시그마는 박 노야가 사라지자 목진을 돌아보며 빙긋 웃었다.
– 신뢰가 아깝지 않은 자요.
“수하를 꽤 아끼나 보군.”
목진이 담담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시그마가 살짝 고개를 흔들었다.
– 미리 알려드리고 싶었소.
“흠?”
– 별 것 아니니 신경 쓰지 마시오.
가볍게 손을 내저은 시그마가 화제를 돌렸다.
– 아까 내가 했던 말 기억하시오?
“······육신을 다시 빚는다는 말 말이더냐?”
목진이 아리송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목진은 시그마의 말이 무엇을 뜻한 것인지 아직 감도 잡히지 않고 있었다.
차라리 유령이니 빙의라도 한다면 이해라도 하겠는데, 육신을 다시 빚다니. 목진의 상식관으로는 도저히 시그마의 말이 무엇을 은유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시그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 그렇소. 나는 새 육신을 얻었지.
“하면 그 육신은 저 장막 너머에 있겠구나.”
목진이 손가락을 들어 공동 한켠에 드리워져 있는 검은색 장막을 가리켰다. 꽤 높은 천장에 매달려 있는 길고 넓은 장막은 비무를 위해 설계된 공동 내에서도 명백히 이질적인 모습을 하고 있었다.
목진은 기감을 통해 저 너머에 무언가가 있음을 느꼈다. 언뜻 사람 같기는 하지만 생기는 느껴지지 않는 존재.
‘강시인가?’
사람처럼 보이나 생기가 없다면 답은 뻔하지 않은가.
드로이드 강시도 있으니 사람 강시가 없으란 법은 없지. 목진은 약간의 실망감을 느꼈다.
하지만 그것은 그의 오판이었다.
–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재미있는 오해를 하고있는 듯 싶군.
목진의 표정을 관찰하던 시그마가 묘한 표정을 지었다.
“강시가 아니더냐?”
– 강시?
시그마가 두 눈을 깜박이는가 싶더니, 이내 짙은 미소를 머금었다.
– 그것은 직접 확인해보도록 하시오.
그렇게 말한 시그마가 손가락을 튕겼다. 그의 신호를 따라 커다란 장막이 천천히 좌우로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모습을 드러낸 것은-.
“저것은······.”
마치 거미줄과 같이 얽힌, 무수한 파이프와 케이블이 연결되어있는 투박한 강철의 옥좌.
그리고 그곳에는, 한 명의 사내가 두 눈을 감은 채 앉아있었다.
“······대단하군.”
상의를 벗고 있는 사내의 모습을 눈에 담은 목진이 작게 감탄의 목소리를 흘렸다.
가히 예술적이기까지 한, 무공을 펼치기에 적합하게 단련된 이상적인 육체. 극한의 단련 끝에 환골탈태를 겪은 고수들의 신체도 눈앞에 보이는 사내의 것에 비하면 손색이 있을 정도였다.
저것이 강시일 수는 없다.
당장이라도 꿈틀거릴 것 같은, 무를 펼치기 위해 세심하게 조형된 근육을 보며 목진은 스스로의 생각을 정정했다. 한낱 강시 따위는 저런 육체를 가질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알지 못했다.
극한까지 다듬어진 저 사내의 신체가, 결코 단련을 통해 얻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시그마는 목진의 옆에 나란히 선 채 옥좌에 앉아있는 사내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 유전자 조작으로 제작한 특제 인조인간이오. 정식 명칭은 ‘통합의식형 인조유기단말 코드 시그마’라고 하지. 총 스물일곱 개의 실험체 중 가장 안정적이고 평균 능력치가 높은 실험체를 선정했소.
“제작······했다고?”
인간을 객체로 서술하는 말이라기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기계적인 언어. 하지만 시그마는 목진의 중얼거림을 잘못 받아들였는지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 모자이크드 휴먼은 불법이긴 하지만, 저건 인간이 아니라 인형일 뿐이니 문제는 없소.
보시오. 시그마가 긴 케이블이 여러 개 이어진 남자의 머리를 가리켰다.
– 저곳으로 우리의 의식을 주입하면 우리는 저것을 내 몸처럼 조종할 수 있지. 중추신경계를 완전히 뜯어고쳤기에 내공 드라이브를 이식할 수 없다는 것만 제외하면, 완벽에 가까운 육체요.
“······.”
목진은 할 말을 잃은 채 멍하니 인조인간을 바라봤다.
혼이 없는 인간의 육체를 만들어내 꼭두각시로 써먹는 망령이라니. 이것이 요괴가 아니면 도대체 무엇이 요괴라는 말인가.
이 시대의 기술이라는 놈이 신이나 요괴에 준할 정도로 신비하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그의 상상을 가볍게 뛰어넘는 충격적인 광경을 마주하고 나니 할 말을 잃을 수밖에.
