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smic Heavenly Demon 3077 RAW novel - Chapter (250)
우주천마 3077 우주천마-251화(251/349)
37. 궁극무인 Ultimate Artificial Warrior (9)
37. 궁극무인 Ultimate Artificial Warrior (9) – 받기 싫은데
수십 미터 높이에 이르는 공동의 벽 천체가 무수한 상흔으로 뒤덮였다.
처음부터 절대고수간의 비무를 상정한 만큼 과할 정도로 두꺼운 특수장갑을 덧댄 벽조차도, 성난 폭풍처럼 몰아치는 무공의 해일 앞에선 간신히 그 형상만을 유지하는 게 고작이었다.
그리고 그 상흔의 중심, 엉망진창으로 망가진 옥좌 위에 시그마가 있었다.
“······.”
마지막까지 제 육신이 앉아있던 자리 위로 쓰러진 것은 우연의 장난일까. 옥좌 위에 널브러진 시그마의 몸은 넝마와도 같은 모습이었다.
만종을 펼쳤기에 몸이 조각조각나는 것은 피했으나, 참혹한 상흔들이 낙인처험 그의 전신에 낙인처럼 새겨지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목진은 천천히 걸음을 옮겨 옥좌의 앞에 섰다.
그는 초점 없는 눈을 내리깐 채 가쁜 숨을 이어나가는 망령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끝은 만족스러운가.”
시그마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그는 빛이라곤 한 점 없는 눈으로 자신을 쓰러트린 상대를 올려다보며 답했다.
“······그럭저럭.”
허무하고, 홀가분하다.
그러나 고대하던 끝을 맞이했기에 다만 만족스럽다.
시그마의 대답은 그리 말하고 있었다.
목진은 묵묵히 그런 시그마를 내려다보았다. 희미한 감정의 편린이 아주 잠시 모습을 비추었다 사라졌다.
이번에는 시그마가 물음을 던졌다.
“어떠하였소?”
비록 그의 만종은 가짜였으나, 저 자신마저 버려가며 만들어낸 그의 무공이라는 사실까지 가짜는 아니다.
그렇기에 그는 묻고 싶었다.
나의 무는 어떠하였느냐고.
자신이 갈망하던 경지에 올라선 자의 눈에는 자신의 만종이 어찌 비춰졌을지 알고 싶었다.
그것이 그의 마지막 미련이었다.
그리고 목진은, 기꺼이 그의 질문에 답을 내어주었다.
“수많은 무공들을 모두 이해하고 제 것으로 만든 솜씨는 대단하였다. 지금껏 너와 같은 자는 본 적이 없었으니.”
그러나 네 길은 거짓의 길이었다. 목진은 지극히 담담한 목소리로 사실을 선고했다.
“거짓 육체에 거짓 내공. 모든 무를 통달했다 하나, 네 무는 누더기와 같구나.”
자신이라는 중심조차 잊고 그저 강함만을 탐했으니 그것이 중구난방으로 기워댄 누더기가 아니면 무엇일까.
“무란 곧 강함이라 하였더냐.”
목진은 비무 전에 시그마가 한 말을 기억해냈다.
“순서가 틀렸다. 강함은 무의 한 일면일 뿐.”
그 일면만을 보고 그것이 전부라 생각했으니, 그리고 그를 좇느라 버리지 말아야 할 것까지 버리고 말았으니 그가 걸어온 길이 처음부터 잘못된 것일 수밖에.
“흐······.”
잔혹하리만치 냉정한 목진의 평에 시그마는 바람이 빠지는 듯한 웃음을 흘렸다.
“잔인하시군, 선배님.”
예상한 답이었다. 그리고 그렇기에 더욱 더 폐부 깊숙한 곳을 찌르는 답이었다.
“부끄럽고 허탈하오.”
목진은 여전히 담담한 목소리로 답했다.
“헛되이 너를 기만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느냐.”
그것 또한 그렇군. 시그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무공의 이름은 무엇이었소?”
“이름 같은 것은 없다. 네 무공을 부수기 위해 펼친 검일 뿐이니.”
그것 참 영광이로군. 시그마가 옅게 웃었다.
“이름을 지을 생각이 없다면, 그 검에 만종이라는 이름을 붙이면 어떻겠소.”
“흐음.”
