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smic Heavenly Demon 3077 RAW novel - Chapter (286)
우주천마 3077 우주천마-287화(287/349)
43. 후계전쟁 Succession Struggle (3)
43. 후계전쟁 Succession Struggle (3) – 야, 병신이야?
“그러니까-! 나만 시발 못돼 처먹은 년이 된 기분이라고오-!”
어깨에 의원 마크가 큼지막하게 새겨진 보호대를 두른 채, 고주망태가 된 여인 하나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술을 즐기는 손님의 매너라곤 쥐뿔도 보이지 않는 진상 손님의 모습. 그 주인공은 바로 최근 강호넷에 이름이 오르내리는 화제의 인물, 당세령이었다.
술기운이 불콰하게 오른 얼굴에 풀린 눈과 꼬부라진 혀. 어딜 봐도 훌륭하기 그지없는 주정뱅이가 아닐 수 없었다.
그리 크지도 않은 술집에서 이런 주정뱅이가 진상을 떨어대면 주변에서 눈총을 줄 법도 하건만,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술집 안에는 그녀와 백사희, 그리고 술집 주인인 조나단이 전부였다.
“하······. 술도 약한 주제에 페이스 조절도 안 하고 퍼마시니 이렇게 되지.”
백사희는 꽐라가 되어 신세한탄을 해 대는 세령을 내려다보며 한심하기 그지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한쪽에서 접시를 닦고 있던 술집 주인, 조나단에게 푸념하듯 말했다.
“애새끼도 아니고 이 나이 먹을 때까지 지 주량도 조절 못 하는 게 말이 돼? 이러니까 맨날 내가 뒷수습을 하는 거잖아.”
“······세령이 정도면 술이 약한 편은 아닙니다만. 매번 뒷수습을 하시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아가씨가 말술이라 그런 게 아닐런지요.”
콧수염을 멋지게 기른 댄디한 중년인 조나단이 가볍게 웃으며 응수했다.
백사희는 그런 조나단의 말에 미간을 살풋 찡그렸다.
“그런 말 좀 하지 마. 누가 들으면 내가 술고래인 줄 알잖아.”
“아닙니까? 제가 살면서 오십 도짜리 위스키를 병나발로 불어도 얼굴색 하나 안 변하는 분은 아가씨밖에 본 적이 없습니다만.”
회주님은 맥주 향기만 맡아도 헤롱거리시는데 정작 따님 분은 토투가에서 가장 술이 강하시다니. 조나단이 껄껄 웃으며 너스레를 떨었다.
백사희가 붉어진 얼굴로 시선을 피하며 중얼거렸다.
“······엄마 닮아서 그래.”
사모님도 아가씨 정도는 아니었습니다만. 조나단이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꿀떡 삼켰다. 섬세한 아가씨를 더 놀렸다간 삐지고 말 테니까.
“······.”
백사희는 입만 다문 채 묘한 표정을 짓고 있는 조나단을 미심쩍은 눈으로 흘겨보았다.
그때였다. 꼴꼴거리며 병에 남은 술을 비운 세령이 손을 뻗어 그녀의 긴 백금발을 잡아당긴 것은.
“야-! 땅꼬마-! 내 말 듣고 있냐아-?!”
“햐악?!”
조나단에겐 참으로 시의적절한 타이밍이 아닐 수 없었다.
“악! 악! 야 이거 안 놔?! 미친년이 진짜!”
창졸지간에 머리채를 부여잡힌 백사희가 비명을 질렀다. 낑낑거리며 간신히 주정뱅이를 떼어낸 백사희가 눈물이 핑 고인 눈으로 허우적대는 세령을 노려봤다.
“내가 미쳤지, 괜히 이년을 데려와서······.”
옛 감상에 빠져서 안 하던 짓을 했더니 이 꼴이다. 그녀는 씨근거리며 헝클어진 제 머리카락을 정리했다.
그때, 흐리멍텅하게 풀린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던 세령이 툭 물음을 던졌다.
“야······너도 내가 나쁜 년 같냐? 어?”
얘가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는 걸까. 백사희는 순간 그런 의문이 들었으나, 이내 지금까지 줄창 이야기하던 철군자 황보륭을 죽인 것에 대한 물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거기에 대한 답이야 생각해볼 것도 없었다.
“썅년이지. 어마어마한 썅년.”
백사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대답이었다.
“목숨을 구해주고 십 년 넘게 보호해 준 은인한테 칼침을 박았는데 그럼 너보고 뭐 의인이라고 해 주길 바랬어?”
지극히 냉정한 백사희의 말에 세령의 표정이 침울해졌다.
