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smic Heavenly Demon 3077 RAW novel - Chapter (266)
우주천마 3077 우주천마-267화(267/349)
40. 사면초가 No Ally (1)
40. 사면초가 No Ally (1) – 아직 어리구나 애송이
문제의 발단은 몇 시간 전, 전뇌공간 상에서 당소아와 재회했을 때의 일이었다.
세령은 선조님들께 다시 한 번 작별인사를 드리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먼저 보내고 잠시 전뇌공간에 남아있었다.
그런데 그 선조님인 당소아가, 그녀의 얼굴을 보자마자 대뜸 이상한 소리를 꺼내는 게 아닌가.
“세령아, 이 대협과 혼인하는 건 어떻게 생각하니?”
“예 시발?”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뜬금없는 소리에 세령의 입에 걸려있던 필터가 잠시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파업을 선언했다.
본의 아니게 까마득한 선조님을 향해 불꽃 같은 패륜을 저지른 세령이 당황하며 양손을 내저었다.
“아니 잠깐, 그게 아니라요, 너무 당황해서.”
“갑작스런 이야기라는 건 이해해. 진정하렴.”
말버릇은 흑도 저리가라이지만 의외로 윤리관은 꽤 정파다운 세령이 자신도 모르게 내뱉은 욕설에 당황하자 당소아가 차분하게 그녀를 진정시켰다.
“느긋하게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없어서 불쑥 이야기하긴 했는데, 꽤 중요한 문제거든.”
“아니아니아니요. 잠깐, 잠깐만요. 그 이 대협이 내가, 아니 제가 아는 그 이 대협을 말하는 거에요?”
“그럼 누구겠니. 여기엔 그분 말고 살아있는 남자도 없는걸.”
그렇게 말한 당소아가 찡긋 윙크를 날렸다. 도무지 의미를 알 수 없는 제스쳐였다.
······설마 지금 저걸 농담이라고 하신 건가. 세령의 눈동자에 혼란스러움이 가득 몰아쳤다.
‘아니 근데 도대체 왜 이런 이야기를 하시는 거지?’
지난 며칠 동안 함께 지내면서 당소아가 선조님다운 근엄함보다는 동네 푼수 언니 같은 성격이라는 것을 알고는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런 상황에 이런 농담을 건넬 만큼 마냥 대책없이 가볍기만 한 성격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목진과의 결혼이라는 게 농담이 아니라 진담이라는 소리.
바로 그게 문제였다.
“선조님······.”
“선배님이라고 부르래도?”
선조님은 너무 화석 같아 보인다구. 당소아가 툴툴 불평했다.
“그······선배님, 제가 지금 너무 갑작스러운 이야기를 들어서 이해가 잘 안 되거든요. 애초에 전 아저씨를 남자로 본 적이 아예 없다구요. 아저씨도 마찬가지일 거고.”
“어머, 그렇게 오래 다녔는데도?”
너도 은근히 순진한 구석이 있구나? 당소아가 태평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이 기회에 한번 생각해보는 건 어떻겠니. 이왕이면 긍정적인 방향으로.”
“아니 하······.”
밑도끝도 없는 당소아의 말에 세령이 제 머리를 벅벅 긁었다.
결혼이라는 이야기를 왜 꺼냈는지는 대충 짐작이 갈 것도 같다. 원래 인류 역사에서 내 편을 만드는 가장 고전적이고 정석적인 방법이었으니까.
하지만 세령은 그런 옵션을 고려해본 적이 결단코 한 번도 없었다.
어차피 목진이 그녀의 복수행을 도와주겠다고 약속까지 했는데 여기서 뭘 더 받아내겠다고 결혼이라는 초강수까지 둬야 한다는 말인가.
이미 그녀는 목진에게 과할 정도로 많은 은혜를 받았다. 내심 나중에 복수행을 다 끝내더라도 이걸 다 어떻게 갚아야 하나 고민인데, 거기에 뼛속까지 빨아먹겠다고 결혼이니 뭐니 할 정도로 세령이 염치가 없는 인간은 아니었다.
“말씀하시는 의도는 알겠는데요, 갑자기 악셀을 너무 밟으시잖아요. 당장 며칠 전에도 아저씨한테 너무 기대지 말라고 하신 건 선배님이면서······.”
어라 잠깐만. 그러면 왜 결혼 얘기를 꺼내신 거지? 말을 이어가던 세령이 입을 멈추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생각해 보니 이상했다.
