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smic Heavenly Demon 3077 RAW novel - Chapter (284)
우주천마 3077 우주천마-285화(285/349)
43. 후계전쟁 Succession Struggle (1)
43. 후계전쟁 Succession Struggle (1) – 여기서 걔가 나온다고?
토투가. 삼극회(三極會) 산하의 기공종합의원.
흰 가운을 입은 채 휴대용 단말기 패널 위에 떠오른 데이터들을 읽어내린 중년의 수석의원이 이럴 줄 알았다는 듯 가볍게 혀를 차며 입을 열었다.
“······꽤 무리했는지 기맥의 피로부하가 심한 편이더라. 의원 다녀간 지 오래됐지?”
“무인종합검진 비용 아는 양반이 왜 이래? 나 돈 모으느라 바빴어.”
어깨에 고정대를 달고 회복용 병상에 누워있는 세령이 툴툴거렸다. 삼극회에서 유년기를 보낸 만큼, 그녀는 이곳의 수석의원과도 제법 가까운 사이였다.
세령의 말에 수석의원이 한심하다는 듯한 목소리로 그녀를 타박했다.
“그러다 기맥 끊어져서 골로 가는 거 한 순간이다? 하여간 이놈의 무림인 놈들은 검사 좀 성실하게 받으라고 해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게 문제라니까.”
“고수 양반이랑 같이 다녔는데 그 양반은 아무 말 안 하던데.”
“고수면 뭐 한 눈에 니 기맥 상태까지 다 꿰고 그런다니?”
아저씨 정도면 완전 가능할 것 같은데. 수석의원의 타박에 세령이 들리지 않게 웅얼거렸다.
“그리고 참룡검제 대협은 이천년 전 사람이잖아. 내공 드라이브 오버클럭 시키면 기맥에 데미지 간다는 사실을 아실 리가 있나. 니 몸은 니가 알아서 챙겨. 너를 끔찍하게 아끼는 안드로이드 아가씨도 이런 쪽은 케어 못 해주니까 너 스스로밖에 챙길 사람 없다고.”
“아, 알았어. 잔소리 좀 그만 해.”
“아니 이년이 진짜.”
귀찮음이 팍팍 묻어나는 듯한 세령의 대답에 수석의원의 이마에 핏대가 섰다.
어렸을 적부터 온갖 사고를 치며 의원에 들락거려 온 그녀에게 정이 든 탓에 나름 걱정을 해 줬더니 저 꼬라지다.
얼마 전에 독립한 아들놈도 그렇고, 어째 어린 것들은 다 저리 싸가지가 없는지. 그녀는 하여간 애새끼들은 키워봐야 다 헛것이라고 투덜거리며 세령을 향해 말했다.
“외상은 따로 위험한 건 없으니 사흘 정도면 후유증 없이 회복될 거고, 기맥은 일주일 정도 재생외과에서 나노치료를 받으면 돼. 오대세가의 거물들이랑 붙어 놓고 용케 큰 부상은 없었네.”
“큰 부상이 없긴 지랄. 부골시독 맞고 황천길 갈 뻔 했거든?”
“······그거에 중독된 적이 있다고?”
너 대체 어떻게 살아있니? 세령의 말에 수석의원이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무림인 전문 의원인 그녀인 만큼 부골시독이라는 독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잘 알기 때문이었다.
“그때 맞은 부골시독이 일종의 열화판이었기도 하고, 저-기 거합문 쪽에서 바로 치료받았거든.”
“······하긴 넌 어릴 때부터 악운은 강한 편이긴 했지.”
세령이 삼극회에 있을 적을 떠올린 수석의원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무공도 별 거 없는 피라미인 주제에 기막히게 위험한 사건들에는 잘 말려들고, 그러면서도 또 용케 살아남는다. 그녀를 치료해주는 의원의 입장에서는 심장이 벌렁거리는 타입이었다.
“진료는 끝났으니까, 오늘 중으로 알아서 퇴원수속 밟아. 가면 또 애먼 데로 새지 말고 숙소에 가만히 있고.”
바로 퇴원해도 된다고? 수석의원의 말에 세령이 반색했다.
“오, 그냥 가도 돼?”
“마음 같아선 한 일주일 입원시키고 싶은데, 어차피 매번 탈출하는 놈을 억지로 잡아서 뭐 하겠어?”
“그땐 입원비가 비쌌으니까 그랬지.”
“그럼 입원할 거야?”
“아니? 굳이 맛대가리 없는 병원 밥을 먹을 이유는 없지?”
네가 그럼 그렇지. 수석의원이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몸을 돌렸다. 막 병실을 나가려던 그녀가 깜박하고 있었다는 듯 그녀를 돌아보았다.
“아, 그리고 막내아가씨께서 찾아오셨어.”
삼극회 소속인 그녀에게 막내아가씨라고 불릴 만한 이는 하나뿐이다. 잠시 눈을 꿈벅이던 세령이 팍 인상을 썼다.
“나 없다고 하면 안 돼?”
“지랄을 한다. 지랄을 해.”
