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smic Heavenly Demon 3077 RAW novel - Chapter (268)
우주천마 3077 우주천마-269화(269/349)
40. 사면초가 No Ally (3)
40. 사면초가 No Ally (3) – 너네 지금 상태 안 좋잖아
셀 수 없이 많은 이들이 살아 숨쉬는 이 세상에서 일등 집행관의 숫자는 오직 열셋에 불과하다.
그들이 맡는 임무들은 대부분 인류정부와 무림의 공존을 심대하게 위협할 정도의 사안에 관련된 것들뿐. 그런 이유 때문에 일등 집행관들은 태어날 때부터 유전자 조작을 통해 어지간한 일에는 눈썹 하나 꿈쩍하지 않는 강인한 정신력을 가지도록 만들어졌다.
“······돌아버리겠네요. 진짜로.”
하지만 그런 일등 집행관의 멘탈조차도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만큼은 도저히 평소와 같은 평정을 유지할 수가 없었다.
현대 과학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방식으로 형성된 이면차원의 하이브마인드. 현재까지 밝혀진 오염 메커니즘을 전면으로 부정하는, 무기물과 가상공간까지 물들이는 기괴한 침식. 거기에 지성체 전체를 오염시키겠다는 우주적 스케일의 목적까지.
“SF 호러영화인 줄 알았는데 코즈믹 호러 다크판타지였네.”
하나같이 윗선에 보고하면 중추원이고 뭐고 다 뒤집어질 만큼 충격적인 사안들이다.
그야 혈교에 대한 정보를 많이 얻어오면 고맙긴 하지만, 이건 그냥 핵폭탄을 냅다 들고 온 격이지 않나.
눈앞에 목진 일행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표정 관리가 되지 않는다. 아테나는 양손으로 얼굴 위를 덮으며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이게 우리 선에서 감당할 수 있는 문제가 맞나?’
목진 일행이야 무림인이니만큼 혈교 문제 같은 건 인류정부에서 알아서 잘 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리라.
하지만 아테나는 말할 수 없었다.
지금의 인류정부는 갑작스럽게 드러난 혈교의 실체에 즉각적으로 대응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걸.
당장 일선에서 현역으로 뛰고 있는 일등 집행관들은 이미 여러 차례의 검증을 겪었기 때문에 신뢰할 수 있지만, 다른 정부기관들은 그렇지 않은 상황인 게 문제다.
일단 인류정부의 최신 기술들을 연구하는 기술선도국은 확실하게 오염되었다고 봐야 하고, 그 중요도와 영향력을 생각했을 때 중추원과 군부 또한 오염되었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
아니, 굳이 거기까지 갈 필요도 없다. 당장 무림교류부의 수뇌가 오염되었을 가능성 때문에 그녀를 비롯한 일등 집행관들의 움직임에 제동이 걸리고 있는 상황이 아닌가.
아테나는 직감했다.
‘이걸 위로 올리면 무조건 꼬인다.’
원래 무림에서 일어나는 모든 혈교 관련 사태들은 무림교류부가 전담해서 컨트롤을 하고 있었다.
꽤 악질적이긴 하지만 혈교의 근본은 결국 컬트적인 사이비 종교집단일 뿐. 그런 사소한 일들까지 직접 관여하기엔 은하계 전역을 통치하는 인류정부가 처리할 일이 너무나 많았으니까.
그러나 이번에 알게 된 혈교의 실체가 보고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혈교가 일반 사이비 종교집단이 아니라 인류의 존속을 위협하는 이면차원의 생명체라는 것이 확인된 이상, 지난 혈교와의 대전쟁 이후로 수백 년 만에 인류정부가 다시 혈교 사태를 전담하게 될 테니까.
문제는 바로 그거였다.
무림에 퍼진 혈교의 오염을 일소하겠다며 전면으로 나서는 인류정부가 무림인들에게 어떻게 보일지야 불 보듯 뻔하지 않은가. 과거에 인류정부가 혈교의 준동을 구실로 무림에 관여하려 한 전적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가뜩이나 사천당가의 멸문 이후로 채 이십 년도 지나지 않은 상태라 인류정부의 움직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상황인데, 혈교의 위협을 이유로 대대적인 개입을 시도한다면 반발이 없을 수가 없다.
