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smic Heavenly Demon 3077 RAW novel - Chapter (287)
우주천마 3077 우주천마-288화(288/349)
43. 후계전쟁 Succession Struggle (4)
43. 후계전쟁 Succession Struggle (4) – 궤에에엑
“으······어······.”
머리가 먹먹하고, 속이 매스껍다. 세령은 소파에 늘어진 채 툭 치면 죽을 것 같이 초췌한 몰골로 좀비 같은 소리를 흘렸다.
“쯧쯧쯧쯧······. 그러게 제 주량도 조절 못 하고 되는대로 술을 퍼마시니 그리 고생을 하지. 애도 아닌데 이 무슨 추태란 말이냐.”
숙취로 죽어가는 세령을 보며 목진이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찼다. 반대쪽 소파에 드러누워 있던 목진은 골골대는 세령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뒤 다시금 감자칩을 아작이며 고전 무협 드라마를 시청했다.
‘아니 그년이 술고래라 그런 걸 가지고 왜 나한테 그래······!’
너무 힘들어서 입을 열 기력도 없다. 세령이 속으로 씨근거렸다.
그나마 일행 중에서 그녀를 생각해주는 건 순자뿐이다. 꿀물을 타온 순자는 죽은 동태 같은 눈으로 허공을 응시하는 세령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며 말했다.
“어젯밤 완전히 인사불성이 돼서 업혀오시던데, 도대체 얼마나 마신 거에요?”
“한 병······.”
“······뭘 드셨길래 한 병으로 그 상태가 되신거에요?”
“위스키······.”
“미쳤어 진짜!”
짜악! 순자의 손바닥이 세령의 허벅지를 찰지게 후려쳤다. 어으억 하고 세령이 죽는 소리를 낸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으, 이제 좀 살 것 같네.”
잠시 뒤, 순자의 구박을 받으며 꾸역꾸역 꿀물을 다 비운 세령이 그제야 좀 사람 다운 소리를 냈다.
한창 드라마의 마교 소속 조연에게 감정이입을 하고 있던 목진이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그녀에게 말했다.
“나중에 네 친구에게 가서 고맙다고 하거라. 인사불성이 된 너를 여기까지 데려와 주느라 고생했을 터이니.”
“예?”
친구? 세령이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들었다.
“나 친구 없는데?”
“너는 정말······.”
저것은 도대체 인생을 어찌 살았기에.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돌아본 목진이 차마 말로 형언하기 힘든 시선으로 세령을 응시했다.
세령은 어젯밤의 일을 기억하려는 듯 인상을 찌푸리며 제 머리를 부여잡았다. 하지만 과다 알콜섭취로 인해 필름이 끊긴 그녀는 전날의 일을 전혀 기억할 수 없었다.
“뭐야, 누구 말하는 거에요? 나 어제 무슨 일 있었나?”
“기억 안 나세요? 왕언니 어제 완전히 술에 떡이 돼서 금사단주한테 업혀왔어요.”
“······내가? 걔한데?”
“네.”
“아니, 그전에 걔가 날 업고 왔다고? 그게 가능해?”
“되던데요. 솔직히 엄청 신기한 모습이긴 했죠.”
그건 그랬지. 순자의 말에 목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추임새를 넣었다.
백사희의 키가 백오십도 안 되는데 반해 세령의 키는 백칠십 정도. 저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세령이 술주정을 부려대는 마당에 그걸 용케도 업고 여기까지 걸어온 것이다.
아니, 그런 걸 따지기 이전에 견원지간마냥 서로를 못 잡아먹어 안달이던 두 사람이 대작을 한 것부터가 신기하기 그지없는 상황이었지만 말이다.
“······미친.”
순자로부터 어젯밤 자신이 저지른 추태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세령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딴 건 둘째치고서라도, 어릴 때 이후로 또다시 백사희의 앞에서 진상을 떨었다는 사실에 격렬하게 창 밖으로 뛰어내리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다.
“으아아아······.”
나중에 그년 얼굴을 어떻게 보지. 양 손에 얼굴을 묻은 세령이 절망 가득한 탄식을 내뱉었다.
물론, 그런 그녀를 바라보는 목진과 순자의 얼굴에는 자업자득이라는 듯한 표정만이 떠올라 있었음은 말할 것도 없으리라.
그때, 삐익 하는 소리와 함께 초인종이 울렸다. 목진과 순자의 고개가 현관 쪽으로 돌아갔다.
보안 네트워크에 접속해 있는 순자가 바깥의 인물을 확인한 뒤에 입을 열었다.
“삼극회의 고 선생님이신데요?”
“고 선생이면······그 책사 같던 양반을 말하는 게냐?”
목진은 과거의 기억 속에서 둥근 안경을 쓴 마른 사내의 얼굴을 기억해냈다. 평범한 먹물쟁이 같은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으로 삼극회의 운영 전반을 담당하는 거물이라고 했던가. 그가 천마신교를 이끌 적에 신교의 대소사를 처리하던 총관인 마뇌(魔腦)와 같은 위치의 인물이었다.
