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smic Heavenly Demon 3077 RAW novel - Chapter (259)
우주천마 3077 우주천마-260화(260/349)
38. 상호관측 First Contact (8)
38. 상호관측 First Contact (8) – 굴욕기
“이게······인간의 정신파에서 나올 수 있는 수치라니.”
무영탑 내의 데이터 흐름을 모니터링하던 박 노야가 저도 모르게 침음을 삼켰다.
전뇌공간과 연결된 그의 의식으로 흘러들어오는, 새 무영탑주의 정신파 데이터가 그의 상상을 아득히 넘어서는 수치를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관측치가 안정적인 걸 보면 오류는 아니야······. 하지만 이게 가능하긴 한 건가?’
사람의 영역과는 자릿수부터가 다르다.
무영탑을 관리하는 그는 잘 알고 있다. 무림인들의 정신파는 일반인들보다 강인하고, 절대고수 소리를 듣는 이들은 그런 무림인들과도 궤를 달리할 정도로 강대하다는 것을.
그러나 목진에게서 관측되는 정신파는 그런 절대고수조차 태양 앞의 촛불로 보일 정도로 무지막지한 수치를 자랑하고 있었다.
– 흐음. 아무래도 의지(念)가 강할수록 그 정신파도 강하게 측정되는 것 같군. 그게 높다면 그만큼 많은 기를 한번에 통제할 수 있다는 뜻이지.
시그마에게 들은 적이 있다. 정신파의 강도는 대체적으로 무인의 강함에 비례한다고.
실제로 시그마의 정신파는 다른 입주자들에 비해 유독 높게 측정되는 편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목진과 같이 수백 배를 가뿐히 상회하는 수치를 보이지는 않았다.
아니, 애초에 우주에서 이런 대규모의 정신파 자체가 관측된 사례부터가 아예 전무한 일이었다.
“······위험한 상황인가요?”
한쪽에서 목진의 굉천유성군에 몰살당한 쿠데타 가담자들의 목록을 정리해 낭호교 삼자매에게 전송한 순자가 심각한 박 노야의 얼굴을 보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위험하다기보다는, 믿을 수 없는 데이터 수치로군요.”
박 노야의 대답에 순자가 두 눈을 깜박였다. 데이터라는 단어를 듣고 지난날 암림성 성계에서 검마를 만났을 때의 일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혹시 전뇌공간이 붕괴한다거나 하는 위험성이라도 생긴 건 아니죠?”
“······네?”
심각한 목소리로 묻는 순자의 물음에 박 노야의 고개가 모로 기울어졌다. 전혀 예상치도 못한 이야기를 들은 듯한 반응이었다.
“무슨 말씀이신지 이해가 잘 되지 않는군요. 어중이떠중이가 만든 마이크로 사이즈의 전뇌공간도 아니고, 고작 데이터 폭증 정도로 전뇌공간이 붕괴할 일은 없지 않습니까.”
저도 그런 줄 알았는데,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나긴 하더라고요. 순자는 목구멍까지 차오른 말을 꿀떡 삼켰다.
검마와 조우하고 전뇌공간이 붕괴했을 때의 유일한 시스템 로그는 순자가 가지고 있긴 하다. 하지만 순자는 여전히 목진이 펼친 심검이라는 무공이 어떻게 전뇌공간을 붕괴시켰는지 그 이유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물론 목진이 중대형 규모의 전뇌공간조차 붕괴시킬 수 있는 무공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주변에 알려서 좋을 건 없다. 순자는 박 노야에게 자세한 설명을 하는 대신 무영탑 안쪽을 비추는 스크린 패널을 가리키며 천연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데이터 오버플로우가 일어난 것 아니었나요? 저런 위력의 무공인데.”
박 노야가 가만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강환이 분명 강력한 무공수법이긴 합니다. 하지만 기를 압축시킨다는 원리 자체는 매우 간단하하지요. 탑주님처럼 수백이 넘는 강환을 만든다고 해도 전뇌공간의 연산에 무리를 줄 정도는 아닙니다.”
사실 사용한 연산능력이라면 되려 다른 고수들이 펼친 무공 쪽이 더 높다. 세상의 법칙을 주무를 수 있는 전뇌공간이기에 가능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었다.
그렇군요. 박 노야의 설명을 이해한 순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쿠데타에 가담한 입주자들은 전부 처리한 건가요?”
“아마 그럴 겁니다······아니, 아직 한 명이 남아있었군요.”
순자의 말에 가담자 리스트를 체크하고 있던 박 노야가 미간을 좁혔다.
