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smic Heavenly Demon 3077 RAW novel - Chapter (278)
우주천마 3077 우주천마-279화(279/349)
41. 강철군주 Lord of Iron (8)
41. 강철군주 Lord of Iron (8) – 우린 아무 말도 안 했는데······?
“······.”
생명이 빠져나간 철군자 황보륭의 몸이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세령은 피 묻은 검을 든 채, 우두커니 그의 주검을 내려다보았다. 온갖 감정들이 뒤섞여 소용돌이치고 있는 그녀의 눈은 복잡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승자는 당세령. 이로서 생사결이 종료되었음을 선언하노라.”
목진은 담담히 그녀의 승리를 선언했다. 세령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봤다.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짙은 갈색 눈동자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고 있었다.
거울처럼 그녀 자신을 비추는 눈동자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세령은 힘겹게 입을 열어 물었다.
“이게, 맞나요?”
목진이 대답했다.
“그 답은 내게서 구할 수 없는 것이다.”
지독히도 무감정한 목소리였다. 그리 말한 목진은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듯 굳게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말할 줄 알았어요.”
세령이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 위로라도 좀 해줬으면 싶었건만, 이런 면에선 정말로 한결같은 양반이었다.
사실 세령 스스로도 이미 알고 있었다. 설령 목진이 위로를 해준다 한들 지금의 그녀에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을 거라는 것을 말이다.
자신의 물음은 그저 미숙함에서 비롯된 어리광에 지나지 않는다. 그걸 자각한 세령은 쓰게 웃으며 목진을 향해 검을 건넸다.
“여기요.”
그런데 그렇게 검을 건네니 별안간, 꾹 닫혀있던 목진의 입이 다시 열렸다.
“강호에는 선악(善惡)이랄 것이 없느니라.”
“······네?”
그가 무언가를 더 말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세령이 두 눈을 깜박였다.
목진은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여전히 무감정한, 그러나 어쩐지 온기가 느껴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옳음과 그릇됨의 기준이 모호하다면 그를 명확히 정의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자기 자신뿐이지.”
그는 세령의 손에서 검을 받아들었다. 곧게 뻗은 검신은 온기가 가시지 않은 피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허나 힘이 없다면 옳고 그름을 정의한다 한들 공허하기만 할 뿐이니, 무릇 무인(武人)이란 무(武)로 말미암아 자신의 길을 관철하는 사람(人)을 뜻하는 말이다.”
그리 말한 목진이 검을 한 차례 털어냈다. 회색의 바닥을 붉은 핏방울들이 수놓았다.
“그렇게 각자의 길을 걷는 무인들은 한 그루의 나무요, 그러한 나무들이 무수히 모여 숲을 이루게 되니.”
핏방울 하나 남아 있지 않은 검을 검집에 집어넣은 목진이 마저 말을 이었다.
“그 숲을 가리켜 이르길 무림(武林)이라.”
알겠느냐? 목진이 검지를 들어 세령을 가리켰다.
“그렇기에 답은 네 스스로가 구해야만 하는 것이다.”
“······.”
세령은 그가 한 말을 가만히 곱씹었다. 어찌 보면 매정하기 그지없는 말이었으나, 그 말은 지금의 그녀가 가장 필요로 하는 조언이었다.
잠시 입을 다물고 있던 그녀가 목진을 향해 물었다.
“······아저씨, 미안한데 순자랑 같이 마무리를 좀 해줄 수 있어요? 먼저 우주선으로 돌아가려고요.”
어깨가 좀 아파서요. 세령이 만신창이가 된 제 어깨를 가리키며 말했다.
반 정도는 핑계였다. 머리가 아플 정도의 고통이 밀려오고 있던 건 분명 사실이었지만, 지금 그녀에게는 혼자 시간일 정리할 시간이 더 필요했다.
“음······. 부상이 제법 위중해 보이는데 괜찮겠느냐?”
목진이 걱정스레 물었다. 어깨가 완전히 으스러졌으니, 그의 시대였다면 아마 평생 검을 들지 못하는 불구가 되었을 정도로 중한 부상이었으니까.