그런데 그런 자가 어째서 여기에? 목진이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위치가 위치인 만큼 공사가 다망할 텐데, 굳이 그들의 묵고 있는 호텔까지 찾아올 이유가 도통 떠오르지 않기 때문이었다.
“일단 문 열게요? 어차피 무림인도 아니고.”
“그러려무나.”
순자의 말에 목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세령은 여전히 본인이 막 생성한 따끈따끈한 흑역사를 떠올리며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는 중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참룡검제 대협. 그리고 순자 소저. 지난번에 한 번 뵌 적이 있는데, 혹시 저를 기억하시는지요?”
“물론. 이 삼극회의 지낭이라 불리는 자네를 어찌 잊겠는가. 오랜만일세.”
“오랜만이에요.”
고 선생의 인사에 목진과 순자가 가볍에 응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 선생은 고개를 돌려 세상 모든 절망을 다 품은 듯한 얼굴로 좌절하고 있는 세령을 보며 저럴 줄 알았다는 듯 피식 웃었다.
“어젯밤 막내아가씨에게 업혀서 숙소로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긴 했습니다만, 역시나 예상했던 대로군요.”
“······잠깐. 댁은 그걸 또 어떻게 알아?”
“론이 어젯밤 한잔 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봤답니다. 당연히 사진도 찍었고요. 꽤 재미있는 모습이었지요.”
뭐 시발?! 세령이 고개를 번쩍 치켜들었다.
삼극회에 오래 들락거린 그녀는 알고 있었다. 누가 흑도 아니랄까봐 약점 하나 생기면 질릴 때까지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는 이쪽 동네의 풍습을.
“고 선생, 혹시 그거 론이랑 당신 말고 다른 사람들도 아는 건 아니지?”
당연한 거 아닙니까? 고 선생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묻느냐는 듯한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였다.
“물론 모두가 다 같이 공유했죠. 덕분에 오전 회의 분위기가 꽤나 화기애애했습니다. 사진은 인쇄해서 회의실의 웃음벨 액자에 걸어뒀는데, 나중에 꼭 한 번 보십쇼.”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였다.
“야 이 양아치 새끼들아-!”
조금 전까지 숙취에 고생하고 있던 사람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우렁찬 목소리와 함께 세령이 고 선생을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녀의 손은 고 선생을 잡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고 선생에게 닿지 못했다.
불쑥 튀어나온 목진의 손이 그녀의 뒷덜미를 턱하니 잡아챘기 때문이었다.
“악! 이거 놔요! 놓으라고!”
“쯧. 손님에게 주먹부터 휘두르면 쓰겠느냐.”
목진은 버둥거리는 세령을 번쩍 들어 어깨에 들쳐멨다. 아직 숙취가 가시지 않은 뱃속이 꾹 압박되는 감각에 세령이 발광을 멈추고 끄억 하는 억눌린 신음을 흘렸다.
“끄으······고소할 거야, 고소할 거라고!”
“조용히 하거라.”
목진이 시끄럽게 악을 쓰는 세령의 아혈(啞穴)을 짚자 그녀의 목소리가 사라졌다.
뻐끔거리며 입모양으로 채 입에 담기도 힘든 욕설들이 쏘아지는 것을 지켜보는 고 선생이 얄밉기 그지없는 미소를 지었다. 암만 봐도 세령을 놀리는 것이 재밌어 죽겠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다 자업자득인 것을. 도대체 언제쯤 철이 들는지······.”
혈도를 짚어 세령을 침묵시킨 목진이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세령으로서는 복장이 터지는 소리가 아닐 수 없었다.
‘이 인간이 도와주진 못할망정······!’
세령은 저를 들쳐멘 목진의 등을 향해 마구 주먹을 내질렀다. 물론 호신강기를 두른 목진에게는 쥐뿔도 통하지 않았음은 당연한 일이었다.
목진은 세령의 발버중에는 신경조차 쓰지 않은 채 고 선생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뭐어, 구경하는 재미는 있다마는 단순히 세령이를 놀리러 온 것은 아니겠지. 슬슬 본론을 꺼내보거라.”
“이런, 실례했습니다.”
오랜만에 세령 소저를 놀릴 건수가 생겨서 그만. 지나치게 솔직한 고 선생의 말에 목진의 어깨에 매인 세령이 한층 더 격렬하게 몸부림을 쳤다.
당연한 일이지만, 아무리 몸부림을 친다고 한들 그녀가 목진의 손을 벗어날 수는 없었다.
“삼극회주님께서 만남을 청하셨습니다.”
고 선생의 말에 목진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흐음. 그러고 보니 이곳의 주인에게 한 번도 얼굴을 비추지 않은 것은 예의가 아닌 일이지. 내 늦게나마 사과함세.”
아수라 붓다에게 혈교에 대한 정보를 듣는 게 시급했기 때문에 미처 떠올리진 목했지만, 확실히 지금까지 삼극회주를 찾아가지 않는 건 예의가 아니었다. 이곳 토투가의 주인은 삼극회였으며, 목진과는 아주 안면이 없는 사이도 아니었으니까.