“이 사람은······왕언니와 싸우던 사람이군요.”
“네. 아마 당 소협이 발목을 잡아서 다른 입주자들과 합류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아.”
순자가 미묘한 목소리를 흘렸다.
절대고수의 발목을 붙들 정도로 세령의 무공이 일취월장했다는 건 분명 감격스러운 일이긴 하지만, 결국 남은 가담자들을 일망타진하는 데에 있어 예기치 못한 구멍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심정을 읽은 박 노야가 괜찮다는 듯 그녀를 안심시켰다.
“괜찮습니다. 이미 상황은 다 정리되었으니, 그 혼자서 할 수 있는 건 없겠죠. 다른 입주자 분들에게 당 소협을 도우라고 하겠습니다.”
마지막 쿠데타 가담자는 입주자들 중에서도 비교적 무공이 강하지 않으니 다른 입주자들이 가담하면 어렵지 않게 리타이어시킬 수 있다. 박 노야는 주변에 있는 입주자들을 탐색한 뒤 그들에게 세령을 도우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아니, 보내려고 했다.
갑작스레 전뇌공간 내의 데이터 플로우가 요동치지 않았다면 말이다.
“어······?”
갑작스레 치솟아오르는 정신파 관측치. 목진이 굉천유성군을 펼쳤을 때조차 가볍게 능가하는 무지막지한 수치에 박 노야가 당황한 목소리를 흘렸다.
‘아직 뭔가 남아있다고?’
그의 시선이 재빨리 무영탑 심부를 비추고 있는 스크린을 향했다. 그러나 화면에 비치는 목진은 아무리 봐도 무공을 펼치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목진이 아니라 다른 쪽이다. 전뇌공간의 관리자 계정에 연결된 박 노야가 거세게 요동치는 데이터의 흐름을 포착했다.
그는 순자를 향해 다급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시스템 경고입니다!”
“네?”
“외부 네트워크 연결을 타고 식별 불가능한 데이터들이 전뇌공간 안으로 전송되고 있어요!”
“갑자기요? 아니 그보다 얼마나 그걸로 시스템에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닐 텐데······.”
박 노야는 순자의 말에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너무 많습니다. 이대로라면 데이터 링크가 쇼트 날 수도 있어요!”
어? 박 노야의 말에 순자의 눈이 크게 벌어졌다.
“설마······?”
식별할 수 없는 대량의 데이터. 순자는 분명히 이와 비슷한 상황을 겪어본 적 있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어쩌면 그 심검이라는 걸 또 꺼낸 건지도 모른다. 그녀가 다급히 물었다.
“설마 목진 님인가요?”
“아니, 탑주님은 아닙니다. 로그를 분석해서 루트 노드를 추적하겠습니다.”
순자의 말에 즉답한 박 노야가 시스템 관리자 권한으로 탐색을 시작했다.
미친 듯이 요동치던 전뇌공간 내의 데이터 플로우는 곧바로 잦아들고 있다. 당장 전뇌공간이 붕괴할 위험성은 사라졌다는 뜻이다.
하지만 박 노야는 조금도 방심하지 않았다.
전뇌공간 내의 정신파 관측치가 여전히 말도 안 되는 수치에 머무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뭔가 무지막지한 것이 전뇌공간 내부에 침입했다. 잠시의 시간 동안 로그를 분석한 그는 어렵지 않게 데이터들이 모여든 곳을 파악할 수 있었다.
“좌표에 따르면······이곳입니다.”
“네?!”
박 노야가 입력한 좌표를 따라 시점이 이동한 스크린 패널을 본 순자가 답지 않게 새된 소리를 질렀다.
당연했다.
박 노야가 추적한 장소는, 다름 아닌 세령이 있는 곳이었으니까.
“하, 절대고수 별 거 아니네.”
세령이 자신만만한 웃음으로 한껏 거드름을 피웠다. 상대의 화를 돋우려는 의도가 다분한, 속된 말로 재수가 없는 표정이었다.
“이 애송이가······!”
세령을 상대하던 고수가 붉으락푸르락한 얼굴로 그녀를 노려봤다. 그의 복부를 가리고 있던 옷은 찢어져 붉은 피로 물들어 있었다.
사실 별로 대단한 상처는 아니옸다.
얼핏 보기엔 심각해 보일지라도, 무림인들의 기준에선 긁힌 수준에 불과할 만큼 얕은 상처였으니까.
거기에 세령은 그 긁힌 상처 한 번을 내기 위해서 제 밑천을 탈탈 털어낸 것도 모자라 동귀어진을 해야만 했으니, 사실상 조금도 수지가 맞지 않는 교환이라고 할 수 있었다.
