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smic Heavenly Demon 3077 RAW novel - Chapter (280)
우주천마 3077 우주천마-281화(281/349)
42. 죄마침습 Mara of Guilt (2)
42. 죄마침습 Mara of Guilt (2) – 내가 아는 스님은 하나밖에 없는데.
가만히 순자를 토닥이던 목진이 불쑥 입을 열었다.
“헌데 의외로구나.”
“네?”
“강함을 기준으로 순서를 정하자면 남궁세가가 아니라 제갈세가를 먼저 치는 것이 옳지 않더냐?”
벽검성 남궁수련에 대해서는 목진도 나름 들어보긴 했다.
세인들이 이르길 한때는 서천검후마저 한 수 아래로 두었던 적이 있을 정도로 고절한 무인이라고 했던가. 아무리 몹쓸 병에 걸려 제 기량을 낼 수 없다 하더라도, 아직 화경의 벽을 넘지 못한 승룡제 제갈현보다 수월한 상대라고 할 수는 없었다.
목진의 물음에 순자가 대답했다.
“남궁세가 쪽에서 강하게 통제하고 있어서 벽검성 남궁수련의 실질적인 무력에 대한 정보를 찾기는 어렵긴 해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보를 얻을 구석이 아예 없는 건 아니거든요.”
“흠······. 정보조직을 말하는 게로구나. 개방은 오대세가와 같은 정파의 일원이니 가능성이 적고, 하오문(下汚門) 쪽의 정보더냐?”
구파일방의 일원으로서 정파 진영의 정보조직이라 할 수 있는 개방과 쌍벽을 이루는, 무림 전 진영을 아우르는 거대한 정보조직인 하오문. 그들이라면 남궁세가에서 꽁꽁 숨기고 있는 벽검성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어도 이상하지 않으리라.
순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하오문이라고 해도 그만한 정보를 쉽게 내어주진 않을 텐데. 재주가 좋구나.”
“로버트 씨가 하오문 중앙성계 쪽의 지부장과 친분이 있었거든요. 혹시나 싶어서 선을 대 봤는데, 운이 좋았죠.”
고아원 시절부터 같이 자란 소꿉친구라나 뭐라나. 순자가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오대세가의 극비정보인 만큼 본래라면 터무니없이 비싼 값을 치러야 했겠지만, 로버트 덕분에 합리적인 가격에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순자의 말에 목진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수긍했다.
“로버트라면 믿을 수 있겠지. 단 이번 사안의 무게가 가볍지 않은 만큼 다른 방책도 생각해 두어야 할 거다.”
글쎄요. 믿을 만 하다고 하기엔 좀. 순자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애초에 그놈의 하오문 중앙성계 지부장 친구라는 양반은 ‘지구에 신공절학의 비급이 있다!’라는 별 말 같지도 않은 헛소리로 로버트를 낚은 전적이 있는 양반이었으니까.
물론 그 덕분에 목진과 만나는 기연을 얻긴 했다마는, 묘하게 신뢰감이 떨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엉성하게 일처리를 한다면 슈퍼 안드로이드 순자가 아니다.
그녀에겐 이미 다 계획이 있다. 순자가 자신 있게 말했다.
“물론이죠. 이미 살막 쪽 자료랑 교차검증을 해서 신뢰성을 확인한 자료에요.”
“살······막?”
목진이 표정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살수에 대한 거부감······이라기보다는, 대단히 충격적이기 그지없던 살막주 듀크 고르고와의 첫 대면을 떠올린 듯한 모습이었다.
과거 뮤즈 행성에서 두 사람을 습격했던, 살수인 듯 아닌 듯 기묘한 인상의 살수들. 목진이 저도 모르게 되물었다.
“그 해괴한 치들 말이냐?”
“뭐······살막이 살수 치고는 좀 해괴하긴 하죠.”
“아니, 그들과는 또 어찌 연락이 닿았느냐?”
“그때 명함 받았잖아요?”
“······그걸 안 버렸어?”
써먹을 수 있는 건 다 써먹어야죠. 순자가 천연덕스럽게 대답했다. 기묘한 살막주, 듀크를 떠올린 목진이 어질어질한 표정을 지었다.
“살막주에게 직접 확인했는데, 이 년 전에 살막에서 벽검성 남궁수련의 호위를 맡았던 적이 있었대요.”
“살수가······호위를?!”
목진의 눈이 또다시 거세게 흔들렸다. 순자는 그 마음을 이해한다는 듯 작게 한숨을 쉬었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살막주 생각은 다르더라고요.”
– 저희는 고기방패질의 프로페셔널입니다. 돈 되는 일이면 뭐든 해야죠.