세령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문가에서 한심하다는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백금발을 길게 기른 외눈의 여인, 삼극회주의 딸인 백사희였다. 마지막으로 본 게 재작년 토투가 랠리 때였던가. 세령은 짜증을 숨기지 않는 얼굴로 애써 미소지으며 손을 들었다.
“어, 땅꼬마 어서오고.”
“진짜 그 얄미운 주둥이를 찢어버리고 싶다니까.”
“어이구 그러세요? 예전에도 별로 안 무섭긴 했는데, 지금은 좀 더 격렬하고 적극적으로 안 무섭다야.”
과거에는 확연히 벌어지는 무력 차이 때문에도 불구하고 세령이 악과 깡으로 버티며 개기는 구도였다면, 이제는 그 무력의 차이까지 거꾸로 벌어진 상태여서 더욱더 거리낄 것이 없다. 그 사실을 깨달은 세령은 백사희를 향해 부담 없이 도발을 날렸다.
또 시작이네. 두 사람의 서슬퍼런 분위기에 쯧쯧 혀를 찬 수석의원이 병실을 나갔다. 보기엔 살벌해 보여도 정작 두 사람이 직접 치고받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실제로도, 세령과 백사희는 서로를 노려보며 입씨름을 이어갈 뿐이었다.
“이게 진짜.”
“아, 꼬우시구나? 꼬우면 아시죠? 무공수련 좀 하고 깃발 꼽으시던가요.”
“하, 기연빨로 올라간 주제에 거들먹거리긴.”
“누가 들으면 기연은 실력 아닌 줄 알겠네. 찾아온 기연 주워 먹는 것도 다 실력이야 머리에 꽃밭 들어찬 아가씨야. 어라, 이 이야기 누가 했더라? 내 눈앞에 서 있는 누군가가 했던 거 같은데.”
그러나 말리는 사람 하나 없는 말싸움은 언제든 사소한 계기로 주먹다짐이 될 수 있는 법.
점점 격해지는 말싸움 사이로 두 사람은 슬쩍슬쩍 서로의 성질을 건드리기 시작했다.
“옛날 일을 아직도 기억해서 끄집어내네. 하긴, 밑바닥 근성 못 버린 너한테 정말 잘 어울리는 치졸한 방법이긴 하다. 그치?”
“아~. 그래서 좋은 집안 근성 가지고 계신 아가씨께서는 아직도 무공이 제자리걸음이세요?”
“······운 좋게 출세한 졸부처럼 굴면서 그런 식으로 비꼬면 자존감이 좀 채워지긴 하니?”
삼극회주 백무정의 딸로서 다른 사람들은 비교조차 못할 정도로 많은 지원을 받았으면서 스스로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무공실력으로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는 백사희.
명문정파의 후예임에도 불구하고 목진을 만나기 전까지 변변한 무공 하나 없이 하류인생을 전전하던 과거를 부끄러워하고, 자신의 실력보다는 목진이라는 기연 덕분에 지금의 자리까지 오게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는 당세령.
성장기를 함께 해 온 두 사람은 서로의 역린이 무엇인지 그들 자신보다도 더 잘 알고 있었다.
“야, 지금 뭐라고 씨부렸냐? 한 판 뜰까?”
“왜, 뜨자면 못 뜰 줄 알아? 반병신 된 몸으로 겁대가리를 상실했구나?”
“반병신 상태면 이길 수 있을 것 같냐?”
“지 힘만 믿고 날뛰는 멧돼지 하나 도축하는 걸 가지고 굳이 유난까지 떨어야 할까?”
순식간에 병실의 분위기가 차갑게 얼어붙고, 서로의 무기가 시퍼런 날을 드러낸다.
진심으로 붙지는 않더라도 한두 합 정도의 공수는 오갈 수 있을 일촉즉발의 상황.
그런 상황을 가라앉힌 것은 별안간 세령의 입에서 흘러나온 긴 한숨이었다.
“후······. 됐다. 여기서 너 같은 거랑 드잡이질 해서 뭐가 남겠냐.”
안 그래도 황보세가에서의 생사결 이후로 이래저래 마음이 심란한데 괜히 골치 아픈 일을 늘릴 필요는 없다. 평소처럼 성깔을 드러내며 드잡이질을 하기에 지금의 그녀는 심적으로 꽤나 지쳐 있었다.
“용건이나 말하고 빨리 꺼져.”
마음 넓은 내가 넘어가 준다. 맥없이 기세를 풀어버린 세령이 귀찮다는 듯 병상에 몸을 묻으며 손을 휘적였다.
“뭐야······. 답지 않게 점잖은 척 하기는.”
이전과는 달리 묘하게 힘이 빠진 그녀의 반응이 당혹스럽기라도 한 걸까. 백사희는 도르륵 하나뿐인 눈동자를 굴리며 당황한 얼굴로 그녀의 시선을 피했다.
“음······그러니까, 그게······.”
평소의 백사희와는 다르게 우물쭈물하는 모습에 세령이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다.
“뭔데 그렇게 뜸을 들여? 설마 병문안이라도 왔냐?”