“에이씨······.”
“나한테 무슨 대답을 기대한 건데? 난 위로 같은 거 할 줄 몰라.”
특히 너한테는. 백사희가 짤막하게 덧붙였다.
차갑기 그지없는 그녀의 말에 세령이 거칠게 제 머리를 헝클었다.
“그래 썅. 내가 아주 배은망덕한 년이다. 근데 시발, 그렇다고 안 할 수는 없잖아.”
“······뭐?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야 너 설마, 철군자를 살려줄 생각 같은 거 했었어? 백사희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다.
그녀의 물음에 세령이 팍 인상을 썼다.
“뭐어? 야, 아까는 나보고 썅년이라며.”
“그거랑 그건 다른 문제지. 얘가 요즘 좀 살만해졌다고 완전 헛바람이 들었네.”
백사희가 한심함을 담아 혀를 찼다. 원래부터 쓸데없이 정이 많다고는 생각했지만, 설마 이 정도로 물러터졌을 줄이야.
예전에 토투가에서 구를 때는 독기가 바짝 올라 있었는데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까. 흑도문파 태생인 그녀로서는 별 말 같지도 않은 이유로 약한 소리를 하는 세령의 모습이 한심하기 그지없었다.
“미친년아. 너랑 철군자 사이의 은원이랑 사천당가의 복수가 같니? 너한테 좀 잘해주면 그 인간이 너네 가문 말아먹은 사실이 없어져? 복수행까지 천명했으면 당연히 그 인간 모가지를 따야지.”
사천당가라는 말에 세령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사천당가의 복수······. 그래, 말 잘 했다. 근데 다들 그러더라.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사천당가가 폭주해서 막나갔었던 걸 막았어야 했다고.”
팽상원이 그랬고, 황보준이 그랬다. 폭주하는 사천당가를 막기 위해선 어쩔 수 없었다고.
하지만 세령은 그들의 말을 반박할 수 없었다.
그녀는 사천당가를 몰랐으니까.
코흘리개에 불과했던 그녀가 도대체 뭘 알고 있겠는가.
이전까지는 그래도 상관없었다. 그들이 사천당가를 배반해 팔아넘긴 것은 어찌 되었든 사실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황보륭이 사실 몰래 그녀를 보호해 왔다는 것을 깨닫자, 그녀의 마음이 흔들렸다.
그녀는 아는 것보다는 모르는 것이 많았다. 사천당가의 축출에서 어떤 사정이 있었는지, 그녀는 알지 못했던 것이다.
“······.”
세령의 이야기를 들은 백사희가 입을 다물었다.
그러더니, 대뜸 말했다.
“너, 병신이야?”
신파 한번 찍었다고 애가 맛탱이가 갔네. 백사희가 한숨을 푹 내쉬며 중얼거렸다.
자신은 고작 이런 궁상 따위를 걱정해서 같이 왔던 걸까. 자신의 결정에 자괴감이 들 정도였다.
“원수들이 대는 핑계를 믿는 머저리 천치가 여기 있었네. 넌 걔들 말을 다 믿니?”
“······.”
“이십 년 전에 오대세가 전체가 죄다 미쳐 날뛰던 건 흑도인 나도 안다. 사천당가가 좀 더 미쳤을 뿐이지 걔들 다 똑같은 놈들이야. 정신 차려.”
당시의 오대세가가 얼마나 막나갔는지는 좀 오래 묵은 무림인들 아무나 잡고 물어봐도 안다. 무림세가들이 연합해서 자치령을 세운다는 미친 소리를 진지하게 추진하던 사건을 누가 모르겠는가.
사천당가가 군용병기에 손을 댔다는 명분으로 본보기삼아 행성채 불타 사라지긴 했지만, 원래는 그들뿐 아니라 오대세가 전체가 행성폭격의 불길에 쑥대밭이 되는 게 정상이었던 일이다. 폭주는 같이 했던 주제에 누구의 폭주를 막는다는 말인가.
비유하자면 같이 은행을 털던 은행털이범들이 유독 날뛰던 한 놈을 희생양으로 팔아넘기고 풀려난 뒤, 희생된 동료의 유산을 지들끼리 나눠먹은 셈이다. 어딜 어떻게 봐도 희생양의 가족이 복수할 명분은 충분했다.
“철군자가 지 양심에 찔려서 생색 좀 냈다고 홀라당 넘어가다니, 너 복수할 생각이 있긴 한 거니?”
“하지만, 철군자가 날 살려준 건 사실이잖아······.”
“하, 대단한 성인군자 납셨네.”
