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smic Heavenly Demon 3077 RAW novel - Chapter (269)
우주천마 3077 우주천마-270화(270/349)
40. 사면초가 No Ally (4)
40. 사면초가 No Ally (4) – 신뢰가 부족하면 목숨을 걸라
처음에는 과한 추측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순자에게 설명을 듣기론, 이 시대의 인류정부라는 것은 그의 상상을 가볍게 초월할 정도로 거대한 조직이었으니까.
과거 목진이 살던 시대의 조정보다 수 배는 크고 복잡한 조직인 행성 행정부와 그것들을 수십 수백 개씩 거느리는 성계군 총독부. 그리고 그런 총독부들을 수도 없이 거느리고 있는 중앙의 인류정부까지.
중세시대의 가치관으로는 상상조차 버거울 정도로 거대한 스케일의 우주세기 조직은 천하의 목진이라 할지라도 기가 질릴 정도였다.
그런 거대한 조직이 아무리 악신이 붙어있다고는 하나 한낱 사교도 따위를 감당하지 못할까.
이 광대한 은하 전역을 아우르는 군대로 은하 밖의 외적(外敵)들과 싸운다 하니 설령 그 상대가 사악한 악신의 주구들이라 한들 능히 대적할 수 있으리라.
목진은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이어진 아테나의 대답은 그의 기대와는 조금 달랐다.
“······후. 지금으로서는 쉽지 않아요.”
한참동안 입을 다물고 있던 아테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쉽지 않다?”
예상치 못한 답변에 목진의 한쪽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듣기론 이 세상에서 감히 견줄 적이 몇 없을 정도로 강력한 조정이라더니, 어째 그가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영 자신이 없어 보이는 반응이었다.
아테나는 목진이 더 오해하기 전에 재빨리 덧붙였다.
“혈교의 특수성 때문이에요. 감염 여부를 판별하기가 쉽지 않으니까요. 대협께서 발견하신 고독은 더욱 그렇고요.”
혈교에 대한 오염 여부를 검사할 방법은 있다. 그 복잡함이 정밀검사에 필적할 정도라서 그렇지.
중앙 인류정부의 핵심 구성원들과 그 보좌진들만 더해도 무림교류부가 검사할 수 있는 숫자를 아득히 상회하는데, 느긋하게 하나하나 검사하다가는 숨어있는 혈교의 끄나풀들을 색출하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깊은 곳으로 숨어들게 만들 뿐이다.
거기에 이번에 목진이 발견한 고독의 경우는 아예 탐지방법이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정신오염이 아니라 생물인 이상 금방 탐지기술을 개발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실증 기술로 양산되기까지는 못해도 수개월의 시간이 필요했다.
“혈교와 정면으로 붙을 수만 있다면야 당연히 그 승패를 생각할 것도 없죠. 하지만 거대한 조직의 내부에 은밀하게 파고들어 기생하는 벌레는 이야기가 달라요.”
“흐음······. 이해는 가는구려.”
아테나의 말에 목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막연히 과거의 경험에 빗대어 일종의 광신도들을 상대하는 느낌으로 생각했는데,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니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님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조직이 거대할수록 그 안을 파고드는 기생충을 잡아내기는 쉽지 않다는 것쯤은 한때 천마신교를 이끌었던 그도 잘 알고 있었다. 외부에서 침입한 간자들조차 완전히 색출하지 못했거늘, 멀쩡한 사람의 정신을 물들이는 괴이한 역병을 막아내기는 어려울 수밖에 없으리라.
아테나는 천천히 심호흡을 한 뒤 목진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현재 비밀리에 무림교류부의 내사 작전이 진행중이에요. 이 작전이 끝나고 무림교류부에서 혈교의 오염이 완전히 배제되었다는 걸 확신한다면, 그때 중추원과 군부를 시작으로 인류정부 내의 혈교 끄나풀들을 단계적으로 솎아낼 거고요.”
“······그런 이야기는 우리 같은 외부인에게 알려서는 안 될 기밀 아닌가요?”
아테나의 말에 순자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무림교류부 내부의 기밀을 그들에게 알리는 저의라면 뻔했기 때문이었다.
같은 결론에 도달한 목진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지금 그대는 우리를 끌어들이고자 하시오?”
“끌어들이는 게 아니죠.”
그보다는 이미 한 배를 탄 상황이라 알려드리는 거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아테나의 눈빛이 번뜩였다.
