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smic Heavenly Demon 3077 RAW novel - Chapter (262)
우주천마 3077 우주천마-263화(263/349)
39. 대죄유혹 Guilty Temptation (2)
39. 대죄유혹 Guilty Temptation (2) – 너흰 아직 준비가 안 됐다!
“······일종의 하이브마인드라고 봐야 할까요?”
박 노야와 함께 전뇌공간 안의 일을 보고 있던 순자가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저 존재의 말을 모두 이해할 수는 없었다. 관념이니 죄악이니, 직설인지 은유인지 모를 두루뭉술한 표현들이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만큼은 확실히 이해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인류가 혈교도라고 부르던 자들은 결국 모두 저것의 일부에 불과했다는 것.
그녀는 그제야 혈교도들이 왜 그리도 합일(合一)이라는 단어에 집착했었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꿀꺽.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킨 박 노야가 고개를 끄덕였다.
“일반적인 군체의식이라고 하기엔 자아가 굉장히 뚜렷하긴 하지만······일단은 그런 범주에 든다고 봐야겠지요.”
“······인류정부가 유독 혈교에 히스테릭하게 구는 이유가 있긴 했군요.”
박 노야의 말에 순자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녀는 하북팽가에서 팽호혁이 남긴 홀로그램 유언을 떠올렸다.
– 문득, 내 생각이 나의 것이 아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나를 물들이고 있는 것 같다.
– 머잖아 나는 내가 변했다는 사실조차 자각하지 못한 채 이 목소리의 꼭두각시가 되겠지.
정체불명의 존재에게 의식이 동화되어 본래의 자아조차 잃어버린, 비참하기 그지없는 말로.
순자는 그때 팽호혁의 홀로그램이 말했던 속삭임의 주인이 바로 혈교의 의지 그 자체였음을 직감했다.
하나의 오염원만 있어도 금세 주변으로 퍼져나가는 정신오염, 혹은 정신침식. 그리고 독자적인 자아를 가진 수많은 개체들을 통솔하는 하나의 강력한 자아. 단순히 사악한 종교라고 치부하기엔 너무나 위험하지 않은가.
이쯤 되면 종교가 아니라 외우주의 심연에서 흘러들어온 치명적인 전염병, 혹은 끔직한 침략자에 비견하는 쪽이 맞을지도 모른다.
‘······일단 나가자마자 바로 신고부터 해야겠네.’
웬만하면 혈교와 관련되는 일은 피하는 게 좋긴 하지만, 이렇게까지 엮이게 된다면 인류정부의 협력을 얻는 것이 최선이다.
‘아테나 님이라면 섭섭하게 굴진 않으실 테고.’
이번에 알게 된 정보의 가치는 감히 매길 수 없을 정도로 컸다. 그야 인류정부에서도 지금까지 가설만 무성할 뿐 답을 내리지 못한 숙원, 혈교 박멸에 대한 실마리이지 않은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품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당장은 일행과 적대할 의사를 보이지는 않는다.
그녀는 긴장을 놓지 않은 채 날카로운 눈으로 화면 속 사내를 바라보았다.
“······시그마가 말하던 것이 바로 너였군.”
이면차원에 도사리고 있는 사악한 존재. 목진은 시그마가 죽기 전 남겼던 경고를 떠올렸다.
사내, 혈교의 의지가 목진의 말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시그마라. 그 작은 존재를 말하는 것이로군. 용케도 나를 관측했었지.”
“과연 그 말마따나 실로 괴이한 요물이로고.”
목진은 군체의식에 대한 지식이 없었다. 하지만 그것이 사내의 말을 이해할 수 없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그는 심안으로 저 자신을 혈교라 자처하는 존재의 본질을 꿰뚫어보았기 때문이었다.
사람의 혼을 저와 같이 물들여 포식하고, 그대로 수족으로 삼는 듣도 보도 못한 요괴. 아니 요괴가 아니라 악신(惡神)이라고 해야 할까.
하지만 그렇기에 의문이 들었다.
비록 사악하긴 하지만, 그의 거대한 힘과 존재감은 허세 따위가 아닌 진짜의 것.
이만한 존재가 수도 없이 무림을 노렸는데, 어찌 매번 고배를 마셨다는 말인가.
“수천 년 동안 무림을 집어삼키려 들다가 번번히 고배를 마셨다 들었다만, 기어이 그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다시 기어 나오려는 모양이구나. 어이하여 무림에 대한 집착을 끊지 못하는고?”