“뭐? 그런 거 아니거든?! 너 제정신이니?!”
빽 소리를 지르는 백사희의 목소리에 세령이 인상을 찡그렸다.
“그냥 한 말 가지고 왜 소리는 지르고 지랄이야? 빨리 용건이나 말해. 나 퇴원수속 할 거야.”
“알았으니까 좀 기다려 봐. 그러니까······아!”
미간을 좁힌 채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던 백사희가 번쩍 눈을 떴다. 이제야 막 떠올린 듯한 그녀의 모습에 세령이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잠시 생각을 정리한 백사희는 조금 전과는 달리 한층 진지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열었다.
“제갈세가 떨거지들 이야기를 하러 왔어.”
“······뭐?”
예상치 못한 이름이 나와서인지 세령이 한 박자 늦게 되물었다.
“제갈세가 직계랑 준 주력급 무인들이 지금 여기 토투가에 와 있다는 소리야.”
“제갈세가 직계 누구?”
“제갈희.”
“씨발?”
세령의 입에서 대번에 욕설이 튀어나왔다. 생각을 거치지 않은, 거의 척수반사적인 반응이었다.
“제갈희 그 싸이코년이 여기에 있다고?”
백선무희(白扇武姬) 제갈희.
오대세가의 후기지수 전체를 통틀어 세령과 가장 끈질긴 악연을 맺은 이름이며, 나찰즈 일행이 백룡대와 싸우고 지금 이 상황까지 오게 만든 데에 톡톡히 한 몫을 한 이름이기도 했다.
세령이 으득 이를 갈았다. 그나마 목진이 대신 복수를 해 주었기에 망정이지, 지난날 백룡대 사건 때 그녀의 앞을 집요하게 방해하며 갖은 굴욕을 주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히 떠올랐기 때문이다.
“······야. 혹시 그 년이 온 게 나 때문이냐?”
하필 이런 타이밍에 삼극회의 앞마당인 토투가에 제갈희가 왔다?
공교로워도 너무 공교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공식적으로 알려진 것은 아닐지 몰라도 세령이 삼극회와 친분이 있다는 것을 제갈세가가 충분히 인지하고 있는 만큼, 합리적인 의심을 떠올리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글쎄. 엄밀히 말하면 너 때문은 맞긴 한 것 같은데······너가 생각하는 쪽은 아닐 걸.”
하지만 백사희는 세령의 물음에 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긍정도 부정도 아닌 애매한 답을 내놓았다.
“그게 뭔 개소린데?”
“제갈희랑 제갈세가 무인들이 토투가에 온 건 너가 복수행을 선포하기 두 달 전의 일이야.”
다시 말해서 너한테 직접적으로 관계가 있는 건 아니라는 소리지. 그녀가 검지손가락으로 세령을 가리켰다.
“······그럼 나를 견제하려고 온 건 아니라는 거야? 그럼 나 때문이라는 소리는 뭔데?”
“확실한 정보는 아니지만, 고 선생의 추측으로는 너가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전에 그나마 몇 안 되는 우호적인 세력인 우리 삼극회를 견제하려는 전략일 가능성이 높다고 하더라.”
고 선생이라는 말에 세령이 미간을 좁혔다. 단순한 심증에 불과하지만, 삼극회의 지낭인 고 선생이 내놓은 결론이 빗나가는 일은 거의 없기 때문이었다.
“고작 친분이 있다는 생각만으로 삼극회를 도발한다고?”
“아마 너가 우리를 기반으로 삼아서 세력을 키울 거라고 생각했겠지.”
삼극회가 별 인연도 없는 세령을 보호하는 것을 보고 무언가 알려지지 않은 커넥션이 있다고 생각했으리라.
실제로 자세한 속사정을 알지 못하는 제삼자의 눈으로 보면 합리적인 추론이긴 했다. 세령과 오대세가 사이에 얽힌 악연을 아는 이들 중에서 설마 그녀가 복수행을 선포하리라고 예상한 이는 거의 없었으니까.
백사희의 설명에 세령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그렇지, 그걸 그냥 두고 본다고? 회주님이 그렇게 젠틀한 성격은 아닐 텐데?”
제갈세가의 위세가 대단하다고는 하나, 삼극회 또한 육적일채라는 흑도의 한 축을 이루는 거대 문파다. 다른 곳도 아니고 문파의 앞마당인 토투가에 와서 도발하는 것을 좌시할 리는 없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세령의 반응. 하지만 백사희는 그런 세령의 반응에 진심이 가득 담긴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아······. 문제는 걔들이 움직이는 게 단순히 제갈세가 쪽의 단독행동이 아니라는 거야.”
“응? 아니······설마.”
그녀의 말에 세령의 얼굴이 굳어졌다. 한때나마 삼극회의 그늘 아래에서 지내온 만큼, 백사희의 말이 뜻하는 바를 정확하게 캐치했던 것이다.
“걔들 부른 게 너네 쪽이냐?”
“······그래.”
백사희가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셋째 오빠. 그 머저리 같은 새끼가 후계자 경쟁에 제갈세가를 끌어들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