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smic Heavenly Demon 3077 RAW novel - Chapter (276)
우주천마 3077 우주천마-277화(277/349)
41. 강철군주 Lord of Iron (6)
41. 강철군주 Lord of Iron (6) – 뭔 개소리야.
철의 폭풍이 멎었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비도들이 대련장 바닥을 나뒹굴었다. 그 중심에는 두 사람이 서 있었다.
피범벅이 된 채 전신을 난자당한 황보륭. 그리고 오른쪽 어깨가 완전히 박살이 나버린 당세령.
숨이 닿을 듯 가까이 붙은 두 사람 중 한쪽이 풀썩 쓰러졌다.
쓰러진 쪽은 황보륭이었다.
세령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멀쩡한 왼손에 들린 비도를 고쳐 쥐었다. 피투성이인 비도의 끝에서 더운 선홍색 핏물이 뚝뚝 떨어졌다.
“······.”
세령은 비도를 든 채 쓰러진 황보륭을 물끄러미 내려다봤다. 서늘한 그녀의 눈동자 속에 담긴 감정이 무엇인지는 헤아려볼 것도 없었다.
의식을 잃은 듯 쓰러진 황보륭에게서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아직 숨이 끊어지지는 않은 듯, 가느다란 숨소리와 함께 그의 등이 미세하게 오르내렸다.
승부의 결과는 명확했다.
그리고 이제 그 끝마무리를 지을 때였다.
이것은 서로의 무공을 겨루는 대련이 아닌, 목숨을 건 생사결이었으니까.
둘 중 하나의 목숨이 끊어지지 않으면 생사결은 끝나지 않는다. 세령은 우반신에서 느껴지는 고통을 애써 참으며 손에 든 비도를 치켜들었다.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내공을 끌어모아 만든 검기. 위력은 보잘것없으나 정신을 잃은 황보륭의 목숨을 거두기에는 충분했다.
지금까지 잠자코 대결을 지켜보고 있던 황보준의 고함이 터져나온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멈추시오-!”
우렁우렁한 목소리와 함께 황보준의 몸이 대련장 안으로 쏘아졌다.
목진은 그런 그의 뒤를 따라 몸을 날리며 눈가를 찡그렸다.
‘이 치들도인가.’
대저 생사결이라는 것은 그 결착이 지어지는 순간까지 외인의 개입을 엄격히 금하는 것이 불문율이거늘, 지난 하북팽가 때도 그렇고 정파라는 것들이 이리도 졸렬한 모습을 보인다는 말인가.
하북팽가 때는 혈교의 고독이 심어져 있었으니 참작의 여지가 있긴 하나, 이번은 다르다. 목진은 이미 황보륭과 황보준 두 사람의 몸에 고독이 없음을 확인한 뒤였다.
굳이 참작을 해줄 만한 여지가 있다고 한다면, 다급히 대련장 안으로 뛰어드는 황보준의 기세에 조금의 살기도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 정도일까. 하지만 생사결 중에 난입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지탄의 여지는 충분했다.
아테나와의 거래를 생각하면 이와 같은 돌발행동을 굳이 사전에 방지할 필요까지는 없다.
하지만 나름 멀쩡한 상태였던 팽상원 때와는 달리 지금의 세령은 간신히 제 몸을 가누고 있는 것조차 힘겨워하는 상황. 목진은 혹여 황보준이 세령을 공격할까 주의 깊게 살폈다.
‘혹여 살수(殺手)라도 펼치려 한다면······.’
그때는 그가 즉시 개입해서 현 가주인 황보준의 목숨 또한 거두리라.
그러나 황보준은 세령을 향해 출수하지 않았다. 그는 다만 내공 한 줌 실리지 않은 팔을 뻗어 황보륭의 목숨을 끊으려 하는 세령의 비도를 덥썩 움켜쥐었다.
“이 시발 진짜······.”
하북팽가 때에 이어 두 번째다. 와락 얼굴을 일그러트린 세령의 입에서 거친 욕설이 튀어나왔다. 만약 조금의 기운이라도 남아있었다면, 대뜸 황보준을 향해 살초를 날렸으리라.
세령은 홱 고개를 돌려 어느새 그들의 옆에 서 있는 목진을 돌아봤다.
지금 이 새끼를 당장 때려잡지 않고 뭘 하고 있냐. 세령으로부터 무언의 질타를 받은 목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음.”