그녀의 말뜻을 알아들은 건 목진보다 순자 쪽이 먼저였다.
아. 이번에는 순자의 얼굴에 낭패감이 떠올랐다.
“······저희의 신변이 노출된다는 얘기시네요.”
아테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만한 정보의 출처를 완전히 숨길 수는 없어. 우리 측에서 최대한 노출되는 걸 막긴 하겠지만 완전히 기밀을 유지하는 건 불가능하고.”
“그러면 인류정부 내부의 혈교 오염자가 저희를 타겟으로 삼을 가능성도 있겠네요.”
“그래. 조금 전 들은 이야기대로라면 혈교의 하이브마인드는 이 대협에게 꽤나 관심을 두고 있는 상황으로 보이는데, 그런 상황에서 혈교도들이 이 대협을 가만히 놔 둘 것 같지는 않네.”
“하아······.”
차라리 대놓고 쳐들어오는 경우라면 아예 못 막을 건 없겠다마는, 인류정부의 고위층이 권력을 사용해서 은밀하게 수작질을 걸어오는 상황은 꽤나 골치가 아플 수밖에 없다. 순자는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차라리 익명으로 신고할 걸 그랬네요.”
“익명의 신고였다면 처음부터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일이 없었겠지.”
“음······.”
외통수였다. 이러나 저러나 빠져나갈 수 없는 상황이라는 걸 깨달은 순자가 어깨를 축 늘어트렸다.
“쯧. 골치 아픈 일에 엮이게 되었군.”
목진이 혀를 찼다. 어느 정도는 예상했던 이야기지만, 그놈의 사교도 놈들 때문에 관과 얽힌다는 사실이 못마땅하기 때문이었다.
그러한 목진의 기색을 눈치챈 아테나가 곧바로 입을 열었다.
“무림인이시니 불편하게 느끼실 수 있는 건 이해돼요. 하지만 불가피한 상황인 만큼, 가능하면 대협께도 협력을 고려해보시는 건 어떠신가요.”
“협력이라.”
“아무런 대비 없이 혈교의 공세를 막아내는 것보다는, 무림교류부로부터 최소한의 보호를 받으시는 게 편하실 테니까요.”
목진의 눈가가 꿈틀거렸다. 본디 무언가를 받는다면 그에 상응하는 것을 내어주어야 하는 것이 법도. 협력이라는 소리까지 해놓은 마당에 단순히 호의만 베풀 리는 없지 않은가.
“당연히 그 대가도 있겠지?”
하지만 그의 예상과는 달리, 아테나는 가만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뇨. 적어도 지금으로선 대협 일행에게 바라는 건 없어요.”
“‘지금으로선’······보험이라는 말씀이시네요.”
빠르게 아테나의 의도를 캐치한 순자가 말했다.
아테나는 솔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대로 무림교류부 내의 내사 작전이 문제없이 진행된다면 상관없겠지만, 상대는 혈교니까.”
그냥 혈교여도 내사의 성공을 백 퍼센트 장담할 수 없는데, 만약에라도 이면차원의 하이브마인드가 직접 개입한다면 상황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
목진과 순자는 현재로선 몇 안 되는 믿을만한 외부인이다. 그것도 군대를 끌고 오지 않는 한 대응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로 강한.
만에 하나라도 일이 틀어진다면 혈교와 극상성인 목진의 존재는 어떤 식으로든 큰 도움이 될 터. 아테나가 원하는 것은 바로 그때를 위한 것이었다.
아테나는 다시 목진을 돌아보며 물었다.
“어떠신가요, 대협. 이 정도면 대협께도 절대 부족한 제안은 아니라고 생각되는데요.”
하지만 목진은 그녀의 물음에 생각조차 않고 곧바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제안 자체는 나쁘지 않군. 허나 나는 관아를 믿지 않소.”
그는 아테나가 말하는 무림교류부의 보호라는 걸 손톱만큼도 믿지 않았다.
아무렴 세상에 믿을 놈이 없어 관의 보호를 믿을까. 현대 사회도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목진이 살던 시대는 지금보다 훨씬 더 공권력에 대한 불신이 큰 시대였다.
그러나 아테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녀는 목진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다시 물었다.
“무림교류부가 아닌 저 아테나를 믿는 건 어떠신가요.”
허. 아테나의 말에 담긴 진의를 파악한 목진의 눈이 이채를 띠었다.
“조정의 명을 거스르면서까지 일개 무부의 편을 들겠다고? 지금 내뱉은 말에 책임을 질 자신이 있소?”
