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smic Heavenly Demon 3077 RAW novel - Chapter (288)
우주천마 3077 우주천마-289화(289/349)
43. 후계전쟁 Succession Struggle (5)
43. 후계전쟁 Succession Struggle (5) – 가즈아! 가즈아아!
“오랜만입니다. 참룡검제 대협.”
산처럼 거대한 남자가 넙죽 고개를 숙였다. 흑도무림의 일곱 축 가운데 하나인 백적 삼극회의 회주답지 않게 상당히 공손한 태도였다.
평소 보기 힘든 회주의 이색적인 태도가 흥미롭게 느껴질 법도 하건만, 좌우로 나뉘어 도열한 회의 간부들은 회주 백무정에겐 눈길 하나 주지 않은 채 과하다 싶을 정도로 깊게 허리를 굽혔다.
“큰 환대에 감사하네. 회주.”
목진은 자연스럽게 삼극회의 환대를 받으며 옅게 웃었다.
과찬이라며 겸양의 말을 한 백무정의 시선이 목진의 뒤로 향했다.
“너도 오랜만이구나.”
이전에 만났을 때처럼 고압적인 기색은 없다. 목진의 앞이기도 했거니와, 삼극회를 이끄는 회주의 입장에서 사천당가의 후예이자 명실상부 S랭크의 고수가 된 세령을 마냥 예전처럼 아랫사람으로 대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안녕하세요.”
그런 백무정의 태도 변화를 아는지 모르는지, 목진의 뒤를 쭐래쭐래 따라온 세령이 꾸벅 고개를 숙였다. 얼굴이 창백해 보이는 게, 여전히 숙취가 깨지 않은 듯한 모습이었다.
쯧쯧. 간부들과 함께 세령의 멋진 흑역사를 실컷 감상한 백무정은 속으로 혀를 찼다. 술처럼 백해무익한 것을 왜 굳이 죽자고 마시는지 그로서는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다.
물론, 세령이 저 상태가 된 데에는 그의 막내딸인 백사희가 가장 큰 원인이라는 것은 그가 알 바가 아니었다.
‘그런데 왜 참룡검제의 눈치를 보는 것 같지? 착각인가?’
가만 보니 묘하게 목진을 의식하는 듯한 세령의 분위기에 백무정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에게 보고를 하는 고 선생이 목진의 품위를 위해 직전의 참사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기에 그로서는 조금 전 그들의 숙소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었는지 알 길이 없었다.
뭐 별일 아니겠지. 대수롭지 않게 넘긴 백무정은 고 선생을 제외한 간부들을 물린 뒤 미리 셋팅된 자리에 앉아 가벼운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그간 별래무양하셨습니까. 한동안 소식을 듣지 못했는데, 아직 저 아이와 함께 다니고 계실 줄은 몰랐습니다.”
“지내다 보니 정도 들고, 어찌어찌 연이 깊어져 계속 함께하게 되었네. 사람의 연이란 본래 그런 것이지.”
사실은 나찰즈 외엔 딱히 갈만한 곳이 없어서 그렇다. 아직 현대 상식도 모르는 게 많은데다 우주선도 몰 줄 모르고, 그렇다고 어딘가 정착할 인연이 있는 것도 아닌 신세가 아닌가.
물론 먼 과거부터 인연이 이어진 천마신교가 있긴 했다. 그러나 그가 천마신교에 몸을 의탁한다면 그에게도, 천마신교에게도 그리 좋지는 않으리라.
그런 목진의 처지를 어렴풋이 느끼기라도 한 걸까, 백무정의 시선이 흘긋 세령을 바라봤다.
‘단순히 인연이라는 이유로 함께하기엔 리스크가 큰 아이다. 사천당가의 후예라는 건 지금으로선 장점보다는 단점이라고 해야 하니······아니, 오히려 이쪽이 핵심인가.’
일견 투박해 보이는 외견과는 달리, 큰 판세와 이해득실을 읽는 백무정의 능력은 상당한 편이다. 목진과 가벼운 대화를 나누는 그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단순히 친분으로 얽힌 동료라기에는 능동적으로 세령의 복수행에 가담하는 모습. 그리고 세령의 복수행이 성공하는 경우의 여파. 그리고 현재 연고 하나 없는 목진의 상황까지.
단편적인 정보들이 퍼즐처럼 짜 맞춰진다. 전체적인 윤곽이 드러난 큰 그림이 암시하는 가설은 아마도 한 가지. 백무정의 눈이 순간적으로 번득였다.
‘역시 복수행이 끝난 이후를 보는 거로군. 나 말고도 저점매수를 한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는데······. 역시 절대고수 쯤 되면 안목도 떨어지진 않는다는 건가.’