당소아와 당군성 모두 복수행 중에 외인인 목진의 무력을 직접적으로 빌리는 것에는 부정적인 기색을 내비쳤었으니까.
세령의 의아한 표정을 본 당소아가 가볍게 손사래를 쳤다
“아, 오해하지 마. 그분의 무력 때문에 하는 소리가 아니니까.”
“······그럼 대체 왜 그런 이야기를 꺼내신 건데요.”
세령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눈으로 당소라를 쳐다봤다. 자기나 목진이나 이성적인 감정은 손톱만큼도 없다는 건 둘째치고, 그와는 별개로 둘이 결혼해야 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당소아는 손가락을 들어 세령을 가리켰다.
“네 무공 때문이야.”
“예? 제 무공이 왜요?”
전혀 예상치 못한 당소아의 답변에 세령이 두 눈을 깜박였다.
“사천당가 무공이 맞다고 하셨잖아요.”
세령은 이미 이야기가 다 끝났다고 생각했다. 당장 그녀와 당군악 모두가 사천당가의 무공이 맞다고 직접 인증을 해 준 당사자가 아니던가.
“그래. 네가 익힌 무공들은 분명 사천당가의 무공이 맞아.”
당소아는 세령의 반응에 순순히 수긍했다.
하지만 그 직후, 그녀는 조금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여전히 외인이 창안한 무공이지. 사천당가의 무공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정통성이 부족하다는 소리야.”
“정통성······이요.”
그래. 정통성. 당소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대부분의 문파들에게도 정통성은 중요한 문제지만, 우리처럼 긴 역사를 가진 세가들한테는 정말로 소중한 가치거든.”
설령 그들의 무공이 시대의 흐름에 따라 계속해서 발전하고 변화해나간다 하더라도, 하나의 뿌리에서 이어지는 계보만큼은 끊어지지 않는다. 수천 년 역사를 자랑하는 그 방대한 계보야말로 바로 그들 고대문파를 지탱하는 중요한 정체성 중 하나이니까.
“설마······.”
당소아가 말하려는 것이 무엇인지를 짐작한 세령의 입이 벌어졌다.
네가 생각하는 게 맞을 거야. 당소아가 빙긋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외인이 창안한 무공이라 정통성이 부족하다면, 외인이 아니게 되면 문제없지.”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쌈박한 사고방식이 아닐 수 없었다.
아뇨. 저는 문제 있는데요. 세령이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꿀꺽 삼켰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다. 그 당사자들이 자신과 목진이라서 문제지.
세령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해요?”
진지하게 결혼에 대한 생각을 해본 적은 없지만, 아무리 그래도 좀 너무 계산적으로 접근하는 거 아닌가. 그녀의 솔직한 심정은 그랬다.
세령의 미묘한 반응에 당소아가 조금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음······혹시 이미 마음에 둔 정인이라도 있니?”
“아뇨아뇨! 그런 건 아닌데요.”
“그래? 다행이네. 그럼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라도 있어?”
“그게요, 이유는 이해가 가는데요, 뭔가 좀 타산적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 그게 꼭 선조님이 그러시다는 게 아니고요. 제 말은 그러니까······.”
“선배님이라니까?”
“앗, 네. 선배님.”
후우. 횡설수설하는 세령의 말을 듣고 그녀의 생각을 읽은 당소아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러고 보니, 그녀의 후손이 이제 갓 이십대에 불과하다는 것을 깜박하고 있었다.
‘아직 소녀 감성이 좀 남아있나 보네.’
이런 타입한테 웃어른의 권위를 내세우며 강권하는 건 절대 좋은 방법이 아니다. 그녀는 한층 부드러운 목소리로 세령의 이름을 불렀다.
“세령아.”
“네, 네에······.”
“네 마음도 이해는 가. 인생의 가장 중요한 선택인 결혼인데 마음 맞는 사람이랑 해야지. 안 그래?”
“······네.”
세령이 그녀의 눈치를 보며 보일 듯 말 듯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당소아는 차분하게, 하지만 단호함이 담긴 목소리로 그녀에게 말했다.
“하지만 세령이 너는 앞으로 사천당가를 이끌어야 할 가주잖니. 때로는 개인이 아닌 가주로서 판단해야 할 때도 있는 법이야.”
“읏······.”
맞는 말이다. 세령이 움찔 몸을 떨었다.
‘이 정도면 압박은 충분하겠는걸.’
