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smic Heavenly Demon 3077 RAW novel - Chapter (257)
우주천마 3077 우주천마-258화(258/349)
38. 상호관측 First Contact (6)
38. 상호관측 First Contact (6) – 프로 패배자
일격이 날아온다.
눈으로 따라가기는커녕 직감에 의존해도 열 번 중 한 번을 피할까 말까 한, 자신의 수준을 아득히 초월하는 일격.
감당하지도 못할 무공을 상대로 반격 같은 분에 넘치는 선택은 어불성설. 세령은 그저 직감을 따라 필사적으로 몸을 비틀었다.
그리고-.
그녀는 또다시 죽음을 맞이했다.
“시발, 이 짓도 슬슬 좀 적응이 되는 것 같은데.”
게임 속 즉시부활처럼 곧바로 되살아난 세령이 고개를 뚜둑 하고 풀며 중얼거렸다. 그녀의 앞에 선 무영탑의 고수 한 명이 질린 듯한 표정을 지었다.
“······허 참, 소협은 질리지도 않는가?”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았거늘, 제대로 된 공격 한번 해보지 못하고 날파리처럼 죽어나간 숫자만 해도 벌써 세자릿수에 이른다. 보통의 무림인이라면 진즉에 저항할 생각을 잃고 포기하는 것이 정상이리라.
‘이런 하수 따위에게 낭비할 시간이 없거늘.’
여유로움을 가장하는 겉모습과는 달리, 그는 내심 초조함을 느꼈다. 안 그래도 손 하나하나가 아쉬운 상황인데, 고작 S랭크의 무인 따위에게 발목을 잡히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놈의 노딜레이 부활만 아니었어도······.’
기술적인 이유로 부활까지 일정한 대기시간이 필요한 입주자들과는 달리, 외부인인 세령은 부활까지 아무런 딜레이가 없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화경의 경지에조차 들지 못한 세령이 까마득한 고수인 그의 발목을 잡고 늘어질 수 있는 결정적인 이유였다.
분명 두 사람 사이엔 일초지적조차 성립하지 못할 정도로 현격한 실력의 격차가 존재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마냥 무시하고 지나갈 수 있을 만큼 그녀의 무공이 낮은가 하면, 그건 또 아니었다.
그녀는 명색이 강기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S랭크의 무림인이었으니까.
‘저 정도면 S급 중에서도 충분히 상위에 달하는 실력이거늘······. 어떻게 이런 식으로 일방적인 패배를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들일 수 있는 거지?’
한 열댓 번쯤 죽이고 나면 알아서 포기하겠지.
고수는 그렇게 생각했던 자신의 생각이 턱없이 안일했음을 깨달았다.
고랭크의 무림인들이 스스로의 무공에 가지는 자신감은 결코 작지 않다. 특히 S랭크쯤 되면 더더욱.
어지간한 문파의 문주들조차 아래로 두고, 때로는 대문파의 장문인들에게조차 버금갈 수 있는 무력을 가졌는데 그 자신감이 작을 리가 있을까.
하지만 그런 커다란 자신감은 지금처럼 일방적으로 유린당하는 입장에서는 되려 치명적인 극독으로 변하게 된다. 객관적으로도, 주관적으로도 부정할 수 없는 고수의 반열에 든 그들이 이런 약자의 입장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 리 없지 않은가.
적어도 상식적인 관점에 입각한다면, 열 번쯤 손도 못 쓰고 죽게 된다면 심마가 드는 게 정상이라는 소리다.
그러나 고수의 앞에 선 여검수에겐 전혀 그런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아니, 되려 죽으면 죽을수록 점점 더 투지를 불태우는 게 아닌가.
시그마 탑주가 며칠 동안 상대해주었다는 것 정도는 잘 안다. 하지만 반쯤 지도에 가까운 대련과 손쓸 틈도 없이 목을 날리는 결투는 그 결이 다르지 않나.
세령은 고수의 푸념 같은 물음에 다시 복구된 검을 뽑아 겨누면서 시니컬하게 대꾸했다.
“아 그럼 댁들이 갑자기 눈깔 뒤집혀서 칼질을 하는데 가만히 맞아 뒤져달라고?”
“어차피 소협의 검이 내게 닿을 리는 없을 걸세.”
“······? 나도 알아.”
“허.”
멀뚱멀뚱한 눈으로 대답하는 세령의 모습에 고수가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걸 알면 슬슬 포기할 때도 되지 않았는가. 이대로 이런 일방적인 시간낭비를 이어갈 생각인가?”
도대체 뭣 때문에 저렇게 끈질긴 건지. 그는 세령의 강철같은 멘탈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당연히 이해할 수 있을 리 없다.
“엉? 그게 뭐가 문젠데?”
그녀는 애초에, 제 무공에 대한 자신감 같은 건 쥐뿔도 없었으니까.
열심히 수련해서 강기도 줄줄 뽑아내고, 오대세가의 가주도 쓰러트리면 뭐하는가.