백사희가 침울한 얼굴로 중얼거리는 세령을 향해 비아냥거렸다.
“철군자가 생색 좀 내고 립서비스 좀 해 줬다고 사천당가를 축출한 사실이 없어져? 양심에 찔린다고 자기위안 삼아 애새끼 하나 건져줬으니까 팔아먹은 건 괜찮다 이거지?”
그럴 거면 그냥 복수고 뭐고 때려 쳐. 불타 죽은 너네 세가 사람들이 불쌍하니까. 백사희의 신랄한 독설이 무자비하게 세령을 난도질했다.
“······.”
세령은 멍하니 탁자를 내려다보았다.
충격을 받아서 그런 건지, 아니면 그녀의 말을 듣고 생각을 정리하는 건지는 알 수가 없었다.
할 말을 다 내뱉은 백사희는 목이 타다는 듯 조나단을 향해 손짓했다. 술이나 달라는 제스쳐였다.
조나단은 그런 그녀의 손짓이 익숙한 듯 선반에서 독한 위스키 한 병을 따서 건넸다. 백사희는 받아든 술을 잔에 따르지도 않고 그대로 병나발을 불었다.
“후우.”
순식간에 두세 잔 어치의 술을 비운 그녀가 술병을 내려놓으며 숨을 내쉬었다. 백사희의 숨결에는 알콜 냄새가 진하게 배어 있었으나, 그녀의 얼굴은 여전히 평온했다.
그녀가 두 번째로 술병을 입에 가져다 댈 때쯤, 침묵 속에서 탁자를 노려보던 세령이 입을 열었다.
“썅.”
그것이 그녀가 마지막으로 내뱉은 말이었다.
콰당. 나지막이 욕설을 내뱉은 세령이 탁자에 머리를 박았다.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골아떨어진 모양이었다.
“······.”
백사희는 그런 세령의 뒤통수를 어이없다는 듯 내려다보았다. 정말이지 한 대 후려치고 싶은 뒤통수였다.
빠악.
“아가씨, 술 취한 사람 때리면 안 됩니다.”
“······너무 때리고 싶어서 그만.”
조나단의 말에 백사희가 머리를 긁적이며 변명했다.
조나단이 빙긋 웃었다.
“그나저나 여전히 사이가 좋으시군요. 두 분이 이렇게 온 건 오랜만인데 말입니다.”
“얘랑? 내가?”
아니거든?! 백사희가 질색하는 표정으로 그를 노려봤다. 조나단은 그저 은은한 웃음을 머금고 있을 뿐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기분 나쁜 표정이다. 백사희는 그에게 화를 내는 대신 애꿎은 세령의 뒤통수를 한 대 더 후려갈겼다.
“······아 맞다. 혹시 몰라서 말하는 건데, 지금 한 이야기······.”
“걱정 마시죠. 조나단의 술집에는 스피커가 없으니까요.”
조나단의 말에 백사희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조나단의 입이 무거운 것은 이곳에 자주 다니는 삼극회의 간부들이 보증하고 있었다.
조나단은 쓰러진 세령을 향해 턱짓하며 물었다.
“사람을 부를까요?”
“됐어. 이 시간에 당직 서는 애들 고생시켜서 뭐 해. 별로 멀지도 않으니까 그냥 내가 알아서 할 게.”
끙차. 백사희는 축 늘어진 채 골아 떨어진 세령을 들쳐 업었다. 키 차이가 워낙 많이 나는 탓에 세령의 양 다리가 바닥에 질질 끌리는 모습은 여러모로 해학적이기 그지없었다.
“큭.”
“······웃지 마. 죽는다.”
백사희의 하나뿐인 눈동자가 저도 모르게 실소를 흘린 조나단을 무시무시하게 노려봤다. 조나단은 슬그머니 제 입을 손으로 틀어막았다.
“계산은 이년 크레딧으로 해. 바가지 좀 왕창 씌우고.”
남은 술병을 한 손에 집어 든 백사희가 조나단에게 말했다. 비싼 술만 골라 먹은 탓에 술값이 어마어마하긴 했으나, 별 웃기지도 않는 신세 한탄을 들어줬으니 이 정도는 당연히 받아야 수지가 맞았다.
“간다. 다음에 봐.”
백사희가 술병이 든 손을 휘적휘적 하며 가게를 나섰다. 세령의 발은 여전히 바닥에 질질 끌리고 있었다.
“조심히 들어가십시오.”
조나단은 가게 문 앞에서 꾸벅 고개를 숙이며 두 사람은 배웅했다. 그는 은은한 미소를 지은 채 두 사람이 멀어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자주 보곤 했던, 익숙한 풍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