애초에 처음 황보륭과의 거래조건은 당세령이 성인이 될 때까지 최소한의 신변 보호를 해주는 것. 막말로 삼극회가 제갈세가의 눈총을 받으면서까지 세령과의 관계를 계속 이어나갈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삼극회는 백무정의 묵인하에 세령이 성인이 되어 토투가를 떠난 이후로도 개인적인 친분, 혹은 의뢰 수주라는 형태로 꽤 긴밀한 관계를 이어나갔다.
과연, 그것이 십여 년간 그녀를 돌봐주며 정이 쌓였기 때문일까?
아니. 그렇지 않았다.
간부들이야 나름의 정이 쌓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적어도 백무정에게는 해당 되지 않는 이야기였다.
그는 삼극회에게 큰 부담이 되지 않는 선에서 조금씩 당세령이라는 인물에게 투자를 하고 있었으니까.
흑도 최대의 문파 중 하나인 삼극회의 회주 자리는 허투루 딴 것이 아니다. 단순히 목진의 존재 때문에 자신을 팽하지 않았다고 판단한 세령의 생각과는 달리, 그는 처음부터 세령의 잠재력을 높게 평가했던 극소수의 인물 중 하나였다.
때문에 수년 전, 성인식 테스트를 치른 세령이 삼극회를 떠날 때 그는 고 선생을 불러 따로 지시를 내렸다.
– 고 선생. 굳이 간부들에게 관계를 재고하라 이르지 말고 앞으로도 그 아이와의 관계를 적절하게 유지하게.
– 음. 제갈세가 쪽이 불편하게 생각하는 것 외엔 딱히 리스크는 없긴 합니다만······혹시 도박을 해 보실 생각이십니까?
– 그래. 그 아이의 무공에 대한 재능은 진짜니까.
– 하지만 그 재능이 꽃피울 수는 있을지요. 딱히 저희가 리스크를 안고 지원해줄 수 있는 입장도 아니고, 제갈세가를 필두로 오대세가 쪽에서도 알음알음 견제를 하려 들 텐데요.
– 그 정도 얕은 수작으로 억누를 수 있는 수준이 아니야.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수십 년 내로 A랭크 이상의 고수로 성장할 가능성은 충분해 보이더군. 어쩌면 번듯한 문파 하나를 세울지도 모르지.
백무정은 확신하고 있었다. 그의 슬하에 있는 자식들 중 가장 무공에 대한 자질이 뛰어난 장남 백선봉과 막내 백사희조차도 감히 당세령의 재능에는 견줄 수 없었다.
– 뿌리가 정파라고는 하나, 어차피 오대세가와 불구대천의 관계인 이상 다시 정파무림에 몸담기는 요원하지. 만약 그 아이가 고수가 되어 몸을 의탁하거나, 문파를 세워 다른 대문파의 그늘로 들어가고자 한다면 우리 삼극회가 최우선 고려대상이 될 것은 당연하지 않겠나.
거의 도박에 가까운 투자였지만, 어차피 리스크 자체는 그리 크지 않았다. 괜찮은 고수가 영입될 가능성에 비하면 어차피 잘 엮이지도 않을 제갈세가와 사이가 어색해지는 정도야 싼 값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그리고 현재.
푼돈으로 시작한 백무정의 소소한 도박은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잭팟이 터져 돌아오고 있었다.
그야 언젠가 재능이 꽃피울 거야 기대하고는 있었다마는, 설마 이렇게 빨리 주가가 올라갈 줄이야.
그것도 보통 오르는 게 아니라 폭등이었다. 그것도 어마어마한 폭등.
‘가자! 대기권 뚫고 가자!’
그가 세령에게 기대한 것은 기껏해야 A랭크 전후였건만, 막상 판을 까 보니 고작 이십대의 나이에 S랭크에 올라간 것도 모자라 오대세가의 전대고수들을 하나하나 꺾어나가며 미친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거기에 더해서 우주에서 손꼽히는 절대고수인 참룡검제와의 연결고리까지.
가벼운 마음으로 넣은 소액투자가 복권보다 더 크게 터져버린 백무정으로서는 요즘 하루하루가 즐거움의 연속이었다.
‘가만······그러면 이거 혹시······?’
그 절대고수 이목진조차 인정한 포텐셜을 일찍부터 알아본 자신에게 감탄하던 것도 잠시. 백무정의 머리에 한 줄기 섬광이 일었다.
‘잠깐.’
이거 설마, 사천당가 재건 각인가?