그 옆에선 무림최종병기 소리를 듣는 강환을 몇 개씩 뽑아내는 절대고수들이 단 한 사람의 손에 줄줄이 쓰러지고 있는데.
애초에 압도적인 실력 격차로 손도 못 쓰고 패배하는 건 그녀에게 숨 쉬듯 당연한 일상이었다.
“뭔 소리를 하나 했더니.”
세령이 새끼손가락으로 귀를 후비며 퍽 껄렁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됐고, 계속 합시다. 계속 맞다 보니까 뭐가 좀 보일 듯 말 듯 한 거 같은데.”
실로 보는 이의 화를 돋우는 작태가 아닐 수 없다. 고수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주제를 모르는군.”
“화났수? 아, 그럼 죽여보시던가.”
원래 이런 상황에선 느긋한 놈이 갑이요, 급한 놈이 을인 법이다. 세령이 낄낄 웃으며 검을 치켜들었다.
‘아저씨랑 한판 뜨겠다고 벼르던 탑주가 죽었다는데, 그 양반을 죽인 사람이 누구겠어?’
목진이 늦지 않게 왔으니 다행히 일정에 차질이 생기진 않을 터. 세령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저씨가 알아서 잘 정리해 주겠지 뭐.’
고작 며칠 전 목진과 한바탕 싸운 것에 대해서는 까맣게 잊어버린 채, 세령은 또다시 고수를 향해 달려들었다.
“몇 명이 남았지?”
목진이 무심하게 물었다. 그의 등 뒤에는 상체가 반으로 갈라진 고수 하나가 서서히 빛으로 화해 사라지고 있었다.
– 이제 스물일곱 명이 남았습니다.
“얼마 안 남았군.”
박 노야의 말에 목진이 손목을 꺾어 검을 털어내며 말했다. 검에는 피 한 방울 묻어있지 않았다.
한쪽에서 숨을 고르고 있던 또 다른 고수가 목진에게 다가왔다.
“도움에 감사드려요. 덕분에 저들을 수월하게 제압할 수 있었네요.”
운 나쁘게 적들의 합공을 받아 밀리던 상황이었는데, 때마침 시의적절하게 난입한 목진 덕분에 어렵지 않게 저들을 제압할 수 있었다.
낯선 얼굴에 의아함이 들기는 하지만, 일단 도움을 받았으니 감사를 표하는 게 먼저다. 나름 정파에 몸을 담고 있었던 그녀는 목진을 향해 가볍게 포권했다.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다.”
목진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인사를 받았다.
어찌 보면 다소 무례하게 보일 수도 있는 언동이었다. 그러나 도움을 받은 고수는 그다지 개의치 않았다. 조금 전 쿠데타에 가담한 고수들을 상대로 함께 공투하며 그의 무위를 직접 보고 느꼈기 때문이다.
‘외부인이라 운신이 자유롭지 않을 텐데······.’
뇌수에 직접 접속단말을 연결하고 비가공 데이터 전송을 사용하는 그들과는 달리 한 박자 늦은 반응속도. 그 틈은 실로 작은 수준에 불과하지만, 그들과 같은 절대고수 레벨의 싸움에서는 꽤 치명적인 페널티였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외부인 고수는 그런 페널티를 안고 있음에도 전혀 밀리지 않았는 게 아닌가. 아니, 밀리기는커녕 되려 노련한 솜씨로 적들을 가볍게 압도할 정도였다.
무영탑의 입주자들보다 한 수 위에 있는 강력한 무공. 이 타이밍에 등장한 외부인. 거기에 박 노야의 조력까지.
어렵지 않게 상황을 추측한 그녀의 눈이 반짝였다.
“이곳 무영탑의 입주자로는 보이시지 않는데······혹시 이번에 시그마 탑주와 생사결을 치르신 분이신가요?”
“그래. 그로부터 탑주의 자리를 넘겨받았다.”
목진이 익숙하게 대답했다. 이미 숱한 무영탑 내의 전투에 개입하며 몇 번이고 받아온 질문이었다.
과연. 고수가 납득했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별안간 탑주의 자리가 바뀌었다는 것에 대한 반감은 없었다. 그 시그마 탑주를 쓰러트릴 정도로 고강한 무공을 지닌 고수라면 탑주를 넘겨받는 건 전혀 이상하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다시금 목진을 향해 포권지례를 표하며 인사를 건넸다.
“새 탑주님께 인사드려요. 사천당가의 당소아라고 합니다.”
“······응?”
사천당가라는 말에 목진이 두 눈을 깜박였다. 전혀 예상치 못한 상대의 출신 때문이었다.
‘······생각해 보면 사천당가를 연상시키는 무공을 쓰고 있었지.’
현대 사천당가의 무공을 알지 못하는 목진이었기에 한눈에 알아보지는 못했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녀가 펼치던 무공은 분명 사천당가의 무공인 것 같았다.
인연이 이리 이어질 수도 있는가. 목진이 제 머리를 긁적였다.