“내가 펼친 가짜와는 달리 그대의 검이야말로 진정한 만종이었으니, 부디 그 이름을 가져가 주었으면 좋겠군.”
가짜라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분에 넘치는 이름을 지었으니, 이제 그 이름은 진짜에게 돌아가는 것이 순리지 않겠는가.
“······그래.”
비록 잘못된 길을 걸었다 하나, 그 길의 끝자락에 다달은 사내다. 그만한 위업을 이룩한 무인에게 그 정도 존중과 경의는 마땅히 보낼 가치가 있을 터.
가만히 시그마를 바라보던 목진이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지.”
시그마의 입가가 작게 휘어졌다.
“고맙군.”
마지막 남은 작은 미련마저 털어냈으니 이제는 정말로 끝을 낼 때가 왔다. 시그마는 만신창이가 된 제 몸을 물끄러미 내려다봤다.
“이 보디는 이제 못 쓰겠군.”
다른 입주자들이 좋아했는데, 미안하게 됐어. 그가 씁쓸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근맥이고 혈맥이고 모조리 망가진 이 육체로는 설령 회복시킨다 쳐도 무공을 펼칠 수 없으리라.
그는 한 줌밖에 안 남은 힘을 끌어모아 간신히 상체를 꼿꼿이 폈다. 이 무영탑을 세운 탑주로서, 그에 걸맞은 최후를 맞이하기 위해서였다.
상처투성이인 그가 옥좌에 앉은 모습은 썩 어울렸다.
길게 숨을 내쉰 시그마의 눈에 약간의 생기가 돌아왔다. 아마도 회광반조(回光返照)일 것이다. 그는 지금까지와는 달리 조금이나마 힘이 돌아온 목소리로 목진에게 말했다.
“줄 게 있소.”
“음?”
“그대에게 루트 권한을 위임하겠소.”
“······무슨 권한?”
말뜻을 이해하지 못한 시그마의 말에 목진이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시그마는 설명하는 대신 검지를 들어 그를 가리켰다.
“이제 당신이 무영탑주요.”
그제야 그의 의도를 이해한 목진이 미간을 좁혔다.
“내겐 필요치 않느니라.”
목진에게 무영탑주라는 지위는 귀찮은 혹이나 마찬가지다. 그가 그러한 지위에 관심이 있었다면 애초에 천마신교의 초대를 거절하지도 않았을 테니까.
하지만 시그마는 목진이 비친 거절의 의사에도 불구하고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무영탑의 관리는 모든 권한을 위임받은 박 노야가 알아서 하니 그대가 신경쓸 필요는 없소.”
내가 괜히 신뢰가 아깝지 않은 자라고 말한 게 아니라오. 시그마가 희미하게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목진은 시그마가 처음부터 이렇게 할 작정이었다는 것을 눈치챘다.
“······기필코 내게 넘길 생각인가보구나.”
“누군가는 빈자리를 채워야 하지 않겠소.”
그리고 이 자리에 앉을 자격은 오직 나를 꺾은 당신만이 가지고 있지. 시그마가 덧붙였다.
“당신은 나를 꺾었으니 내가 이룩한 모든 것을 가져갈 권리도, 의무도 있소이다.”
허. 뻔뻔하리만치 당당한 말에 목진이 헛웃음을 흘렸다.
“나는 이곳에 관여치 않을 것이다.”
“상관없소.”
“탑주의 자리를 다른 이에게 넘겨도 상관없느냐.”
“그것은 탑주인 그대의 선택이지.”
“내가 무영탑을 없애버리려 한다면?”
“그 또한 내 손을 떠난 일이오.”
목진의 물음에도 불구하고 시그마의 답은 한결같았다.
권한만 넘기고 나몰라라 하니 책임감이 없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저 자신마저 버려버린 와중에도 이곳 무영탑의 인계를 하려 하니 책임감이 강하다 해야 할까. 도무지 고집을 꺾을 생각이 없어 보이는 시그마의 태도에 목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네 뜻대로 하거라.”
“고맙소. 그래도 이 탑을 세운 탑주인데, 대책 없이 훌쩍 떠나버리기엔 마음에 걸렸거든.”
“쯧. 이쪽은 받을 생각도 없는데 제가 주겠다고 안달을 하니 뭘 어쩌겠느냐. 저승에서 후회나 하지 말거라.”