“대협께서 인류와 현 체제에 심각한 위협이 되는 길을 걷지 않는다면요.”
아테나는 번뜩이는 목진의 눈을 그대로 받아내며 대답했다. 제 말이 결코 빈말이 아니라는 듯, 그녀의 목소리엔 충분한 냉정함이 담겨있었다.
정부에 대한 충성은 절대적이지만, 그렇다고 모든 명령을 절대적으로 따르는 건 아니다. 모든 일등 집행관들은 인류의 안위에 반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개인적인 판단으로 상부의 명령에 거부할 권한이 있었다.
비록 정치적 부담을 짊어지더라도, 일등 집행관이라는 권한이 닿는 한 목진 일행을 보호하겠다는 선언.
그 무게를 깨달은 목진의 표정 또한 진중히 가라앉았다.
“······그렇단 말이지.”
목진이 옆으로 손을 뻗었다. 마치 유령이 움직이기라도 한 듯, 한쪽에 놓아두었던 검집에서 소리 없이 뽑힌 검이 그의 손 안으로 빨려들어갔다.
목진은 탁자 위에 그의 검을 내려놓았다.
“하면 맹세하시오.”
“목진 님?!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생각지도 못한 목진의 행동에 화들짝 놀란 순자가 목진을 말렸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순자도 목진을 말릴 수 없었다.
“나는 맹세를 받아야겠다.”
관리가 아닌 개인으로서 약조하겠다면, 마땅히 그 목을 걸 각오를 보여야지. 목진이 스산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검에 대고 맹세하시오. 만일 그대가 맹세를 어긴다면 이 검이 그대를 찾아갈 것이외다.”
지난번 무림교류부의 이름으로 한 밀약과는 경우가 다르다. 당시에는 단지 원래 했을 일에 약간의 수고만 더하면 되었을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지금 아테나가 요구하는 약조는 일이 일이 잘못 틀어졌을 경우 그만큼의 부담을 지어야했다. 목진은 가벼히 그런 약조에 동의할 생각이 없었다. 그것도 관의 인물이라면 더더욱.
무릇 사람과 사람 사이의 약속이란 기본적으로 그만한 무게의 신뢰가 동반되어야 하는 법. 만일 신뢰가 부족하다고 한다면, 응당 그 무게를 채울 것은 목숨 뿐이지 않겠는가.
“······.”
서슬퍼런 목진의 요구에 아테나는 차마 대답할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그 순간 그녀의 머릿속을 가득 채운 것은 생명이라면 응당 가지고 있는 생존본능이었다.
그녀는 생각했다.
만약 눈앞의 사내가 그녀를 죽이고자 찾아온다면 과연 막을 수 있을까?
이성적인 판단은 일개 무림인 하나는 수많은 전함과 방어시설의 벽을 뚫을 수 없다고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본능은, 눈앞에 놓인 검 한 자루가 그녀의 심장을 꿰뚫을 것이라 말하고 있었다.
아테나는 자신을 꿰뚫어보는 듯한 목진의 눈을 보았다. 그녀는 그의 눈에서 검은 귀화가 흘러나오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절대고수라는 인종들이 같은 사람의 영역에 있는 자가 아니라는 게 이런 뜻이었구나.’
두려움이 거세된 채로 태어났기에 두려움은 느끼지 않는다. 그러나 그녀의 생존본능은 약속을 어겼을 때 그녀에게 죽음이 찾아오리라는 미래를 예언하고 있었다.
상념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가만히 검을 내려다보던 아테나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맹세하죠.”
“좋소.”
짤막하게 대담한 목진이 손을 휘젓자 테이프를 뒤로 감듯이 검이 검집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그러면 이야기를 계속하도록 하지.”
이제 제 역할은 끝났다는 듯 팔짱을 낀 채 몸을 뒤로 뺀 목진이 순자를 돌아보며 말했다. 이야기를 계속하라는 뜻이었다.
그 일등 집행관에게 대뜸 목을 걸라고 하다니. 순자는 조금 어처구니없다는 듯 목진을 잠시 흘겨보았다.
하지만 딱히 나쁜 이야기는 아니었다. 정식으로 협력을 하게 된 이상 이야기는 더 쉽게 풀릴 테니까.
“아까 저희가 어쩌다가 혈교의 하이브마인드와 마주치게 되었는지를 물어보셨었죠.”
그녀는 아테나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혹시 무영탑이라고 알고 계시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