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smic Heavenly Demon 3077 RAW novel - Chapter (270)
우주천마 3077 우주천마-271화(271/349)
40. 사면초가 No Ally (5)
40. 사면초가 No Ally (5) – 새로운 고수는 언제나 환영이야
순자의 예상대로, 그 이후의 이야기는 생각보다 원만하게 진행되었다.
“밑에 애들중에 무영탑을 쫓아다닌다는 애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긴 한데······. 설마 비자금 조성용 핑계가 아니라 진짜일 줄은 몰랐네요.”
목진이 무영탑의 주인이 되었다는 이야기에 아테나가 잠시 머리를 부여잡은 해프닝이 있긴 했지만, 그녀는 의외로 순순히 무영탑을 보호해 달라는 순자의 요청을 수락했다.
인류정부도 가지지 못한 로스트 테크놀로지를 보유하고 있는 기술의 보고라는 점은 물론 매력적이긴 하다.
하지만 지금 혈교가 인류정부를 집어삼키니 마니 하는 시점에 그런 게 중요할 리가 없지 않은가.
어차피 이면차원 추적이 가능한 특무부대를 데려오지 않는 이상 무영탑이 작정하고 도망치면 잡을 수도 없다는 것이 현실. 괜한 과욕을 부리다가 간신히 구축한 협력관계가 파탄나면 본말전도였다.
무영탑에 대한 미련을 깔끔하게 접은 아테나는 그 즉시 샌프란시스코 성계의 행정관을 호출했다.
“샌프란시스코 성계의 N-51구역에서 은폐장을 설치한 뒤 장기 기밀 임무를 진행할 예정이에요. 사흘 내로 경비조와 순찰조를 편성해서 민간인들이 드나들지 않도록 상시 호위하도록 하세요.”
– 예? 아니 그게 무슨······상부로부터는 아무 지침도 받지 못했습니다만.
“기밀 임무니까 정식 공문이 내려갈 리가 없겠죠? 어차피 상부에 문의해도 대답은 안 해줄 테니까 뭔가 이상이 생기면 나한테 직통 회선으로 보고하도록 해요.”
– 하지만 집행관님, 이건 너무 갑작스럽습니다. 못하겠다는 뜻이 아니라, 기밀시설을 호위할 만한 인선을 뽑으려면 저희 쪽에서도 준비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위험등급 E등급의 임무라서 주변에 피해를 줄 일은 없을 거에요. 은폐장과 자체 방어능력은 갖추고 있는 시설이니까 그냥 성계 순찰함대 수준으로 편성해서 민간인 통제만 확실하게 하면 행정관님 쪽에서 따로 신경 쓸 필요는 없어요.”
– ······네. 알겠습니다. 그러면 호위 기간은 얼마로 잡으면 좋겠습니까?
“장기 임무니까 오 년 정도로 잡고, 계속 갱신해 나가는 방식으로 해요.”
– 예. 집무관님.
허 참. 무영탑의 거취 문제를 아무렇지도 않게 통신 한 번으로 해결해버린 아테나를 보며 목진이 나직히 감탄을 흘렸다.
아직 현대 인류의 행정체계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지만, 목진에게 있어 인류정부의 성계 행정관이란 아무리 낮게 잡아도 한 성의 성주급은 되는 이였다.
단순히 숫자만 따지자면 최소 수천만 단위가 가뿐히 넘어가는 사람들과 그들이 살아가는 행성계 전체를 통치하는 것이 행정관인 만큼 고대시대의 황제 또한 감히 그 위세에 견주지 못할 터. 그런 이를 마치 하인 부리듯 하는 모습을 보고나니 목진은 새삼 아테나가 대단한 고관대작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괜히 모습이 드러나면 골치 아프니까 은폐장은 상시 전개상태로 해 둬야 할 거야.”
“네. 신경써 주셔서 감사해요.”
통신을 마친 아테나의 말에 순자가 가볍게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너무나도 태연하게 상부를 기만하는 그녀의 행동에 되려 목진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물었다.
“괜찮으시겠소? 조정에 대한 보고를 누락하는 것이 되오만.”
“상관없어요. 저희 권한이 허용되는 선이라서요.”
아테나가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일등 집행관의 능력과 인류에 대한 충성심에는 의구심을 가질 여지가 없는 만큼, 그들에게 주어진 권하는 상상 이상으로 넓었다.
무영탑의 일이 완전히 일단락된 것을 확인한 순자가 주머니에서 작은 데이터칩을 꺼내 내밀었다.
“이거 받으세요. 다른 사설 전뇌 네트워크에서 일어난 일로 변조한 혈교와의 접촉 로그에요. 어지간한 보안 전문가들은 알아채지 못하겠지만, 중앙정보부 클래스의 요원들은 변조된 로그라는 걸 알아볼 수 있으니까 아테나 님이 미리 언질을 넣어두셔야 해요.”