목진이 가볍게 혀를 차며 말했다. 받고 나서 어찌하든 상관없다 하였으니, 대충 순자에게 권한을 넘겨버리거나 조정의 관리인 아테나에게 팔아치워 버리면 그만이 아닐까. 목진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하나 더 걸리는 게 있었군.”
“다 버렸다고 하더니, 남은 미련이 한둘이 아니구나.”
“나 개인에 담긴 것은 모두 비웠으나, 자리에 딸린 책임감이라는 것이 있지 않겠소.”
목진의 투덜거림에 시그마가 쓰게 웃으며 답했다. 자신을 버리긴 했으나, 타고난 성격마저 완전히 버릴 수는 없었다.
“그래, 이번엔 무엇이더냐.”
“이면차원에 대해서 아시오?”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는 걸까. 예상치 못한 말에 목진은 고개를 갸웃했다.
“일단 설명을 듣기는 했다마는.”
“그러면 이야기가 쉽겠군. 내가 해드릴 것은 경고요.”
“경고?”
“이면차원 너머에 또아리를 틀고 있는 존재를 조심하라는 것이오.”
목진이 눈가를 찌푸렸다. 시그마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무엇을 조심하라 말하는 것이냐? 사람이나 요괴를 말함이더냐?”
시그마가 답했다.
“사람인지 괴물인지는 나도 모르오. 어쩌면 신일지도 모르겠군.”
“허?”
목진이 저도 모르게 의아한 목소리를 냈다. 갑자기 때아닌 요괴 타령이라니. 나름 이성과 과학의 시대인 현대 사회에 적응한 목진의 입장에선 이 시대의 사람인 시그마가 요괴니 신이니 하는 이야기를 꺼낼 거라고는 조금도 생각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시그마는 목진의 반응에도 아랑곳않고 한층 진지해진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이곳 무영탑은 이면차원 항행기술을 사용하고 있으나 그렇게 드나들 수 있는 곳은 1레벨의 아주 얕은 겉면일 뿐이오. 그러나 기술이 아닌 사람의 의식은 그보다 더 깊은 곳도 관측할 수 있지.”
이면차원을 수도 없이 들락거리던 중 나는 우연찮게 그것을 볼 수 있었소. 시그마가 미간을 찡그렸다.
“실체 없이 이면차원의 아주 깊은 곳에 홀로 존재하던 그것은 스스로 파동이 되어 저 자신을 숨기고 있었으나, 내가 그것을 보고자 하니 아주 잠시 모습을 드러냈다오. 그리고 찰나의 순간 느낀 그것의 정신파는 세상 모든 죄악을 모아놓은 것처럼 사악했지. 나는 머잖아 그것이 이 세상에도 마수를 뻗치려 한다는 것을 느꼈소.”
그러니 그대에게 경고하는 것이오. 시그마가 목진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는 이 세상에 대한 미련이 없으니 아무래도 상관없소만, 그대는 앞으로 계속 이 세상을 살아갈 테지. 그러니 조심하시오. 이 우주에 사악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으니.”
“······.”
목진은 시그마가 무엇을 경계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무언가 사악한 이가 도사리고 있다는 것은 알겠으나, 다분히 기술적이고 추상적인 어휘들을 모두 알아듣기엔 그의 상식은 아직 고대인의 영역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리 멀지 않은 과거에, 이와 비슷한 결의 이야기를 들은 적은 있었다.
목진이 물었다.
“혹 그것이 혈교라는 사교도 놈들이 떠받드는 신이라는 놈이더냐?”
“글쎄. 어쩌면 그럴 수도 있겠지. 그러나 나는 혈교의 활동을 목격한 적이 없으니 장담은 못 하오.”
“쯧. 어느 쪽이건 그리 유쾌한 이야기는 아니로고.”
시그마의 대답에 목진이 혀를 찼다.
혈교의 잡신이건, 아니면 전혀 새로운 미지의 존재건 이면차원 너머에 있다고 하니 당장 무림이나 인류정부에서 조치를 취할 수 없다는 건 매한가지이지 않은가.
그것이 언제라는 기약도 없이 다만 언젠가 모습을 드러낼 위협이 있다는 것쯤은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인 법이다.
이 비정한 강호무림에는 그보다 더한 위협들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거늘, 그런 불확실한 미래에 지레 겁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때문에 목진은 시그마의 경고를 그리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적어도 그 순간까지는 그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