목진은 약간의 도발을 담아 물었다.
그러나 그 말을 들은 사내는 발끈하는 대신 아득한 눈으로 허공을 바라볼 뿐이었다.
“수천 년이라.”
나는 겁에 달하는 세월을 보냈거늘, 육도의 안에서 흐른 시간은 고작 그것뿐이더냐. 사내가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읊조렸다.
잠시 눈을 감았다 뜬 그는 목진을 바라보며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너는 잘못 알고 있구나. 나는 애초에 무림을 도모한 적이 없었노라.”
“······뭐라?”
전혀 예상치 못한 대답에 목진이 눈썹을 치켜 올렸다. 지금껏 몇 번이고 무림을 들썩였다는 주제에 대관절 저런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꺼내는 이유는 무엇이란 말인가.
하지만 혈교의 의지는 손을 들어 하늘 위로 뻗으며 말을 이었다.
“내가 굽어보는 것은 이 육도삼계(六道三界) 전체이거늘, 구태여 왜 무림 같은 작디 작은 세상을 얻고자 하겠느뇨.”
말은 그럴싸하다만, 내뱉는 말과 행동이 같지 않으니 조금도 설득력이 느껴지지 않는다. 목진이 어처구니 없는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하면 지금까지 일으켜온 난은 무엇이더냐?”
“그것은 단지 솎아내기를 겸한 유희일 뿐이었노라.”
남자는 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바라는 것은 오직 머지않아 도래할 운명의 때뿐이도다. 너희가 지금까지 겪은 난이라는 것들은 단지 그것을 조금이나마 앞당기기 위한 밑준비일 뿐이니, 얕은 중생의 눈으로 섣불리 단정 짓는 우를 범하지 말지어다.”
“······고작, 밑준비라고?”
그 지옥 같은 혈겁들이? 라이디가 반쯤 넋이 나간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자신의 가족을 앗아가고, 수도 없는 사람들을 죽음과 절망으로 몰고 갔던 대전쟁. 그런 전쟁의 끔찍한 참상들을 직접 두 눈으로 보고 겪은 그녀에게 남자가 내뱉는 말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었다.
지나치게 충격적인 이야기이기에 분노조차 피어오르지 않는다. 라이디가 할 수 있는 건 마음속 깊은 곳에서 날뛰기 시작하는 심마를 혼신의 힘을 다해 억누르는 것뿐이었다.
반면 목진은 별다른 충격을 받지 않았다. 그는 혈교의 발호를 직접 목격한 적이 없었으니까.
그는 그 대신, 남자가 처음으로 입에 담은 단어에 주목했다.
“운명의 때라 하였느냐?”
다소 충격적인 말의 내용과는 별개로 어딜 봐도 의미심장함이 느껴지는 단어. 정말로 중요한 건 혈겁의 목적이 아니라 이쪽이었다.
그렇노라. 혈교의 의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너희는 준비가 되지 않았었도다. 적어도 얼마 전까지는 그러했지.”
하지만 이젠 아니다. 그가 환희 가득한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너희는 이제 비로소 운명의 때를 맞이할 준비가 되었노라.”
“······도대체 무슨 준비이길래 그리 거창하게 말하는 것이냐?”
목진이 되물었다.
하지만 남자의 대답은, 그가 전혀 생각지도 못한 단어였다.
“기술이노라.”
“기, 술······?”
예상을 완전히 벗어난 단어에 당혹스러움을 숨기지 못한 목진의 모습. 그 모습을 본 남자는 네가 들은 것이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너희 중생들의 과학기술이 충분히 무르익었을 때만을 기다리고 있었느니라.”
“······이해가 가지 않는군. 지금 과학기술을 발전시키기 위하여 무림에 난을 일으켰다는 소리를 하는 것이더냐?”
어딜 어떻게 봐도 그 둘 사이의 인과관계를 상상할 수가 없다. 혼란스러움을 담은 목진의 표정을 본 남자는 재미있다는 듯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내 조금 전에 솎아내기라 하지 아니하였더냐. 육도의 밖에서 움직일 수 있는 가닥에는 한계가 있으니, 주기적으로 난을 일으켜 솎아내는 것이노라.”
물론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솎아내기는 단지 부수적인 효과일 뿐이니까.