“고마워. 어차피 바로 사용할 물건은 아니니까 이쪽에서 적당히 손을 볼게.”
무영탑의 존재가 알려지는 건 목진 일행과 아테나 어느 쪽도 원하지 않는 일이다. 안드로이드와 유전자 조작 인간이 음흉한 미소를 공유했다.
“그러면 전 이만 돌아갈게요. 유익한 만남이었어요. 대협.”
“살펴 돌아가시오.”
목진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공손히 인사를 건네는 아테나를 다소 미지근한 태도로 배웅했다. 이야기 자체는 잘 풀리긴 했지만, 무림인으로서의 정체성 때문에 인류정부의 사람과 얽히는 것에 묘한 거부감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돌아가는 것은 아테나뿐만이 아니었다.
그녀가 떠나간 뒤, 잠시 자리를 비웠던 라이디가 돌연 천마신교로 돌아가겠다는 이야기를 꺼냈던 것이다.
“시조님, 갑작스레 이렇게 말씀을 드리게 되어서 송구스럽지만 소녀는 잠시 신교로 돌아가야 할 것 같아요.”
“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것이더냐?”
목진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의 성격상 예정된 일정이었다면 미리 언질을 주었을 텐데, 아무런 예고 없이 갑작스럽게 일행을 떠난다는 의사를 밝혔기 때문이었다.
라이디는 목진의 물음에 살짝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시조님께서 걱정하실만한 이야기는 아니에요. 저희가 무영탑에 있는 동안, 현 세대의 천······마가 폐관을 깨고 나왔다는 이야기를 들었거든요.”
천마라는 단어를 입에 담을 때 라이디의 입이 잠시 어물거렸다. 자신이 인정하는 유일한 천마인 목진의 앞에서 다른 이를 천마라고 지칭하는 것에 약한 거부감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개인적인 감정과는 별개로 라이디는 현 천마 위소하를 천마라고 지칭한 것을 정정하지 않았다. 당장 눈앞에 있는 목진부터가 지금 시대의 천마와 자신을 별개로 두었기 때문이었다.
‘천마라는 이름 자체는 인정하지만······.’
직위로서의 천마와 진정한 정체성으로서의 천마. 약간의 내적 갈등 끝에 라이디는 그 두 가지를 구분하는 것으로 스스로 합리화를 했다.
목진은 라이디의 말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흐음······천마라. 이야기는 들었다.”
천마 위소하.
이제 갓 스물이 넘은 나이에, 스물이 되기도 전 당대 천마신교의 고수들을 모두 쓰러트리고 천마의 자리를 이은 만년기재(萬年奇才).
어지간한 기사(奇事)들은 수도 없이 경험해 본 목진조차도 혀를 내두를 만큼 공상적인 이야기의 주인공이었다.
“젊은 나이에 벽을 넘는 이는 내 적잖이 보아왔다만, 젊다 못해 어린 나이에 그만한 경지에 오를 정도의 기재가 있을 줄은 몰랐지. 이 우주라는 곳은 참으로 넓은 곳이 아닐 수 없구나.”
목진은 가만히 과거에 마주쳤던, 천년기재(千年奇才)라 불리던 무인들을 떠올리며 말했다.
그가 천마신교를 이끌 때의 무림도 나이에 비해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초월적인 무위를 지닌 청년고수들이 기라성처럼 쏟아지던 시대였다. 아니, 아예 목진 자신도 그러한 청년고수들 중의 하나였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스물도 넘지 않은 나이에 화경의 경지를 넘어 현경의 경지에까지 닿았다니. 제아무리 천마신교와의 직접적인 접촉을 꺼리는 목진이라고 해도 그만한 천재라면 한 번쯤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목진의 기분을 짐작한 라이디가 약간 조심스러운 어조로 물었다.
“혹시, 만나보고 싶으신가요?”
“······아니.”
목진은 평소답지 않게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이내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가 그녀와 만나 신교에 이로울 것이 없는데, 잠깐의 충동에 휘둘릴 필요는 없는 노릇이 아니겠느냐.”
그는 무인이었지만, 동시에 천마신교의 가장 웃어른이었다. 목진은 자신의 작고 사적인 욕심으로 후대에 부담을 지워주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잡념을 털어버린 목진은 주제를 바꿔 라이디를 향해 물었다.
“하면 현 천마를 배알하기 위하여 돌아가는 것이냐?”
“어째선지 인연이 안 닿아서 못 만나봤거든요. 명색이 신교의 지존인데 그동안 인사 한번 못 드린 건 조금 그렇잖아요?”
어쩐지 민망한 듯, 라이디가 손가락으로 한쪽 머리카락을 꼬며 배시시 웃었다.
“아 물론, 혈교에 대한 이야기를 직접 보고할 필요가 있어서이기도 하지만요.”