물론 그것은 고대의 기준이긴 했지만 말이다.
“시간만 충분하면요.”
적잖은 우려가 담긴 목진의 물음에 세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깨가 완전히 박살나 버리긴 했지만, 하북팽가 때 입은 부골갈녹처럼 치명적인 부상도 아니지 않은가.
이 정도의 부상은 시간이 문제일 뿐 치료 자체는 어렵지 않다. 세령의 말에 목진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래. 그렇다면 먼저 가서 상처를 잘 돌보거라.”
“부탁해요.”
가볍게 고개를 숙인 세령이 비척거리며 홀로 대련장을 나섰다. 그녀가 나간 입구를 가만히 바라보던 목진의 옆에서 황보준의 목소리가 들렸다.
“무림······예전에 숙부님께서도 비슷한 말씀을 하신 적이 있었소.”
목진이 고개를 돌렸다. 황보준은 무릎을 꿇고 쓰러진 숙부의 주검을 바르게 정돈하고 있었다. 평온히 눈을 감은 황보륭의 얼굴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는 그의 머릿속에, 과거 숙부에게 들었던 말이 스쳐 지나갔다.
– 네가 무공을 익히는 것은 네 옳음을 관철하기 위해서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때는 흔하디흔한 강호의 격언이라 생각했었는데······이제는 왜 그런 말씀을 하셨던 건지 이해가 갈 것 같군.”
“스승 된 자라면 처음으로 강호에 출도하는 제자로 하여금 마음에 새기도록 하는 가르침이지.”
제대로 된 스승이 있었다면 당연히 배웠어야 마땅할 마음가짐이었으나, 제대로 된 스승도 없이 근본 없는 밑바닥에서 기어 올라온 세령이 그런 마음가짐을 배웠을 리 만무했다.
목진은 제 감정을 차마 다 숨기지 못하고 숙부의 옷자락을 꽉 쥐는 황보세가의 가주를 내려다보았다.
그가 물었다.
“원망하느냐?”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황보준이 답했다.
“······물론이오.”
그는 분노하고 있었다.
친애하는 숙부를 잃은 조카.
존경하는 선배 무인을 잃은 후배.
소중한 세가의 핏줄을 잃은 가주.
그 모두가 황보준이라는 사내였다.
그에겐 사천당가의 당세령에게 그 모든 책임을 물을 정당한 권리가 있었다.
지극히 평범한, 또다른 무림의 은원이 목진의 눈앞에서 태동하고 있던 것이다.
그러나.
“하지만, 위대한 선대께서 그 원망마저 모두 짊어지고 가셨으니 어찌 모자란 후대가 복수을 논하겠소이까.”
그는 복수를 논하기 이전에 대 황보세가의 가주였다.
서서히 감정을 가라앉힌 그는 여전히 황보륭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담담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를 위한 태황십육객이지. 그러니 선배께서는 그녀의 안위를 걱정하실 필요가 없을 것이오.”
“······실례했군. 사과하지.”
속내를 간파당한 목진은 순순히 그에게 사과를 건넸다.
부상을 입은 채 홀로 우주선까지 가야 할 세령이 걱정되었기에 넌지시 떠보긴 했으나, 아무래도 기우였던 모양이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세가의 안위만을 염려하신 숙부님의 유훈을 욕보일 만큼 이 조카가, 그리고 황보세가가 못나지는 않소이다.”
숙부를 향한 존중, 선배 무인을 향한 존경, 그리고 세가를 위하는 이성.
맹렬히 타오르는 복수심조차 그 앞에선 불길이 잦아드니, 가히 명문(名門)의 수장을 맡기에 손색이 없는 그릇이다.
죽은 황보륭의 말마따나 아직은 미숙함이 남아있다곤 하나, 목진은 그가 황보준을 차기 가주로 추대한 것이 현명한 선택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후우. 황보준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채 삼키지 못한 분노와 슬픔의 잔재가 그 숨을 따라 허공으로 흩어졌다.