황보준이 명백히 개입하는 모습을 보였으니, 더 이상의 명분은 필요치 않은 상황. 이제는 손을 써 그를 떼어내도 문제될 게 없었다.
하지만 목진이 무어라 입을 열기 전에, 황보준이 먼저 입을 열었다.
“잠시, 숙부님을 해하기 전에 내 이야기를 들어주시오.”
시종일관 마음에 들지 않다는 티를 내던 이전의 태도와는 사뭇 다른, 다급하기 그지없는 목소리였다.
단단하게 비도를 움켜쥔 황보준의 손에서 피가 주르륵 흘러나왔다. 단련했다고는 하나, 짧지 않은 시간동안 검기를 맨손으로 잡고 있던 탓에 손아귀가 찢어진 것이다.
그러나 황보준은 손바닥에서 느껴지는 화끈한 고통에도 불구하고 그런 기색을 내보이지 않았다. 애초에 그가 내공을 끌어올리지 않은 건 적의가 없다는 것을 어필하기 위함이기 때문이었다.
그런 황보준을 보며 세령이 시니컬한 목소리로 비꼬았다.
“왜, 목숨이라도 구걸하려고?”
“······그렇소.”
하. 지나치게 솔직한 황보준의 대답에 세령이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설마설마 하긴 했지만, 명색이 대문파라는 곳의 수장이 저렇게 염치가 없는 소리를 내뱉을 줄이야.
그녀는 말 같지도 않은 소리라는 듯 경멸을 담은 목소리로 차갑게 말했다.
“생사결이라는 게 언제부터 그렇게 가벼워졌지? 추한 짓은 그쯤 하지 그래.”
“그 말이 옳다. 세가를 짊어지는 가주라면 그에 걸맞은 모습을 보여야 하느니.”
세령의 말에 맞장구를 친 목진이 인식하기도 힘들 정도로 빠르게 황보준의 혈을 짚었다. 힘이 빠진 황보준의 팔이 힘없이 단검을 놓고 축 늘어졌다.
이번에야말로 이 생사결의 종지부를 찍을 때다. 세령이 다시금 비도를 든 손을 위로 치켜든 순간이었다.
“-구명지은(救命之恩)을 입혀준 은인에게 죽음으로 보답할 참이오!”
별안간 터져나온, 울분 섞인 황보준의 고함에 세령의 손이 덜컥 멎었다.
그녀의 고개가 삐걱이며 황보준을 향해 돌아갔다. 세령의 얼굴에는, 지금 그녀가 도대체 무슨 소리를 들은 것인지 조금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한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이냐.”
목진이 물었다. 그 또한 마찬가지로, 세령과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결국 이 이야기를 꺼내고 말았구나. 황보준은 목진의 물음에 질끈 눈을 감았다.
그런 그를 향해, 치켜든 손을 내린 세령이 얼떨떨함마저 느껴지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야, 내가 지금 엄청 이상한 소리를 들은 거 같은데.”
구명지은? 내가 이 작자한데? 세령이 들고 있는 비도의 끝으로 쓰러진 황보륭을 가리키며 말꼬리를 올렸다. 보통 이런 소리를 들으면 화가 치솟아야 정상인데, 하도 얼토당토 않은 소리를 들으니 되려 황당함이 먼저 느껴질 따름이었다.
“너는 지금 네가 내뱉은 말의 무게를 자각하고는 있느냐?”
되려 분노를 내보이는 쪽은 세령이 아닌 목진 쪽이었다. 목진은 날카로운 눈으로 황보준을 노려보며 스산한 살기마저 느껴지는 목소리로 으르렁거렸다.
현대 무림에서도 결코 가볍게 다루는 사안은 아니지만, 목진이 살아가던 고대 무림에서 은원만큼 중대한 가치는 많지 않다.
그는 한 줌의 은혜와 원한을 위해 삶과 목숨을 바치는 것이 당연시되던 시대를 살았다. 그런데 그런 그의 앞에서 알량한 세 치 혀로 무인의 은원을 욕보이는 모습을 보이니 어찌 피가 거꾸로 솟지 않으랴.
“······.”
하지만 목진의 살기어린 압박에도 불구하고, 황보준은 겁먹거나 물러서지 않았다.
그 대신, 그는 침통한 얼굴로 고개를 떨구며 입을 열었다.
“······당장의 면피를 위해 내뱉은 헛된 말이 아니오.”