– 그럼 이제, 나도 준비를 하겠소.
목진을 돌아보며 그리 말한 시그마의 모습이 돌연 사라졌다. 홀로그램이 꺼진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
옥좌에 앉아있는 사내의 몸이 번개라도 맞은 것처럼 펄떡 뛰었다. 부르르 몸을 떤 사내의 고개가 푹 수그러졌다.
하지만 목진은 느꼈다.
한 줌의 생기도 느껴지지 않던 사내의 육신으로부터, 점차 산 자의 기운이 피어오르는 것을.
어딘지 모르게 인위적인 느낌이 드는, 모순적이기 그지없는 생기.
목진은 문득 그 광경을 보고, 사자(死者)가 소생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개를 푹 숙인 사내의 근육이 한 차례 꿈틀거렸다.
목진은 이제, 눈앞에 있는 사내가 완전히 살아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이윽고, 사내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날카로운, 그리고 무미건조한 황금색 눈동자가 목진을 바라봤다.
“······보디의 상태는 최상이군.”
낯선, 그러나 누구의 것인지 알 것 같은 목소리가 들렸다.
시그마. 목진은 그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사내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정답이오.”
사내, 시그마는 오른쪽 눈 밑에 새겨져 있는 그리스 문자를 한 차례 손가락으로 쓸었다.
시그마(Σ).
단순히 실험체들에게 무작위로 부여된 코드에 불과했지만, 공교롭게도 그의 이름에 딱 들어맞았다.
“의식 주입률 백 퍼센트. 케이블 분리.”
보고라도 하든 딱딱한 목소리와 함께 시그마가 제 머리에 달린 케이블들을 뜯어냈다. 머리에서 떼어진 얇은 케이블들은 천장에 매달린 채 대롱거렸다.
그는 자연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나, 옥좌에 기대어져 있던 검을 집어 들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목진의 눈이 가늘어졌다.
‘······등에 뭔가를 달고 있군.’
긴 칼날이 달린 막대기와 같은 쇳덩이와, 이상하리만치 길게 이어진 여러개의 케이블들.
앉아있을 때는 미처 보지 못했던 이질적인 물체들은 시그마가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그를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목진이 물었다.
“등 뒤에 주렁주렁 매단 그것은 무엇이더냐.”
“아까 말하지 않았소. 내공 드라이브를 이식할 수 없다고.”
시그마가 등 뒤에 주렁주렁 매달린 케이블들을 툭 건드렸다.
“이것은 외부의 내공 드라이브들로부터 기를 공급받는 공급장치요. 이 육체는 유선이라는 소리지.”
“······지금 그런 거추장스러운 것을 달고 검을 논하겠다는 것이냐?”
목진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기껏 비무를 수락해 주었더니 제대로 써먹을 수도 없는 모자란 육신으로 임한다니. 목진의 입장에서 모욕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목진의 분노에도 불구하고 시그마의 표정에서는 한 치의 당황도 읽을 수 없었다.
그는 목진의 반응을 예상했다는 양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것은 가감 없는 내 최선이오. 설령 내 본래의 육신이 남아있더라도, 나는 주저 없이 지금 이 육신을 고를 것이외다.”
“갈!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목진이 거칠게 일갈했다. 등 뒤에 긴 줄을 달고 싸우는 게 최선이라니, 그걸 누가 수긍하겠는가.
그러나 시그마가 얻은 것은 그저 거추장스러운 케이블이 전부가 아니었다.
“동(動)을 잃었으나 그 대신 정(靜)을 얻었고, 일개 내공 드라이브로는 감당할 수 없는 막대한 내공 드라이브를 얻었지. 그리고-.”
시그마의 말이 늘어질 때, 철컥이는 쇳소리와 함께 미세한 구동음이 들려왔다.
그리고 그 소리는 그의 등 뒤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그쪽으로 시선을 돌린 목진의 눈이 크게 벌어졌다.
“이건 또 무슨-.”
갓 탈피한 사마귀의 팔과 같이 서서히 좌우로 벌어지는 길쭉한 금속의 물체.
목진은 그제야 날붙이가 달린 쇳덩이가 단순히 장식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팔이었다. 강철 합금으로 이루어진, 한 쌍의 기계팔.
한 쌍의 외날도를 든 기계팔들이 목진을 겨누었다.
“한 쌍의 팔을 더 얻게 되었소이다.”
이만하면 기동성을 다소 잃었다고 해도 썩 이득이라 생각하지 않소? 시그마는 마지막으로 검을 뽑아들며 당당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무영탑이 세워진 이래, 나는 이 육신을 입은 채 그 어떤 고수를 상대로도 패배한 일이 없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