한없이 상실의 슬픔만을 곱씹고 있을 수는 없다.
그는 황보륭의 조카 황보준이기 이전에 대 황보세가의 가주였다.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선 황보준이 묵묵히 선 채 자신을 기다리던 목진을 마주보았다. 그의 얼굴에는 사무적인, 아니 사무적이고자 노력하는 표정이 자리하고 있었다.
“황보세가는 본 생사결에서 철군자 황보륭의 패배를 인정하며, 이로 인해 사천당가의 후예 당세령에게 원한을 갖지 않음에 동의하오.”
“사천당가의 후예 당세령에게 권한을 위임받은 대리인으로서 본 생사결의 결과로 황보세가에 대한 은원이 모두 종료되었음을 인정하며, 더 이상 사천당가의 멸문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음에 동의한다.”
이로서 사천당가의 후예 당세령의 황보세가에 대한 은원이 모두 종료되었음을 선언한다. 목진이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두 번째 복수행이 종료된 순간이었다.
황보준은 저 멀리서 다가오고 있는 총관과 순자 쪽을 흘긋 본 뒤에 입을 열었다.
“······황보세가는 이번 일에 사태에 대한 정파로서의 책임을 통감하여 삼 년간 봉문할 것이오.”
“삼 년이라······솔직히 놀랍구나. 이 시대에선 그만한 시간의 봉문도 결코 짧지 않다 들었거늘.”
전혀 예상치 못한 황보준의 말에 목진은 의외라는 기색을 숨기지 않고 대꾸했다.
당세령과 황보세가 사이의 은원은 이미 두 사람의 생사결로 인해 종지부를 찍었으니, 엄밀히 따지면 황보세가가 다른 무언가를 포기해야 할 필요는 없다.
이 시대에 있어 봉문이라는 것이 얼마나 큰 리스크인지를 생각하면 더더욱 황보준의 발언이 의외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황보준의 목소리는 덤덤했다.
“이미 사전에 숙부님과 본인, 그리고 원로원에서 조율이 끝난 사항이오. 봉문을 하되 본 세가가 감당할 수는 있는 선에서 삼 년이라는 시간을 책정했지. 어차피 생사결에서 패한 이상 당분간은 활동을 자제할 필요가 있기도 하고 말이오.”
황보륭은 이번 생사결에서 일부러 패배할 생각 따위는 손톱만큼도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자신의 패배에 자체를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 무림에서 싸우기도 전에 승리를 속단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짓은 없소.
그리 말한 황보륭은 생사결을 치르기로 결심한 직후 원로원과 함께 자신이 패배했을 때 황보세가가 취해야 할 대책에 대해서 논의했던 것이다.
“그렇군.”
목진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잠시의 대화 속에서도 느껴진 황보륭의 대쪽같은 성격을 생각해 보면 충분히 그런 결론을 내릴만 하다고 납득했기 때문이다. 결은 조금 다르긴 하나, 하북팽가 또한 십 년 봉문을 선언하기도 했지 않나.
그러나 그 뒤에 이어진 황보준의 제안은, 천하의 목진조차 경악하지 않을 수 없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이건 비공식적인 조건부 제안이긴 하오만······. 만일 그녀가 사천당가가 재건을 염두에 두고 있다면, 본 세가는 적절한 대가를 받고 과거 흡수한 사천당가의 일부 세력권을 새로운 사천당가에 되돌려줄 의향이 있음을 알려드리오.”
“······지금 진심으로 하는 소리더냐?”
두 눈이 크게 벌어진 목진이 저도 모르게 되물었다. 실로 파격적인, 아니 그를 넘어서 충격적이기까지 한 제안이기 때문이었다.
구 사천당가의 세력권이라니.
각 세가들이 네 조각으로 나눠 흡수했다고는 하나, 그 하나하나조차 몇 개 행성계에 걸쳐져 있는 거대한 이권지대다.
무수한 역경을 넘어 사천당가가 성공적으로 재건되었다고 해도, 언감생심 되찾을 생각 따위는 상상도 못 했을 옛 세가의 유산.