그는 쓰러진 황보륭을 돌아보며 잠시 입술을 달싹이다가, 이내 결심이 선 듯 깊게 심호흡을 한 뒤 입을 열었다.
“숙부께선 논할 가치가 없는 일이니 함구하라 말하셨으나, 그분께서 그대의 목숨을 구명해준 것은 분명한 사실이니 나는 그대가 진실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오.”
“하······너 지금 내가 왜 복수행을 하는지는 알고 그딴 개소리를 지껄이는 거냐?”
세령이 황보륭을 포함해 복수행의 대상으로 지목한 네 사람은 과거 사천당가를 희생양으로 내몰았던, 당대 오대세가를 이끌던 수장들이다.
만약 부모님의 안배가 아니었다면 세령 자신은 결코 살아남지 못했을 터. 그런데 목숨을 구해준 은인이라고? 그녀에게 있어 그들 네 사람은 목숨을 노린 원수면 원수였지 절대 은인이 될 수는 없었다.
하지만 황보준은 그녀의 말에 대답하는 대신, 짤막하게 한 사람의 별호를 입에 담았다.
“불사급행(不死急行).”
순간, 그 단어를 들은 세령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너, 그 이름은 왜 꺼내는 거야.”
불사급행 로라 크로스. 우주강호에서도 꽤나 명망 있는 낭인용병으로, 무공 자체는 별 볼 일 없으나 신들린 우주선 조종 솜씨와 함께 어떤 위험한 의뢰에서도 반드시 살아 돌아오는 것으로 유명한 인물이다. 당연히 황보준 정도 되는 위치에 있다면 한 번쯤은 그의 존재를 들어봤으리라.
그러나, 적어도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그 이름을 꺼내는 데에는 다른 의미가 있었다.
가령.
오래 전 불타는 사천당가 본성에서 어린 당세령을 구출해 삼극회에 맡긴 인물이 바로 그녀라는 것을 알고 있다거나 하는.
뭔가 자신이 알지 못하는 뒷사정이라도 있는 걸까. 평소와는 달리 동요하는 모습을 숨기지 못하는 세령의 반응에 목진은 잠시 살기를 거둔 채 잠자코 팔짱을 꼈다.
황보준은 피가 흐르는 손을 지혈하지도 않은 채 세령의 물음에 반대로 되물었다.
“의문을 가져본 적 없소? 사천당가의 그 누구도 알지 못한 인류정부의 행성폭격을 일개 혈족에 불과한 그대의 부모가 알고 있었다는 것이?”
“······.”
황보준의 물음에 세령이 입을 꾹 닫았다.
생각해 보면 이상했다. 현존하는 모든 직계 혈족을 몰살시키기 위해 철저한 보안을 지켰을 텐데, 그리 대단한 위치에 있던 것도 아닌 그녀의 부모가 미리 인류정부의 습격을 대비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됐으니까.
그런 세령을 바라보며, 황보준은 기왕 입 밖에 내뱉었으니 전부 털어놓겠다는 듯, 건조하지만 빠르게 말을 이어나갔다.
“불사급행의 값비싼 의뢰비를 중산층에 불과했던 그대의 부모가 지불할 수 있었을 거라 생각하시오? 삼극회가 흑도에서 이름 높은 육적 중 하나라 하나, 그리 어렵지 않게 오대세가의 눈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은 어째서라 생각하오? 철저하게 후환을 남기지 않는 제갈세가에서 그대의 정체를 파악했음에도 손을 쓰지 않았던 이유는? 그대가 성도 갈지 않은 채 대놓고 낭인용병 일을 하며 돌아다녔는데도 멀쩡히 활동할 수 있었던 것이 단순히 운이 좋아서였다고 생각하시오?”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황보준의 말에 세령의 눈에 숨길 수 없는 동요가 피어올랐다.
그녀라고 그러한 의문 한 번을 가져본 적이 없었겠는가, 다만 도무지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없었기에 깊이 고민하지 못했을 뿐.
그런데 지금 황보세가의 가주라는 자가 그때의 일을 들먹이며 오랜 원수인 줄 알았던 이에게 은인이라는 말을 하고 있다.
세령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바보가 아니었다.
황망한 표정을 숨기지 못한 세령이 떨어지지 않는 입술을 억지로 움직였다.
“황보세가에서······내 뒤를 봐줬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