이제는 당근을 내밀 차례다. 의도적으로 차분한 목소리를 유지하던 당소아가 다시 평소의 통통 튀는 듯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근데 말이야, 좀 계산적이라도 결국 서로가 행복하면 다 괜찮은 거 아닐까?”
“예, 예?”
세령은 갑작스레 바뀐 당소아의 분위기에 얼떨떨한 반응을 보였다. 당소아는 그런 그녀가 정신을 차릴 틈도 없이 빠르게 말을 이었다.
“결혼은 현실이라는 이야기 들어본 적 있지? 원래 결혼이란 건 사랑하는 마음이 제일이고, 속궁합이 두 번째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의 이해타산은 들어가기 마련이거든. 나도 죽은 울 남편이랑 부모님 소개로 만났는데 결혼생활 행복했었다? 꼭 그렇게 로맨스만 고집할 필요는 없다니까? 이 언니 말 잘 새겨들으렴.”
언니가 아니라 조상님이다.
“소, 속궁······?!”
다행인지 불행인지, 세령은 유부녀의 필터링 없는 어휘 선택에 경악하고 있었기에 그녀가 은근슬쩍 바꾼 발칙한 호칭에 태클을 걸 여유가 없었다.
당소아는 계속해서 세령의 귓가에 조잘조잘 속삭였다.
“얘, 솔직히 네 얘기를 들어보면 너랑 이 대협이 만난 것도 나름 운명적인 만남이라는 생각도 든다니까.”
방사능 행성에서 알몸의 고대인에게 팔이 부러진 것도 운명적이라면 운명적인 만남이긴 했다.
“그리고 너가 아직 잘 몰라서 그렇지, 저 정도 괜찮은 남자 찾기 힘들다? 얼굴 잘생겼지, 몸도 좋지, 무공도 강하지. 지금까지 같이 다닌 걸 보면 성격도 모난 것 같지는 않아 보이던데, 솔직히 상위 일 퍼센트 아니니? 아랫도리는 안 까봐서 모르지만 그래도 저 정도면 못하진 않을 거고.”
“아니, 네?!”
“요 요 순진한 것. 반응 보니까 생 숫처녀가 따로없네. 그래서 후사는 제대로 이을 수 있겠니? 색곡 아이들한테 신세 안 져?”
“선조님 좀-?!”
악의 없는 할머니의 성희롱을 견디다 못한 세령이 다시 빽 소리를 질렀다.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세가의 정통성과 가주로서의 희생에 대한 심각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도대체 언제부터 결혼 수백 년 차 베테랑 유부녀의 음담패설 섞인 과외수업으로 변했다는 말인가.
‘흐흥, 계획대로.’
이제 다시 풀어줄 때다. 당소아는 씩씩거리며 숨을 몰아쉬는 세령의 옆으로 총총 다가가서는 부드럽게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너무 그렇게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 아직 시간은 많잖니? 그런 마음이 없으면 만들어가면 되는 거지. 서로 호감이 없는 것도 아닌데.”
“선배님, 근데 저희는 이성적인 호감이 아니라 동료간의 신뢰나 사제간의 유대감 쪽에 가깝거든요?”
“어머, 얘가 뭘 모르네. 원래 그런 식으로 호감을 쌓다가 술 한잔 딱 걸치고 확 속성변환하는 거야. 울 남편도 내 무공 스승님이었는걸? 하산 기념 쫑파티 할 때 취한 척 앵겨서 스승님 숙소까지 간 다음 쓰읍······.”
“······어, 음.”
알고 싶지 않은 선조의 과거를 알아버렸다. 세령이 굉장히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잠시 자신과 죽은 남편의 불꽃 같은 첫날밤에 대해서 열변을 토하던 당소아가 잔뜩 새빨개진 세령의 어깨를 토닥였다.
“그러니까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 보렴. 너무 부담 갖지 말고. 사실 이렇게 말은 하지만, 우리도 막 엄청 기대하는 건 아니거든. 사람 마음이 어디 마음대로 되니? 되면 좋고 안 되면 어쩔 수 없는 거지.”
“······부담 주실 만큼 다 주셔놓고 이제 와서 그런 소릴 하시네요.”
진이 빠진 세령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녀는 가만히 상상해 보았다. 자신과 목진이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되는 광경을.
“으아아 시발-?!”
온 몸에 오소소 소름이 돋아나는 감각에 세령이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며 제 머리를 쥐어뜯었다.
“파이팅.”
당소아는 그 옆에서 조용히 응원의 제스쳐를 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