참으로 자본주의적인 마인드가 아닐 수 없었다.
“뭐, 보안상 의뢰내용을 밝히지는 않았지만요. 그래도 살막주인 십삼살 듀크 고르고의 이름으로 하오문의 정보에 신뢰성이 있다는 보증을 받았으니 충분해요.”
“허어, 하면 지금은 제갈세가의 태상가주보다 남궁세가의 가주가 더 약하다는 말이이 아니더냐.”
도대체 어떤 병이길래 화경의 경지 중에서도 상위로 꼽히던 인물이 그렇게까지 쇠약해진 걸까. 목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목진의 물음에 순자가 네 하고 수긍했다.
“정보만 봐서는요. 벽검성도 나름대로 비장의 카드가 있을 테니까 그걸 감안하면 승룡제와 동급이거나 약간 위. 정도로 잡는 게 합리적이겠지만요. 그리고······.”
순자가 잠시 뜸을 들인 뒤 말을 이었다.
“왕언니는 제갈세가, 그러니까 승룡제 제갈현과 마지막 생사결을 치르고 싶다고 했거든요.”
“과연, 속으로는 그런 생각을 품고 있었던 건가.”
목진이 이해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다른 세가들에 비해 유독 악연이 깊은 제갈세가. 그리고 사천당가의 축출을 이끌었던 실질적인 우두머리인 제갈현.
어차피 남은 두 사람의 무력 차이가 그리 크지 않다면, 상징적인 의미를 고려했을 때 복수행의 마지막 종착점으로 제갈세가를 지목하는 게 낫다. 세령의 결단은 충분히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면 이제부터는 어디로 갈 참이더냐?”
목진이 물었다.
“어차피 남궁세가와의 생사결을 뒤로 미루었고, 세령이의 상처도 돌봐야 한다면 당장은 딱히 중한 일은 없어 보이는데······.”
“왕언니의 부상은 우주선의 회복 포트로도 충분하긴 하지만, 웬만하면 근처 성계의 의료시설에서 치료를 받으려고요. 어디 들르고 싶은 곳이라도 있으세요?”
평소와는 달리 슬쩍 말꼬리를 늘이는 것이, 무언가 원하는 게 있는 모양이다. 순자는 그런 목진을 돌아보며 물었다.
목진은 순자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간 나름 생각해본 바가 있어 그렇다.”
“생각······이요?”
“무영탑에서의 일 말이다.”
목진의 말에 순자의 표정이 미세하게 굳었다.
무영탑에서의 일. 그것은 곧, 혈교를 말하는 것이었으니까.
“혹시 뭔가 다른 단서라도 떠오르신 건가요?”
아니. 그리 대단한 실마리는 아니다. 목진이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그 혈교의 악신이 하던 말이 못내 마음에 걸리는구나.”
죄(罪). 업(業). 그리고 괴로움(苦).
혈교의 의지는 목진과의 대화 중에도 몇 번이고 죄와 괴로움으로부터의 해방을 강조했었다.
당시에는 별다른 생각 없이 그저 평범한 사교의 주절거림으로 치부하고 흘려들었던 이야기들.
그런데 목진이 당시의 상황을 복기하며 근 며칠간 생각을 해 보니, 단순한 헛소리치고는 어디서 많이 들어본 듯한 이야기 같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것도 현대가 아니라, 과거 목진이 지구에 있을 시절에 말이다.
묘한 일이었다.
혈교의 의지가 했던 말들은, 과거 소림사의 숨은 절세고수이자 고승이 말하던 현기 가득한 말과 어느 정도 맞닿아 있었으니까.
목진이 말을 이었다.
“내 그가 한 말들을 곰곰이 되짚어보니, 그 치가 지껄이던 말들이 불가(佛家)에서 하는 말들과 연관이 깊어 보였다.”
“불교 쪽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래. 아무래도 소림에 몸담은 승려 중 법력이 높은 이를 만나 한번 이야기를 해 봐야 할 것 같구나.”
여태까지 목진은 혈교의 일에 대해서 그저 남의 일이라고 치부하고 있었다. 사교도 따위에 신경을 쓰고 싶지 않기도 했거니와, 그는 무림의 평화같은 것에는 딱히 흥미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다.
목진은 아직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불완전한 심안으로 본, 온 우주에 무수한 실을 뻗고 있는 거대한 그림자의 존재를.
생사경에 올라 마음의 눈을 타통한 그가 아니면 인식조차 할 수 없었을 윗 세계의 존재. 목진은 본능적으로 그것이 자신의 숙적임을 느끼고 있었다.
잠시 혈교의 의지를 떠올리며 허공을 노려본 목진이 다시 입을 열었다.
“단 문제가 있느니라.”
