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smic Heavenly Demon 3077 RAW novel - Chapter (265)
우주천마 3077 우주천마-266화(266/349)
39. 대죄유혹 Guilty Temptation (5)
39. 대죄유혹 Guilty Temptation (5) – 그런 메리 수는 무협지에서도 취급 안 해요
“적어도 제가 검사하기에는, 무영탑 내 혈교의 오염은 보이지 않는 듯 보입니다.”
“전뇌공간 쪽도 마찬가지에요.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예측할 수 없는 상대라 아무런 위협도 없을 거라고는 장담 못 하겠지만······.”
세령의 본의 아닌 활약으로 혈교에게 굴욕적인 한 방을 먹이고 무사히 로그아웃한 이후 몇 시간. 전뇌공간의 통제권을 되찾고 정밀점검을 마친 박 노야와 순자는 마침내 혈교의 의지가 무영탑으로부터 완전히 물러갔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 혈교······라는 자의 말과 전대 탑주님이 남기신 말, 그리고 외부 패스의 데이터 로그 등을 종합해서 판단해 보았습니다만, 아무래도 이면차원을 항행할 때 혈교의 오염원에 접촉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무래도 그렇겠지. 그 악신 놈이 둥지를 틀고 있는 것이 바로 그 이면차원이 아니더냐.”
박 노야의 추론에 목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박 노야와 순자 같은 전문가들조차 골머리를 썩이던 외부 패스를 손짓 한 번으로 제거한 것을 보면, 일련의 사건들을 혈교의 의지가 주도했음은 명백했다.
하지만 정작 추론을 꺼낸 박 노야와 순자 쪽은 자기들이 내놓은 결론임에도 도통 믿기 어려운 듯 인상을 찡그렸다.
“아무리 이면차원 안이라고는 해도, 아무런 물리적 연결 없이 전뇌공간에 간섭하는 건 불가능하지 않나요?”
“그렇긴 합니다만······정황상 그 가능성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단순한 정신오염을 넘어서 컴퓨팅 장비 같은 무기물, 거기에 추상적 공간인 디지털 네트워크까지도 침식할 수 있다는 이야기인데······점점 이야기가 심각해지는데요.”
이건 단순히 포상을 떠나 집행관에게 신고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위험한 특급 정보였다. 순자가 제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기술적 한계를 초월하는, 현대 과학만으로는 완전히 설명할 수 없는 현상. 이쯤 되면 과학보다는 오컬트의 영역 쪽에 한 발 걸쳤다고 보는 편이 맞지 않을까.
생각해 보면 가능성의 실마리 자체는 있긴 했다. 혈교의 정신오염에 안드로이드가 면역이라는 이야기는 없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적어도 지금까지는, 다른 무기물의 오염 사례는 발견된 적이 없었다. 그러니 천 년이 넘게 혈교에 대해 연구해 온 인류정부조차 지성체가 발산하는 정신파를 통해 오염이 확산한다고 판단할 수밖에.
하지만 이번에 혈교가 무영탑을 침식한 과정은 그간 알려진 혈교의 오염과는 근본적인 메커니즘 자체가 달랐다.
“······소화 모듈이 꺼져 있는데도 속이 안 좋은 기분이네요.”
일개 무림인이 감당하기엔 너무나 무거운 사실에 순자가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목진은 그런 순자의 머리를 가볍게 토닥이며 말했다.
“너무 부담 갖지 말거라. 조정에서도 저 악신에 대해서는 많은 대비를 한다 하지 않았더냐.”
“끈질긴 사이비 종교단체에서 진짜 불가사의한 괴물로 업종변경을 했으니까 문제죠.”
이 우주에 인류정부만큼 혈교를 경계하며 대비한 곳은 없지만, 그 인류정부도 혈교에 대해서 완전히 파악을 하고 있던 건 아니다. 솔직히 현대 기술로는 이면차원 심층에 존재한다던 혈교의 의지를 구축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봐야 했다.
물론 막연하게 인류정부가 신기한 과학기술이나 영험한 법사, 승려들 따위를 불러서 악신을 퇴치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던 목진은 그녀의 걱정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만약 그 악신과 마주치게 되더라도 걱정할 필요 없느니라. 내가 있지 않느냐.”
“······그러고 보니 그런 말도 하셨었죠. 목진 님, 정말로 그 괴물의 본체를 타격하실 수 있으세요?”
순자의 물음에 목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전뇌공간 안이었던 탓에 그 괴이한 것의 본체를 직접 볼 수는 없었다마는, 그래도 충분히 가능할 것 같더구나.”
마음의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벨 수 있다. 목진은 다음번에 혈교의 의지를 만나게 된다면 조금의 주저도 없이 그 본신을 벨 생각이었다.
주 사람의 이야기를 들은 박 노야가 옆에 있던 라이디를 향해 슬쩍 물어봤다.