어차피 정통성 하난 확실하겠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복수행을 완수한 뒤에 이어질 그림으로 그만한 것도 없지 않은가.
백무정은 미리 고 선생을 시켜 조사했던 세령의 인맥을 떠올렸다.
참룡검제 이목진을 포함해 화산파의 전대 장문인인 매화검존 용적산, 서천그룹의 대표인 서천검후 김연화, 소림사의 높으신 분이었을 가능성이 높은 아수라 붓다까지.
비록 그녀 본인보다는 목진의 인맥에 꼽사리 낀 느낌에 가까웠으나, 그렇다고 아예 친분이 없을 리는 없지 않은가.
거기에 아직은 추정일 뿐이나 천마신교의 뇌신유녀 라이디, 청령문, 거합문, 신흥 절대고수인 북악검후 다라까지도 그녀와 안면이 있을 가능성이 적지 않았다.
복수행을 완수한 업적에 이 정도의 광범위한 인맥. 거기에 삼극회를 필두로 몇몇 친분이 있는 문파들이 뒤를 받쳐준다면 고작 중소문파가 아니라 소규모의 세가 정도도 충분히 세울 수 있지 않을까.
백무정은 문득, 세령이 복수행을 완수한 하북팽가와 황보세가가 봉문을 하게 된 사실을 떠올렸다.
‘복수행을 하며 오대세가들을 하나하나 봉문시킨다······. 설마 이게 그걸 위한 밑그림이었다고?’
사실 그건 오해였다. 두 세가가 봉문을 결정한 것은 각자의 사정이 있기 때문이었으나, 백무정은 그런 자세한 속사정을 알지 못했으니까.
‘다만 인류정부 쪽에서 사천당가의 재건을 용인할지가 관건이로군.’
하지만 그리 큰 문제는 아니다. 정 인류정부가 협조해주지 않으려 한다면 이름을 바꿔 세우면 그만이 아닌가. 흑도에서는 세탁을 위해 그런 식으로 새로 문파 이름을 바꾸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물론 그는 알지 못했다. 이미 인류정부, 그것도 일등집행관 급의 인물과 다 이야기가 되어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백무정은 새삼 감탄 섞인 눈으로 목진을 바라봤다. 그가 아는 세령은 아직 관록이 부족한 애송이였으니, 이런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이가 달리 누가 있겠는가.
‘참룡검제······경이롭군. 이런 큰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니.’
사실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 건 순자였다.
– 소림사는 좀 애매하지만 화산파랑 하북팽가, 황보세가의 지지는 확실히 받을 수 있고······. 사파 쪽에서는 청령문을 통해서 빙백련을, 거합문을 통해서 흑풍련 쪽을 공략할 수 있겠네. 천마신교는 목진 님이 있는 이상 무조건 지지해줄 거고, 흑도에서는 삼극회주의 야심이 꽤 커 보이니까 가능성이 보이면 지지해 주겠지. 염천성 쪽도 지난 일이 있으니 잘 구슬려 보면 될 것 같고, 녹림 쪽도 흑표채랑 암림채한테 지지선언을 받기는 어렵지 않겠어. 자금은 서천그룹이랑 곽가장 쪽의 도움을 받아서 투자를 끌어오면 되겠고, 정 부족하면 무영탑의 기술을 좀 풀어서 정부 쪽의 지원을 얻어오는 방법도······.
정사마흑은 물론 인류정부까지 엮은 대통합이라는 거대한 그림을 그리는 순자. 그러나 지금의 백무정으로서는 거기까지는 알 수가 없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심증이 굳어진다. 그러면 남은 건 그것을 확인하고 좀 더 투자금을 넣을 수 있는지 알아보는 것뿐.
다행히 지금까지의 대화로 미루어보았을 때 참룡검제의 성격은 에둘러 말하는 것보다는 직설적인 화법을 선호하는 듯 보였다.
“흠흠.”
백무정은 적당히 때가 무르익었을 때 즈음, 작게 헛기침을 했다.
“음?”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 보이는 그의 모습에 목진이 의아한 표정을 짓자, 백무정은 그를 바라보며 조심스레 운을 떼었다.
“그런데 아까부터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습니다만.”
“무엇인가?”
“음, 조금 민감할 수 있는 이야기라 여쭙는 것이 조심스럽군요.”
“괜찮네. 먼저 양해를 구했으니 이해해 줄 수 있지. 어디 한번 이야기해 보시게.”
목진의 허락이 떨어졌다. 그러니 적어도 대놓고 역정을 내지는 않을 터. 백무정은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제가 과하게 넘겨짚은 것일지도 모르나······. 혹시 사천당가의 재건을 염두에 두고 계신지요.”