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smic Heavenly Demon 3077 RAW novel - Chapter (277)
우주천마 3077 우주천마-278화(278/349)
41. 강철군주 Lord of Iron (7)
41. 강철군주 Lord of Iron (7) – 이것이 무림이다! (현실편)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숙부께서 그리하셨소.”
도대체 어째서? 황보준의 대답을 들은 세령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오직 그 의문뿐이었다.
황보준은 그런 그녀의 의문을 짐작했다는 듯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대는 알지 못하겠지만, 숙부님과 그대의 부친은 소속을 떠나 돈독한 사이였소. 거의 부자지간에 가까웠지.”
“뭐······?”
상상조차도 해본 적 없는 이야기였다. 세령은 황보준의 말에 뒤통수를 세게 한 대 얻어맞은 표정을 지었다.
“그대의 부모는 폭주하고 있던 사천당가 속에서 냉정하게 사태를 꿰뚫어 볼 수 있던 몇 안 되는 소장파였소. 인류정부의 개입을 우려한 그대의 부친은 은밀하게 숙부께 연락하여 만일을 대비한 보험을 들려 했었고.”
당시 인류정부의 사천당가 일소 작전에 대해서 알고 있던 것은 미리 각자의 세가 혈족들을 단속했어야 했던 네 지도자들 뿐.
인류정부가 사천당가를 세상에서 지워버릴 거라는 것을 알고 있던 황보륭은 은밀히 불사급행에게 의뢰를 넣어 세령과 그녀의 부모님을 탈출시키려고 했던 것이다.
“비록 계획대로 일이 풀리지 않아 그대의 부모는 탈출하지 못했으나, 다행히도 그대는 살아남을 수 있었지.”
“······.”
“숙부께서는 그대의 부친을 구하지 못한 것을 크게 안타까워 하셨소. 그리고 속죄로서 당신의 권한과 인맥을 동원해서 미숙하기 그지없던 그대를 지켰지.”
혹시 남아있을 사천당가의 직계들을 색출해 인류정부에 신고하는 다른 세가들의 감시망에서 삼극회를 빼내고, 세령의 존재를 알아챈 제갈현과 담판을 지어 그녀에게 직접 살수를 쓰지 않도록 약조를 얻어냈다.
당시 차기 가주로서 승계를 위해 그의 곁을 따르던 황보준은 두 눈으로 직접 그 모든 일들을 목격했다.
가장 존경하는 숙부, 철군자 황보륭이 그 아무것도 아닌 양보를 얻기 위해 무엇을 희생하였는지.
배신자 주제에 뻔뻔하다 손가락질하는 세인들의 비난을 받아내며 삼극회를 감시한다는 명목으로 직접 방문한 그는 정파 무인으로서의 명예를 잃었다.
친우이자 평생 동안 우열을 가리지 못한 라이벌, 승룡제 제갈현에게 고개를 숙이며 세령에게 손을 쓰지 말라 부탁할 때는 자존심을 잃었다.
그뿐인가. 황보륭은 배신의 대가로 사천당가의 세력권 일부를 받아낸 뒤에도 명목상으로만 관리할 뿐 세가의 영역으로 편입시키는 일에는 미온적이었다.
세가의 일원들은 그런 황보준의 결정을 두고 ‘자신의 알량한 자기위안을 위해 세가의 번영을 저버린다.’라며 불만의 목소리를 높였다.
개인적인 인망과는 별개로 세가 혈족들로부터의 지지기반을 잃은 황보륭은 황보준에게 가주의 자리를 넘긴 채 실권에서 멀어졌다.
황보준은 물었다. 어째서 그렇게까지 해야 하느냐고. 단순히 죽은 당씨 부부에 대한 속죄로는 지나치지 않느냐고.
그에 황보륭은 답했다.
정파답지 못한 일을 했기 때문이라고.
그것은 단순히 당씨 부부에 대한 속죄일 뿐만 아니라, 그가 배신하여 멸문한 사천당가에 대한 속죄였던 것이다.
“개소리······.”