“······무공에 대해선 잘 모르는데, 가능하긴 한 겁니까? 무공으로 이면차원 내에 존재하는 것을 벨 수 있다는 게?”
라이디가 즉답했다.
“말이 돼요? 무협지에서도 그런 막나가는 설정은 잘 안 나와요.”
무신 공손혁흔이 공간참을 쓸 수 있긴 하지만, 공간을 격해 공격하는 것과 아예 차원을 넘나드는 공격을 하는 건 근본부터가 다른 이야기다.
“아니 그러면 탑주님의 말씀은······.”
“저희 선배님은 예외에요.”
그분이 된다면 되는 거겠죠. 입에 침도 안 바르고 냉큼 예외조항을 만들어버리는 라이디의 말에 박 노야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물론 라이디는 충분히 진지했다. 단지 무림인이 아닌 그가 생사경이라는 경지가 다른 절대고수들과 차원이 다른 영역임을 알 리가 없었기 때문에 구태여 자세한 설명을 더하지 않았을 뿐.
뻔뻔한지 당당한지 알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있는 라이디. 그런 라이디를 잠시 바라보던 박 노야는 에라 모르겠다 하는 표정을 지은 뒤 다시 목진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건 그렇다고 치고······. 탑주님, 이면차원 항행이 혈교의 오염에 노출되어 있다는 건 심각한 문제입니다. 저희 무영탑은 일반적으로 불필요한 외부와의 접촉을 피하기 위해 이면차원에 머무르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당연한 우려였다. 이전처럼 이면차원에 머무른다면 언제 다시 혈교가 그 마수를 뻗어와도 이상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정작 박 노야의 보고를 듣는 목진은 딱히 그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듯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였다.
“글쎄······. 그 존재가 비록 사악한 악신이라고는 하나, 그 오만한 성품은 거짓이 아니었느니라. 제가 물러가겠다고 말한 이상 제 자존심을 굽히고 이곳에 수작을 걸 만큼 졸렬한 자는 아니야.”
대화를 나눌 적에는 상대의 태도에 맞춰 한껏 상대를 깔아뭉개는 발언들을 던진 목진이었지만, 목진은 결코 혈교의 의지를 얕보지 않았다.
대략적인 형체만 보았음에도 이 세상의 존재가 아닌 것 같은, 명백히 인간보다 상위에 있는 존재.
심안을 개통한 자신이 아니면 인지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상위의 격을 품고 있으며, 이미 제 계획이 성사됨을 확신하고 있을 정도로 오만하기까지 한 존재가 고작 어리석은 중생들을 상대로 제 자존심을 굽히겠는가.
그러나 단순한 감으로 결정하기엔 지나치게 위험하다는 것은 목진도 잘 알고 있다. 생판 남의 일이라면 모를까, 일단 자신은 명목상으로나마 이 무영탑의 탑주이지 않은가.
어찌 대책을 세워야 할까. 팔짱을 낀 채 고민에 잠긴 목진의 옆구리를 순자가 쿡쿡 찔렀다.
“목진 님, 방법이 있긴 있어요.”
“오, 역시.”
너라면 좋은 방도를 찾아내리라 믿었다. 기다렸다는 듯 순자를 돌아본 목진이 반색했다.
“그래, 그 방법이란 걸 한번 말해보거라.”
“박 노야. 이 시설에도 은폐장이랑 방위시설은 있죠?”
“물론입니다. 웬만한 무림인의 우주선은 저희 무영탑을 보지도 못하고, 설사 인류정부의 탐지선을 상대로도 충분히 몸을 뺄 수 있지요.”
박 노야가 자랑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하지만 한두 척의 탐지선은 따돌릴 수 있어도 작정하고 포위망을 좁혀온다면 언젠가 잡힐 수밖에 없습니다. 태양풍 흐름을 감지하는 성계 탐지시설을 속이는 것도 하루이틀이지, 현실 우주에 머무르는 것은 되도록 피하고 싶군요.”
“그건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공권력이 무영탑을 지켜줄 테니까요.”
“공권력?”
“허어. 설마······.”
무림교류부의 일등 집행관 아테나 카푸르. 순자가 제시하려는 방법이 무엇인지 깨달은 목진이 나직한 감탄을 흘리며 그녀를 바라봤다.
나중에 듣기론 일등 집행관이라는 관직이 보통 높은 위치가 아니라 들었거늘, 그런 고관대작조차 아무렇지도 않게 수족처럼 부리는 순자의 수완은 천마신교의 주인이었던 그가 보기에도 감탄이 절로 나올 수준이었다.
“네. 일등 집행관 정도의 힘이면 특수 정부기관으로 위장하는 건 간단한 일이죠. 무영탑은 오히려 성계 순찰함대의 호위를 받게 될 거에요.”
“······일등 집행관?”