단순한 은원의 청산을 대가로 내놓기에는 터무니없이 컸다.
문파가 국가라고 한다면 세력권은 영토와도 같다. 그런 것을 쉬이 내놓을 수는 없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필연적으로 다른 누군가로부터 빼앗아야만 얻을 수 있다는 특성상, 문파에게 세력권이라는 것은 대가를 논하며 협상판에 올릴 수 있는 자산이 아니었다.
한번 세력권을 흡수한 이상 그것을 돌려받을 방법은 전쟁을 벌여 그들의 세력권을 정복하는 방법뿐이다.
그건 과거 천마신교를 이끌었던 목진은 물론, 세령이나 순자조차도 당연하게 생각하는 현실이었다.
하지만 황보준은 불신마저 느껴지는 목진의 물음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본 세가가 흡수한 영역은 사천성계 본성 주변의 핵심 세력권으로, 십칠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천당가의 영향력이 가장 크게 남아 있는 영역이오. 애써 본 세가의 세력권으로 동화시킨다 한들, 향후 수백 년은 불안요소로 남을 테지. 본 세가에게는 막대한 시간과 자본을 들이는 것에 비해 얻을 것은 많지 않은 계륵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소.”
계륵(鷄肋).
황보세가가 얻어낸 구 사천당가의 세력권을 평하기에 그보다 알맞은 단어는 없었다.
세력권의 가치 자체는 높은 편이지만, 사천당가의 영향력을 지우고 동화시키기 위해서는 너무 많은 시간과 돈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애초에 처음 해당 세력권을 받게 되었을 때도 일부 식견 있는 자들은 그 사실을 꼬집으며 사천당가의 축출에 반대한 일에 대한 앙갚음이라고 평하지 않았던가.
황보준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설마 숙부님께선 여기까지 염두에 두고 계시건 걸까.’
물론 진실은 죽은 황보륭만이 알고 있으리라. 황보준은 잡념을 털어낸 뒤 목진을 향해 말했다.
“비록 그 끝이 비극적이었다곤 하나, 우리는 같은 정파이자 수십 세기를 함께해온 혈맹이었소. 숙부님의 죽음으로 과거의 업에 종지부를 찍었으니, 그것으로 말미암아 은원의 연쇄를 끊고자 하는 황보의 의지요.”
목진은 황보준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증오와 분노조차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올바름(正). 실로 정파의 눈이 아닐 수 없었다.
확실히 후계를 잘 고르긴 했군. 목진이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염려되는 점이 있다면, 상층부의 의지와는 별개로 세가 내에서 반발이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일까. 목진은 그런 의미를 담아서 말했다.
“세가 내의 불만이 적지 않을 터인데.”
“그것을 감당하는 것이 본인의 몫이 아니겠소.”
황보준은 굳이 부정하는 대신, 담담하게 목진의 우려를 수긍했다.
“불만스럽겠지. 때로는 반발도 할 테고. 못해도 향후 수십 년은 다른 세가들보다 뒤쳐질 것이 자명할 터.”
하지만 그건 우리들이 짊어져야 할 업(業)이오. 황보준이 딱 잘라 말했다.
“숙부께서는 과거의 업을 모두 가져가고자 하셨으나, 황보의 이름을 짊어진 이상 우리 모두가 그 책임에서 자유로운 것은 옳지 못한 일이지.”
철군자 황보륭이 그들 모두의 은원을 짊어졌으니, 그들은 그에 걸맞은 책임을 다해야 했다.
목진이 물었다.
“은원이 종료되었는데도 없는 책임을 지겠다는 것이냐?”
“그 책임을 정하는 것은 우리 황보요.”
그것이 무림(武林)이라 말하지 않으셨소. 황보준은 목진이 했던 말을 인용해 답했다.
그의 재치에 목진이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너희는 예나 지금이나 변하질 않는군.”
황보준 또한 희미하게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그러니 사람들이 우리를 정파(正派)라 부르는 것이 아니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