일그러진 세령의 입술 사이로 거친 욕설이 흘러나왔다.
“개소리 집어치워. 방금 싸운 거 못 봤어? 그렇게 날 지키겠다는 양반이 진심으로 날 죽이려고 했는데? 그게 말이 되는 소리······.”
“생사결을 청한 건 당신이지 않소!”
황보준이 세령의 말을 끊고 거칠게 소리쳤다.
“당신이 조금 전 말하지 않았소이까? 생사결은 그리 가볍게 논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말이오. 당신은 사천당가에 대한 배신을 명분으로 숙부님에게 생사결을 신청했고, 그 사실을 일평생 수치스럽게 여기시던 숙부님은 그것을 거절할 수 없으셨소.”
황보준이 끓어오르는 분노를 삭이는 듯 억눌린 목소리로 세령을 노려보며 말했다.
“숙부께서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위대한 무인이시오. 한낱 사사로운 정리 따위에 얽매여 그대에게 손대중을 했어야 한다는 참람된 모욕은 부디 입 밖으로 꺼내지 마시길 바라오.”
고요히 그녀를 노려보는 황보준의 눈동자 속에 담긴 감정.
그것은 원망이었다.
존경하는 숙부 황보륭이 스스로의 입지조차 희생하며 지키려 했던 아이가, 아무것도 알지 못하면서 증오의 눈으로 복수를 입에 담으며 제 은인의 목숨을 끊으려 한다.
그것이 그녀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황보준은 그녀를 향한 원망을 지울 수가 없었다.
세령은 그제야 황보준이 왜 그리도 자신을 보며 싫은 기색을 내보였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그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아니, 믿고 싶지 않았다.
만약 황보준의 말이 사실이라고 한다면, 그녀는 오대세가의 위협으로부터 십수 년 동안 자신을 지켜주었던 유일한 아군을 줄곧 증오해온 것도 모자라 마침내 제 손으로 죽이려고 했던 게 되니까.
순자와 목진을 만나기 전까지 십수 년. 그 긴 세월 동안 그녀는 언제나 혼자였다.
진정 믿고 등을 맏길 수 있는 아군이나 동료 따위는 없다. 그건 비단 그녀뿐만 아니라 낭인업계를 떠도는 낭인들 모두에게 해당 되는 이야기였다.
때문에 세령은 순자와 목진에게 유독 애착을 느끼고 있었다. 그들이야말로 그녀가 언제나 바래마지않던 소중한 동료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쩌면, 황보륭이 그런 그녀의 아군이었을지도 모른다니. 그렇다면 평생 증오를 품고 복수의 칼을 갈던 자신의 삶은 뭐가 된다는 말인다.
“그럴 거였으면······.”
세령이 간신히 중얼거리듯 입을 열었다. 스스로는 깨닫지 못하고 있었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혼란스러움으로 인해 작게 떨리고 있었다.
제 마음속 깊은 의구심을 애써 무시하며, 그녀는 생각했다.
황보준의 말이 모두 사실은 아닐 거라고.
어쩌면 일부는 사실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과연 그가 자신들에게 유리하도록 교묘하게 사실을 왜곡하지 않았으리라는 보장이 있을까?
저들은 적이고, 믿을 수 없는 이들이다.
고작 말 몇 마디로 사그라들기엔, 한평생 키워 온 증오의 불길은 결코 작지 않았다.
세령은 여전히 증오와 분노를 품은 채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그럴 거였으면 왜 사천당가를 버렸지? 그토록 부끄러워할 일이었으면 처음부터 하지 않았으면 될 일이었잖아······!”
“-그대가 뭘 안다고!”
황보준이 거친 포효를 터트렸다. 불끈 쥔 그의 주먹 사이로 터진 상처에서 붉은 피가 흘러나왔다.
“코흘리개에 불과했던 그대는 모르겠지! 광기에 물든 사천당가가 얼마나 이 무림에 위협적이었는지를! 우리가 어떤 심정으로 수천 년을 함께한 형제와 같은 그들을 쳐냈었는지 단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본 적 있나?!”
어쩔 수 없었다.