“문제요?”
그래. 목진이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심각하게 굳은 얼굴로 말했다.
“내가 아는 중은 하나밖에 없다는 게 문제다.”
– 시주! 드디어 선통신을 걸어주시는구려! 소승은 매우 감격하였소이다!
통신 패널 너머의 민둥머리가 번뜩였다. 민둥머리 아래의 LED 바이저는 더욱 번뜩였다.
화면을 가득 채운 아수라 붓다의 바이저에는 붉은색의 “FUCK YEAH!” 라는 글자가 떠올라 있었고, 그 위에는 붉은 피가 튀어있었다.
언제나처럼 초현실적인 광경이었다.
“······지금 뭐 하고 있는 게냐?”
마이크를 타고 전해지는 비명소리에 목진이 떨떠름하게 물었다.
아수라 붓다는 해맑은 미소와 함께 피로 물든 철퇴를 들어보이며 대답했다.
“부처님의 자비가 가득한 무료! 설법 중이오!”
화면 한 구석에서 그가 쓰러진 시체의 주머니를 뒤지는 모습이 보였다.
그것은 자비도 아니었고, 무료도 아니었으며, 설법도 아니었다.
목진이 그런 아수라 붓다를 향해 손가락을 가리킨 채로 순자를 돌아보며 말했다.
“봐라. 저게 어딜 봐서 중이더냐.”
웬만한 마인도 저 광기의 현장 앞에서는 차마 나 마인이오 하는 말을 꺼내지 못하고 꼬리를 말게 되리라.
목진의 말에 발끈한 아수라 붓다가 외쳤다.
– 아니 그 무슨 섭한 소리요! 소승처럼 신실한 종이 우주천지에 어디 있다고! 이렇게 손수 어리석은 중생들을 부처님 곁으로 보내드리고 있거늘!
“······저기, 혹시나 해서 묻는데요. 법적으로 문제 되는 상황은 아니시죠?”
순자가 물었다. 아무리 친분이 있어도 범죄사건과 엮이는 건 사절이기 때문이었다.
아수라 붓다는 자신감 넘치게 고개를 끄덕였다.
– 당연한 것을! 이 치들은 토투가에서도 현상금이 걸릴 정도로 아주 악명 높은 그 뭐시냐······그······뭐랄까······거시기, 성기아들놈들이오!
아수라 붓다의 바이저에 ‘CUNTS!’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 소승은 그저 평소처럼 길을 가고 있었을 뿐이었소만, 이 어리석은 중생들이 악행을 저지르는 것을 어찌 좌시할 수 있었겠소이까? 소승은 부처의 가르침을 전하는 신실한 불자로서 기꺼이 바쁜 시간을 내어 이리 직접 부처님의 말씀을 전하기로 하였소이다.
– 염병하네! 다짜고짜 처들어와서 돈 내놓으라며!
– 갈! 신성한 설법 중에 어딜 감히 아가리질중이시오!
마이크를 타고 들리는 소리에 아수라 붓다가 철퇴를 던졌다. 어디선가 깡 하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의 단말마가 들렸다.
목진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주 산도적놈이 따로 없구나.”
– 어허, 오해하지 마시오 시주. 다 좋은 일을 위해 쓰일 것이니. 부처님께 공양하는 씀씀이를 아끼면 천벌 받소이다. 팔만대장경에도 그리 나와있소.
“불자가 그렇게 손속이 흉해서야 되겠느냐?”
아 거 살계 좀 열 수도 있지! 아수라 붓다가 당당하게 포효했다.
– 원래 나쁜 놈들은 나쁜 짓 좀 당해도 괜찮소! 나쁜 놈이니까!
매우 쌈박하기 그지없는 사고방식이었다.
대충 주변에 살아 움직이는 것들을 죄다 철퇴로 때려죽인 아수라 붓다가 다시 통신화면 쪽으로 고개를 돌려 물었다.
– 그래서, 무슨 일로 소승을 찾으셨소이까?
“혈교라는 종자들의 일로 물어볼 것이 있느니라.”
혈교라는 말에 아수라 붓다의 바이저에 커다란 느낌표가 떠올랐다.
평소와는 다르게 그의 목소리가 한층 진지해졌다.
– 통신보안! 시주, 그런 숭한 이야기는 이런 보안이 불안정한 방식으로는 함부로 논할 이야기가 아니오.
“그건 그렇지.”
틀린 말은 아니다. 아수라 붓다의 말에 목진이 동의했다.
“우리가 직접 찾아갈 테니 자세한 건 만나서 이야기하도록 하지. 지금 어디에 있나?”
목진의 물음에 아수라 붓다가 대답했다.
– 토투가. 토투가에 있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