그녀의 말을 들은 박 노야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다소 유난스러운 반응이었지만 보통은 그와 같은 반응이 정상이었다.
“정말 일등 집행관과 선이 있다는 말입니까?”
“네. 이야기하자면 좀 길지만요. 일등 집행관님에게 따로 이야기해서 무영탑의 보호를 부탁드릴 거에요.”
“아니, 잠시만요. 하지만 저희 무영탑은 인류정부의 추적을 받고 있습니다만······?”
아무리 혈교의 오염이 위험하다지만, 인류정부 또한 믿을 만한 상대는 아니다. 아무리 ‘찾으면 좋고 아님 말고’ 식으로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는 있지만, 눈앞에 나타난 보물덩이를 두고도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박 노야의 말에 순자가 알고 있다는 듯 차분하게 대답했다.
“그 부분은 제가 일등 집행관님과 잘 이야기를 해서 윗선에 보고되지 않도록 처리할게요. 그리고 정 위험하다 싶으면 이면차원으로 빠지시고요.”
“불확실한 위협보다는 확실한 위협을 피하는 게 맞으니, 충분히 일리가 있는 말이긴 합니다만······. 그 정도 협상까지 가능할 정도입니까?”
윗선. 그러니까 인류정부의 높으신 분들에게 무영탑의 보고가 올라가지 않도록 정보 통제를 한다는 건 일등 집행관이라고 해도 부담이 없을 수 없다.
그러니 순자의 이야기는 곧, 일등 집행관이라는 거물에게 그만한 부담을 지울 수 있을 정도의 협상력이 있다는 의미였다.
순자가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도 나름 믿는 구석이 있었다.
“물론이죠.”
“······이것 참. 대단하신 분을 몰라뵌 느낌이군요.”
박 노야가 혀를 내두르며 순자를 향해 존경의 눈빛을 보냈다.
어째 자신을 대할 때보다 더한 것 같다. 목진은 박 노야의 눈빛을 보며 미묘한 기분이 들었다.
“음?”
그때 목진의 눈에 멀뚱히 이야기를 듣고만 있는 세령의 모습이 보였다.
그러고 보니, 전뇌공간으로부터 로그아웃을 한 뒤로 그녀가 대화에 참여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뭐지? 목진이 고개를 갸웃했다. 단순히 고용된 용병인 낭호교 삼자매와는 달리 나름 일행을 이끄는 리더인 세령이 평소답지 않게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는 모습이 의아했기 때문이었다.
목진은 그녀를 향해 물었다.
“세령이 너는 어쩐 일로 그리 조용하더냐?”
“네, 예?!”
갑자기 자신을 부를 줄은 몰랐다는 듯. 세령이 새된 소리로 대답했다. 당연히, 사람들의 이목이 그녀를 향했다.
세령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녀는 누가 봐도 어색하기 그지없는 미소를 지으며 손사래를 쳤다.
“벼, 별 거 아니에요! 그냥 뭐랄까, 거시기. 그 뭐냐. 그렇지. 안쪽에서 얻은 깨달음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달까. 이래저래 많이 배웠죠. 네.”
갓 태어난 안드로이드가 봐도 알아볼 정도로 대놓고 거짓말이었다.
“흐음······그래?”
하지만 목진은 다소 미심쩍어하면서도 납득하고 넘어가 주었다. 하긴 제 조상들과도 만나보고, 그 시그마와도 한판 붙어 봤다고 하던데 아무것도 배우지 않았을 리는 없지 않은가.
처음 무영탑에 대해서 부정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던 그였지만, 지금은 그 생각이 바뀌어 있었다. 다른 이도 아니고 멸문한 사천당가의 조상들과 만났다고 하지 않은가.
‘사문의 근본을 잇는 것은 중요하지. 아암.’
물론 세령의 변명이 수상쩍기는 하다. 하지만 반응을 보니 딱히 심각한 일 같지는 않았다.
뭐 제 나름대로 생각할 게 있겠지. 목진은 여전히 어색한 표정으로 식은땀을 줄줄 흘리는 세령으로부터 시선을 돌려 다시 사람들과 함께 향후의 계획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다.
목진의 판단이 딱히 틀린 것은 아니긴 했다.
세령의 고민은 무영탑의 거취와 혈교에 대한 대책 등에 비해서는 비교적 덜 심각한 이야기이긴 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주 사소한 고민인가 하면, 그건 또 아니었다.
적어도 새로운 사천당가를 일으킬 가주 당세령에게는 그랬다.
‘아니 씨 아무리 그래도, 이게 맞나? 보편적인 강호윤리적 관점으로 보면 좀 아웃인 거 같은데.’
세령은 여전히 피가 올라있는 얼굴로 제 머리를 마구 헝클었다.
그녀의 시선은 다른 사람들과 논의중인 목진을 향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