그들은 항상 그리 말했다.
그러나 그것이 단순한 핑계였는가?
아니. 결코 그렇지 않았다.
언젠가 세령이 복수행을 선포하며 말했듯이, 사천당가의 멸문은 필연적이었으니까.
자세한 내막을 알지 못하는 외부인에게 귓동냥으로 과거의 일을 들은 세령과는 달리, 황보준은 사천당가가 축출되던 당시에도 황보세가의 무인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폭주하는 사천당가가 얼마나 위험한 존재였는지.
괜히 무림에 개입하는 것을 꺼리는 인류정부가 고대로부터 이어진 명문정파를 행성채로 불태워버리는 초강수를 둔 게 아니었다.
숨을 몰아쉬며 간신히 흥분을 가라앉힌 황보준은 세령을 바라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 누구도 당시의 사천당가를 멈춰 세울 수 없었소. 그들을 멈출 방법은 오직 그들의 목숨을 끊는 것뿐이었지.”
제 가문의 명맥을 보전하려는 생존욕구가 가장 우선했음은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만약 반드시 사천당가의 명맥을 잘라내야 한다면, 그 업을 짊어지는 것은 다른 누군가가 아닌 나머지 오대세가의 몫이 되어야만 했다.
그래서 그들은 그 업을 짊어졌다.
때문에,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당사자에겐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었다.
“그딴 뒷사정에는 관심 없어.”
세령이 말했다. 얼음장처럼 차가운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는 더 이상 떨리지 않았다.
그래, 솔직히 말해서 상상도 못 했던 충격적인 진실에 잠시 흔들리긴 했다.
하지만 황보준의 마지막 말을 들었을 때, 세령은 깨달았다.
그놈의 뒷사정이고 나발이고 간에, 결국 가장 중요한 건 바뀌지 않았다는 것을.
“당신네들 구질구질한 핑계를 내가 왜 이해해줘야 하는데?”
그들이 얼마나 비극적인 감성을 품고 사천당가의 뒤통수를 때렸는지는 그녀의 알 바가 아니었다.
애초에 그녀가 복수심을 품은 이유는 그리 복잡한 게 아니었다.
“뭐가 어쨌건 너네들이 배신한 건 사실이잖아. 그럼 책임을 져야지.”
시작을 함께했던 주제에 희생양을 내밀고 모르는 척 하면 끝인가?
그런 건 용납할 수 없다. 희생양이었던 그녀에겐 끝까지 그들의 책임을 물을 정당한 권리가 있었다.
“그래서, 그대의 은인을 기어코 죽이실 참이오?”
황보준이 다시 물었다.
잠시 침묵하던 세령이 입을 열었다.
“······못 할 이유는 없지.”
“어찌······!”
멈추시오. 희미한 목소리가 울컥 역정을 내려는 황보준의 말을 가로막았다.
목진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두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한 곳으로 향했다.
전신에서 피를 흘리고 있는 노고수, 철군자 황보륭이 그곳에 있었다.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처럼 희미한 생기. 하지만 황보륭의 안광은 그 어느 때보다도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숙부님······!”
“내 멈추라 말했소이다.”
작지만 분명한 목소리가 황보준의 입을 다물게 했다. 황보세가의 태상가주, 철군자 황보륭의 말에는 그만한 위압감이 있었다.
“그녀의 말이 옳소. 사문의 일에 어찌 개인의 사사로운 연을 논하겠소이까.”
조용히 조카를 꾸짖은 황보륭이 이번에는 세령을 돌아봤다.
“읏······.”
황보륭을 마주한 세령의 몸이 움찔 떨렸다.
기세 좋게 개인의 은원에 연연하지 않고 복수행을 완수할 거라고 선포하긴 했으나, 막상 깨어난 황보륭을 마주하니 마음의 동요를 숨기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황보륭은 흔들리는 그녀의 심리를 이용하려 들지 않았다.
그 대신, 그는 죽어가는 몸으로 세령을 향해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실례하였소. 본노의 가르침이 미욱하여, 후계에게 제대로 된 가주의 자세를 가르치지 못하였지.”