거기에 이미 인류정부 내부에 혈교의 끄나풀이 암세포처럼 퍼져있는 게 확정적인 상황이기까지. 지금까지 알려진 혈교의 행동패턴을 생각하면 인류정부와 무림이 서로를 향해 총칼을 휘두르는 최악의 상황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었다.
‘······일단 홀딩해 놓자.’
결국 그녀가 내린 결정은 상부에게 보고하는 것을 보류하는 것. 이 사실들이 알려진 뒤에 일어날 여파를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보고계통에 올리는 건 너무 위험했다. 일등 집행관에게 그 정도 판단을 내릴 권한이 없는 것도 아니었고 말이다.
어차피 무림교류부 내에서 비밀리에 내부 감사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 현재로서는 무림교류부 내부의 오염을 처리하고 난 뒤에 차근차근 다른 정부 부서들의 오염을 감사해 나가는 것이 상책이었다.
고심 끝에 결정을 내린 아테나가 목진과 라이디를, 그리고 순자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이해했어요. 다른 사람도 아니고 참룡검제 대협과 뇌신유녀 대협이 보증하는 내용이니까 믿지 않을 수는 없죠.”
누가 들어도 허무맹랑한 소리라고 치부할 만한 이야기. 하지만 아테나는 제대로 된 근거 하나 없는 목진 일행의 이야기가 거짓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당장 며칠 전만 해도 혈교의 끄나풀을 색출해내는 데 큰 도움을 주기도 했거니와, 목진이나 라이디 정도 되는 거물급 절대고수들이 거짓 정보 따위를 말할 리도 없었으니까.
“일단 제보 먼저 감사드릴게요. 지금 안쪽에서 조금 복잡한 일을 진행하는 중이라 당장 보고하기에는 시간이 좀 걸릴 테니, 보상은 나중에 따로 연락드리도록 할게요.”
하지만 그 전에. 아테나가 날카로운 눈초리로 순자 쪽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아직 이 정보의 출처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밝혀주시지 않은 부분은 마음에 걸리네요. 그 혈교의 하이브마인드를 어쩌다가 전뇌공간에서 마주치게 되었는지, 순자 양의 증언에서는 교묘하게 빠져 있다고 느끼는 건 제 착각일까요?”
아테나 개인이 목진 일행을 꽤나 신뢰하고 있는 것과는 별개로, 공적인 일과 사견은 구분해야 하는 법. 아무런 근거도 없이 사적인 신뢰만으로 이런 중요한 일을 진행할 수는 없었다.
무언가를 노리고 있다. 아테나는 수상함을 품은 눈으로 일부러 사건의 출처를 명확하게 밝히지 않는 듯한 순자를 바라봤다.
순자는 의외로 순순히 그녀의 물음에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테나 님의 생각이 맞아요.”
그렇게 말한 순자는 고개를 돌려 라이디를 향해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라이디 님, 죄송하지만 잠시 저희끼리만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요?”
“물론.”
어찌 보면 무례하게도 들릴 수 있는 요구였지만, 이미 목진에게 언질을 받은 라이디는 흔쾌히 순자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망설임없이 자리에서 일어난 그녀는 목진과 아테나에게 순서대로 인사를 한 뒤에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라이디가 자리를 뜨자 남은 것은 목진과 순자, 그리고 아테나 뿐. 갑작스럽기 그지없는 라이디의 퇴장에 아테나가 미간을 좁혔다.
‘······뇌신유녀를 굳이 빠지게 만들 만한 이야기라.’
완전히 확신할 수는 없지만, 무림에서 라이디의 배분이 최상위에 위치함에도 목진에게 깍듯하게 대하는 것을 보면 그의 정체를 알고 있을 공산이 크다. 거기에 이번 사건의 중요 참고인이기까지 한 그녀를 내보낼 이유는 없지 않은가.
순자는 그런 아테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보다 진지해진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리고 그 말은, 그녀가 전혀 예상치 못했던 내용을 담고 있었다.