세령이 고작해야 S랭크의 무인이고, 상처를 입은 고수가 현경의 경지에 접어든 고수가 아니라는 전제 하에서는 말이다.
“거 말했잖아요. 계속 죽다 보니까 뭔가 좀 보이는 거 같았다고.”
세령이 낄낄거리며 놀리듯 말했다.
고작 피가 살짝 배어나오는 수준의 상처. 그러나 그 상처는 세령에게 있어서는 사방팔방에 자랑할 수 있는 쾌거였고, 고수의 입장에선 혀를 깨물고 싶어질 정도의 굴욕이었다.
이제 갓 화경의 초입에 접어든 경우가 아닌 이상, 제아무리 S랭크의 고수라 해도 절대고수에게 상처를 입히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하물며 화경의 고수를 상대로도 그러할진대, 현경에 오른 이를 상대로라면 말할 것도 없지 않은가.
비무도 아니고 생사결에서 세령이 무영탑에 들어갈 정도의 고수를 상대로 상처를 입히는 게 가당키나 할까? 객관적으로 따졌을 때, 세령의 무공으로는 그의 옷깃조차 건들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해냈다. 아니, 옷깃 수준이 아니라 아예 배에다가 시원하게 칼빵을 긁어줘 버렸다.
그러니 세령이 저렇게 좋아하며 약을 올리고, 고수가 뿌드득 이를 갈아댈 수밖에.
“운 덕분에 분에 넘치는 것을 얻고도 그리 방만하게 구니, 내 네년을 결코 곱게 죽이지 않으리라······!”
“응 아니야, 전뇌공간에선 안 죽어. 그리고 고통 차단 기능도 활성화 했어.”
얼굴표정만으로 사람을 죽일 것 같이 으르렁대는 고수를 마주하면서도 세령은 여전히 약을 올려댔다. 죽을 일이 없으니 그녀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았다.
‘햐, 이게 되네.’
세령은 죽기 전 고수의 배를 시원하게 긁어버릴 때의 감촉을 떠올리며 부르르 몸을 떨었다.
무인으로서 전율하지 않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 솔직히 운이 많이 따라준 것도 사실이긴 하지만, 그래도 그녀가 절대고수란 양반의 배때지에 칼빵을 놓은 것은 엄연한 사실이지 않은가. 이 우주의 수많은 무림인들 중에 절대고수한테 칼침을 놓는 경험을 해본 무림인이 몇이나 되겠느냐, 이 말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미처 자각하지 못했다. 분명 행운이 받쳐주긴 했을지언정, 절대고수에게 유효타를 낸 그녀의 실력은 진짜라는 것을.
그녀의 잠재력은 그 무영탑주 시그마가 감탄하고, 뇌신유녀 라이디에게도 인정받을 정도로 포텐셜이 높다. 괜히 이전에 목진의 옷깃을 베었던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녀를 상대하는 고수도, 그녀 자신조차도 알아채지 못하고 있었지만, 세령의 무공은 무영탑에 와서 절대고수들을 상대로 끊임없이 생사결에 가까운 비무를 하며 놀라울 정도로 일취월장한 상태였다.
“죽여주마!”
세령의 도발에 화가 폭발한 고수가 거칠게 포효했다.
그 다음의 전개야 생각해볼 것도 없었다.
진한 살기가 가득 담긴 고수의 일격이 세령을 한방에 저세상으로 사출시키고, 세령은 그 즉시 부활해서 열심히 발악을 하는 일의 반복일 테니까.
세령은 또다시 죽음을 각오하며 검을 꾹 쥐고 고수를 노려봤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고수는 그녀에게 달려들지 않았다.
당장에라도 살초를 흩뿌릴 것 같던 그는 별안간 초점 없는 표정으로 멍하니 허공을 응시했다.
“······뭐야, 왜 저래?”
세령이 눈을 깜박였다. 잔뜩 긴장하고 공격이 들어올 걸 대비하고 있었는데 왜 갑자기 멍을 때리고 난리라는 말인가.
그리고 그 순간.
“흐?!”
그녀는 본능적으로 느꼈다.
눈앞에 있는 존재가, 무언가로 송두리째 뒤바뀌어버렸다는 것을.
고수의 눈에 초점이 돌아왔다. 그러나 그 안에는 단 한 톨의 감정조차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것은 그녀가 지금까지 싸우던 무영탑의 절대고수가 아니었다.
무언가 불길한 것.
그것은 고개를 틀어 그녀를 응시하며 물었다.
“-그 사내는 어디에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