담아두어야 할 말, 그리고 입 밖에 내야 할 일을 구분하는 것이 아직 미숙하다오. 황보륭이 가쁘게 숨을 내쉬며 덧붙였다.
세령이 물었다.
“당신이 그동안 내 뒤를······봐줬다는 게 사실이야?”
그렇소. 황보륭은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세령의 눈이 크게 벌어졌다.
그러나 그녀가 무어라 말을 꺼내기도 전에, 황보륭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러나 그건 중요치 않소.”
그 단호한 한 마디가 세령의 동요를 가라앉혔다.
“사사로운 은원이 있는지 없는지는 문제가 되지 못하오.”
황보륭은 당장 죽어도 이상할 게 없는 몸을 한 채로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세령이 찌른 그의 단전에서 붉은 핏덩이가 울컥거리며 흘러나왔다. 전신에서 지독한 고통이 느껴지고 있을 것임이 분명함에도, 그는 신음 한번 흘리지 않았다.
“승부는 났으나, 생사결은 아직 끝나지 않았지 않소.”
그는 차분히 가라앉은, 그러나 잔불과도 같이 타오르는 눈으로 세령을 바라봤다.
“나는 패배했지. 그러니 무슨 일이 있어도 그대는 지금 이 자리에서 내 목을 베어야 하오.”
이번에는 가쁜 숨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의 얼굴은 기이하리만치 평온했다. 그것이 죽음 직전에 생기가 돌아오는 회광반조(回光返照)의 현상임은 그 자리의 모두가 알고 있었다.
세령은 황보륭의 말에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째서 그렇게까지······.”
“그것이 절차니까.”
그녀는 황보륭의 눈을 바라보았다.
지독한 무림인의 눈이었다.
“스스로 쌓은 업을 짊어지지 않으면 그 은원의 사슬은 후대까지 이어지는 법이외다.”
세령은 문득, 이 생사결의 결과를 온 강호가 똑똑히 목격해야 한다는 황보륭의 말을 떠올렸다.
그것은 그녀를 공개처형하겠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승패를 떠나, 어떤 식으로든 과거의 은원에 종지부를 찍겠다는 의미였다.
“어떤 이유가 있건, 내가 사천당가를 배신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오. 그 책임을 묻는 건 그대의 권리일 뿐 아니라 의무이기도 하지.”
나는 내 의무를 다할 테니, 그대는 그대의 의무를 다하시오.
그 말에 세령은 더 이상의 대화는 무의미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담담한 눈으로 일련의 대화를 지켜보던 목진에게 불쑥 손을 내밀었다.
“······검 좀 빌려줘요.”
그녀의 목소리는 더 이상 흔들리지 않았다. 목진은 말없이 허리춤의 검을 풀어 세령에게 건넸다.
스르릉. 유달리 차갑게 들리는 소리를 배경으로 세령은 검을 뽑았다.
그녀는 황보륭을 향해 검을 겨누었다.
사사로운 감정은 한 줌도 담기지 않은, 무림인의 눈.
두 사람의 눈은 마치 거울을 마주한 것처럼 닮아있었다.
세령이 물었다.
“남길 말은?”
황보륭은 그제야 황보준을 돌아보았다.
자랑스러우나 아직은 미숙한 조카. 그러나 그 미숙함은 시간이 채워주리라.
그는 후대의 가주를 향해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옛 은원은 이 늙은이가 가져가오. 그러니 세가를 잘 부탁드리오.”
“······.”
황보준은 그가 보일 수 있는 최고의 존경을 담아 고개를 숙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황보륭이 다시 세령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이제 끝을 내라는 의미였다.
세령은 한껏 검을 끌어당겼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줄곧 목구멍에 맴돌던 속마음을 내뱉었다.
“······고마웠어. 하지만 미안하진 않아.”
황보륭은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듯 빙긋 웃음지으며 말했다.
“그것이 무림(武林)이오.”
세령은 망설임 없이 그의 심장을 향해 검을 내질렀다.
그렇게 두 번째 은원이 매듭지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