“아테나 님. 지금 인류정부는 얼마나 오염되어 있는 상황이죠?”
철컥 하는 소리와 함께 번개처럼 뽑혀나온 아테나의 권총이 순자의 미간을 겨누었다.
아니, 그녀의 권총이 겨눈 것은 순자의 미간이 아니었다. 권총의 총구를 가로막은 목진의 손바닥이 있었으니까.
“진정하시오.”
목진의 차분한 목소리가 아테나의 귓가를 울렸다. 그녀는 그제야 자신이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전에 자신을 죽일 수 있는 인간병기와 한 자리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권총을 쥔 손을 내리지 않았다. 그녀는 아무런 감정 없는 기계와 같은 눈을 한 채 순자를 노려봤다.
“지금의 발언은 농담으로 치부하고 넘어가긴 어려운데.”
그녀의 싸늘한 목소리에 진짜 기계는 조금의 동요도 보이지 않고 태연한 목소리로 반문했다.
“농담으로 들리셨나요?”
“전혀.”
“그렇다면 제 의도가 제대로 전달되었네요.”
그리고 제가 생각하던 가설도 맞는 것 같고요. 순자는 아테나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일등 집행관 앞에서 함부로 인류정부를 부정하거나 비방하는 반체제 발언을 하면 즉결처형을 당할 수 있다. 무림교류부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모르는 게 없는 사실이죠.”
순자는 검지손가락을 들어 자신의 머리에 겨눠진 총구를 짚었다.
“······그런데 아테나 님은 바로 방아쇠를 당기지 않으셨네요. 이상한 일이죠. 일등 집행관이신 아테나 님은 인류정부에 무조건적인 충성을 보내고 계실 텐데.”
순자의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다. 총구는 어렵지 않게 옆으로 밀려났다.
다시 여쭐게요. 안드로이드 소녀가 인간에게 물었다.
“아테나 집행관님께서는 인류정부의 혈교 오염을 완전히 부정할 수 있으신가요?”
“······.”
아테나는 대답하지 않음으로서 그녀의 질문에 대답했다.
아테나는 날카로운 눈으로 순자를 노려본 채 한참을 침묵하다 마침내 권총을 집어넣었다. 그녀는 여전히 순자를 노려보며 딱딱한 어조로 물었다.
“어디서 그런 정보를 들었지?”
순자는 대답 대신 옆을 향해 눈짓했다. 목진이 있는 방향이었다.
아테나의 눈에 순간적으로 놀라움의 감정이 담겼다.
“대협께서······?”
“그대가 현마를 호위로 고용했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짐작했소.”
순자를 보호하기 위해 들었던 손을 내린 목진이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관리가 수사에 관졸을 동원하는 대신 일개 무부에게 호위를 맡기는 일은 보통 두 가지 뿐이지.”
당장 공권력을 동원할 수 없는 상황이거나.
아니면 공권력을 믿을 수 없거나.
무엇이든 꿰뚫어보는 것 같은 목진의 갈색 눈동자가 아테나를 직시했다.
“그대는 지금 조정을 믿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 아니오?”
이미 지난번 현마와 통신을 했을 때 어느 정도 짐작은 하고 있었다.
거기에 의심을 더한 것은 이번 대화에서 아테나가 보여준 반응. 다소 충격적인 진실이긴 해도 잠시 암담한 기색을 내보이며, 내부의 일을 운운하며 인류정부에 대한 보고를 미루겠다는 발언은 평소 일등 집행관으로서의 그녀가 보일 만한 행동이 아니었다.
하지만 목진과 순자가 확신을 가지게 된 계기는 따로 있었다.
인류정부의 오염이라는 추측에 완전히 쐐기를 박은 것은, 바로 방금 전 아테나가 보여준 반응이었으니까.
“아, 이런.”
그제야 자신이 시험당했다는 것을 깨달은 아테나가 낭패한 표정을 지었다.
한 가지만 대답해 주시오. 목진은 지극히 담담한. 그러나 지극히 냉정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
“지금의 조정에게는 혈교의 종자들과 싸울 여력이 있소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