거기에 세령이 아무리 반쯤은 이곳 토투가의 토박이에다가 삼극회와의 친분이 깊긴 해도 대뜸 기어들어 와서 삼극회 산하의 의원에 신세를 지지 않았던가.
괜찮습니다. 목진의 말에 고 선생이 가볍에 고개를 저었다.
“듣자하니 그 미친 땡······크흠. 실례했습니다.”
그동안 토투가에서 삼극회가 입은 피해가 적지 않았는지, 천상 서생 같은 고 선생의 입에서 걸쭉한 욕설이 흘러나왔다.
목진은 그런 고 선생의 사과에 손사래를 쳤다.
“미친 땡중이라고 불러도 괜찮네. 사실이잖는가.”
“크흠흠, 아무리 그래도 대협 앞에서 상소리를 할 수는 없지요. 아무튼, 아수라 붓다를 만나셨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달리 만날 사람이 있는데 굳이 삼극회에 들리셔야 할 필요는 없지요.”
“그리 말해주니 고맙군.”
비꼬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부담을 갖지 않도록 부드럽기 그지없는 배려를 담은 말투. 고 선생에게 좋은 인상을 받은 목진은 기꺼이 그의 배려를 받아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사실, 회주님이 만남을 청한 건 세령 소저 쪽이니 대협께서는 함께 오셔도 좋고, 편하게 휴식을 취하셔도 좋습니다. 회주님이 이르길, 존경하는 참룡검제 대협께 감히 호래척거(呼來斥去:오라가라)하라 할 수 없으니 당신의 의지에 거스름이 없도록 하라고 제게 당부했습니다.”
“허허.”
목진이 기분 좋은 웃음을 흘렸다. 결정권을 넘김은 물론 이런 립서비스까지 해 준다니. 자신과 연을 만들어 두고자 하는 의도가 노골적으로 보이기는 하나, 이만큼 정성들인 대접을 받으니 그 기분이 과히 나쁘지 않았다.
“그리 말을 해 준다면 내가 어찌 귀찮다고 아니 갈 수 있겠나. 내 회주의 꾀를 당해낼 수가 없겠으니 함께 감세.”
“그래주시면 감사할 따름이지요.”
계획대로. 흔쾌히 삼극회주와 만나겠다는 목진의 결정에 고 선생이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바쁜 와중에 직접 시간을 내서 온 보람이 있군.’
사실 목진까지 올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고 있었다. 서천검후전 한 번을 겪은 동안우공 이목진과는 달리 제갈세가의 삼천하 중 하나인 백룡대를 박살낸 참룡검제 이목진은 그들도 섣불리 선을 대기 어려울 정도의 거물이었으니까.
사실상 삼극회주의 주 목표는 세령 쪽이었건만, 이렇게 되면 본전 이상으로 커다란 부수입이 들어온 셈이었다.
‘참룡검제에겐 너무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하는 정석적인 접대가 효과가 좋다······잘 메모해둬야 겠군.’
그간 목진의 행보를 분석하며 공을 들인 보람이 있는 결과다. 고 선생은 남몰래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때였다. 한참을 침묵하고 있던 세령의 목소리가 끼어든 것은.
“······푸하! 아니 난 간다는 소리도 안 했는데 왜 아저씨가 가겠다고 하는데요! 회주 그 노친네 얼굴을 봐서 뭐 좋을 게 있다고!”
그간 목진에게 점혈법을 배운 것이 허투루는 아니었는지, 그 사이에 어떻게든 점혈을 풀어낸 모양이었다.
세령이 다시 꽥꽥 소리를 지르며 버둥거리자 목진의 이마에 꿈틀 핏대가 올랐다. 참으로 훈훈하기 그지없던 분위기였거늘, 꼭 이리 끼어들어서 산통을 깨야 한다는 말인가.
“갈! 안면이 없는 사이도 아니거늘, 객이 된 몸으로 그리 방자하게 구는 것은 예의가 아니니라!”
목진이 세령을 꾸짖으며 어깨를 불쑥 들썩였다. 복부를 파고드는 목진의 어깨로 인해 끄억 하고 비명을 지른 세령의 입이 다시 다물어졌다.
마지막이 조금 소란스럽긴 했지만, 그래도 썩 봐줄만한 마무리다. 목진은 그렇게 생각했다.
세령의 옆구리에 닿고 있는 그의 귀에 꾸륵 하는 불길한 소리가 들리기 전 까지는 말이다.
“우붑.”
목진은 문득 새삼스러운 사실을 하나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이 녀석, 숙취로 고생하고 있었던가?’
생각해 보면, 숙취로 고생중인 사람의 복부를 압박하면-.
“······!”
그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하지만 때는 이미, 한참을 늦은 뒤였다.
“궤에에에엑-!”
그는 보았다.
자신을 바라보던 고 선생의 눈이 화등잔만하게 커지는 것을.
그리고 그는 느꼈다.
뜨끈하고 걸쭉한 무언가가 그의 등을 축축히 적시는 감각을.
한 박자 늦게, 순자의 찢어지는 비명이 호텔 룸 안을 울렸다.
목진은 가만히 눈을 감았다.
이 모든 것이 꿈이길 빌면서.
그러나 이상하게도, 꿈은 깨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