혈겁의 진정한 목적은 난이 일어난 틈을 타 그의 존재를 눈치챈 이들을 일소하고, 다음 대의 기술을 진보시킬 자들 사이에 가닥을 뻗는 것이다.
그와 같은 사실을 늘어놓은 사내가 덧붙이듯 말했다.
“그러니 너희가 말하는 난의 성패는 조금도 중요치 않았노라.”
되려 실패하는 쪽이 본래의 목적에 가까웠지.
수천 년 동안 셀 수 없이 많은 이들을 희생시킨 남자는 지독히도 담담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
고작 그런 이유로 수천 년에 걸쳐 끊임없이 혈겁을 일으켰다고? 사람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터무니없는 악신의 셈법에 천하의 목진조차도 잠시 할 말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혈교의 의지는 그런 목진을 바라보며 이해한다는 듯 무덤덤한 표정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구태여 너희 중생들이 이해할 필요는 없노라. 나는 애초부터 이해를 바란 적이 없노라니.”
“······참으로 악신다운 사고방식이로구나.”
“악신······. 악신이라.”
하긴 너희 중생들에겐 내가 그리 보일 수밖에 없겠군. 사내는 순순히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허나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내 오래고 오랜 숙원이 이루어질 때, 너희 중생은 비로소 고통으로 가득한 육도의 수레바퀴에서 벗어날지니.”
“네 일부가 되어서 말이더냐?”
목진이 시니컬한 목소리로 비꼬듯이 받아쳤다.
그러나 사내는 불쾌해하는 대신 진한 미소를 머금었다.
“물론이도다.”
스스로의 판단에 대한 미혹 따위는 한 줌도 느껴지지 않는, 지독히도 깔끔한 대답이었다.
“쯧.”
목진이 못마땅하다는 듯 혀를 찼다. 저런 부류에게는 쓸데없이 비난을 해 봐야 씨알도 먹히지 않음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애초에 신경조차 쓰지 않을 비난의 목소리를 내는 대신, 목진은 아까부터 슬금슬금 피어오르던 의문을 담아 다른 물음을 던졌다.
“헌데, 굳이 이런 이야기를 우리에게 하는 저의가 무엇인지 궁금하구나. 이미 일이 벌어지고 있기에 훼방을 해도 겁나지 않는다는 의미이더냐?”
흐음. 목진의 말에 남자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생각지도 못한 물음이도다. 그런 의미로 받아들였느냐?”
“하면 다른 뜻이라도 있었더냐?”
그러하노라. 사내가 단언했다.
“물론 이제 와서 너희가 다가오는 운명의 때를 뒤로 물릴 수 없다는 것도 틀린 말은 아니긴 하도다. 어찌 육도에 묶인 중생인 너희들이 흐르는 시간을 가로막을 수 있겠느뇨?”
허나 내가 이야기를 꺼낸 것은 고작 그런 알량한 셈에 따른 것이 아니노라. 남자는 그렇게 말하며 목진의 눈을 직시했다.
“내가 품은 오랜 뜻과 숙원을 너희에게 밝힌 것은, 평범한 중생과는 달리 본래의 나를 볼 수 있는 너라는 중생에 대한 존중의 의미이노라.”
“존중······지금 존중이라고 하였느냐?”
“그러하도다.”
“허어, 이것 참······.”
목진의 입술 사이로 긴 한숨이 흘러나왔다. 중생이니 뭐니 하는 소리를 하면서 한껏 낮춰보는 주제에 존중이라니. 저 오만불손한 언행을 보고 어찌 존중을 느낄 수 있다는 말인가.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그 직후에 목진인이 들은 제안은, 그런 오만한 태도 따위는 가뿐히 기억에서 지워버릴 만큼 터무니없는 것이었으니까.
“비록 지금의 내 처지가 이러한 탓에 네 모습을 온전히 볼 수는 없으나, 그렇기에 네 값짐을 알 수 있노라.”
다른 어리석은 중생들이 그것을 알 리 없지. 혈교의 의지는 당연히 그럴 것이라는 듯 스스로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 네게 제안하마.”
그가 목진을 향해 말했다.
마치 관대한 제안이라도 한다는 듯이.
“지금이라도 내 일부가 될지어다. 하면 나의 오른쪽 자리를 주겠노라.”
이 육시럴 놈이? 기어이 목진의 입에서 험한 욕설이 터져나온 것은, 굳이 말할 것도 없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