어째서인지는 몰라도 혈교는 천마신교와 엮이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기에 큰 걱정은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동안의 역사에서 아예 사례가 없었던 것도 아니고, 최소한의 대비는 할 필요가 있었다. 누가 뭐라해도 천마신교는 이 우주강호에서 가장 큰 단일문파였으니까.
“글쎄. 그게 전부더냐?”
하지만 목진은 다 안다는 듯한 미소를 머금은 채 라이디를 향해 물었다.
“내 보기에 네가 돌아가는 건 그녀와 존의 대결을 보고자 하기 때문인 것 같다마는.”
목진은 기억하고 있었다. 부교주 존 로갈이 이년 전 폐관에 들어간 천마 위소하에게 도전하겠노라고 말했던 것을.
그의 말에 라이디가 짙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시조님은 못 속이겠네요.”
과거, 천마대전에서 패배했을 때 그녀는 천마의 자리에 대한 미련을 깔끔히 버렸었다.
하지만 그것이 그녀가 강해지는 것조차 포기했다는 뜻인가 하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굳이 천마의 길을 걷지 않더라고 강해지는 길은 많다. 그녀가 괜히 목진의 일행이 되기를 자처했겠는가.
라이디는 더욱 강해지고 싶었다. 처음 목진의 일행이 되었을 때도 그러했고, 지금 이 순간도 그러했다.
꺾고 싶은 사내. 그리고 언젠가 도전해보고 싶은 여인.
그 둘의 대결을 어찌 보고싶지 않겠는가.
“제 눈으로 똑똑히 보고 싶어요. 그 두 사람이 얼마나 앞서 있는지.”
‘나는 아직 그 둘보다 약해.’
그간 적지 않은 진보를 이루었음에도 그녀는 스스로를 평가하는 데 있어 무서울 정도로 냉정했다.
그러나 그녀는 초조해하지 않았다.
그녀에겐 아직 기회가 남아있었으니까.
‘그 심득(心得)을 완전히 얻을 수 있다면.’
반 년 전, 목진의 일검(一劍)에서 본 한 조각의 깨달음.
라이디는 아직 그것의 만분지 일도 제 것으로 소화시키지 못했다.
하지만 그렇기에, 그녀는 확신할 수 있었다.
언젠가 그 깨달음 전부를 제 것으로 만드는 순간, 비로소 그녀는 그녀의 존경하는 시조에게 가장 가까이 서게 되리라는 것을.
“기대되는구나.”
라이디의 미소 속에 섞인 끈질긴 집념과 열망을 엿본 목진이 마주 웃어보였다.
부교주 존 로갈조차 얻지 못했던 한 조각의 깨달음.
라이디 직스라는 여인이 그것을 얻을 수 있을지 없을지, 목진은 알지 못했다.
그는 다만 기대할 뿐이었다.
그와 무를 논할 자격을 갖춘 강자의 탄생을.
목진과의 작별인사를 마친 뒤, 라이디는 그 자리에서 계약이 종료된 낭호교 삼자매를 고용해 천마신교 본단으로 떠났다.
이제 일행에 남은 건 목진과 세령, 그리고 순자 뿐이었다.
세 사람은 서로를 돌아봤다. 한동안 다른 일행들이 껴 있다 보니 다시 셋만 남자 묘하게 어색한 느낌이 드는 것도 같았다.
크흠. 어색함을 지우려는 듯 짐짓 헛기침을 한 목진이 입을 열었다.
“······잠시의 외유가 무척이나 다사다난했구나.”
“······정신 없는 한 주였죠.”
“······앞으론 괜한 일 만들지 말고 얌전히 있어야겠어요.”
세령과 순자가 작게 한숨을 쉬며 목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황보세가에 가기 전에 잠시 숨을 돌리려 했을 뿐인데, 이렇게 일이 복잡하게 꼬여갈 줄이야.
다음에는 이러지 말자. 암묵적인 맹세가 세 사람 사이에서 이루어졌다.
세령이 짝 하고 박수를 쳐서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그럼 이제 원래 해야 할 일로 돌아가죠.”
“오냐. 순자야, 시간은 부족하지 않겠지?”
“도착 자체는요. 왕언니, 도착해서 미리 준비할 시간이 하루밖에 없는데 괜찮으신가요?”
“뭐, 이 난리를 거쳤는데 하루나 남았으면 감지덕지지. 그리고 안 괜찮다고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잖아?”
순자의 물음에 세령이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내심 긴장하고 있으면서 겉으로는 능청스럽게 구는 세령의 모습에 목진이 소리 없는 웃음을 흘렸다.
“그래야 우리 왕언니죠.”
그럼 이제 출발합니다. 일행 모두가 자리에 앉은 것을 확인한 순자가 우주선의 속력을 높였다.
목표는 제남성계(齊南星界).
황보세가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