하긴 사천당가가 멸문지화를 당한 지 채 이십 년도 지나지 않았는데, 속세를 등진 고수들의 모임인 무영탑에 사천당가 출신의 고수가 있는 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이목진이다.”
“······!”
목진의 소개에 이번엔 당소아 쪽의 눈이 크게 벌어졌다. 고작 며칠 전 먼 후대에게 들었던, 생사경의 고수의 이름이기 때문이었다.
혹시나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설마 정말로 그 생사경의 고수와 마주하게 될 줄이야. 당소아는 멍한 얼굴을 재빨리 추스르고 꾸벅 고개를 숙였다.
“은공을 몰라뵈어 죄송합니다. 후대의 아이에게 은공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몰락한 이후 간신히 명맥만 이어가던 본가에 은공께서 베풀어주신 은혜가 백골난망이온데, 사천당가의 일원으로서 그 은혜의 만분지 일조차 갚지 못하여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하루아침에 몰락한 세가.
가전무공 하나 이어받지 못한 채 낭인이 되어 내쳐진 마지막 후인.
다른 오대세가들의 견제.
천운이 따라주어도 명맥을 이을 수나 있을까 걱정되던 사천당가에 기적과 같은 희망을 내려준 귀인이다. 당씨 성을 가진 이로서 어찌 그 은혜에 감사하지 않을 수 있을까.
“하긴, 당씨 성을 가지고 있으니 세령이와 만났겠군.”
목진은 자연스럽게 당소아의 감사인사를 받으며 말했다.
“이미 속세를 떠난 그대가 무언가를 갚을 필요는 없네. 내가 그 아이를 도운 것은 과거에 그대의 가문으로부터 받은 은(恩)이 있어 그러했던 것이고, 지금도 도움을 이어가는 것은 그 아이가 세가를 재건함으로 말미암아 내가 이루고자 하는 것이 있어서 그러함이니.”
“은공께서 작은 대가를 가져가신다 한들 어찌 감히 재조지은(再造之恩)의 은혜에 비할 바일까요. 소녀의 몸이 썩어 흙이 된 탓에 가문의 은혜를 갚지 못함이 죄스러울 따름입니다.”
“이만하면 충분하니 거기까지 하시게. 당장 마무리를 지을 일이 남아 있지 않은가.”
감사치레는 충분하다. 목진이 기를 움직여 부드럽게 그녀를 일으켜 세우며 담담한 목소리로 타일렀다. 옛 시대를 살던 목진에게 이와 같은 상황 자체는 썩 익숙한 편이었다.
– 탑주님, 목표들의 위치가 확인되었습니다.
때마침 박 노야의 통신이 들어왔다. 적절한 타이밍이었다.
목진의 눈동자에 서늘함과 날카로움이 돌아왔다. 그는 당소아로부터 고개를 돌려 박 노야를 바라봤다.
“가장 가까운 쪽은 어디지?”
어차피 전뇌공간 밖의 적들을 처리한 이상 입주자들이 죽을 일은 없다. 그렇다면 무영탑에 반기를 든 자들을 마지막까지 색출해 제거하는 것이 최우선이었다.
하지만 박 노야의 대답은 목진이 예상하던 것과는 조금 달랐다.
– 굳이 여러 곳을 찾아가실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음?”
– 목표들이 한 곳으로 모이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탑주님이 개입하신 걸 눈치채고 뭉치려는 것 같습니다.
“흐음. 그러면 오히려 좋지.”
귀찮게 돌아다닐 것 없이 한 번에 처리하도록 모여 준다면 그로서는 환영할 따름이다. 목진이 제 턱을 매만지며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박 노야가 조금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 탑주님, 괜찮으시겠습니까?
어차피 전뇌공간인 탓에 죽으면 다시 살아날 테니 질 일은 없겠다마는, 그래도 싸움에 패해 죽는 것이 결코 좋은 일은 아니다.
상대는 자그마치 물경 서른에 가까운 절대고수들. 거기에 인조유기단말들과 달리 내공 케이블이라는 약점도 없다.
반면 목진의 경우는 오히려 운신에 제약이 생겨 본 실력을 낼 수 없는 페널티가 걸린 상황이다. 반드시 패배한다고는 할 수 없겠으나, 승산이 줄어든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물론. 걱정할 것 없다.”
하지만 목진은 아무런 걱정도 하지 않는다는 듯 태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물었다.
“내 말했던 대로 내공의 제약을 푼 것은 확실하렷다?”
– 예. 일단 전뇌공간 시스템 상으로 운용할 수 있는 내공의 한계치를 없애긴 했습니다만······.
고작 내공의 리미트를 푼 것으로 괜찮은 걸까? 박 노야가 불안한 얼굴로 전뇌공간 속 목진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럼 되었느니라.”
내 과거 고수라 불리우던 치들을 어찌 무릎 꿇렸는지 보여주마.
그리 말하는 화면 속의 사내는, 더없이 사나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